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1.
프레인 제국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또 다른 제국인 켈렌 제국.
그 켈렌 제국에는 비밀에 싸인 마법사들이 존재했는데, 그들은 제국의 가장 깊은 장소, 저주받은 신의 정원에 잠들어 있는 봉인된 아티펙트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사단에 소속된 마법사, 루엘.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은 수재이자, 제대로 된 도덕적 관념을 배우지 못한 아이였던 그는 미숙했고, 그런 루엘을 동료 마법사들은 엄청나게 아꼈다.
보고 배운 것이 진리였던 그에게 그 누구도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아 그저 시키는 것을 한다는 게 도덕으로 자리 잡혔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다른 동료들 때문에 그는 진짜 선악을 비롯한 도덕적인 관념이 뭔지 알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저주받은 신의 정원.
고난과 역경을 지나, 정원 가장 중간에 있는 제단의 가장 위에 놓인 것은 세 개의 보석이 반짝이는 왕관이었다.
어렵사리 모든 시련을 극복한 그들은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왕관을 무사히 찾았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소유하기만 해도 모든 것을 움켜쥘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정보를 알게 된 다른 마법사들과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
많은 동료가 전투 때문에 죽어가는 것을 보며 루엘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동료를 살리려면 저 아티펙트가 없어야 한다고.’
루엘은 동료를 살리기 위해 아티펙트를 훔쳐 달아났다.
그 후로 10년.
뛰어난 마법적 재능으로 아티펙트에 걸린 봉인을 풀게 되었고, 그는 그 봉인을 푼 순간 퍼진 마나의 흐름을 숨기지 못해 다시 쫓기게 되었다.
도주하는 길에 들린 각지의 마을에 한 가지씩 아티펙트를 숨겼고, 그렇게 도착한 마지막 장소인 테론 섬.
턱 끝까지 추격한 마법사들의 정체가 황제의 또 다른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된 그는 마지막 남은 아티펙트인 갈색의 보석을 호수에 집어 던지며 생각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
[전설등급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아티펙트는 예상했던 것처럼 왕관의 한 부분이 맞았다.
그리고, 모든 부분이 모인 왕관은 생각했던 것처럼 창조의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아티펙트의 기억을 엿본 김신은 큰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는 똘똘이에게 물었다.
“똘똘아. 혹시 이 아티펙트 먹었을 때 달라진 게 덩치 빼고는 없었어?”
김신의 물음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잠시 고민하던 똘똘이.
이내 뭔가가 생각났는지 그의 질문에 답했다.
-화가 나서 땅을 치면 땅이 움직였어요.
“그건 네 덩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아니에요! 진짜 땅이 막 흔들렸어요.
덩치가 5m에 십여 톤은 거뜬히 나갈 것 같은 녀석의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실험할만했다.
‘변화의 구슬이 외형만 안 보이게 바꾸는 게 아닐지도 몰라.’
구원회가 아티펙트에 대해 얼마나 조사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이 가진 아티펙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김신도 자신이 소유한 아티펙트의 힘을 알 필요가 있었다.
손에 갈색의 보석을 쥔 김신.
기억으로도 정확한 사용 방법을 찾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보석인 변화의 구슬은 사용했었기에 여러 가지를 시험해보며 사용법을 찾기 시작했다.
두들겨도 보고, 쓰다듬어도 보고.
수십 가지의 시도가 전부 물거품이 될 때쯤에 생각난 또 다른 방법.
-화가 나서 땅을 치면 땅이 움직였어요.
의지를 이용한 사용 방법.
곧바로 김신은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김신 또한 마법사.
마나를 느끼고 조율하는 것은 꽤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할 만했었다.
집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석으로부터 이질적인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김신은 눈을 떴다.
‘전혀 다른 사용법.’
김신은 보석을 쥔 왼손이 아닌 오른손을 내뻗으며 보석의 마나에 의지를 담았다.
거대한 벽.
쿠구구구궁!
의지의 발현과 동시에 땅이 거칠게 흔들리고, 이윽고 솟아오르는 거대한 토벽(土壁).
높이 5m에 길이 20m.
“팀장님! 이게 뭡니까!”
갑자기 생겨난 토벽에 놀란 천명화의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와...”
엄청난 위력에 아티펙트를 사용한 당사자인 김신 또한 놀란 건 매한가지.
‘대지에 관한 것을 조종하는 건가?’
마법이 아닌 아티펙트의 순수한 능력이지만, 땅을 조종하는 것에 한해서는 거의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구원회가 아티펙트의 사용법을 안다면...’
회복의 녹옥은 이미 신의로부터 유출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니, 남은 것은 파괴의 홍옥.
‘파괴’라는 단어가 붙어있기도 하고, 이미 원 소유주였던 퍼니셔가 죽었기에 사실상 파괴의 홍옥의 사용법도 유출되었다고 생각 하는게 맞겠지.
‘꽤 큰 문제네.’
파괴의 정반대는 창조.
그 기반이 되는 능력의 보석을 얻은 것은 큰 이득이었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됐다.
곧 벌어질 것이 분명한 구원회와의 전면전.
김신은 빠르게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2.
두 번째 아티펙트인 낚싯대의 정체는 생각보다 기묘했었다.
강태공의 낚싯대.
부러진 낚싯대의 원주인은 세월을 낚았다는 사내였다.
이 아티펙트에는 한 가지 웃긴 점이 있었는데, 낚싯바늘이 물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수록 더욱 큰 물고기가 걸린다는 점이었다.
연달아 이어진 감정과 보석의 사용 방법을 익히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김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팀원들.
“저희는 다 낚았습니다.”
김신이 낚싯바늘을 집어 던지기 전부터 얼마나 걸릴지 토론하기 시작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김신은 팀원들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다들 최소한 10분은 걸릴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나는 다르게 생각하거든?”
김신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부정하는 송인아.
“아무리 오빠라도 쉽게 잡지 못할걸?”
“왜?”
“한우 오빠가 낚시광인데, 여기 물고기들이 죄다 약삭빠르데.”
“그래?”
김신의 물음에 옆에 있던 천명화와 강한우가 차례로 답했다.
“팀장님 저도 30분 걸렸습니다.”
“저도 15분 걸렸습니다.”
“흠...”
잠시 고민을 하는 것처럼 턱에 손을 얹고 고민하는 척한 김신은 싱긋 웃으며 도발했다.
“내가 초보지만 두 사람보다 빨리 낚을 자신 있는데, 내기할래?”
“무슨 내기입니까?”
천명화의 질문에 김신은 별 고민 없이 말했다,
“잡일 담당 어때?”
“오, 좋습니다!”
반색하는 천명화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김신을 바라보는 강한우.
김신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나서는 낚싯대를 뒤로 길게 빼며 던질 준비를 했다.
“던지는 순간부터 시작인 거야.”
“옙!”
촤르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낚싯바늘.
사실상 대부분이 거의 날아갔기에 맨손으로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퐁당.
옅은 물소리를 내며 낚싯바늘이 호수 안으로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김신은 천천히 시간을 셌다.
“딱 5분.”
“네?”
“딱 5분 뒤에 끌어올려 본다고.”
김신의 말에 낚시를 즐겨 하던 강한우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다른 게 아니었다.
‘최소한 낚싯대가 움직이기는 해야...’
흔히 말하는 입질.
그 입질도 없는데 끌어올려봤자 뭐하겠는가.
5분이 지난 후.
강한우가 진짜로 낚싯대를 끌어 올리려 하는 김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하려고 했다.
“팀장님 최소한 입질은-”
촤악!
경쾌한 물소리와 함께, 강한우의 입을 막는 물고기의 퍼덕거림.
강한우는 자신의 앞에서 화려한 존재감을 내뿜는 무지개빛 등지느러미의 물고기를 본 순간, 입을 떡하고 벌렸다.
‘입질도 없는데 낚았다고? 낚시계의 전설인 강태공인가?’
입을 벌리고 멍하니 김신을 바라보는 강한우.
김신은 그런 강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 줄은 모르는데 어쨌든 이겼으니까 두 사람 중 아무나 한 명이 잡일 담당해. 알겠지?”
쿨하게 돌아서 장비를 정리하는 김신의 귓가에 천명화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진짜 해낼 줄이야.”
천명화의 말에 강한우는 더 허탈한 목소리로 답했다.
“말도 안돼...”
***
똘똘이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김신은 팀원들과 함께 6층으로 향했다.
6층의 배경은 4층과 비슷한 크기를 가진 넓은 배경이다.
시작지점부터 던전이 있는 장소인 성까지는 대략 3~4일이 걸리는 거리.
하지만, 김신은 가장 먼저 가야 하는 장소가 있었다.
‘연금술사의 숲.’
여의도에 출몰했던 리치가 사라지며 자신을 찾아오라 말했던 장소인 연금술사의 숲.
다행히도 얼마 전 한유성에게 받은 정보관람 권한을 이용해 6층의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리치가 말하는 숲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정보가 이래서 돈이 되는구나.’
수호 길드 내부에서도 따로 정보를 얻기 위해 움직이는 헌터들이 있을 만큼, 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어쨌든 본 정보를 바탕으로 연금술사의 숲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신은 팀원들에게 물었다.
“중요한 일 때문에 6층의 어딜 좀 들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중간에서 잠시 갈라져야 할 것 같아.”
“예?”
“따로 볼일이 있어서 그래.”
“혼자서도 괜찮으신 겁니까?”
6층에서 출몰하는 괴수의 수준은 C급과 B급 사이.
이 정도의 난이도라면 김신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걱정을 담아 물어보는 천명화의 말에 김신은 가볍게 답했다.
“괜찮아.”
“그러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마워.”
어디까지나 연금술사의 숲은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홀로 가야 한다.
그렇게 중간에서 팀원들과 갈라진 김신은 던전의 반대 방향에 있는 연금술사의 숲으로 향했다.
3.
일자로 곧게 자란 나무가 숲을 이룬 이곳.
세 명은 모여야 간신히 나무의 둘레를 감당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이 많이 자란 이 숲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크기가 큰 것에 비해 작고 얇은 잎사귀를 가지고 있었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가 꽤 있었기에 빛이 잘 들었다.
적당한 그늘과 채광.
겉으로 보면 산책하기 아주 좋은 그런 풍광을 간직한 장소다.
‘이런 장소에 리치가 살고 있다니.’
한유성에게 받은 정보 접근 권한으로 살펴본 이 숲의 위험 수준은 대략 B급.
B급 이상의 헌터여야만 홀로 오갈 수 있다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깊은 장소까지 들어가지 않았기에 리치를 발견하지 못했었던 건가.’
분명 리치를 발견했다면 이 숲의 난이도는 B급이 아니라 S급이었을 거다.
‘괜찮겠지?’
잠시나마 이성을 되찾은 리치가 한 번 찾아오라는 말 때문에 이곳에 왔지만, 사실 이곳에 오는 것이 맞는 선택인가 싶었다.
풍경을 감상하며 조용한 숲을 1시간 정도 걸어갔을까.
────!
기감에 미묘한 마나가 감지되는 것을 확인한 김신은 잠시 자리에서 멈춰섰다.
“흠...”
나무를 따라 둥글게 쳐진 원형의 결계.
김신의 마법 수준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지만, 화경에 이른 기감이 이 장소를 중심으로 마법적인 결계가 쳐져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무슨 결계지?’
결계의 종류는 다양하다.
내부로 들어온 사람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결계, 함정에 빠트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결계, 들어온 길 그대로 다시 내보내는 결계 등.
김신은 결계의 바깥에 묶어놓은 끈을 붙잡은 후에 천천히 결계의 내부로 들어갔다.
지잉-
결계 내부로 들어가자, 결계의 막이 가볍게 울리는 것이 김신의 기감에 느껴진다.
결계의 대부분은 상시 작동한다.
그렇기에 곧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고 있던 김신.
“...?”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것을 이상하게 느낀 김신이 발걸음을 옮겨 조금 더 깊이 들어가려는 순간.
지이잉!
기감에 잡히는 오싹한 느낌.
‘온다!’
살갗을 따갑게 만드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기감이 느껴지는 장소를 바라보자, 김신을 향해 쇄도하는 후드를 쓴 존재.
“왔구나.”
이 장소에 방문한 목적인 리치가 갈라지는 쇳소리와 함께 김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