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1.
입구를 찾기 힘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아지트 내부의 보안은 아예 없었다.
다져진 길과 그 길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된 전등.
전기가 끊긴 것 때문인지, 전등은 모두 꺼져있던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 뒤로 가장 먼저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러 들어간 수색팀 또한 내부에 별다른 함정이 없다는 것을 알려왔다.
그 덕분에 빠르게 내부를 살필 수 있었던 헌터들.
예상대로 구원회의 아지트 내부는 급하게 빠져나간 탓인지, 입구에서부터 여러 가지 물건들이 어지러이 흐트러져있었다.
대부분 별 의미가 없는 종이쪼가리뿐이었지만.
방에 있는 의미 없는 단서들에 지쳐갈 쯤, 김신이 들어간 마지막 방.
벽면에 있는 책장 하나와 그 책장과 이어져 있는 책상이 하나 놓여있는 평범한 사무실.
어두운 실내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김신은 책상 서랍 아래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보고서]
보고서라 적힌 그 문서에 적혀있는 단서는 상상 그 이상의 결과였다.
‘구원회가 탑의 9층까지 올랐다고?’
바로, 구원회가 현재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문서였기 때문에.
“발견했습니다!”
김신이 찾은 구원회가 9층에 있다는 문서는 다른 길드에 전달 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8층에 있는 길드가 대규모 길드레이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탑의 9층에서 구원회를 봉쇄하는 것이다.
탑을 오르는 구원회의 앞길을 가장 빠르게 막을 방법에 가장 먼저 지원한 것은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던 태풍길드.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길드 또한 적지 않았다.
그리고 김신 또한 숨어버린 구원회의 뒤를 쫓기 위해 다시 탑에 발을 들였다.
***
다시 5층에서 모인 5팀.
김신은 5층을 등반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5층의 독특했던 클리어 조건을 생각했다.
‘5층에 있는 산의 꼭대기에 있는 호수. 그 호수에서 등에 무지개색 비늘이 있는 물고기를 낚는 거라고 했었지.’
거주구역의 클리어 조건은 어떤 보스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잡는 것으로 충족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서 헌터들은 이 넓은 공간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었다고 했었다.
‘10층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거주구역도 이런 방식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재앙은 현재진행형.
당장 눈앞에 있는 적인 구원회도 문제지만 앞으로 일어날 무언가를 생각해보면 사실 탑을 오르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문제는 퍼스트 게이트 때와 다르게 지금은 혼란함이 많이 줄어들었고, 아티펙트의 물량도 꽤 많이 풀렸기 때문에 대형길드는 탑의 레이드에 목숨을 걸기보단 안전한 레이드를 고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등반하는 속도가 지지부진했었고.
‘그렇게 보면 구원회가 9층에 있다는 것이 헌터들에게 탑을 오를 이유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복수를 위해서지 좋은 의미에서 등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다시 모인 5팀은 안전한 5층을 등반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산을 타기 시작하고, 4시간.
각성자의 육체로도 힘들다고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오른 산의 정상.
숲이 끝나고, 가장 먼저 5팀을 반겨 준건 시원한 바람과 한라산의 풍경이 떠오를 만큼 엄청난 절경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에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지르는 천명화.
“와! 사진에서 보다가 직접 보니까 더 엄청난 것 같습니다!”
“좋긴 하네.”
한참을 감탄하던 천명화는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을 타 김신의 곁으로 가서 자신의 궁금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여기는 대체 어떤 곳일까요?”
“여기?”
“정확히는 탑의 모든 층이요. 보는 층마다 풍경이 바뀌는 게 새로워서요. 누가 살았던 것 같은 층도 있고, 중세시대랑 비슷한 풍경도 있고···”
천명화의 말을 듣던 김신은 고민했다.
‘말해줘야 할까?’
수호길드 내부에 첩자가 없다는 확인이 끝났기도 했고, 구원회의 존재 또한 이제는 팀원들도 알고 있다.
곰곰이 생각하던 김신은 말이 나온 김에 이 기회에 석판에 있는 정보를 요약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인아랑 한우 씨.”
“응?”
“네.”
김신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두 사람.
김신은 두 사람에게 손짓하며 불렀다.
“말해줄 게 있으니, 이쪽으로 오세요.”
가까이 다가온 두 사람이 곁에 앉자, 김신은 한유성에게 해준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큰 사건에 대해 최대한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말해주었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는 어떤 큰일이 생길 수 있어.”
돌려 말했지만, 여기 있는 세 사람은 그걸 못 알아들을 정도의 바보는 아니다.
가장 먼저 김신이 말한 것을 깨달은 송인아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면 구원회가 말한 그 허무맹랑한 소문이 사실은 소문이 아니었다는 거야?”
“당장에 큰일이 생긴다는 말은 아니야. 그들은 어디까지나 언젠간 닥칠지도 모르는 일을 부풀려서 말하는 것뿐이지.”
“어쨌든 큰일이 생기긴 한다는 거구나?”
“생길 수도 있다는 거야. 게다가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일방적인 것도 아니고.”
“막을 방법이 있긴 한 거야?”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탑을 오르는 거지.”
송인아와 김신의 대화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강한우와 천명화.
여리지만 지킬 것이 있으면 단단해지는 강한우가 두 사람 중 먼저 의지를 다졌다.
“어쨌든 막지 못할 것이 아니라면 끝까지 노력해봐야겠죠.”
“그렇죠.”
그에 반해 천명화는 꽤 우울한 표정으로 힘없이 말했다.
“연애도 하고 싶고, 애도 낳고 싶은데.”
“연애는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지만, 네가 못하는 거고. 후자는 네가 직접 막아낸 다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연애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정말?”
“예! 정말요! 지금도 나가면 여자들이 저 만나겠다고 줄을 서거든요!”
“못 믿겠는데.”
“아, 진짜!”
천명화는 단순한 몇 마디의 말로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면 빨리 탑을 오르고 증명하면 되겠네.”
“예! 제가 이깟 탑 꼭대기까지 정복하고, 연애도 하고 애도 날 겁니다!”
김신은 그런 천명화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여우 같은 여자친구 만나면 그냥 잡혀 살겠어.’
사실을 전부 알게 된 5팀이었지만 그 말로 인해 의지가 꺾이거나 힘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김신은 서로 의지를 불태우는 5팀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그 마음가짐으로 낚시를 시작해보자고.”
2.
거대한 호수의 물이 닿는 장소까지 내려온 5팀.
김신을 제외한 팀원들은 미리 준비해 온 낚시대를 꺼내며 자리를 잡았다.
김신 또한 낚시대를 설치하긴 했지만, 빨리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송인아에게 듣고는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서 잠시 걸었다.
동서의 길이가 600미터인 백록담의 3배 정도 되는 산의 호수.
가늠하기로는 대충 백두산의 천지 정도 된다고 했다.
그 넓은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던 김신은 호숫가 한쪽에 있는 부러진 낚싯대를 발견했다.
‘여기 물고기를 잡는데 낚싯대가 부러지나?’
듣기로는 생각보다 작다고 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부러진 낚싯대를 살펴보니, 대의 끝부분에 낚싯줄이 걸려있는 상태로 물가에 떠내려와 있었다.
‘사실상 줄밖에 없는 거 같은데?’
낚싯대의 90%가 없기에 사실상 낚싯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가만히 보다 보니 호기심이 동해 물속에 잠긴 낚싯줄을 끌어당긴 김신.
지잉-
꽤 힘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낚싯줄은 팽팽하게 당겨졌을 뿐, 올라오지 않았다.
‘뭐야?!’
꽤 힘이 실려서 끊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무슨 낚싯줄이...!’
이상한 낚싯줄의 느낌에 더욱 힘껏 잡아당긴 김신.
내공과 마법을 동원하고 나서야 조금씩 끌어 당겨지기 시작했다.
‘뭐에 걸렸기에 이렇게까지 안 올라오는 거야?!’
순간적으로 낚시하기 전에 송인아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괴수인가?’
백두산의 천지만큼이나 거대한 호수.
그 어마어마한 호수 아래에는 천지의 괴물처럼 괴수가 산다는 소문이 있었다.
낚싯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머지않아 거대한 중량감이 낚싯줄로 전해졌다.
지이익-
김신의 발이 미끄러져 딸려 들어갈 정도의 강력한 힘.
김신은 그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괴수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고.
***
김신이 거대한 무언가와 씨름을 하고 있던 순간.
멀리서 김신을 눈으로 쫓고 있던 송인아는 그에게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챘다.
“명화오빠, 한우오빠.”
송인아의 말에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두 사람의 시선을 김신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팀장님 지금 뭐 낚고 있는 거 같지 않아요?”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듯한 모습.
낚싯대는 없지만, 어쨌든 모양새는 줄낚시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있었다.
“그런 것 같은데?”
“근데 왜?”
“오빠가 물속으로 끌려 들어...”
끌려들어?!
뭔진 몰라도 비상사태다.
송인아는 천명화와 강한우의 어깨를 탁, 치며 급하게 말했다.
“빨리 도와줘야 해요!”
김신의 위태로운 모습에 자리를 가장 먼저 박찬 송인아를 시작으로 강한우와 천명화도 뒤따랐다.
3.
미칠듯한 중량감.
덤프트럭을 손으로 밀어도 이 정도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손맛이 묵직하다.
‘낚이기만 해봐라.’
이를 악물고 좌우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붙잡고 있던 중, 손끝의 감각이 미묘하게 가벼워졌다.
‘힘이 빠진 건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
김신은 손에 내공을 둘러 보호한 다음.
낼 수 있는 최고의 힘으로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김신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떠오르는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분.
짙은 녹색빛을 띠고 있는 무언가의 모습에 김신은 더욱 강하게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강약의 조절에 당겨지는 속도가 더욱 가속이 붙었다.
‘낚싯줄이 끝이 없네.’
길어도 너무 길다.
5분이 넘도록 양손을 번 갈아가며 잡아당겨도 끝이 안 보인다.
하지만, 중간중간 수면 위로 보이는 무언가의 부분 부분이 김신의 낚시욕망을 더욱 불태웠다.
거의 다 당겨졌다 생각할 쯤, 옆에서 달려오는 팀원들.
김신은 그들의 모습에 크게 외쳤다.
“무기 빼고 전투 준비해!”
그리고 바로 그때.
촤악!
하늘을 날 듯 수면 위로 딸려 올라오는 거대한 무언가의 정체.
‘거북이?’
그 무언가의 정체는 거북이였다.
***
등갑에 있는 가시가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고, 그 모습은 척 봐도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크기는 대략 5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거북이.
쿠웅!
김신의 앞에 떨어진 거북이는 괴수라는 단어가 어울렸지만, 정작 수면 위에 떨어진 직후에는 김신과 눈을 마주친 상태 그대로 가만히 있을 뿐, 아무런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미묘한 대치상황에 자리에 멈춰 서서 거북이를 노려보는 팀원들.
그 모습에 김신이 천천히 움직이자, 거북이의 머리도 김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죽진 않았고.’
일단 공격부터 하고 보는 괴수와는 다르게 가만히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그저 덩치만 큰 동물이라 생각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근처에 다가갔지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녀석.
김신은 그 모습에 경계를 조금 낮추며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그 위태위태한 김신의 모습에 낮게 속삭이는 송인아.
“오빠, 괜찮아?”
고개를 끄덕인 김신.
눈을 마주치는 거북이의 모습에선 아무런 정보도 읽을 수 없었지만, 왠지 김신은 녀석이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주마.’
평범한 사람은 동물과 교감을 할 순 있어도 대화를 할 순 없다.
하지만, 김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문제.
왜냐하면 김신에게는 테이밍을 할 수 있는 엘레인의 팔찌가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있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5층의 비밀이 담긴 무언가를 녀석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거북이에게 다가간 김신은 녀석의 부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테이밍.”
교감의 순간,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는 온갖 기억들과 정보의 홍수.
‘영물이었구나.’
신령스러운 짐승.
그 존재와 심상 속에서 나눈 대화는 김신의 입꼬리를 끌어 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