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62화 (62/116)

《62화》

1.

김신이 정보를 알려준 덕에 강변 산책로를 기준으로 헌터들의 방어선이 빠르게 구축됐다.

리치는 마법사다.

미치고 광기에 휩싸여 손대면 안 되는 흑마법에 손을 댄 탓에 탄생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마법사라는 이야기다.

‘블라이어의 기억 속에 있는 리치와는 너무 다른데?’

대담하고, 과감하다.

아무리 그 생명의 근원인 라이프베슬을 다른 장소에 숨겨둔다 할지라도 마법사용의 매개체인 본인의 뼈가 부서진다면 언데드 또한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할 것일 텐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눈앞에 목표가 있다.

김신처럼 대놓고 마나를 줄기줄기 뿜어대는 리치를 찾아낸 다른 헌터들 또한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마법사이자, 연금술사. 그리고 인간의 육신에 통달한 의사였지.

그렇게 말한 리치가 무언가 불길한 마법진을 허공에 그리기 시작했다.

‘역시, 그냥 대놓고 있더라니!’

상대하는 리치는 엄연히 S급.

쉽게 끝날 리가 없었다.

쿠구구구구!

엄청난 마나의 흐름에 공명하는 대기.

탁한 흑색의 마력이 모여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덜그럭!

달려오던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이게 대체 무슨...”

그 모습에 당황한 듯 목소리를 떠는 천명화.

김신 또한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검을 쥐고 주위를 살폈다.

‘방어의 주가 되는 언데드 군단을 멈췄다고?!’

이상하지만. 분명, 이 순간은 헌터들에겐 찬스였다.

무방비한 마법사를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죽어라!”

각자의 아티펙트를 꼬나쥐고, 멈춰버린 스켈레톤의 사이를 헤치고 리치를 향해 달려가는 몇몇 헌터들.

그들이 눈앞에 리치에게 거의 다 접근했을 쯤.

덜그럭! 덜그럭!

달려드는 헌터들 주위에 있던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분해되며, 거대한 덩어리로 뭉친다.

그드득! 까드득!

좀비는 반죽 되어 살덩어리로 바뀌었고, 스켈레톤들의 뼈가 일자로 뭉치며 더욱 크고 단단해진다.

“시, 시발!”

기괴한 모습에 패닉에 빠진 헌터들.

그들은 다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주위에 뭉쳐있는 덩어리들의 손길이 더욱 빨랐다.

슈우욱!

수많은 팔이 합쳐져 길어진 언데드의 팔이 달려가는 헌터를 붙잡아 덩어리 안에 끌고 들어갔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 마냥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는 헌터들.

“끄, 끄아아아악!”

그들은 곧 시체의 덩어리에 산채로 흡수가 되어버렸다.

꾸드득!

흡수가 끝난 덩어리는 계속해서 모습이 바뀌어 갔다.

촤악!

거대해진 덩어리에서 팔과 다리가 튀어나오고, 그 팔과 다리를 내보낸 덩어리를 중심으로 형체를 잡아간다.

마치, 과학실에서 보던 인체모형을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외형.

김신은 그 압도적인 존재의 탄생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그 존재의 정의를 알 수 있었다.

“···골렘.”

잡힌 헌터들의 영혼이 저 덩어리를 움직이는 매개체가 되어, 리치의 명령을 따른다.

산 사람의 영혼을 강제로 타락시키는 사악한 흑마법.

-인간들의 영혼과 육신. 해방을 원하는 자들은 내게로 오라. 대가는 너희들을 요긴하게 써 먹어주는 것으로 갈음할 테니.

리치는 자신의 모습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었던 거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최악이군.”

골렘의 개체 수는 총 5기.

몰려든 헌터들의 힘으로도 막기 힘들다고 생각될 만큼, 완성된 골렘은 강대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2.

쿵! 쿵!

바닥을 울리는 둔중한 발걸음.

만들어진 골렘의 크기를 가늠할만한 척도였다.

5m 크기.

인간의 뼈와 살점으로 만들어진 언데드골렘.

연금술과 사악한 주술이 합쳐진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골렘은 리치의 마나를 받아 더욱 강화되었다.

“저, 저게 뭐야!”

주위에 있는 헌터들의 당혹성.

“스트라이커! 일제히 공격해!”

방어선 중간중간에 있는 팀장급 헌터들의 지휘에 이능력자들이 가지각색의 공격을 골렘에게 날렸다.

슈우욱! 콰직! 퍼엉! 파지직!

하늘을 날아가는 바위, 바람의 칼날과 전격의 구체.

한참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골렘이었지만, 이능력의 세례 끝에 남은 건 약간 그을린 정도의 상처뿐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옆에 있는 헌터의 입에서 맥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B급 스트라이커의 공격에도 끄떡없다니···”

구체적인 방어력과 느껴지는 압박감으론 골렘 한 기를 상대하기 위해선 A급 헌터 둘 셋은 있어야 간신히 상대할만한 수준으로 보였다.

그 모습에 기감을 내뿜어 주변의 A급 헌터의 수를 확인하는 김신.

‘방어선에 있는 A급 헌터는 7명.’

김신과 A급에 준하는 파괴력을 내뿜는 천명화까지 달려들어도 9명.

골렘을 막는데 모든 A급 헌터가 동원되어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스켈레톤과 좀비 무리를 다른 헌터들이 상대해야 하니, 상황은 전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일방적인 피해를 입지 않을 수준은 된다.

판단이 끝난 김신은 곧바로 주위의 헌터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저 덩치 큰 골렘은 최소한 A급 헌터 두 명이 상대해야 합니다!”

이미 방어선의 최전선에서 김신의 정보를 듣고 싸우고 있던 A급 헌터들은 다시 들리는 김신의 말을 듣고, 곧바로 답했다.

“제가 오른쪽 가장 끝에 있는 놈에게 붙겠습니다!”

“저는 왼쪽 가장 끝에···”

막을 사람이 자신들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A급 헌터들이 곧바로 상대를 지정했고, 김신은 가장 마지막에 홀로 골렘을 지목한 헌터에게 천명화를 보냈다.

“명화야 너는 저 헌터랑 같이 저놈을 맡아.”

“팀장님은요?!”

“지금 저 골렘을 홀로 막을 사람은 나 말고는 없어.”

B급 헌터로는 상대하기 힘들 만큼 심각한 격차.

사실, 천명화도 아티펙트의 도움이 없었으면 골렘과의 전투는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골렘은 강력했다.

김신의 말을 들은 천명화는 잠시 김신을 보며 말했다.

“팀장님 다치지 마십쇼.”

“너야말로 조심해라.”

그렇게 천명화가 바로 왼쪽에 있던 헌터의 옆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며, 김신은 대략적인 전투를 그렸다.

‘리치는 골렘의 힘을 믿고 별다른 대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골렘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분명 다른 행동을 취하겠지만, 분명 골렘을 처리한 그 순간에는 약간의 틈이 생길 것이다.

‘그때를 노려야 해.’

김신이 상대할 골렘은 리치와 가장 가까운 정면에 서 있는 골렘.

판단이 끝난 김신은 다른 헌터들과 같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골렘을 향해 검을 들고 달려갔다.

3.

질량이 커지면 충격도 커진다.

게다가 골렘의 무기인 주먹은 리치의 마법에 의해 강화된 상태.

후웅!

가볍게 휘두르는 주먹조차 쉽게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담고 있다.

콰앙!

김신이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며 박히는 골렘의 주먹.

김신은 주먹을 회수하기 위해 버벅거리는 약간의 틈을 이용해 검기가 넘실거리는 검을 골렘의 무릎을 향해 휘둘렀다.

쐐액! 콰앙!

‘제대로 들어갔다.’

묵직한 타격감.

분명 단단하지만, 이 정도의 충격이면 피해를 줬을 것이 분명하다.

탓!

김신은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골렘의 사정거리 밖으로 백스텝을 밟으며, 공격이 적중한 골렘의 무릎을 확인했다.

‘···말도 안 돼.’

분명 피해가 있다.

문제는 움푹 파였던 골렘의 무릎이 곧바로 회복되었을 뿐.

‘말도 안 되는 회복력.’

속도가 느린 대신 강력한 한 방을 가지고 있으며 회복과 방어력이 주력인 골렘.

그리고 뒤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스켈레톤과 좀비.

누가 봐도 소모전에 특화된 리치의 모습이다.

‘어떡해야···’

방어적 성향의 적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압도적인 힘으로 뚫어버리거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 리치에게 공격을 해야 한다.

공격을 회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피해를 주기 어렵다.

게다가, 주변에 스켈레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 기동력을 살리기란 만무.

그렇기에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

‘강력한 한방의 공격이 필요해.’

***

후웅!

또다시 주먹을 내리찍는 골렘을 피해 김신은 뒤로 물러섰다.

“인페르노!”

바로 옆에 있는 골렘과 치열하게 싸우는 천명화와 다른 한 명의 헌터.

화염이 골렘의 몸을 휘감으며 공격은 저지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역시, 너무 단단해.’

천명화와 같이 싸우는 헌터의 역량도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주변 헌터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아 보였다.

공격은 피해를 주지 못하고, 주변의 다른 스켈레톤을 견제하며 싸워야 하니 체력의 소모가 심각하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모양새.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위험하다.’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라면 여기 있는 언데드 군단을 조종하는 리치를 잡아야 한다.

후웅!

또다시 주먹을 내리찍는 골렘의 공격을 뒤가 아닌 앞으로 돌진하며 피한 김신.

-그그그그극!

먹힌 헌터의 영혼으로 움직이는 골렘은 재빠른 김신의 회피에 잠시 그의 모습을 놓쳤고, 김신은 그 잠깐의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우우우웅!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내공이 혈도를 타고, 검으로 모인다.

아까와는 다르게 만년한철로 만든 검의 검신이 묵빛으로 밝게 타올랐다.

내공이 가득 담긴 김신의 검.

김신은 뒤로 도는 골렘과 주변에서 달려드는 스켈레톤을 향해 준비한 초식을 사용했다.

-열린 하늘에서 천둥의 비가 내린다.

천마신공의 두 번째 초식. 뇌우(雷雨)

쿠구구궁!

쓰나미처럼 퍼지는 내공의 파도.

골렘이 뒤로 몸을 돌리는 순간, 김신의 공격이 골렘의 몸에 직격 했다.

콰가가가가각!

수많은 내공의 칼날이 골렘의 몸을 베고, 주변의 스켈레톤을 날린다.

퍼엉!

사방으로 흩날리는 스켈레톤의 뼛가루.

역시나 골렘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김신이 노린 것은 그것이 아니다.

쿠웅!

공격의 충격으로 인해 뒤로 쓰러지는 골렘.

‘지금이다.’

버둥거리며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김신이 노린 것은 바로 지금 생긴 틈.

사방으로 흩날리는 뼛가루와 골렘이 일으킨 먼지로 리치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김신은 곧바로 변화의 구슬을 사용했다.

스르륵-

투명해짐과 동시에 리치를 향해 달려가는 김신.

딱 한 방.

지금 필요한 것은 언데드를 소환하는 마법사에게 집중이 끊길 정도의 타격.

‘역소환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은 없겠지만.’

리치에겐 지금처럼 골렘이라는 엄청난 양의 마나를 잡아먹는 존재들을 부리고 있을 경우 집중의 끊김은 타격이 클 것이다.

타앗!

용천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의 반반력을 통해 스켈레톤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김신.

극도의 집중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이 느리게 느껴진다.

-···어떻게?!

때늦게 김신의 존재를 감지한 리치가 다급하게 수인을 맺는 것이 보였다.

‘아슬아슬하다.’

리치의 실력은 거짓이 아닌지, [가속]으로 인해 느리게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놈의 수인은 군더더기 없이 빨랐다.

터벅-

한 걸음.

그 한 걸음이라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김신은 오롯이 리치만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다.

집중하다.

최선의 결과를 낼 방법은 검을 리치의 몸에 닿게 하는 것.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성공하게 하기 위한 집중은 운 좋게도 김신의 검기에 특별한 변화를 가져왔다.

키잉!

그 특별한 변화는 바로 강기(罡氣).

극한의 집중을 통한 검기의 중첩으로 만들어지는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검사의 전유물.

김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극도의 집중력을 통해 만들어낸 강기가 맺힌 검을 리치를 향해 찔러넣었다.

쐐액!

그와 동시에 수인을 맺은 리치의 실드가 놈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하고, 강기가 맺힌 검 끝이 리치의 몸에 닿기 직전.

키이이이잉!

완성된 리치의 쉴드와 김신의 검강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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