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1.
한유성에게 받은 권한을 사용해 탑의 7층에 대한 정보를 얻은 김신은 잠시 가게에 들린 후 길드로 돌아와 정비가 끝난 5팀과 함께 다시 탑에 올랐다.
7층의 입구부터 김신을 반겨주는 것은 빽빽하게 자라있는 거대한 나무들과 수풀, 주변을 날아다니는 곤충들의 소리와 따가운 햇빛.
쾌적했던 6층의 환경과 다르게 7층의 환경은 숨이 턱 막히는 높은 습도와 온도를 가진 환경이었다.
“으...숨 막혀.”
확 바뀐 환경이 갑갑한지 옷자락을 펄럭이며 목을 내빼는 송인아.
내공으로 인해 온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김신과 다르게 괴로워하는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막이나 밀림 같은 장소는 이동하는 것부터 체력을 소모 시키는 만큼,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위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했다.
‘애꿎은 곳에서 힘 뺄 필요 없겠지.’
7층은 환경의 특성상 앞서간 길드도 그리 넓은 범위를 토벌한 것이 아니기에 안전지역이 다른 층에 비해 비교적 좁다.
그러한 이유로 괴수와의 전투가 많을 것이 분명할 터.
생각을 마친 김신은 수인을 맺어 팀원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템퍼러쳐(temperature).’
기온을 조절하는 5서클 마법.
인챈트를 하는 방식으로 팀원들의 옷에 마법을 걸어주자, 확 바뀐 환경에 팀원들이 전부 김신을 쳐다봤고, 그중 천명화가 물었다.
“팀, 팀장님?”
“왜.”
“갑자기 시원합니다.”
“다행이네.”
“다행···아니,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능이야.”
“3층 사막에서는 이런 이능 없었잖습니까.”
“새로 배웠어.”
“...”
고작 며칠 사이에 또 새로운 이능을 배웠다고?
그게 말이 되나?
태연한 김신의 대답에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천명화.
김신은 팀원들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뭐해, 가자.”
***
7층의 출몰 괴수는 평균 B급 이상의 동물형 괴수.
퓨마나 족제비의 외형을 닮은 은밀하고 날렵한 동물들이 거대하게 변이된 형태로 여기저기에 몸을 숨기고 있다.
7층 등반을 시작한 후로 2시간.
강한우를 선두로 울창한 밀림을 헤쳐 가던 5팀의 후방에 있던 김신은 갑작스레 기감에 잡히는 많은 수의 괴수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모두 전투준비.”
시야 확보가 쉬이 되지 않는 장소이기에 미리 전투대형으로 걸어가던 5팀은 김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재빠르게 대형을 갖췄다.
가장 전방에 서 있는 강한우의 곁에서 이능을 사용할 준비를 끝마친 송인아와 그녀의 근처에서 불길을 일으키는 천명화 그리고 가장 먼 곳에서 주변을 훑으며 지팡이를 빼 드는 김신.
전투준비를 끝마침과 동시에 주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악!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힐끗힐끗 보이는 괴수의 외형.
날카로운 이빨.
짧지만 예리한 손톱.
매끄러운 몸체와 갈색빛의 털.
5팀이 마주한 것은 족제비의 외형을 닮은 괴수였지만, 길이는 성인 남성의 키만큼 길었고 단독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성격은 족제비의 그것과 똑 닮았는지, 5팀을 마주한 괴수들은 하나같이 모두 톱날 같은 이빨을 전부 드러낸 채로 5팀의 주위를 맴돌았다.
김신은 괴수들의 모습을 보며 5팀을 향해 구체적인 대처방법을 알려줬다.
“오기 전에 알려줬던 것과 같이 녀석들은 빠르고, 협공을 잘하니 세 사람은 떨어지지 말고 붙어있어.”
“예!”
5서클 방어마법인 배리어 덕분에 기습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김신은 괴성을 지르며 점점 다가오는 괴수의 모습에 효과적인 토벌방법을 고민했다.
기습과 협공을 사용하는 괴수.
개체 마다의 힘은 약하지만, 빠르기에 쉽게 잡기 힘들다.
‘그 방법이 낫겠네.’
김신의 고민이 끝남과 동시에 공격을 시작한 괴수들.
-캬아아악!
김신은 달려드는 괴수를 보며, 바닥에 1서클 마법 그리스를 사용했다.
마법이 지나간 자리에 보이는 것은 반짝이는 흙바닥.
마찰계수가 극히 낮아진 흙바닥은 마치 눈처럼 변해 달려드는 괴수들을 미끄러지게 했다.
-캬악!
김신을 스쳐 지나가며 공격한 괴수의 손톱은 베리어에 막혔고, 그 괴수는 바닥을 딛자마자 미끄러지며 팀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팀원들이 있는 방향에 있는 녀석들도 대부분 미끄러져 김신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고, 곧 날아간 괴수는 중간에서 부딪치며 한데 뭉쳤다.
-캬아악!
연신 미끄러지며 달려들려는 괴수들.
하지만 일어서면 쓰러지기 바빴고, 설령 일어서도 곧 다시 날아온 다른 괴수에 의해 쓰러져 점점 수가 불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김신.
“이야, 밥상 다 차렸네.”
그렇게 말한 김신은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쏟아부어.”
김신의 말을 시작으로 천명화와 송인아의 앞에 모이는 마나.
울렁이는 대기의 모습에 김신 또한 조용히 수인을 맺었다.
쐐애액! 화르륵!
스킬의 사용이 끝났는지, 괴수들을 향해 날아가는 보이지 않은 송인아의 공격과 화끈한 천명화의 공격.
괴수를 꿰뚫고 바닥에 박힌 송인아의 공격의 뒤에 적중한 천명화의 화염은 괴수의 매끈한 몸체에 달린 털을 타고 급속도로 퍼졌다.
-캬아아악!
불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수들.
김신은 고통받는 녀석들을 향해 준비가 끝난 마법을 날려 보냈다.
파직!
맹렬한 스파크를 뿜어내는 전격의 구체.
느리게 날아간 그 마법이 가장 앞에 있던 녀석에게 닿은 순간.
파지지지직!
전격의 구체가 터지며, 뭉쳐있는 녀석들의 몸에서 몸을 타며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전기의 가장 무서운 점은 뇌의 전기적 신호를 가로막는다는 점.
김신의 공격을 맞은 녀석들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에게 달라붙었고, 움직이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는 상태로 순식간에 말라 갔다.
한바탕 휘몰아친 몰이 사냥의 현장에 남은 것은 이따금 튀기는 스파크와.
티딕- 틱.
매캐한 탄 냄새를 뿜어내는 괴수의 사체뿐이었다.
2.
토벌 이후에 챙기는 것은 괴수의 가슴에 박혀있는 마석과 가죽 같은 가공이 가능한 부산물이다.
서걱-
능숙한 손길로 마석을 캐는 팀원들을 바라보던 김신은 마석을 보관하기 위해 메고 있는 해리엇의 가방을 풀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모두 여기에 담아.”
공간이 넓기에 많은 양의 마석도 담을 수 있는 가방.
딸깍-
김신이 버튼식 잠금장치를 풀고, 여는 순간.
-삐익~!
예상치도 못했던 존재가 가방 안에서 튀어나왔다.
“뭐야!”
갑갑했었는지 가방 안에서 나오자마자 김신의 품으로 달려드는 똘망이.
“똘망이?! 어떻게 여기서 나온 거야?”
-삐익!
김신의 말에 똘망이는 몰래 숨어서 따라왔다고 답했다.
“잠깐 가게에 들렸을 때 그 안에 숨었던 거야?”
-삐익.
똘망이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외의 존재에 출현에 놀란 것은 팀원들도 마찬가지.
5팀의 팀원들은 특이한 소리에 마석을 캐던 손을 멈추고 김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그게 똘망이?”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 송인아의 물음에 김신은 품에 안은 똘망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얘가 그 새끼 그리핀이야.”
-삐익.
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끔뻑이는 똘망이.
작고 앙증맞은 똘망이의 귀여운 모습에 송인아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꺅! 어떡해! 괴수인데 귀여워!”
송인아의 모습에 천명화와 강한우도 마찬가지로 똘망이를 보기 위해서 달려왔다.
순식간에 똘망이를 안은 김신을 둘러싼 팀원들.
한참을 빤히 쳐다보던 송인아가 김신에게 물었다.
“오빠. 쓰다듬어도 돼?”
새끼라고 해도 잘못 물리면 손가락 하나가 날아갈 수 있다.
김신은 송인아의 말에 답하기에 앞서 먼저 똘망이에게 물었다.
“똘망아. 괜찮아?”
-삐익.
쓰다듬는 것 정도는 괜찮다는 똘망이의 답에 김신은 송인아에게 말했다.
“머리 쓰다듬는 것 정도는 괜찮다네.”
“정말? 어떻게 아는 거야?”
의사소통의 방법을 묻는 송인아의 말에 김신은 왼쪽 손목에 찬 아티펙트를 보여주며 답했다.
“이거로 소통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김신의 대답 직후 송인아는 조심스럽게 똘망이의 머리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삐익.
머리 위에 송인아의 손이 닿자, 고개를 돌려 송인아의 손끝에 부리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확인하는 똘망이.
이내 확인이 끝나자, 고개를 낮추며 송인아에게 조용히 머리를 맡겼다.
스륵. 스륵.
낮게 울리는 손과 깃털의 마찰음.
송인아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좋은지 똘망이는 낮게 그르렁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명화와 강한우도 김신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저도 쓰다듬어도 됩니까?”
“저, 저도 좀.”
마찬가지로 이어진 천명화와 강한우의 손길.
부리를 가져다 대 냄새를 확인한 후, 허락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진행한 똘망이의 검열을 통과한 것은 강한우 뿐이었다.
“난 왜...”
그 충격적인 결과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김신을 바라보는 천명화.
김신은 똘망이에게 이유를 물어보고 난 후, 천명화에 답을 알려줬다.
“손에서 이상한 냄새 난데.”
***
갑작스러운 똘망이의 등장.
일견 불편할 수도 있는 동행이었지만, 똘망이가 합류한 이후 팀원들의 이동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졌다.
“앞쪽에 괴수가 몰려있으니까 우측으로 돌아가자.”
“예!”
똘망이가 하늘을 날며 주변의 상황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자기의 일을 하는 똘망이를 계속해서 뚫어지라 쳐다보던 송인아가 김신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티펙트만 있으면 키울 수 있는 거야?”
“아니.”
“그러면?”
열정이 대단한 송인아의 모습에 김신은 친절하게 현실을 깨닫게 해줄 테이밍 절차를 설명해줬다.
“가장 먼저 교감하고, 그 다음에 괴수의 심상 안에 들어가 대화를 한 후 계약해야 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지.”
“새끼도?”
“종류에 따라 다를걸? 근데 애초에 새끼 괴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지 않나?”
“그건...그렇지.”
꽤 현실적인 답에 고개를 끄덕인 송인아는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밝게 웃으며 김신에게 말했다.
“그냥 보고 싶으면 오빠네 가게 가면 되겠다.”
그런 방법이?
3.
똘망이의 정찰 덕에 2일이라는 시간 만에 던전이 어렴풋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한 5팀.
울창한 나무들의 사이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대한 석재건축물이 보이는 장소에서 5팀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앉아있는 5팀의 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똘망이.
김신은 모처럼 신나 보이는 녀석에게 던전의 입구까지 날아갔다 돌아올 것을 말한 후, 가볍게 가방에 있는 음료를 꺼내 마셨다.
“똘망이 덕에 진짜 엄청 빠르게 도착했습니다.”
날아가는 똘망이를 보며 하는 천명화의 말에 김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로 답했다.
“그러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알려주는 건데.”
“진작에 알려주시지 그랬습니까?”
“알려줬으면 쉽게 믿었겠냐?”
“···그렇진 않았겠죠.”
“5층에서 똘똘이를 봤으니까 그나마 믿어주는 거지.”
“그렇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천명화.
김신은 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실, 똘똘이 아니었으면 알려줄 생각도 못 했을 거 같긴 해.”
대화를 끝으로 손에 들었던 음료수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은 김신.
타이밍에 맞춰 돌아온 똘망이의 모습에 김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의념으로 녀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믿기 힘든 정보에 고개를 돌려 던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 김신.
“...”
그를 놀라게 한 똘망이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앞에 사람이 숨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