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63화 (63/116)

《63화》

1.

검강과 리치의 마법의 격돌은 엄청난 마력폭풍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

리치의 마나를 공급받던 골렘과 계속해서 소환되던 스켈레톤이 모두 잠시 허물어질 정도로.

쿠구구구구-

주변에 퍼진 마나폭풍과는 다르게 그 핵심에 있는 김신과 리치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조용한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함.

검을 내지른 김신과 실드를 사용한 리치와의 승부는 무승부였다.

콰칭!

김신의 공격이 막혔지만, 리치의 6서클 마법, 엡솔루트 실드 또한 더 버티지 못하고 깨진 것.

김신은 리치의 골렘 조종과 언데드 소환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의 상황도 별로 좋지 않았다.

‘검이...’

연달아 이어진 초식사용과 충격의 여파 때문에 검이 부러져 버린 것.

그러나 아직 대처할 시간은 있다.

마나 후폭풍 때문에 리치가 마법을 재사용하기까지 걸리는 약간의 텀.

김신은 주변에서 몰려들기 시작하는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등 뒤에 매달아두었던 천마신검을 망설임 없이 빼 들었다.

‘등반 직후 바로 와서 다행이다.’

극한의 집중상태에서 천마신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자, 탑에서 검을 잡았던 것과는 다르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윽?!”

천마신공과 반응한 검이 내공에 의해 검게 물들기 시작한 것.

김신이 검게 물드는 검을 움켜쥔 채 미묘한 신음을 내뱉으며 움직이지 못하자, 그 모습을 본 리치는 그의 모습을 비웃었다.

-큭큭큭, 그 검은 마검(魔劍)이로구나! 자신의 무기가 마검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다니. 어리석은 것!

리치는 비웃었지만, 김신은 검에 홀린 것이 아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눈앞에 나타나는 무윤의 환상.

반투명한 형체로 나타난 무윤의 환상은 김신에게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

-후계여 검로를 따라라.

무윤의 환상이 말 한마디와 함께 사라진 직후, 김신의 눈앞에는 정말로 검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측 상단에서 시작하는 검로.

김신을 비웃던 리치가 다시 마법을 준비하는 순간, 김신은 눈앞에 보이는 검로에 집중한 채, 다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지금 보이는 검로는 유일한 생로(生路).

김신은 그렇게 믿었다.

***

새로 얻은 아티펙트를 곧바로 실전에서 사용하며 동화율을 높여가던 천명화.

그는 갑자기 쓰러지는 골렘과 동시에 터지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에 김신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팀장님!’

A급이지만,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강한 헌터.

기어코 골렘을 쓰러트리고 달려가 리치에게 공격을 적중시킨 김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천명화는 조금 이상한 대치상황에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살폈다.

‘왜 쓰러지지 않지?’

예상과 다르게 엄청난 마나의 폭풍 뒤에도 멀쩡하게 서 있는 리치와 새로 얻은 검을 쥐고 가만히 서 있는 김신의 모습.

-큭큭큭, 그 검은 마검(魔劍)이로구나! 자신의 무기가 마검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다니. 어리석은 것!

검신이 검게 물드는 김신의 검과 리치가 비웃으며 하는 말에 천명화는 김신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어쩌지?’

골렘이 행동을 멈췄다지만, 상황이 끝나지 않았기에 움직이기 어렵다.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에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천명화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김신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안도의 한숨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사람 맞아?‘

김신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된 거대한 마나의 흐름.

“아...”

압도적이다.

아니, 경이롭다.

김신이 펼치는 검무에 따라 흐르는 그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나는 그의 검무가 끝나는 마지막 검격과 동시에 폭발했다.

콰아앙───!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천명화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번엔 리치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2.

눈앞에 보이는 검로.

극도의 집중을 유지한 채, 우측 상단에서 시작하는 검로를 따라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이 단전을 빠져나와 혈도를 타고 검으로 몰려들었다.

우우웅-

맹렬히 떨리는 검신.

김신은 터질듯한 내공이 담긴 검을 빠르지만 정교하게 검로를 따라 움직였다.

우상단 이후 한걸음 내디디며 좌상단 베기.

검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검은 곧 수려하지만, 위험한 검무(劍舞)가 되었다.

키이잉-

극한의 집중으로 인한 검강.

그 검강을 두른 채 휘두르는 천마신검.

김신이 추는 검무는 그 어떤 언데드 조차도 다가올 수 없게 만들었다.

서걱! 서걱!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적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검무.

순식간에 절정으로 치달은 검무는 리치가 마법을 준비할 새도 없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천둥으로 땅이 흔들리리니.

천마신공의 세 번째 초식, 지변(地變).

웅혼한 내공을 담은 수직 베기가 리치의 몸을 베고 땅과 맞닿은 순간.

────!

김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초식의 사용이 끝나자, 숨을 거칠게 내쉬며 정신을 차린 김신.

‘뭐지?’

주변 일대를 초토화 시킨 김신의 앞으로 처음 보는 사람의 영혼이 떠올라 절규했다.

-제발 해방시켜 줘!!!!

보통의 리치는 죽으면 라이프베슬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 회복을 시작한다.

그런데, 영혼이 있는 리치라니?

리치가 있던 자리에서 떠오른 영혼에 놀란 김신이 한걸음 물러서자, 리치의 영혼은 김신에게 다가와 말했다.

-탑의 6층, 연금술사의 숲, 가장 깊은 곳으로······

그 말과 동시에 사라진 리치의 영혼.

‘탑의 6층?’

김신의 머릿속에 리치의 영혼이 남긴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

김신이 고민하는 사이.

리치가 없어지며, 마나의 공급이 끊긴 언데드 또한 먼지처럼 사라진 것을 확인한 헌터들의 환호성이 여의도 전체에서 울려 퍼졌다.

“와!!!!!!”

가장 먼저 대처법을 알려준 헌터.

가장 먼저 리치를 상대해 토벌한 헌터.

여의도에 있는 모든 헌터들은 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김신이 없었다면 이토록 쉽게 게이트를 막아내지 못했을 거라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헌터들은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러 온 방송사의 기자들에게 사건 수습에 있어 가장 큰 기여도를 가진 것이 수호길드의 5팀장 이었다는 말을 꼭 붙여 전달했다.

그 결과, 현장의 한구석에서 쉬고 있던 김신에게 기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MBS 박민영 기자입니다.”

“네? 기자님이요?”

“예.”

“왜 굳이 저한테 오신 거죠?”

앞선 상황을 모르는 김신의 어리둥절한 반응에 기자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다른 헌터님들이 모두 수호길드의 5팀장, 김신 헌터를 말해서요.”

“질문 하실 게 있나요?”

“예, 사건에 관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요. 그런데 혹시 조금 길게 인터뷰 가능할까요?”

“인터뷰요? 조금 그런데···”

김신이 조금 난처한 기색을 보이자, 박민영 기자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 맨입으로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일단 들어보시고 생각해보세요.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3.

여의도에 열린 S급 게이트.

대처하지 못하고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이 사건은 김신의 활약 덕분에 최소의 피해만으로 수습됐다.

사건 이후 곧바로 길드로 돌아간 김신은 사건 당시 같이 리치의 언데드 군단을 막았던 다른 헌터들의 증언 때문에 그동안 피해왔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의 예정시간은 앞으로 2시간 뒤.

김신은 대기실에 앉아, 천명화에게 살짝 맥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 괜히 나선 것 같다.”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팀장님 아니었으면 지금쯤 여의도는 진짜 쑥대밭이 되었을걸요? 인터뷰 제의가 들어올 만큼, 팀장님은 큰일을 하신 겁니다.”

천명화의 말처럼 다른 헌터들에게 리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쉽게 막진 못했을 거다.

하지만, 김신이 뒤쫓던 구원회의 존재.

그들이 인터뷰를 통해 김신의 존재를 눈치채면 어떻게든 공격할 것이라는 고민이 들었다.

‘오히려 존재를 드러내서 쉽게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나아.’

유명해진다면 오히려 그 유명해짐으로 오는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다.

시선이 집중되면 쉽게 공격하지 못할 거니까.

게다가 은밀한 행동이 필요하다면 아티펙트의 힘으로 은밀한 행동이 가능하다.

‘내가 그들의 흔적을 먼저 찾았으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나을 수 있어. 적은 다수고 쫓는 나는 혼자니까.’

그리고 박민영 기자가 말했던 조건.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게이트 토벌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금액 정산 관련 문제나, 마석의 개수를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다고 했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낫지.’

게다가 가장 중요한 머리카락이라는 증거를 확보했기에 사실 이제 구원회의 꼬리를 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생각보다 머리를 어지럽히던 고민이 빠르게 정리되자, 김신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저야말로 팀장님이 없었으면 그 자리가 제 무덤이 됐을 겁니다.”

천명화와의 대화가 끝나고, 김신은 확실하게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반겨준 것은 다름 아닌, 한유성이었다.

“길드장님, 인터뷰 진행하겠습니다.”

“정말인가? 괜찮겠나?”

“머리카락이 있으니, 이제 꼬리를 잡는 건 문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마냥 숨어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숨는다고 해도 숨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맞네, 잘 생각했어.”

피할 수 없으면 부딪친다.

어차피 알려질 이름이라면 확실히 알리는 것이 속 편하다.

약속대로 2시간 후, 김신은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대처방법에 대한 질문.

그 외에 몇 가지 더 이어진 질문들을 적당한 선에서 답변한 김신은 해당 인터뷰를 기점으로 새로운 이명이 생겼다.

그 이명은 바로.

“오빠가 규격 외의 A급 헌터야?”

“놀리지 마.”

“왜 겁나 강하다는 건데. 딱 봐도 강해 보이잖아.”

“그러면 말하면서 웃지를 마.”

“내가 웃었나?”

“지금도 웃고 있잖아.”

“큭큭...아, 아니야.”

“너어-”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송인아가 웃음을 멈췄다.

규격 외의 A급 헌터.

인터뷰를 본 송인아가 계속해서 놀릴 만큼 낯뜨거워지는 이명이었다.

***

토벌 이후, 김신은 그때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모의 전투장을 찾았다.

‘강기의 사용을 확실하게 익혀야 해.’

연습 삼아 천마신검에 검강을 만들어 봤지만, 그때의 감각은 무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극한의 집중을 유지해야 하는 검강.

검기를 한 단계 강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은 다름 아닌 정신력이었기 때문에.

전투의 과정에서 오롯이 검으로 상대하는 검사와 다르게 김신은 여러 가지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 따른 수련이 필요했다.

‘검을 들고 싸운다고 능력을 쓰지 못하면 안 되겠지.’

그런 이유로 김신은 머리카락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강기를 사용하는 연습을 했다.

‘검강(劍罡)을 유지하면서 초식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해.’

검을 들고 집중하는 김신.

지잉-

묵빛의 검기가 검을 따라 피어오르고, 점차 형태를 갖추며 단단해진다.

무엇이든 잘라낸다는 검강.

그 위력은 김신이 가건물을 향해 검을 내지르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서걱!

시멘트로 지어진 가건물의 벽을 가볍게 파고든다.

연속해서 내지르는 검을 따라 가건물의 벽면에 맹수가 새긴 발톱처럼 깊은 검흔이 남았다.

‘이제 마법도.’

김신이 마법을 같이 사용하기 위해 왼손을 들자, 검신을 따라 피어오른 검강이 사그라든다.

스륵-

‘역시 쉽지 않네.’

안되면 될 때까지.

김신은 휴식 동안 계속해서 검강을 사용하는 연습에 집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