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76화 (76/116)

《76화》

1.

그 뒤로 이어진 해리엇의 설명은 게이트라는 존재 자체가 탑이 지구를 침식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침식이 진행될수록 더 강한 괴수가 나온다는 거야?”

“맞아.”

석판에 적혀있는 내용과 상충 되는 해리엇의 말.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결국 답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르든 오르지 않든 언젠간 재앙이 찾아온다는 거네.’

여러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에서 봤듯 결과는 똑같을 거다.

괴수에 의해 멸망한 세계.

그렇다면 침식을 가속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빠르게 탑의 끝을 보는 것이 맞는 선택일 터.

궁금한 점들을 모두 물어본 김신은 던전의 보스를 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라이프베슬을 나한테 준 이유가 있지?”

해리엇은 김신의 손에 들린 라이프베슬에 슬쩍 눈길을 주며 답했다.

“알고 있지 않나?”

해리엇의 말에 담긴 뜻을 잘 알고 있었던 김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넌 살 생각이 없었구나.”

“맞아. 이성을 되찾게 해준 사람이 네가 아니었다면 난 육체가 재구성되자마자 라이프베슬을 스스로 부수려 했었다.”

그렇게 말한 해리엇은 앙상한 뼈만 남아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직도 그 불쾌했던 감각...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던 그 끔찍한 기억이 잊히질 않아.”

처음 여의도에서 만났을 때, 이성을 잃었던 해리엇의 모습은 욕망에 삼켜진 모습이었던 것.

그는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탄생한 자신을 숨기고자 스스로를 깊은 숲에 가둔 것이었다.

김신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는 해리엇을 마주 봤다.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인과(因果)를 건드려 벌을 받았지만, 그는 결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힘을 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원하는 대로 해줄게.”

“고맙다.”

김신의 말에 대답한 후, 조용히 눈을 감는 해리엇.

김신은 그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선물했다.

빠지직-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손아귀 사이로 새어나가는 마기.

그와 함께 눈앞에 있는 해리엇의 모습도 점차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끝난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자그마한 가방 하나.

김신은 조용히 그 가방을 챙겨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어?”

가방의 크기보다 훨씬 넓은 가방의 내부공간.

대략 방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진 공간확장 마법과 경량화 마법이 걸린 아티펙트의 내부에는 여러 가지 포션이 들어있었다.

‘이거면 여기 있는 책들도 거의 다 들고 갈 수 있겠는데?’

마법적 지식과 연금술을 배울 수 있는 서적을 포기할 수 없다.

모든 걸 챙긴 김신은 오두막의 밖으로 나와 해리엇의 마지막 흔적이었던 오두막을 태우며 잠시 묵념했다.

‘부디 아내와 만났기를.’

해리엇과의 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김신은 빠르게 움직여 팀원들이 기다리는 던전으로 향했다.

김신이 가는 길은 이미 팀원들이 지나간 길이었기에 그를 맞아주는 것은 대부분이 죽어있는 괴수들이었다.

마석부터 부산물까지 돈 되는 것은 남김없이 긁어간 팀원들의 모습이 현장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내가 없어도 잘하는구나.”

그 모습에 흐뭇하게 웃으며 달려가기를 꼬박 하루.

해가 질 무렵, 던전이 있는 마을 입구에 도착한 김신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워놓은 팀원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 왔어!”

“오셨습니까!”

반갑게 맞아주는 팀원들.

김신은 빠르게 달려가 다시 합류했다.

***

밤사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팀원들에게 대충 설명해 준 김신.

대부분 이성을 가진 괴수의 존재에 놀란 반응을 내보였고, 그중 해리엇이 말한 탑의 존재에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팀장님. 탑을 오르는 게 맞는 선택일까요?”

옆에 있던 강한우의 질문.

김신도 팀원들에게 오며 계속해서 고민했던 문제지만, 사실 해줄 답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오르든 안 오르든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차라리 빠르게 대비를 하는 게 좋겠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우의 모습.

김신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어차피 탑을 한 층 등반하는 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빠르게 오른다고 해도 오를 수 있을지도 의문 아니겠어요?”

“...맞네요.”

한 층을 오르는데에도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기에 솔직히 오르는 것 차체로도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김신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눈앞에 일을 생각하자는 의미로 말했다.

“우선, 6층의 보스를 잡고 생각하죠.”

“예.”

탑의 6층 보스는 해리엇의 육체.

즉 살덩어리다.

천천히 보스가 있는 마을 내부로 들어가는 5팀.

송인아는 김신의 곁으로 와 알고 있는 정보를 넌지시 말해주었다.

“6층의 보스는 물리적 타격이 거의 먹히질 않아.”

“그 말은 이능력으로 잡아야 한다는 거야?”

“응. 화염이나 냉기의 속성이 담긴 이능력.”

해리엇도 그랬지만, 그의 육체마저도 마법으로 잡아야 한다라...

김신은 마법의 경지를 높일 수 있게 도움을 준 해리엇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느꼈다.

‘덕분에 편해지겠어.’

5서클부터는 마법의 파괴력과 응용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는 만큼, 얼마나 발전했을지 기대됐다.

2.

마을의 내부는 조용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 조용함이 아닌 다른 의미의 조용함.

곤충의 울음소리도, 바람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적막.

-쿠륵

그 사이로 들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6층의 보스인 해리엇의 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모습이...’

기괴하다. 라는 말로는 부족한 설명.

피부는 보랏빛을 내뿜고, 몸은 불어터진 시체의 그것처럼 보기 흉하게 부풀어 있다.

‘저게 모두 인과의 영향인가?’

목각인형에 담긴 기억에 마지막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육체를 지탱하는 뼈가 사라졌기에 더욱 기괴하게 뒤틀린 것 같았다.

“무형의 창.”

그리고 그 기괴한 모습에 보스의 머리를 향해 스킬을 발사한 송인아.

서걱!

스킬의 이름과도 같은 형태가 없는 염동력의 창이 보스의 머리를 가르고 지나갔지만, 그녀가 했던 말처럼 속성이 없는 공격은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스르륵-

두 갈래로 갈라졌던 보스의 머리가 마치 점토처럼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역겹네.’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외형과 회복력.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김신은 연습했던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명화야 잠깐만 시간 좀 끌어봐.”

“예! 인페르노!”

천명화가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주위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맹렬한 화염.

“블레이저!”

이어서 스킬을 사용하자, 주위를 가득 채운 화염이 창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보스에게 날아들었다.

화르륵!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법을 준비하던 김신은 보스가 천명화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본 순간, 놀라고 말았다.

-쿠륵.

“저게 말이 돼?”

천명화의 스킬이 닿기 직전, 그 부위를 순간적으로 갈라지게 만들어 공격을 회피했다.

김신이 놀란 것처럼 천명화 또한 그 괴상한 광경에 놀라 연달아 스킬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화르륵! 퍼엉!

공격을 회피하며 점점 다가오는 보스.

일정 거리까지 다가오자, 보스의 몸에서 촉수 같은 것이 튀어나와 김신을 포함한 팀원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휘익!

머리와 다리를 동시에 노리고 날아드는 공격.

김신은 가볍게 공중에서 몸을 돌리는 것으로 회피하며, 팀원들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후-.”

재빠르게 방패를 들어 보스의 공격을 막아낸 강한우와 염동력으로 자신 몸을 뒤로 날려 회피한 송인아 그리고 불길을 일으켜 촉수가 다가오는 것을 저지시킨 천명화.

각자의 방법으로 보스의 공격을 회피한 팀원들을 보며, 김신은 보스를 반대 방향으로 유인했다.

-쿠륵.

가까이 접근하자, 쉴새 없이 날아오는 보스의 공격.

휘익! 휘익!

김신은 여유롭게 공격을 회피했고, 그의 몸을 맞추지 못한 보스의 촉수는 허공을 가르며 지나가 애꿎은 벽을 강타했다.

콰앙!

얇지만 강력한 촉수의 위력.

그 모습을 본 김신은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물리적인 공격은 안 맞는데, 정작 보스의 공격은 맞으면 골로가겠네.’

촉수로 공격한다.

공격당한 물체를 삼킨다.

삼킨 물체를 순식간에 녹인다.

지극히 단순한 공격방법.

하지만, 제대로 맞는 공격이 없으니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

김신은 촉수를 휘두르기 위해 다가오는 보스를 피해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며 고민했다.

단발성 공격은 모조리 회피해 제대로 맞지 않는다.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가면 위력적인 촉수 공격이 날아든다.

그렇다면 사용 가능한 방법은 한 가지.

‘거리를 두고 사용 가능한 범위 공격.’

김신은 천명화에게 계속해서 공격할 것을 말하고, 회피에 집중하며 천천히 수인을 맺었다.

‘한 방에 끝낸다.’

마법을 쏟아부어 회복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쿠륵!

이상을 감지했는지, 다가오던 속도를 조금 더 높이는 보스.

꿀렁거리며 이동하는 기괴한 몸집이 한층 더 빠른 속도로 김신을 향해 다가왔다.

휘익!

회피의 타이밍을 놓친 것인지 다시 한번 날아드는 공격.

아슬아슬한 거리였기에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회피했지만, 보스의 공격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휘익! 휘이익!

‘공격은 단순하다.’

이성이 없는 것이 확실한지, 공격 자체의 패턴은 단순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휘둘러지는 채찍 같은 공격.

김신은 단순한 공격은 맞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회피하며 수인을 맺었다.

공격의 회피와 동시에 메모라이즈를 이어간다.

후웅! 콰앙!

마을 대부분이 보스의 공격 때문에 부서졌을 쯤.

“메모라이즈.”

우웅!

모든 준비가 끝난 김신이 마나를 끌어모으며 준비한 첫 번째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필드(Fire Field).”

화르르륵!

5서클 범위 마법.

사용과 동시에 보스를 중심으로 반경 10m의 범위가 불길에 휩싸였다.

-쿠르르륵!

피할 수 없는 공격에 놀란 보스가 빠르게 꿀렁거리며, 마법이 닿는 범위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바인드(Bind).”

콰드드득!

4서클 속박마법의 사용과 동시에 땅속에서 튀어나온 줄기가 보스의 발을 움켜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회피한다면 회피하지 못하게 공격을 연달아 사용하면 그만이다.

우웅!

계속해서 몰려드는 마나가 급격하게 변환되며 원하는 형태로 바뀐다.

묶인 상태로 불타는 보스를 향해 이어지는 김신의 마법.

“라이트닝 스피어(Lightning Spear).”

파지지직!

스파크를 뿜어내는 전격의 창이 고정된 모스의 몸에 박히며 보스의 몸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고, 김신은 거기에 쐐기를 박는 마지막 마법을 사용했다.

“익스플로전(Explosion).”

5서클 최강의 폭발마법.

스태프의 증폭효과가 합쳐진 마법은 보스의 앞에서 맹렬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붉게 물든 마나가 한계에 도달한 순간.

틱.

미약한 소리와 함께 달아오른 마나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폭발로 인해 뿌옇게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고, 시간이 지나 진원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상체가 날아간 보스의 모습이었다.

“팀장님...”

홀로 보스를 압도하는 김신의 모습을 본 천명화의 맥빠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새 또 얼마나 강해지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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