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1.
헌터 연합에 대부분의 일을 해결하는 77층 건물인 [바벨].
김신과 천명화는 바벨의 고등급 아티펙트 보관장소인 지하 14층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했다.
지잉-
육중한 철제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드러난 아티펙트 보관장소.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가자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이 공간에는 여러 개의 아티펙트가 진열장에 들어간 채로 자리 잡고 있었다.
등급이 높은 탓인지, 꽤 엄중한 경비 아래 보관된 아티펙트들.
그중 전설급 아티펙트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간 김신과 천명화는 감정이 끝난 아티펙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양이 다양하네요.”
“그렇지. 아티펙트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아티펙트의 사용 방법과 기능이 적혀있는 디스플레이를 살펴보던 도중, 김신은 천명화와 딱 맞는 아티펙트를 발견하자, 그를 불렀다.
“명화야.”
“예?”
“이거 봐봐.”
김신의 옆으로 다가와 그가 가리키는 문구를 읽어내려가던 천명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김신에게 물었다.
“···이, 이게 뭡니까?”
“아무래도 찾은 거 같다. 너랑 딱 맞는 아티펙트.”
[순수한 불꽃]
화염특성의 소유자에 능력을 대폭 상향시켜주는 아티펙트.
외형으로는 그냥 작은 불씨에 불과한 모습이었지만, 화염특성의 각성자가 아티펙트를 잡으면 외형이 변화한다고 적혀있었다.
문구를 읽은 김신은 옆에 서 있는 창고 관리자에게 물었다.
“이거 한번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예, 가능합니다.”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잠시 후 아티펙트를 감싸고 있던 보관함이 부드럽게 열렸다.
“명화야 집어봐.”
“넵!”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는 불꽃.
천명화의 손이 그 불꽃을 집는 순간, 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왔다.
“윽!”
“괜찮아?!”
화르르르륵!
불꽃을 집은 오른손에서 시작된 불길이 그의 오른팔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
김신은 그 모습에 곧바로 수(水)계열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천명화의 목소리에 사용하기를 그만뒀다.
“저는 괜찮아요! 그냥 엄청 강렬한 느낌이 갑자기 느껴져서 놀란 것뿐이에요.”
천명화는 그 말을 한 직후,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는 타오르는 불길을 천천히 줄이며 형태를 바꾸어나갔다.
불길이 사그라들며, 색이 점점 푸르게 변한다.
이윽고 어떠한 형태로 바뀐 화염을 본 순간, 김신은 그 형태가 매우 눈에 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
“네.”
순수한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
김신은 그 안에 담긴 마력을 본 순간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것을 느꼈다.
‘강기(罡氣)와 비슷하다.’
도통 감을 잡기 힘들었던 그 강기에 대한 갈피를 잡은 김신은 불길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천명화에게 말했다.
“돌아갈까?”
“예!”
***
바벨에서 나오니, 어느새 중천에 있던 해가 거의 다 기울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네.”
“절차가 꽤 빡빡했으니까요.”
“하긴.”
잠시 하늘을 보며 대화한 김신과 천명화는 다시 길드로 향하는 택시를 잡아탔다.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
“아니야, 나야말로 너한테 딱 맞는 아티펙트를 찾아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
어찌 보면 일석이조의 순간이었다.
팀원의 전력증가와 강기 사용에 대한 단초를 얻었으니까.
천명화와 다른 의미로 들뜬 김신의 머릿속이 수련할 생각으로 가득 찬 순간.
[S급 게이트 경보 발령! 현재 방송이 들리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가까운 대피소나 건물 내부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방송이···]
“팀, 팀장님. 지, 지금 들린 거 S급 맞습니까?”
“···맞아.”
갑자기 울리는 게이트 경보와 함께 불안정하게 떨리는 마나의 흐름.
‘수련은 하지도 못하겠고.’
상념에서 깬 김신은 곧바로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일단 차는 여기서 세워주시고요. 기사님도 바로 앞에 있는 여의도역으로 대피하세요. 명화야 가자.”
“예, 예!”
“자, 자네들은 대피 안 하나?”
김신은 택시기사의 말에 천명화와 함께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저희 헌터입니다.”
스릉-
화르르르륵!
검을 빼 드는 김신과 방금 얻은 아티펙트로 화염의 검을 만드는 천명화.
택시기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한마디의 말과 함께 떠나갔다.
“어쩐지 바벨에서 나오더라니!”
2.
테트라곤, 바벨.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여의도에 열린 S급 게이트.
재앙급이라 불리는 측정불가 등급 바로 아래 단계의 높은 게이트.
하지만, 벌써 사방에서 몰려드는 높은 등급을 가진 헌터의 모습에 그 긴장의 정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확실히 헌터가 많으니까, 덜 긴장되긴 하네요.”
긴장이 빠진 천명화의 말에 김신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줄 꽉 잡아라. 그러다 눈먼 칼 맞아 가는 수가 있으니까.”
많은 헌터들 덕분에 생각 이상으로 빨리 끝날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지금 열리는 게이트의 규모는 그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거대했다.
“···너무 많은데요?”
“그러니까 정신줄 꽉 잡으라고.”
강변 산책로쪽 방향에서 열리는 게이트.
쿠구구구구.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비틀어지며, 점점 벌어지는 무채색의 공간.
그 안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뼈와 반쯤 부패한 시체들이었다.
“좀, 좀비?! 저 뼈는 또 뭡니까?”
“···스켈레톤.”
“스켈레톤?”
블라이어의 기억에서 본 언데드몬스터.
분명 흑마법을 쓰는 존재가 일으켜 세운 시체가 분명하다.
‘근데, 왜 괴수도 아닌 언데드 몬스터가 이곳에?’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꺄악!”
몰려오는 언데드 몬스터를 피해 사방으로 도망치는 시민들.
슈욱! 쾅!
가장 가까이에 있던 스켈레톤의 머리를 검기를 날려 일격에 터트린 김신은 대충 그 내구도를 가늠하며 천명화에게 말했다.
“명화야. 저 뼈다귀들 대충 C급 수준이다. 그러니까 일단 몰려오는 거 막으면서 시민들 대피부터 돕자.”
“예!”
사방으로 도망치는 시민들을 쫓아 습격하려 하는 언데드 무리로부터 그들을 지켜야만 하는 싸움.
그 길고 긴 방어전이 여의도에서 시작됐다.
***
강변에 있는 산책로를 새까맣게 덮은 채로 몰려오는 언데드 무리.
개체 마다의 능력은 낮지만 가장 무서운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숫자에 있었다.
“징그러울 정도네요.”
천명화의 말처럼 주변에 보이는 몇 마리는 애교였다는 듯이 완전히 열린 게이트에서 나오는 좀비와 스켈레톤의 숫자는 그 상상을 초월했다.
“초록길드! 모두 근처로 모여!”
“야! 1팀 어디 갔어! 디펜더!”
주변에 있던 헌터들 조차도 각자 하던 전투를 멈추고 길드별로 모이게 만드는 엄청난 물량.
쿠구구구구!
온몸이 전부 뼈거나, 찢긴 살점만 붙은 언데드였지만, 바닥을 울리게 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곳은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여의도.
김신은 압도적인 적의 물량을 보고 전투에 앞서 잠시 주변을 살폈다.
‘분명 있을 텐데...’
길드 단위로 온 헌터들이 아닌, 김신과 천명화의 경우처럼 소수로 온 헌터들.
김신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수로 온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봤고, 그는 곧 그들을 향해 외쳤다.
“길드가 없으신 분들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아티펙트를 얻은 천명화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수도 많아야 한다.
그렇다면 소수가 뭉쳐 다수가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법.
김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소수의 헌터들이 김신과 천명화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슈욱! 콰앙!
그 사이, 또다시 검기를 내뿜어 몰려드는 좀비 한 마리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격살한 김신.
그 모습에 더욱 많은 헌터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김신이 짧게 설명했다.
“상황이 급하니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수호길드의 5팀장이자, A급 헌터 김신입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제 말을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김신의 소개와 동시에 주위에 뭉친 20명의 헌터들이 각자 한 마디씩 혼잣말을 내뱉었다.
“수호길드의 5팀장?!”
“나, 저 헌터 본 것 같은데?”
“이단승급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A급이라고?”
수호길드의 팀장.
두 가지가 주는 무게는 주변에 있던 모든 헌터들의 명령권을 곧바로 얻어올 수 있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주위에 뭉친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김신의 입을 향해 몰렸다.
3.
언데드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수한 주술과 마법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흑마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김신은 그러한 흑마법의 산물인 언데드를 보자마자, 블라이어의 기억에서 본 언데드 대군을 일으키는 리치가 기억났다.
‘분명 게이트 주변 어딘가에 이 언데드 군대를 조종하는 리치가 있을 거다.’
언데드 마법사 리치.
뼈만 남은 그 사악한 흑마법사를 찾아내야 하는 것.
김신은 이 사실을 모르는 헌터들에게 조용히 귀띔을 해줬다.
“강변 방향에 저 좀비들과 스켈레톤 사이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마나를 다루는 존재가 있을 겁니다. 아마 그 존재를 토벌하면 여기 있는 이 좀비들은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게 진짜입니까?”
“예. 확실합니다.”
“어떻게 아시는 거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의심하는 상대를 안심하게 하고 따르게 하는 방법.
결과적으로 저 질문에 할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직접 봤습니다.”
블라이어의 기억을 통해서였지만, 어쨌든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이 방법을 아는 사람은 김신뿐.
수호길드의 팀장과 A급 헌터라는 명성은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마나를 다루는 괴수라고 하셨죠?”
“네.”
“그러면 해 볼만 하겠군요.”
여기 있는 대부분의 헌터들은 C급 이상.
큰 규모의 마법들은 그들도 감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걱!
언데드들을 가차 없이 베어 넘기며 흩어지는 4개의 팀으로 구성된 헌터들.
김신과 천명화 두 사람은 따로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른 길드의 헌터들에게도 이 정보를 전달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보를 알려 피해를 최소화한다.
알고 막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피해의 차이가 극명할 것이 분명할 터.
언데드 군단의 공세는 언데드를 소환하는 주체를 잡지 못하면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
결국, 언데드 소환의 주체인 리치는 게이트가 열린 강변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을 만큼, 김신과 천명화를 비롯한 정보를 알고 있는 헌터들은 쏟아지는 언데드를 베며 게이트가 열린 마포대교 방향을 향해 전진했다.
“명화야, 잘 따라와라.”
“예!”
온갖 버프를 둘러 능력치가 배가 된 김신과 천명화.
덜그럭- 덜그럭-
조악한 쇠붙이를 들고 달려드는 스켈레톤과 좀비들.
-크아아아아!
평소라면 천명화가 버거워할 만한 강행군이었지만.
“플레임 웨이브!”
화르르륵!
천명화의 오른손에 들린 저 전설급 아티펙트의 위력은 다수를 상대할 때, 더욱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크아아아악!
언데드에게 취약한 불과 빛.
아직 해가 떠 있는 상황 속에 천명화의 불에 타 스러진 언데드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그 덕에 빠르게 돌파할 수 있었다.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천명화.
‘아티펙트가 날개를 달아줬네.’
천명화가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는 게이트 앞에 흑색의 로브를 입은 독특한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탁한 사기(死氣)가 섞인 마나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존재.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 그러니 내가 직접 육신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주지.
바로 리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