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1.
공간과 공간을 이어 게이트를 여는 초월급 아티펙트인 차원의 파편을 이용해 여의도에 게이트를 연 구원회의 집행관.
혼란을 틈타 김신을 습격한다는 계획을 짠 그는 너무나도 빠른 헌터들의 대처에 계획을 실행시킬 시간조차 얻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대처방법을 모르는 헌터들이 우왕좌왕하며 사방으로 흩어지면 그 틈을 타 고립된 김신을 제거하고 아티펙트를 회수한다는 계획.
탑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존재를 어렵사리 찾아냈거늘.
그 계획이 목표였던 김신의 지시로 시작된 일사불란한 헌터들의 대처에 어그러지고 말았다.
‘역시 저 헌터는 위험하다.’
번번이 계획에 차질을 만드는 존재.
집행관은 계획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상관인 지부장에게 꼭 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
여의도 S급 게이트 사건 3일 후.
수련에 전념하고 있던 김신은 기다렸던 소식을 듣기 위해 길드장실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쉬었나.”
김신은 인사 후 소파에 앉으며 한유성의 질문에 답했다.
“예, 배려해주신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쉬기는 무슨. 모의 전투장에서 나가질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네.”
“하하, 사실 뭘 좀 연습하던 게 있어가지고···”
한유성은 너스레를 떠는 김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를 가늠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새 또 강해졌군.’
믿음이 가는 길드원의 성장은 언제나 좋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쉬엄쉬엄하게.”
“예.”
소소한 대화 이후 책상 위에 있던 봉투 하나를 김신 쪽으로 밀어 넣는 한유성.
“그때 부탁했던 머리카락의 주인에 대한 정보일세.”
“보셨습니까?”
“아직 안 봤네.”
여기서 나오는 정보에 따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다.
깊이 파고든 구원회의 세력이 어느 곳에 도사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순간이니까.
김신은 천천히 한유성이 건넨 봉투를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머리카락 DNA 조회 결과.
-이름: 성태수.
-나이: 31살.
-···
-···
-···
-일치율: 99.99997%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심이었고, 두 번째로 든 감정은 경악이었다.
“성태수?!”
같이 보던 한유성 또한 당황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는지, 김신과 같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그 사람이?”
불사길드의 총괄팀장이자, 차기 부 길드마스터라고 평가받는 남자.
그런 그가 머리카락의 주인이었다니.
김신은 예상외의 결과에 가장 먼저 불사길드 자체를 구원회와 연관 지어서 생각했다.
‘그건 말도 안 된다.’
김신의 전 길드였던 불사길드.
만약 불사길드 자체가 구원회라면 김신 또한 어떤 방법으로든 세뇌하거나, 회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거다.
‘그렇다면 주요 길드의 수뇌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씨를 뿌리고 다녔다는 이야긴데.’
구원회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혹시, 수호길드에도?’
일단은 찾아봐야 한다.
내부의 첩자가 가장 위험하다.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김신과 똑같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한유성이 침묵을 깨고 그에게 물었다.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나는 잡아서 추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만.”
한유성의 의견은 빠른 색출.
그의 의견도 좋은 의견이지만, 김신은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적은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조직이기에.
“아직 이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는 만큼, 당장 잡아서 추궁하는 것보다는 예의 주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지켜보다 보면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지 않겠습니까?”
아직 적들은 그들의 존재가 노출됐다는 걸 모른다.
정보를 역이용한다.
김신의 뜻을 알아챈 한유성은 우려를 표했다.
“그걸 숨기고 이용하면 더 큰 결과로 만들 수 있겠지만, 그 시간 동안에 자네는 수호길드 외에는 도움을 못 받게 되네.”
현실적인 답변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라는 한유성의 조언.
김신은 그의 말을 듣고도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쪽에서 들어와 준다면 저야 고마울 따름이죠.”
“정말 괜찮겠나?”
“어차피 이정도 결과는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는 그쪽도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어째서?”
“저도 꽤···유명해졌잖습니까.”
김신의 말을 듣자, 낮게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유성.
“맞지. 자네는 지금 가장 유명한 규격 외의 A급 헌터 아닌가.”
“그 별명은 좀 안 불러 주시면...”
“왜 그런가? 입에 착착 붙는데.”
인터뷰를 안 할걸.
김신은 길드장실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했다.
2.
수호길드 내부의 조사를 스스로 해보겠다는 한유성의 이야기를 끝으로 다시 대기실로 돌아온 김신.
구원회의 동태를 보자면 곧 다른 행동을 취할 것이 분명하기에 그 전에 2층의 탑 등반을 끝마치고 싶었다.
“팀장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십니까?”
근래에 막아낸 S급 게이트 사건으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 덕에 주가가 꽤 올라간 천명화.
앉아있는 소파의 옆에 앉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김신은 조용히 티비를 바라보며 답했다.
“탑도 올라야 하고, 다른 일도 해야 하고, 몸은 하난데 할 일이 많아서.”
“그러면 일단 마음이 내키는 걸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마음 내키는 대로만 살 수 있겠냐.”
“저는 그러고 사는데.”
“너는-”
고개를 돌려 천명화를 바라보니, 세상 해맑은 얼굴로 좋아한다.
김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하, 이상하게 내가 지는 느낌이네.”
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지금 당장은 움직이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마음이 내키는 대로는 아니어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택하면 될 터.
“그래, 일단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우선이겠지.”
“결심하신 겁니까?”
“어.”
김신은 천명화의 말에 답해준 직후,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송인아와 강한우를 향해 말했다.
“5팀! 다 장비 챙겨. 탑으로 가자.”
김신의 말에 송인아는 눈을 크게 뜨고 답했다.
“천천히 하지, 괜찮겠어?”
“괜찮아.”
어차피 쉬는 건 다리를 다쳤던 3년간 푹 쉬었으니 됐다.
***
탑의 2층.
1층과는 다르게 울창한 숲속이 시작인 이곳은 송인아의 정보와는 다르게 간간이 괴수들이 출몰한다고 했다.
“탑의 8층까지는 괴수들의 씨가 말랐을 거라며?”
송인아의 말과는 다른 환경.
김신이 의문 섞인 말로 묻자, 송인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시작지점 주변과 던전까지 가는 길에 씨가 말랐다는 거지. 어떻게 그렇게 큰 공간에 있는 괴수들을 다 싹쓸이했겠어?”
2층에서 4층까지 각층의 크기는 하와이에서 크게는 대한민국 정도의 크기를 가졌다.
“가는 길 외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 이거구나?”
“그렇지.”
보통 하나의 층을 등반하는 대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일~7일.
2층의 경우 제주도의 3~4배 정도의 크기를 가진 하와이섬과 비슷한 크기이기에 대략 3일의 시간으로 잡았다.
“그러면 가는 길에 나오는 괴수들도 다 잡으면서 가야겠네?”
“그래도 나오는 괴수의 등급이 낮으니까,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을 거야.”
2층에서 출몰하는 괴수들의 등급은 D급에서 B급까지.
송인아의 말처럼 저 정도 수준의 괴수로는 여기 있는 누구도 다치지 않고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오히려 좋았다.
검강을 사용해 볼 좋은 연습 상대가 생겼으니까.
“그럼 빠르게 간다.”
예상 시간은 3일.
김신은 그 시간을 2일로 단축해보기로 했다.
3.
2층의 배경은 숲속답게 습하고, 조금은 어둡고 어지러운 배경.
그 사이로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 같은 김신의 모습에 뒤따라가는 5팀의 팀원 송인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A급 헌터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알겠지만...’
규격 외의 A급 헌터.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김신의 무력은 그 선을 넘은 것처럼 너무나도 강했다.
퓩! 털썩-
빠르게 달려가면서 손을 한번 터는 것으로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괴수를 일격에 격살한다.
“한우 씨. 지금 서 있는 기준으로 7시 방향.”
“···네!”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괴수를 상대하면서도 팀원 주변에 기습의 위험이 있는 괴수들을 모두 알려준다.
“쉴드 차징!”
콰앙!
만약 팀원의 공격으로도 한 번에 숨통을 끊지 못한다면 김신의 손을 터는 행동이 이어졌고, 그 행동이 끝나면 몸을 일으키려던 괴수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대부분이 C급 수준이구나?”
달려가면서 일격에 C급 괴수를 죽이는 김신이 약간 허무하다는 목소리로 말하자, 송인아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 C급 수준의 괴수를 보통의 C급 헌터가 꽤 어렵게 잡는 걸 생각해보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C급이 아니잖아.”
“오빠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내가 이상한 거야?”
김신의 말에 송인아가 아닌, 천명화와 강한우가 답했다.
“네, 팀장님이 이상한 겁니다.”
“...”
고개를 갸웃하는 김신.
송인아는 그의 그런 모습에 한 마디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오빠는 1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E급에서 A급이 된 거잖아. 애초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듣고 보니까 이상하긴 하네.”
한 등급 위로 승급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짧아야 반년인 것을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규격 외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송인아는 피식 웃는 김신의 모습에 다시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오빠는 규격 외의 A급 헌터가 맞는 거 같아.”
“그 말 하지 말라니까.”
“다른 표현이 없잖아.”
“왜 없어 그냥 오빠라고 해. 이상한 수식어 붙이지 말고.”
“그냥 오빠는 한우 오빠도 오빠고 명화 오빠도 오빠인데?”
“···”
“풋.”
귀찮은 말장난에도 쉽게 어울려주는 김신의 모습을 보니, 송인아는 오히려 안심됐다.
‘오빠가 있는 팀에 들어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
김신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2일이라는 시간 만에 2층의 던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괴수들에게 검강을 사용하려 했지만,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없는 법.
너무 낮은 괴수의 수준에 결국 검강은 보스에게 사용하기로 하고, 테일론의 팔찌로만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도착한 던전의 앞에서 송인아는 김신에게 말했다.
“2층 보스는 바로 들어가도 될 거야.”
“왜?”
“1층 보스보다 훨씬 약하거든. 아티펙트 빼면 볼 게 없어.”
“그래?”
송인아의 설명에 따르면 2층 보스의 능력은 말 그대로 강력한 방어력의 갑옷과 방패, 그리고 죄다 베어버린다는 날카로운 검이 전부라고 했다.
‘보통은 위로 올라갈수록 강해지지 않나?’
김신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무윤보다 약하면 상대하기 훨씬 편할 것이 분명했기에 빠르게 던전에 입장했다.
작은 덩치를 가진 소인.
대략 성인 남성의 명치 언저리에 오는 키를 가진 보스는 1층에서 봤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무윤과는 다르게 아티펙트를 주렁주렁 걸치고 있었다.
왼팔에는 강철 방패를 오른손엔 긴 창을 들었고, 온몸을 감싸는 풀 플레이트 메일 갑옷을 입고 있는 보스.
얼굴마저 통짜 헬멧으로 가리고 있었기에 그 안에 있는 보스의 상태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송인아의 말처럼 느껴지는 기감으로 2층의 보스는 1층의 무윤보다 확연히 약했다.
“게다가 2층의 보스는 아티펙트를 잘 주기로 유명해.”
먼저 탑을 올랐었던 송인아의 설명을 들어보니, 확실히 그래 보였다.
“저 정도 아티펙트를 매달고 있으면 토벌했을 때 아무것도 안 주는 게 더 이상하지.”
쓸 수 있는 모든 버프를 다 사용한 채로 입장한 보스룸.
스으윽-
곧바로 그에 반응해서 일어난 2층의 보스가 김신에게로 돌진했다.
키잉!
날카롭지만 묵직하지 않다.
말 그대로 아티펙트가 좋다는 이야기다.
재차 베어오는 보스의 수평 베기를 천마신검을 이용해 머리 위로 부드럽게 흘려낸 김신.
스르릉!
부드럽게 검을 흘려내자, 무윤과는 다르게 2층 보스는 검술을 모르는지 휘청거리며 자신이 내지른 검의 반동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틈.
[가속]으로 인해 더욱 길게 느껴지는 그 틈을 이용해 김신은 오롯이 검에 집중했다.
우웅-!
떨리는 검과 함께 중첩되는 검기.
한계치에 다다른 검기는 이내 묵빛으로 감싸진 또 다른 검날이 되었다.
키잉!
바로, 검강(劍罡).
김신은 강기가 씌워진 천마신검을 들어 그대로 보스의 허리를 향해 휘둘렀다.
쐐액! 서걱!
쉬운 수평 베기를 막지 못하고, 일격에 반으로 갈라진 2층의 보스.
“···어?”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진 보스의 모습에 놀란 김신과 그의 뒤로 더 놀란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규격 외의 A급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