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1.
아까 잡았던 곤충형 괴수 중 사마귀와 비슷한 외형.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입’ 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석판의 주위를 맴도는 녀석의 몸짓을 보니, 줍고자 하지만 주울 수 없어서 석판 주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옆에 서 있는 천명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저러는 걸까요?”
“저 물건을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어서 주변만 맴도는 거 아닐까?”
“아, 저거요?”
“어, 저 석판.”
계속해서 손 대신 있는 날카로운 팔로 석판을 건드리는 괴수.
-시잇!
계속해서 석판을 건드리던 녀석은 이내 포기했는지, 석판을 깔고 앉아버렸다.
“어? 그냥 주저앉았는데요?”
“···저러면 안 되는데.”
석판의 정보도 확인해야 하고, 개울가의 물 또한 김신을 비롯한 팀원 모두에게 절실하다.
“잠깐만 기다려봐.”
천천히 괴수의 정면으로 다가간 김신.
나무 뒤에서 테일론의 팔찌를 조준한 뒤 소리 없이 발사했다.
퓩-!
몸을 한번 흠칫 떠는 것을 끝으로 절명한 사마귀에게 다가간 김신은 괴수가 흘리고 간 석판을 집어 들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다들 와서 할 거 해.”
김신의 말이 끝나자, 물을 사용하러 다가오는 팀원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어찌 보자면 이 또한 기연.
김신은 몸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고 있는 팀원을 뒤로 한 채, 석판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
예언자 엘하임은 아르제니아의 미래를 보았다.
탑이 아르제니아 대륙을 어떻게 침식해 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놓은 석판을 만들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한 장씩 전달하며 말했다.
“이 석판을 꼭 지켜라.”
엘하임의 제자인 오렌.
그는 그가 받은 4번째 석판을 가지고 세계를 유랑하기 시작했다.
가장 종말이 늦게 닿는 곳으로.
처음 재앙이 시작된 것은 몬스터랜드.
제국과 맞닿은 험준한 산맥의 너머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이 가장 먼저 준동했다.
“가라. 최대한 멀리.”
제국과 인접한 장소였던 헤매는 숲도 무사하지 못했고, 오렌은 눈물을 머금은 채 대륙의 남쪽으로 향했다.
밀려오는 몬스터에게 쫓기고 쫓겨 도착한 파첸왕국의 한 도시.
하지만, 오렌은 아르제니아 그 어디에도 안전한 장소가 없음을 깨달았다.
“게이트?”
하늘에서 생기는 의문의 공간 전이 마법.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작된 몬스터들의 습격.
목적지였던 마을은 어느새 쑥대밭으로 변했고,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몬스터에게 쫓겨 깊은 숲으로 도망친 오렌은 삶의 끝자락에서 마지막까지 석판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쿵!
한 걸음 한 걸음이 땅을 울리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
하늘을 바라본 오렌은 그 몬스터를 본 순간 가장 먼저, 석판의 내용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열리는 게이트. 그 안에서 재앙의 끝이 다가올수록 더욱 강한 몬스터가 나올 것이니.
쾅!
그것이 오렌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2.
석판의 기억을 훑어본 김신은 석판의 페이지마다 탑이 생기고 난 후의 일을 시간의 순서대로 적어놨다는 것임을 알아챘다.
아르제니아 대륙이란 곳에서 오렌이 남쪽으로 내려간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을 측정하는 단위가 지구와 같았으면 비교를 확실하게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대략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유추해보자면 15년에서 20년 안팎.
지구에 닥칠 재앙을 미리 안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있을 재앙에 대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이것은 꼭 알아야만 하는 정보였다.
‘돌아가면 길드장님과 이야기해야겠어.’
기억에서 본 것처럼 재앙을 홀로 막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터.
‘석판의 해석은...’
해석방법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대로 설명하면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김신이 석판의 정보를 확인하느라 가만히 서 있던 사이.
개울에서 몸에 묻은 오물을 닦아낸 천명화가 김신에게 다가왔다.
“그 석판에 적힌 글씨가 뭐라고 적혀있는지 아시는 겁니까?”
“아니, 그냥 감정이 되나 싶어서.”
“감정? 그럼 그것도 아티펙트인 겁니까?”
“응, 감정표시가 뜨긴 하는데 잘 되진 않네.”
석판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천명화는 다 둘러본 후, 김신에게 석판을 돌려주고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서 나지막이 혼잣말했다.
“석판을 누르면 이능력이라도 나가나?”
천명화의 혼잣말을 들은 김신은 피식 웃었다.
***
4층의 등반 첫날 김신이 얼떨결에 석판을 얻은 그 뒤로도 5팀은 괴수를 꽤 자주 만났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순탄하게 던전이 있는 왕성의 초입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촤르륵-
지난 8일간의 수확물.
던전 진입에 앞서 잠시 정리할 겸 바닥에 늘여놓은 아티펙트의 모습에 천명화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래서 다른 헌터들이 다들 등반을 외치나 봅니다.”
김신은 천명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만해. 이 정도 수준이면 확실히 등반하는 게 돈 벌기 쉽다고 생각할 거야.”
4층의 초입에서 개울을 찾느라 걸린 시간을 포함하고도 8일.
엄청나게 빠르다고 할만한 속도로 오면서도 등급은 낮지만, 꽤 많은 양의 아티펙트를 획득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김신의 모습에 송인아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이건 그냥 우리 팀이 이상할 정도로 자주 괴수를 만나서 그런 거 아닐까?”
“그게 괴수를 자주 만난 거라고?”
“응. 원래 대규모로 등반하면 사실 괴수들도 별로 안 오거든. 무서워서 도망가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들어보는 정보에 살짝 놀랐지만, 어쨌든 무사히 지나왔다는 것과 그만큼 많은 이득을 얻었으니 만족했다.
“어쨌든 일단 아티펙트의 분배에 관해서는 돌아가서 생각해보는 거로 하자, 일단은 4층의 보스가 가장 우선이니까.”
“응.”
아티펙트를 차곡차곡 챙긴 김신은 가장 먼저 던전인 성을 향해 발을 옮겼다.
3.
4층의 배경이 되는 왕국(王國).
마치, 중세시대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느낌의 그 배경은 김신에게 생각보다 익숙했다.
‘석판에서 본 오렌의 기억 속에 있는 파첸왕국의 느낌과 비슷하네.’
외관도 비슷하고, 느낌도 비슷하다.
단지 석판을 통해서 본 기억과는 다르게 ‘파괴되었다’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
그렇다고 해도 무시 못 할 수준인 것은 당연했다.
대략 20m의 높이를 가진 성벽과 5m는 훌쩍 넘어 보이는 해자(垓字).
성벽 자체의 외관은 멀쩡한 곳 없이 파괴되어 있었지만, 성 내부. 즉, 던전으로 들어가는 다리만큼은 꽤 멀쩡했다.
터벅터벅-
천천히 다리 위를 걸어가는 김신은 파괴된 성벽과 대조되는 다리를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왠지 복원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숲이 배경이었던 2층과 삭막한 사막이 배경이었던 3층을 빼놓더라도 무윤이 있었던 1층의 장원을 배경으로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만약 탑의 끝을 오르지 못해 지구가 재앙을 맞이한다면, 지구도 이렇게 되는 걸까?’
석판과 아티펙트의 감정으로 얻은 정보를 취합하면 할수록 드는 생각은 탑의 존재와 게이트가 가져다준 ‘특성’이라는 능력이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점이다.
재앙을 막을 가장 기본적인 힘.
특성이란, 딱 그 정도의 의미로 생각됐다.
마법과 내공을 사용하는 곳에 있는 초인들도 막기 힘들었던 그 재앙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
김신은 새삼스레 그런 기분을 느끼며, 팀원들과 함께 성벽의 안으로 들어갔다.
왕성의 내부는 외부와 비슷한 환경이었다.
파괴된 건물들이 즐비한 공간.
다만 다른 층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보스 외에도 괴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크아아아악!
부패한 신체, 가죽이 흘러내려 기괴한 형상의 인간형 괴수.
아니, 저것은 6층으로 오라 말했던 리치가 소환한 좀비와 비슷했다.
결정적인 차이점으로는 느릿느릿한 좀비에 비해서 굉장히 빠르다는 것 정도랄까.
김신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구울.
이성이 없는 좀비에 비해 아주 조금의 사고는 하는 언데드.
송인아의 말을 듣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 뒤에 들어왔지만, 흉측한 몰골을 한 저 언데드들을 보니, 절로 침이 삼켜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꽤 강심장이라고 자부하는 김신이 침을 삼킬 정도의 외관.
천명화는 구울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좀, 좀비가 달려옵니다!”
“알아.”
“좀비가 달려온다고요!”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징그럽잖아요!”
평소 천명화의 행동이 가벼운 건 알지만, 솔직히 지금 보니까 저런 반응을 내보일만하다.
입술이 뜯긴 상태로 치아만 딱딱거리며, 두 팔을 휘적거리며 달려오는 것을 보니까 더더욱.
“한우 씨 오늘은 좀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죠.”
벌벌 떠는 송인아, 천명화와는 다르게 꽤 담담하게 답하는 강한우.
-캬아아악!
하지만, 강한우도 구울의 울음소리를 바로 앞에서 듣자, 몸을 흠칫 떨며 빠르게 방패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재빠르게 사용하는 스킬.
“철벽!”
강한우의 방패가 좌우로 넓게 펼쳐졌다.
김신이 그 앞에 서서 달려오는 구울들을 베려 검을 드는 순간, 뒤쪽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키잉!
“...?”
평소와는 다르게 마나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날을 세우는 강한우의 모습.
강한우는 방패 너머에 있는 김신의 의아한 표정을 봤는지, 살짝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 좀 많이 무섭네요.”
“아...”
생각해보니 강한우도 마음이 많이 여린편이다.
“조금만 버텨주세요.”
평소와 같이 버프를 두른 김신은 곧바로 왕성의 골목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구울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
김신이 4층의 던전에서 구울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던 시간.
어딘가에 있는 구원회의 회장은 다급하게 들어온 조직원의 정보를 곱씹고 있었다.
-최근 탑 5층의 아지트 인근에 수호길드의 한설 헌터에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탑의 8층까지 등반한 길드의 헌터.
5층의 거주지역에는 별 볼일이 없을 것이 분명한 그 헌터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이상하다.’
게다가 얼마 전, 불사길드에 숨어 있는 조직원을 모으는 역할을 맡은 성태수의 보고.
-뒤쫓던 김신이라는 헌터가 리치의 공략법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신경도 안 썼던 헌터 하나가 회의 대계를 이루어 줄 아티펙트까지 손에 넣어버리더니, 탈취 계획마저 수포로 돌려버렸다.
수호길드와 김신의 존재.
행방이 묘연해진 정보담당.
그리고 5층을 서성거리는 한설.
거슬린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계획들이.
거슬린다.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인 자신의 앞을 막는 존재들이.
왠지 회의 뒤를 쫓는 것 같은 그들의 행보에 회장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거슬리면 치워버린다.
“집행관.”
공간이 열리며, 튀어나오는 한 사람.
조용히 회장의 곁에 선 그는 회장을 향해 조용히 고개 숙이며 답했다.
“부르셨습니까.”
종말에서 구원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직원들.
회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탑을 오르기 위해 집행관에게 말했다.
“한설을 잡도록.”
시선을 돌리고, 거래의 패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존재.
회장은 종말을 피해 구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무엇이든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