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71화 (71/116)

《71화》

1.

한밤의 나들이가 끝나고.

김신은 아무도 모르게 멀쩡해진 몸으로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던 탓에 아무도 모르는 외출.

돌아온 병원에 잠시 누우려는 순간, 또 다른 방문자가 문을 두드렸다.

방문자의 소식에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한 김신.

“들어오세요.”

스윽-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한유성이었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 미안하네.”

“아닙니다.”

한유성은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말했다.

“몸 상태는 오기 전에 진료한 의사에게 들었네.”

“그렇습니까?”

“일단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 내가 신의를 만나서 부탁을 하든 주변에 수소문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겠네.”

가장 아끼는 길드원인 김신의 부상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한유성.

치료를 이미 끝마친 김신은 그런 그의 모습에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김신의 말을 포기한 사람의 그것으로 받아들인 한유성은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왜 벌써 포기를 하려 하는가!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겠네. 아니 찾겠네.”

“포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미 치료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겁니다.”

“정말인가?”

“예.”

왼팔을 가볍게 휘두르는 김신의 모습을 본 한유성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제야 한설과 비슷하게 한시름 놓은 한유성은 표정을 풀고, 하려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이렇게 늦게나마 찾아온 건. 병문안의 목적도 있지만, 길드장들이 자체적으로 구원회의 첩자를 찾던 것의 결과와 이번 일을 계기로 열었던 길드장들의 회의의 결과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네.”

“아, 그렇습니까?”

김신의 물음에 한유성이 회의의 결과를 알려주었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첩자는 이곳저곳에 숨어 있었네.”

연합 그리고 대형길드와 각종 관공서까지.

한유성이 말에 의하면 헌터들의 손길이 닿는 곳 어디든 구원회와 관련된 인물들이 꽤 많았다.

“물론, 그 사람들을 대부분 찾아냈으니 앞으로 정보가 흘러나갈 일은 적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닐세.”

“다른 것이 있는 겁니까?”

이어지는 한유성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전면전에 앞서 그들의 아지트가 발견됐는데, 문제는 그 장소가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지.”

서울 이곳저곳에 뿌리내린 구원회의 아지트.

발견된 대부분의 아지트가 소탕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들의 거점이 어딘지 확인 불가능하네.”

“탑의 5층은 알아보신 겁니까?”

“사실 처음엔 그곳이 거점이라 생각했지만, 그곳은 여러 장소에 나누어진 조직원들이 모이는 접선 장소였더군.”

붙잡힌 조직원을 취조 하던 중 얻어낸 정보.

생각해보면 지구 각지 어디에서든 탑으로 이동이 가능했기에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지기 좋았기에 그저 그런 장소로 활용했을 뿐이라 했다.

그렇다면 김신의 예상대로 5층엔 그들이 흘린 단서만을 찾아낼 수 있을 터.

“가장 큰 문제는 이 일로 구원회의 존재가 알려졌다는 점이야.”

“그게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아니, 단순한 빌런이었으면 그렇게 문제가 크지 않지. 문제는 시민들이 동요 하기 시작했다는 것일세.”

“설마...”

“뭔지 짐작되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그때 그 조직원이 말했던 말.’

-우리는 그분에게 구원받는다.

사이비 종교의 그것과도 같은 말.

김신은 조직원이 했던 말과 얼마 전 석판에서 본 기억을 되새겨보니, 꽤 소름 끼치는 결과가 나왔다.

“설마 그들이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겁니까?”

“맞네. 자신들은 곧 종말이 닥칠 지구를 구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걸세.”

“종말...”

석판에서 봤던 재앙과 비슷하지만, 더욱 강렬한 단어.

김신은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은 단 하나였다.

그들도 탑의 의미를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신은 이제 더이상 석판에 관한 이야기를 숨길 수 없었다.

‘언젠간 말해야 하니까.’

최대한 논리적이고, 이해가 가능하도록.

생각을 정리한 김신은 한유성에게 말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전에 제게 보여주셨던 석판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말인가. 그게 왜?”

갑작스레 나온 석판의 이야기에 눈빛을 빛내는 한유성.

김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때 사실 석판을 감정하지 못한 게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

“왜 그랬나?”

“이유는 석판에 담긴 내용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골동품을 감정한다는 것 자체도 말하지 않았지만, 석판의 내용은 그때 당시에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탑의 끝을 보지 못한다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니.

탑마다 특색이 전부 다르기에 한 층을 오르는 데에도 많은 헌터들의 희생이 따르는데, 어떻게 함부로 말하겠는가.

김신의 말에 한유성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말하지 않았나.”

“구원회가 퍼트리는 소문이 종말이 다가온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설마...”

김신의 이어질 말을 미리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뜨는 한유성.

김신은 그에게 불편한 사실을 말했다.

“예, 그들이 주장하는 종말, 혹은 재앙이 다가온다는 건 거짓이 아닙니다.”

“그럼 그 석판의 내용이 재앙이 다가온다는 내용이란 건가?”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한유성은 힘없이 답했다.

“···아닐세. 애초에 게이트라는 존재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재앙이니까.”

***

김신의 이야기가 충격적이긴 했는지, 한유성은 한동안 말없이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는지, 고개를 드는 한유성.

“미안하네. 고민하느라 정작 하려던 말 중에서 한 가지를 빼먹고 있었어.”

“어떤 말씀이십니까?”

“아비 된 도리로 목숨을 걸고 자식을 구해준 보답을 하지 못했잖은가.”

“아...”

한유성은 대략적인 보상이 있다는 듯 김신을 보며, 몇 가지의 안을 들려주었다.

“길드의 팀은 언제나 실적으로 평가받는 건 알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당장 김신의 5팀 또한 팀을 유지하기 위해서 레이드를 한다거나 탑을 오르는 등의 실적을 쌓고 있다.

“그래서 자네의 5팀을 2팀으로 격상시켜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팀의 격상 말입니까?”

“맞네.”

한유성의 말에 김신은 잠시 고민한 뒤에 말했다.

“···저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5팀이 편합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김신의 답변에 한유성은 미소지었다.

‘길드 내부의 불화를 생각한 것인가.’

팀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만큼 정보 접근 권한도 높아지고, 활동의 범위도 커진다.

하지만 지금 김신의 행한 행동은 자신보단 길드 내부의 단결을 생각한 행동.

깊은 생각과 겸손한 자세에 기분이 좋아진 한유성은 원래 생각했던 것과 다른 보상을 말해주었다.

“솔직히 자식을 구해준 사내로서 자네에게 값비싼 아티펙트를 주고 싶지만, 우선 길드 내부에는 유니크 두어 개 외엔 없기에 주고자 해도 큰 의미가 없겠지. 그러니 일단 자네의 요구를 들어보고 싶네. 편하게 말해보게.”

말하는 걸 들어준다.

곰곰이 생각했던 김신은 좋은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혹시, 아티펙트를 살 때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물론 가능하지. 언제든지 자네가 원하는 아티펙트가 있으면 말하게. 내가 지원해줌세.”

아티펙트 상점에서 사는 아티펙트의 금전적 지원.

이것 한 가지로도 이미 큰 보상을 약속한 것인데, 한유성은 또 다른 보상을 추가로 말했다.

“그리고 사실 이 보상은 자네의 활동 특성에 맞추어 생각한 보상인데,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

“이미 아티펙트의 구매를 지원해주신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 헌터들과는 다르게 큰 욕심을 쫓지 않는다.

김신의 말을 들은 한유성은 더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말을 이었다.

“다른 한 가지의 보상은 길드장의 정보관람 권한을 주고자 하네.”

“예?!”

연합, 길드, 헌터, 탑, 괴수.

헌터와 관련된 것은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정보의 등급을 가진다.

가령, 탑을 등반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가 나왔다거나, 레이드를 하던 중 알 수 없는 괴수를 만나 토벌을 했다면 그것 자체가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보관람 권한을 한 단계 높여주는 것도 아니고, 길드장의 권한까지 높여주겠다고?’

수호길드는 퍼스트 게이트 때부터 지어진 길드.

그만큼 여러 가지 비밀스러운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말 그대로 정보는 돈.

당장 디텍터가 정보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김신은 이미 길드 내부의 정보만 팔아도 돈방석에 앉은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나도 파격적이고 도박적인 제안에 김신은 한유성에게 놀란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한유성은 김신의 물음에 곧바로 답했다.

“자네가 그 정보를 악용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말은 꺼내지도 않았을 거야.”

한설을 구하러 가겠다던 때의 김신만큼이나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한유성.

김신은 그의 모습에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귀하게 쓰겠습니다.”

“고맙네.”

한유성과는 그 뒤로 몇 가지의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석판을 얻기 위해선 탑을 올라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신이 탑의 8층에 도착한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정한 뒤에 한유성은 병실의 밖으로 나서려 몸을 일으켰다.

“몇 일간 푹 쉬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구원회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게 미안하네. 지금 구원회에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네이니만큼, 자네의 손이 필요해.”

“괜찮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자네는 다른 헌터들과는 다르게 자꾸 내가 기대게 돼.”

“믿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이만 밤이 늦었으니 가보지.”

“예, 조심히 들어가십쇼.”

스윽-

문이 조용히 열렸다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히고.

다시 병실은 조용한 적막에 감싸였다.

2.

다음날.

구원회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연합과 길드는 힘을 합쳐 정보의 확산방지와 대대적인 색출에 나섰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몇몇 길드만 모여 구원회의 아지트가 있는 5층으로 향했다.

그중 하나인 수호길드.

수호길드에선 길드장 다음으로 가장 이름이 있는 1팀장과 5팀장 김신이 함께 파견됐다.

제주도의 형태와 비슷한 지형.

거대한 바다로 감싸진 섬의 중앙에 자리 잡은 휴화산.

한설의 정보를 바탕으로 수색을 한 덕에 그렇게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 구원회의 아지트를 찾을 수 있었다.

대략 100여 명에 가까운 정원이 모여 있는 이곳.

울창한 숲에 가려진 어느 동굴의 입구에 서 멈춰선 헌터들.

5층에 모인 헌터들은 동굴 진입에 앞서 가장 먼저 탐색특성을 가진 헌터들에게 동굴의 탐색을 요청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동굴 내부를 정찰하고 온 탐색 전문 헌터들의 말은 황당했다.

“입구가 없습니다.”

입구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입구가 없다니?

특수한 비밀 장치로 입구를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서야...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

공간을 잇는 게이트를 마음대로 열고, 닫던 집행관의 모습이 생각났다.

‘입구는 있되. 넘어 다니는 것은 그 아티펙트로 했다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김신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입구 찾는 거라면 못할 이유가 없지.’

벽 뒤에 비어있는 공간을 찾는 거라면 김신에게는 식은 죽 먹기만큼 쉬운 일.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김신이 앞으로 나서자, 먼저 확인했던 탐색 전문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김신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 맺힌 감정은 내가 못 찾은 걸 네가 찾을 수 있겠냐는 불신.

같은 목적으로 온 터라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그들은 아니꼽다는 느낌으로 김신을 향해 말했다.

“같이 가시죠.”

“예,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그들을 향해 가볍게 웃어준 김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굴 안에 들어갔다.

날은 밝지만 어둑어둑한 동굴의 내부.

그 안에 들어선 김신은 빠르게 수인을 맺어 4서클 탐지마법 디텍트를 사용했다.

생명체를 탐지하는 마법.

푸르게 빛나기 시작한 김신의 눈엔 주변에 있는 많은 생물의 모습이 적외선 탐지를 한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이 다닌 길은 분명 넓을 테니까.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으면 되겠지.’

동굴의 주변은 흙이기에 두더지며, 지렁이 등 많은 생명체가 있다.

꽤 깊은 동굴의 내부.

그 동굴의 중간지점에 도착했을 때, 예상대로 동굴의 한 벽면 뒤로 아무런 생명체가 감지되지 않는 공간이 보였다.

‘찾았다.’

곧바로 발걸음을 멈춰선 김신은 전문가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부터 바닥이 떨릴 것이니, 벽면에서 물러나 주십쇼.”

그 말을 듣는 순간까지도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어물쩡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그들.

김신은 디텍트 마법을 해제하고 다시 수인을 맺어 4서클 마법 어스퀘이크를 사용했다.

쿠구구구궁!

땅이 거칠게 흔들리자, 김신이 지정한 부분의 벽만 더욱 거칠게 떨린다.

“...어?!”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벽면에 조금씩 금이 가며 텅 비어있는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점차 놀란 눈빛으로 변해가는 전문가들의 눈빛.

콰르르-

“...”

시간이 지나 비밀통로가 완전히 드러나자, 김신을 못 미더워했던 그들은 모두 멍하니 김신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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