《80화》
1.
코앞까지 다가온 불덩어리.
성태수는 마나를 담은 주먹을 휘둘러 화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불덩어리를 부숴버렸다.
퍼엉!
사방으로 흩날리는 불꽃.
별다른 위력이 없는 김신의 공격에 성태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크기만 큰 불덩어리인가?’
그럴 리가 없다.
함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김신은 치밀한 놈이다.
그러니 여태까지 구원회가 몇 번이나 당한 것 아닌가.
본능이 외치는 위험신호에 반사적으로 사용한 스킬.
“임모탈 바디(Immortal Body).”
짧은 시간 동안 치명적인 피해로부터 회복의 중심이 되는 장기를 지켜주는 방어형 스킬의 사용과 동시에 주변으로 퍼졌던 화염이 일제히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귀가 멀 것 같은 폭음과 피부가 익을 것 같은 화끈한 열기.
엄습하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성태수는 스킬을 사용했다는 것에 안심했다.
‘이걸로 방심을...!’
생존력의 확보와 기습의 유도.
김신은 방금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혔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 약간의 빈틈을 노린다.
스르륵-
화상 입은 것보다 빠르게 자라나는 새살.
순식간에 원상태로 회복한 성태수는 주먹을 꽉 쥐고, 다시 뛰어올라 함정의 위로 올라섰다.
“···이게 무슨!”
함정 위에 올라온 성태수를 반겨주는 것은 거대한 방패와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네 능력을 잘 아는데 방심할 리가.”
파칭!
뭔가를 할 새도 없이 튀어나오는 방패의 칼날.
푸욱!
“...!”
몸을 꿰뚫은 칼날의 아릿함이 느껴지기도 전에 복부를 꿰뚫은 보이지 않는 공격.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이어지는 김신의 검.
쐐액!
성태수는 급하게 마나를 가득 담은 팔을 들어 김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서걱!
“...!”
마나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양팔의 뼈가 반 정도 잘려나갈 만큼 강력한 그의 공격.
성태수는 약간의 회복시간을 벌기 위해 함정을 뛰어넘어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울컥!
여전히 복부를 관통한 채로 존재를 과시하는 송인아의 공격이 보인다.
‘내가 이렇게 약했나?’
김신도 아닌 저런 떨거지들에게까지 애먹을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자, 천천히 분노가 몸을 감싸고 돈다.
두근.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몸속의 마나 흐름이 가속화된다.
스르륵-
복부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온 송인아의 공격을 주먹으로 부숴버린 성태수가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죽인다.”
***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연계.
마법과 스킬에 두드려 맞은 성태수가 위태로워 보였지만, 역시 강력한 특성 덕분인지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다 죽인다.”
함정 위로 올라와서 준비한 모든 공격을 맞았음에도 별다른 피해가 없어 보이는 성태수.
김신은 공격받은 그의 신체가 급속도로 아물어가는 것을 보며 가장 앞에선 강한우에게 말했다.
“한우 씨 전부 데리고 물러서요.”
“예? 안 됩니다! 홀로 상대하시면 안 됩니다!”
상대의 특성은 불사신에 가깝다는 회복 특성인 힐링팩터.
지금도 어지간한 헌터는 일격에 즉사했을 수준의 공격을 받고서도 성태수는 멀쩡하다.
“무리하지 않을 테니, 물러서요.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상대 가능한 이가 저뿐이니까 하는 말입니다.”
김신의 말을 들은 강한우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력함에 이를 악물며 답했다.
“조심하십쇼.”
“예.”
함정을 두고 대치하는 성태수와 김신.
성태수는 뒤돌아가는 팀원들을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가도록 못 두지.”
나무 위로 뛰어올라 팀원을 따라가려 하는 성태수.
팟! 탓!
김신 또한 지팡이를 집어넣고 검을 빼 든 후, 성태수가 오는 방향의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팟!
성태수는 그런 김신의 모습에 마나가 가득 담긴 주먹을 내질렀다.
일렁이는 붉은빛의 마나와 그 마나를 받아 더욱 붉게 보이는 그의 너클.
카앙!
김신은 천마신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말했다.
“내가 저들을 보낸 게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어?”
“도움이 되지 못할 팀원을 네 희생으로 살리려는 거 아닌가?”
너클을 맞대고 있는 김신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까딱이는 성태수.
김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 틀렸어.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힘을 제대로 못 쓰니까 피하란 거였다.”
말이 끝나는 순간, 묵빛의 내공에 휩싸이는 검.
“...!”
반사적으로 김신의 검을 쳐내며 물러선 성태수가 반대편의 나무로 뛰어넘어 간 사이.
검을 쥔 김신은 천천히 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웅!
그와 함께 검음을 내뿜으며 공명하는 김신의 천마신검.
묵빛의 마나로 불타오르는 김신의 검을 보며 성태수는 알 수 없는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했다.
‘피해야...해?’
자신의 능력은 일격에 목이 잘리거나, 몸이 완전 반으로 갈라지는 수준의 공격이 아닌 이상 살아남는다.
게다가 그것은 지금까지 싸워본 어떤 헌터도 쉽게 하지 못한 행동.
그 이유는 자신이 전투 중에 목을 항상 방어하기에 그런 것이다.
“...”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까지 위험을 감지하게 만드는 저 이상한 기운은 뭣이란 말인가.
성태수가 공격과 도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이, 완성된 김신의 검강.
김신은 완벽한 형태의 검강이 어린 검으로 성태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도주의 기회마저 놓쳤다.”
2.
조롱하는 듯한 김신의 목소리에 이를 악문 채로 달려들어 마나를 가득 담은 주먹을 내지른 성태수.
쐐액!
그의 주먹이 김신의 검과 맞닿은 순간, 그는 자신의 주먹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서걱!
무기 간의 마찰음이 울릴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김신의 검은 성태수의 너클을 가볍게 가르고 들어와 그의 주먹까지 깊게 베었기 때문.
“...!”
주먹을 내지른 오른팔을 빠르게 회수함과 동시에 손아귀에서 흘러내리는 너클.
일격에 무기를 파괴당한 성태수는 김신을 경악에 찬 표정으로 바라봤다.
“궁금해?”
조롱하는 듯한 김신의 모습.
처음으로 겪어보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성태수는 오히려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닥쳐!”
부웅!
가만히 서 있는 김신을 향해 내지른 왼손.
바람을 꿰뚫으며 쏘아진 왼 주먹이 김신의 얼굴에 닿을 거라 생각 한순간.
서걱!
아까와 똑같은 결과가 눈앞에서 일어났다.
“···씨발!”
고통 따위는 질리도록 느꼈기에 이제는 익숙하다.
지금 성태수를 붙잡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무력함과 압도적인 공격력의 차이.
‘무기 따위 필요 없어.’
애초에 성태수의 전투 스타일은 확고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상대의 공격이 치명적이지 않다면 모두 내어주고 목숨을 취하는 것.
‘휩쓸릴 필요 없어.’
뿌드득!
이를 악문 성태수는 일부러 복부를 연 상태로 달려들었다.
***
힐링팩터는 그 자체로 엄청나게 상대하기 까다롭다.
자신의 수준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아래 수준의 공격은 죄다 맞아서 방어하더라도 회복이 피해의 수준을 뛰어넘으니까.
하지만 수준의 차이.
즉, 상대의 공격력이 힐링팩터 특성을 가진 당사자의 수비력을 넘어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로 지금처럼.
티 나게 복부를 열고 달려든 성태수의 유인 수.
아니, 자살폭탄인가?
어쨌든 김신은 성태수의 티 나는 유인을 내버려 둔 채로,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쐐액!
맹렬하게 날아가는 김신의 검과 그 검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양팔에 마나를 둘러 가드를 올린 성태수.
촤악!
검강이 어린 김신의 검은 양팔로 가드를 올린 성태수의 팔을 반 이상 파고들었다.
“크윽!”
엄청난 김신의 공격에 침음을 흘리며 다시 물러서는 성태수.
김신은 그런 성태수를 쳐다보며 상성이 참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너무 유명하니 그에 따른 파훼법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헌터도 하기 힘든 직업이야.’
힐링팩터의 약점은 즉사.
다시 말해 일격에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신의 검강은 내공의 소모가 심하긴 하지만, 유지하는 시간 동안에는 일격 일격이 치명타.
비슷한 수준의 상대는 물론, 높은 수준의 상대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그 자체로 강력한 공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김신은 굳이 성태수가 노릴 것이 분명한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방법을 당해줄 필요가 없는 것.
왜냐면 성태수는 자신의 공격을 결코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말 그대로 검강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급소를 노려 일방적인 공격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시간이 끌리면 위험할 테니까 이제 슬슬 전투를 끝내볼까.’
회복하고 있을 집행관이 신경 쓰인다.
그리고 팀원들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다.
김신이 성태수에게 말했던 것처럼 팀원들을 뒤로 물린 건 정말로 검강을 두른 채로 쓴 초식에 휘말릴까 봐 물린 것이 맞다.
힐링팩터가 무시무시한 능력이 맞는지, 잠깐 사이에 회복된 성태수의 팔이 보인다.
“스읍-”
초식을 준비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며 오른발을 한 보 물리는 김신.
그 모습에 성태수는 본능적으로 여기가 승패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티고 버텨 김신의 목을 물어뜯는다.
방어 자세를 굳히는 성태수와 검에 맺힌 검강을 더욱 밝게 끌어올리는 김신.
김신은 한계까지 모인 검강이 담긴 검을 꽉 쥐고 자리를 박찼다.
웅크린 채로 버티는 성태수의 수비를 정면에서 깨부수기 위해.
3.
초식하나 하나에 담긴 방대한 심득(心得).
동작은 알아도 내공의 운용과 충분한 경험이 없다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천마신공이다.
김신은 성태수를 노려보며 오롯이 검에 모든 심력과 내공을 쏟아부었다.
상대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헌터.
지금 김신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 분명한 상대의 수비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것이다.
깊은 무의식까지 오로지 상대를 벤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심(心)
내면을 다스리면.
기(氣)
기운이 따라오고.
체(體)
행하지 못할 것이 없다.
검과 내면 그리고 육체의 조화.
벤다는 생각이 김신의 검에 오롯이 담긴 순간.
천마신공의 네 번째 초식, 파천(破天).
하늘을 부순다.
─!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않고 성태수를 베고 지나간 김신의 검.
그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주 작은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한 듯이 눈을 크게 끔뻑이는 성태수.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럼에도 엄습하는 불길한 생각.
‘내가 베인 건가?’
그의 생각과 동시에 뒤로 길게 이어진 가는 실선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와 함께 천천히 커지는 공간.
성태수가 모든 것을 부정하며 한 걸음 내딛은 순간, 커지던 공간이 급격하게 팽창하며 모든 것을 삼켰다.
───────!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앞을 채운 건 어두운 묵빛의 공간뿐.
그것이 성태수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