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1.
꿀렁-
일렁거리는 공간 너머로 보이는 한설.
김신은 가장 먼저 손을 들어 테일론의 팔찌에 있는 암기를 전부 발사했다.
퓩퓩퓩!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빠르게 날아간 암기들.
정확하게 노리고 발사한 것이 아닌, 견제를 위한 것이기에 한 발을 뺀 나머지는 집행관에게 명중하지 못했지만, 그 한 발 덕에 집행관은 몸을 멈칫하며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암기를 피하느라 멈칫한 약간의 시간.
빠른 반응에 적잖이 놀란 집행관의 멈칫거림이 김신에게는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김신은 게이트를 넘어가려는 집행관의 앞으로 도착함과 동시에, 곧바로 몸을 틀어 그가 내리찍는 칼을 막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다.
사고(思考)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
생각과 동시에 움직인 터라 미쳐 제대로 막지 못한 집행관의 칼은 김신의 왼쪽 어깨에 깊게 박히고 말았다.
푸욱!
“크윽!”
어깨에 깊이 박힌 칼날의 통증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프다.
김신은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멀쩡한 오른팔을 움직여 집행관을 향해 내공이 실린 주먹을 날렸다.
파앙!
박힌 칼을 놓은 채로 뒤로 물러서는 집행관.
김신은 그가 뒤로 물러선 틈을 타, 게이트의 너머로 몸을 던졌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게이트를 통과하자, 가까운 거리이지만 미묘한 느낌이 느껴진다.
잠깐의 부유감을 느낀 김신이 한설의 뒤에 도착하자, 화들짝 놀라며 김신을 바라보는 한설.
“...김신 씨?!”
김신은 한설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고, 한설은 그의 어깨에 깊게 박힌 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김신의 모습과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보랏빛의 게이트.
상황판단이 끝난 한설은 피 흘리는 김신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김신은 그런 한설의 모습에 고통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일단 빨리 아버지 곁으로 가요.”
“그, 그렇지만. 상처가...”
“어차피 적도 기습이 실패해서 움직이기 힘들 거에요.”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곧바로 치료용 아티펙트를 들고 올 테니까.”
김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달려가는 한설.
그녀와 한유성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기에 곧바로 한설은 한유성의 곁으로 갔다.
게이트를 열어 기습한다는 비장의 한 수가 실패한 집행관은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해진 주변의 분위기에 김신은 다시 몸을 틀어 공간 너머에 서 있는 집행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찾는 그 물건은 영원히 그 손에 들어갈 일이 없을 거다.”
김신의 말에 집행관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
“두고 보자. 그 물건을 쉽게 지킬 수 있을지.”
게이트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치료용 아티펙트를 챙긴 한설이 한유성과 함께 김신의 옆에 도착했다.
모든 상황이 끝나자, 극한 집중과 긴장이 풀리며 고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으윽!”
움직일수록 아픈 칼의 느낌.
김신은 그 시린 감각을 없애기 위해 손잡이를 붙잡았다.
“후읍...”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이를 악물며 칼을 빼는 김신.
촤악!
“...!”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고, 그 때문에 커진 김신의 눈동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유성은 조용히 다가와 가장 먼저 피가 흐르는 김신의 어깨를 지혈했다.
“왜 매번 그렇게 무리를 하는 건가...”
고마움, 미안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묻어있는 한유성의 목소리.
자식의 아버지로서 내는 한유성의 연약한 목소리에 김신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의 결과는 약간의 변수가 있었지만, 김신의 계획대로 됐다.
한설의 무사복귀와 변화의 구슬을 지켜냈다는 것.
숲속에 숨어 있었던 구원회 측의 인원들은 모두 집행관이 연 게이트를 타고 다시 돌아갔고, 김신도 곧바로 더 정확한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한유성이 미리 손을 써놓은 덕분에 검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유성은 다른 길드장들과 볼일이 있었기에 김신에게 다시 온다는 말을 하고서 먼저 길드로 돌아갔다.
“끝나는 대로 돌아오겠네.”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왔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체된 것인지 김신의 앞에는 불행한 소식이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
“신경의 손상이 너무 심합니다.”
의사의 소견은 깊게 박힌 집행관의 칼이 김신의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
치료용 아티펙트의 효과로 외상의 긴급한 치료는 끝났지만, 신경이 다치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 탓에 김신은 왼팔을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느껴져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거슬리네.’
병상 위에 누워서 왼팔에 대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도중.
똑똑-
누군가 김신이 있는 1인 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방문인의 정체는 한설.
그녀는 부드럽게 열리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들어왔다.
“몸은 괜찮아요?”
상태를 묻는 한설의 모습에 김신은 오히려 놀랐다.
“여기 와도 괜찮은 거예요?”
여러 가지 질문에 시달리느라 못 올 줄 알았는데.
한설은 김신의 말에 누가 들을까,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물론, 몰래 빠져나왔죠. 그건 그렇고, 몸은 괜찮은가요?”
“네, 뭐 그럭저럭. 고통은 사라졌는데, 좀 뻐근하네요.”
헌터로서 치명적이라고 생각되는 신경 손상이란 문제에 한설의 안색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어떡해요...”
조금만 더 조심할걸.
한설의 머릿속에 다시금 김신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신의에게 부탁드리면...”
김신은 한설의 떨리는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래도! 어떻게 자기 몸을 내던져서 목숨을 구해준 사람 걱정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정말 괜찮아요. 방법이 있어서 그러니까요.”
“정말이죠...?”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살짝 미소 짓는 한설.
김신은 그녀에게 길드의 상황을 물어봤다.
“지금 어때요?”
한설의 납치라는 문제가 있었던 만큼, 이제는 구원회의 문제를 숨길 수 없다.
김신의 물음에 한설은 자못 심각한 어조로 답했다.
“조만간 길드가 모여서 5층으로 향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전면전인가요?”
“그렇겠죠.”
공간을 잇는 게이트를 마음대로 여닫던 집행관의 모습이 생각난 김신은 한설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도망쳤을 것 같은데.’
위치가 노출된 이상, 다른 장소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됐지만,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도망친다 해도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니 단서를 흘리겠지.’
흘린 단서를 토대로 다시 추적한다.
잡을 때까지 쫓으면 그만이다.
김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2.
한설과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는 소식을 들은 팀원들이 온다는 말에 자리를 비켜줬다.
“이만 가볼게요. 몸 추스르고 다음에 봬요.”
“예. 잘 들어가요.”
한설이 나가고 10분 정도가 흐르자, 팀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팀장님! 몸은 괜찮으세요?!”
김신은 천명화가 달라붙는 것을 떼어내며 답했다.
“괜찮아. 그러니까 좀 진정해.”
“아니, 어떻게 진정합니까. 팀장님이 다쳤다는데.”
“큰 부상 아니라니까.”
김신의 말에 천명화는 김신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그런데 어째 팀장님은 어디 나갔다 하면 무슨 일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가만 생각해보니, 길드의 굵직한 일에는 대부분 자신이 관여한 것이 떠올랐다.
“그렇네.”
천명화와의 대화가 끝나자, 자리를 이어받은 건 송인아.
그녀도 걱정이 많았는지, 가장 먼저 다친 곳을 물어봤다.
“어디야.”
왼쪽 어깨를 가리키자, 옷을 잡아당겨 확인하려는 송인아.
김신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답했다.
“왜, 왜 이래.”
“확인을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아니, 괜찮다니까?”
김신의 말에 송인아는 그의 손을 찰싹 때리며 답했다.
“가만히 있어 보라니까.”
강경한 그녀의 모습에 어깨를 내어준 김신.
송인아는 확인이 끝나자,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상처는 안 보이네?”
“치료 아티펙트로 치료했으니까.”
“근데 왜 여기 있어. 퇴원 안 하고?”
“하루는 있어야 한데.”
“아...그렇구나.”
대답을 끝낸 송인아가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말했다.
“그럼 내가 하루 동안 간병인 해줄게.”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야?”
“왜? 싫어?”
“크게 다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알았어.”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나는 송인아.
그녀의 자리를 마지막으로 이어받은 건 강한우였다.
“복귀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고생이 많아요.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천명화와 강한우가 먼저 나가고, 송인아는 끝까지 남아있다가 저녁까지 같이 먹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조용해진 병실 안.
어둠이 내려앉아 적막한 병실을 조용히 빠져나온 김신은 변화의 구슬의 확인과 부상을 치료할 겸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
차를 타고 10분.
빠르게 가게에 도착한 김신은 가게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윽...”
가게의 문을 여는 순간까지 시큰함이 느껴지는 왼쪽 어깨.
문을 열자 하루 내내 기다렸던 똘망이가 달려 나와 가볍게 뛰어오르며 품에 안겼다.
“기다렸어?”
-삐익!
평소와 다르게 뿔난 표정을 짓는 똘망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것이 화난 것인지, 김신의 머리를 부리로 콕콕 쪼았다.
“미안해.”
-삐익.
김신의 사과를 듣고 나서야 얼굴을 부비는 녀석.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김신은 똘망이를 품에 안은 채 변화의 구슬을 숨겨놓은 방으로 향했다.
장비가 걸려있는 진열장 뒤에 있는 비밀 공간.
그 조그마한 공간을 조심스럽게 열자, 그 안에 변화의 구슬이 잘 들어 있었다.
“흠...”
잠시 구슬을 손에 쥔 김신은 고민했다.
‘이걸 착용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한 김신은 탑의 5층에서 자신의 몸을 훑는 것만으로 변화의 구슬의 유무를 알아냈던 구원회의 조직원.
물론, 모두가 그런 방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위험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낫다.
‘아쉽긴 하지만, 당분간은 보관하자.’
스윽-
변화의 구슬을 다시 진열장의 비밀 공간에 넣어놓은 김신.
변화의 구슬을 확인한 김신은 카운터 옆에 있는 골동품을 모아둔 진열장으로 향했다.
천마의 피 묻은 무복과 블라이어의 스태프가 놓여있는 진열장.
그 진열장의 한구석에 놓인 목각인형이 앞으로 다가간 김신.
김신은 조심스레 그의 모습과 비슷한 목각인형을 손에 쥐었다.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목각인형의 힘을 빌리는 것일 뿐.
김신은 눈을 감은 채로 목각인형에 속삭였다.
“다친 어깨의 치료를.”
김신의 말과 함께.
목각인형의 왼팔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