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73화 (73/116)

《73화》

1.

이천 년이라는 시간은 짐승을 그 종(種)을 초월한 영물(靈物)이 되도록 만들만했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이천 년의 기억.

그 모든 장면을 일일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버거웠기에 김신은 아직 거북이가 이성을 갖기 전의 기억들은 대부분 건너뛰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도 있었다.

5층과 녀석에게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이걸 말하기에 앞서 거북이의 기억을 모두 살핀 후에 녀석과 한 첫 대화는 김신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대화하기 전에 우선 입에 박힌 저 낚싯줄 좀 빼줘.

테이밍을 하기 쉽진 않겠다고 느꼈지만, 시작부터 명령이라니.

그 모습에 김신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싫어.

-뭐? 싫다고?

김신과의 교감이 시작된 상황이라 서로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

테이밍의 위험은 지능이 높은 개체일수록 길들이기 힘들고, 길들이지 못했을 때의 반동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녀석의 요구를 더욱 순순히 들어줄 수는 없는 법.

예상대로 녀석은 자신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자, 강짜를 놓기 시작했다.

-잡아먹는다?

손을 맞댄 김신이 아닌, 심상 속에 있는 김신에게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여기서 잡아먹는다는 의미는 테이밍을 실패한다는 의미.

하지만, 김신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해볼 수 있으면 해보던가.”

심상(心想)은 마음속의 생각이다.

즉, 심상 속의 의지가 더욱 굳건하고 단단하다면 테이밍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는 거북이의 심상 속이기에 녀석이 유리하다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거대한 동체를 이끌고, 김신을 향해 다가오는 녀석의 모습에 김신은 의지를 확고히 다지며 말했다.

“멈춰.”

우뚝!

-뭐, 뭐지?!

김신의 말에 거대한 동체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녀석.

자신을 부모처럼 생각하는 똘망이와 다르게 거부하려는 녀석의 모습이 신선했다.

김신은 낑낑거리는 녀석을 향해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거지.”

-여긴 내가 더 강할 텐데...

“아니,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도 내 손아귀를 피해갈 순 없을 거야. 그러니 얌전히 투항해.”

이성과 사고가 아직 사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이런 영물이 훨씬 다루기 편하다.

몇 번 느껴보지 못한 공포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먹히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능이 뚜렷한 괴수가 오히려 다루기 힘들다.

본능 또한 의지.

테이밍 중 괴수가 가진 흉성이 터진다면 그 본능을 다루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성이 있다고 꽤 버티네.’

김신은 효과적인 테이밍을 위해 사실 약간 무리했다.

거부하려는 녀석을 옥죄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심력을 썼기에.

하지만, 그랬기에 거북이는 확실히 깨달았다.

아무리 자신의 심상 안이라 해도, 결코 김신을 거스를 수 없을 거라는 걸.

-나, 나는...

두려움은 적절히 사용한다면 좋은 테이밍의 재료지만, 과다하게 사용한다면 분노를 쌓게 하는 양날의 검이다.

압박감에 몸을 떠는 거북이를 놓아준 김신은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다.

“떨지 마. 널 억지로 조종하러 온 게 아니니까. 물론, 낚싯바늘도 빼 줄게.”

-정, 정말?!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끔벅거리며 하는 녀석에 말에 김신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네가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어.”

-뭔데?

“넌 인간이 아니기에 모르겠지만, 인간은 원래 누군가에게 부탁할 상황이 오면 존댓말로 부탁하거든.”

알면서 안 쓴 것이 확실한지, 김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공손하게 존댓말을 했다.

-네, 하겠습니다. 뽑아주세요.

“좋아. 그리고 또 하나.”

-또...?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않겠는가.

“나랑 계약하자.”

-계약?

“이름은 깔끔한 거로 지어줄게.”

김신은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김신이 거북이의 심상을 읽었듯 거북이도 김신의 심상을 살펴볼 수 있었기에 그가 정말 나쁜 의도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애초에 자신의 입에 걸린 낚싯바늘을 빼 주려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 후, 심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맺은 계약.

정상적으로 테이밍을 끝내자, 남은 것은 다시 손을 맞댄 그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진다.

사방이 물로 이루어진 녀석의 심상을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이제는 똘똘이라 불리게 될 녀석의 부리였다.

***

한참 동안 부리에 손을 얹고 가만히 있던 김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송인아는 다시 한번 속삭이듯 그에게 말했다.

“오빠!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나온 괴수가 분명한 거대한 거북이와 그 거북이의 부리에 손을 대더니 눈을 감는 김신.

심지어 시간이 조금 흐르자, 눈을 뜨고는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괴수의 부리를 쓰다듬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흐름에 놀라 말하니, 돌아오는 김신의 답은 송인아의 얼을 더 빠지게 했다.

“길들였어.”

“뭐, 뭐?!”

“얘랑 친구 먹었어.”

“친구? 지금 그걸 말-”

송인아가 말이 되는 소리냐며 말하려는 찰나.

-크옹.

눈앞의 거북이가 고개를 숙이며 자신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하려던 말의 반대말을 힘없이 입 밖으로 내뱉으며 눈을 비벼야만 했다.

“말이 되네...”

이능에 무술에 하다하다 이제는 괴수를 길들이기까지.

육체적 능력이야 그렇다 치고, 이능도 아티펙트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다 치지만, 저건...

‘오빠니까 그냥 그려러니 하자.’

항상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되도록 만든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편안해진 송인아는 고민하기를 그만두고 받아드리기로 했다.

“이름이 뭔데.”

“똘똘이.”

“풉!”

어이없게도 송인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라 너무나도 절묘한 작명이라 생각했기에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왜? 이상해?”

“아니, 너무 딱 맞아 떨어져서. 그 짧은 시간에 인사도 배우고, 눈도 동글동글하고.”

“인사에 놀라면 안 될 텐데.”

“그게 뭔 소리야?”

“아니야, 천천히 알려줄게.”

송인아는 씩, 웃는 김신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악동 같다고 생각했다.

2.

천명화에 이어 강한우까지.

모두에게 놀람과 경악을 선물한 똘똘이의 소개가 끝날 무렵.

김신은 녀석을 쓰다듬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지금이 똘망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적기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봤으니, 믿지 못하진 않겠지.’

엘레인이 살던 장소와 다르게 지구는 괴수를 가축과 같은 선상에서 보지 않는다.

그저 무조건 죽일 대상으로 바라보지.

사람의 고정관념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일 거로 생각했지만, 김신은 믿었다.

작고 귀엽기에.

고민의 끝에 김신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녀석처럼 길들인 새끼 그리핀이 집에 한 마리 더 있어.”

우선 예상했던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김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팀원들.

하지만, 나온 답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밥은 뭘 먹습니까? 잘 날아다니는 겁니까? 몸 크기는 어떻습니까? 털갈이는 했습니까?”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의심 없이 그저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천명화.

“왜 그걸 지금 말했어? 미리 말했으면 맨날 보러 갔을 텐데. 걔도 얘만큼 똑똑해?”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에 섭섭함을 토로하는 송인아.

“언제 방문하면 되겠습니까.”

날을 잡는 강한우까지.

김신은 증거를 보여줬다고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는 팀원들을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괴수를 길들이는 모습이 안 이상해?”

“아뇨, 이상합니다.”

곧장 답하는 천명화의 모습.

김신은 그 말에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럼 왜 이상한 사람 보는 반응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하는데?”

“팀장님이니까요.”

“뭐?”

“팀장님이 항상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믿을래요.”

그게 믿음의 바탕이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니, 송인아와 강한우도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보였다.

‘말이 되는구나.’

사람의 고정관념을 흔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그 해답은 사람에 따라 갈린다는 교훈을 얻었다.

심상을 이용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 팀원들이 똘똘이와 몸으로 의사소통을 전부 나누고 난 후.

김신은 녀석의 부리를 쓰다듬어주며, 심상 속에서 대화했던 물건을 부탁했다.

-근데 정말 그거 줘도 괜찮은 거야?

-네. 괜찮아요. 이제는 그거 없어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니까.

대화 직후 한 걸음 물러선 똘똘이가 입을 벌리더니, 몸속에 있던 무언가를 내뱉었다.

갈색빛을 내뿜는 동그랗게 생긴 보석.

똘똘이에게 얽힌 비밀은 다름 아닌, 변화의 구슬과 얽힌 비밀이었다.

***

탑의 5층이 되는 배경은 제국 변방의 테론 섬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똘똘이의 기억으로 대략 400년 전.

봉인된 아티펙트의 봉인이 풀리며 나누어진 네 가지 아티펙트.

그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아티펙트의 주인이 테론 섬의 정상에 있는 이 화산의 호수에 아티펙트를 던졌다고 했다.

그 당시 아직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지지 못했던 똘똘이는 아티펙트가 뿜어내는 마나에 끌려 아티펙트를 삼켰고, 그 순간부터 3m에 불과했던 몸집이 급속도로 커지며 명확한 이성을 가지게 됐다.

아티펙트를 손에 쥔 김신은 잠시 곱씹던 기억을 끊고, 골똘히 생각했다.

정확한 것은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을 읽어봐야겠지만, 한 가지 생각할 만한 점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구원회가 가진 것은 두 가지의 아티펙트 뿐이라는 건가?’

세 가지라는 것보다는 좋은 소식이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도 있기는 했다.

‘이제 노골적으로 노리겠네.’

구원회는 변화의 구슬에 대한 존재를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알아냈었다.

그렇다면 이 아티펙트를 알아내는 것 또한 시간 문제.

‘다시 똘똘이에게 맡겨놓을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이대로 조용히 묻어 놓는 것이지만,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거로 유인한다면 어떨까.’

네 가지 아티펙트를 모으고자 사방팔방을 분주히 오가는 상대에게 모든 부분을 한방에 다 모을 기회가 있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는 것.

그들은 그것이 함정이란 것을 알고서도 들어올 것이다.

대략적인 작전에 대한 구상이 끝난 김신은 고민을 끝냈다.

‘그러면 일단 감정을...’

기억을 읽으려는 찰나 스쳐 지나간 또 하나의 정보.

김신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낚싯대를 보며 웃었다.

‘어쩐지 저 거대한 놈을 끌어당기고도 안 끊어지더라니.’

똘똘이를 낚아 올린 낚싯대도 아티펙트였다.

‘감정할 아티펙트가 많구나.’

오묘한 갈색빛을 내뿜는 보석과 부러진 낚싯대.

김신은 두 가지 중 먼저, 손에 쥔 보석에 감정을 사용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머릿속을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

그중 가장 첫 장면은 봉인된 아티펙트가 놓여있는 제단 앞에 선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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