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60화 (60/116)

《60화》

1.

검과 책.

무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아티펙트다.

김신은 그가 있었던 자리로 가서 조심스럽게 그가 남긴 아티펙트를 주웠다.

흑색의 검집, 갈색 가죽으로 감싼 검의 손잡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검의 외관과는 다르게, 뽑은 검의 검신에는 화려한 용이 검신을 감싸고 있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검 자체의 기능도 엄청나지만, 사실 천마신검은 천마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물건이다.

선대에서 후대로 물려주는 천마의 직위를 상징하는 상징적인 신물(神物).

무복에 깃든 무윤의 기억으로 그는 선대로부터 받은 천마신검을 전투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대체 왜 이게 나온 걸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티펙트는 해당 보스와 관련 있는 물건을 주는 만큼, 왠지 무윤이 자신을 후대로 인정해 준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

순전히 운이고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김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짧게 그런 생각을 한 김신은 품에 천마신검을 끌어안고, 검과 함께 떨어진 책을 주워들려는 순간.

“오빠 이거 봐봐.”

검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감상에 빠져있던 김신은 어느새 곁에 있는 송인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 깜짝이야!”

책을 집어 들고 살펴보는 송인아.

그녀는 김신과 눈이 마주치자, 책을 집어 그의 앞으로 내밀며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이 책. 겉표지가 밋밋한 걸 보니까 일기 같은데?”

“일기?”

송인아의 말대로 책의 겉표지를 살펴보니, 확실히 따로 적힌 글씨는 없다.

‘그것만 보고서 추측이 가능한가?’

물론 어떤 정보가 적힌 서적이라면 필시 그 서적의 제목이 있기 마련이긴 하지만.

김신이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책을 살펴보던 송인아가 갑자기 앓는 소리를 냈다.

“이, 이거 안 열려!”

책을 잡고 펴기 위해 낑낑거리는 송인아.

김신은 장난 같은 그녀의 행동에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거짓말. 줘봐 내가 펴볼 테니까.”

“아! 진짜라니까?”

“책에 본드를 발라놓은 것도 아니고···”

김신은 억울하다는 듯이 입술을 앙다문 송인아가 건네주는 책을 받았다.

“그거 오빠도 못 펼걸?”

“에이, 설마.”

송인아의 찌푸린 표정을 보니, 정말인 것 같았다.

‘무슨 조건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손가락을 이용해 책의 표지를 연 김신.

촤르륵-

“어? 난 잘 펴지는데?”

낑낑거렸던 송인아와는 다르게 책의 표지가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자, 그녀는 의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김신의 손에 있는 책을 집어갔다.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책을 가져간 송인아가 다시 책을 펴보려 했지만, 정말로 그녀는 책을 펴지 못했다.

“끙! 이것 봐! 나는 안 펴진다니까?”

“진짜네?”

사람을 가리는 것 같은 책.

마치, 꽁트 같은 그 상황에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천명화와 강한우가 차례로 책을 들고 가서 펴보려 했지만, 그들도 송인아와 똑같이 책을 펴지 못했다.

“와, 진짜 안 펴지는데요?”

그리고 그렇게 강한우의 손에서 책을 건네받은 김신이 자연스럽게 책의 겉표지를 스르륵 넘기자, 그 모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송인아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물었다.

“하, 오빠는 왜 펴지는 거야?”

***

김신만이 펼 수 있었던 책의 정체는 송인아의 예상처럼, 천마의 일기였다.

‘천마신공을 익힌 사람의 손에서만 펼쳐지도록 만들었다니.’

특수한 방법을 이용해 일반인은 펴지 못하도록 만든 이 일기는 그러한 조치를 해놓은 만큼 무윤의 생각과 일상을 꽤 자세하게 담아놓았다.

-3월 12일. 식량은 없고, 신도들은 굶주림에 힘들어한다. 삶이 각박해 도망쳐온 그들에게 줄 것이 없다는 게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아직 무윤이 신교 내에서 그리 큰 직위가 아니었을 때부터.

-7월 23일. 고대하던 천마의 위(位)에 올랐다. 선대 천마의 자식이 없었기에 이룰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천마의 자리에 올랐을 때까지.

물론, 일기는 그다음에도 이어졌다.

다만, 그 내용이 일상이 아닌 심각한 내용으로 바뀌었을 뿐이었지만.

-9월 11일. 인간의 신체에 황소의 머리를 가진 괴상한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진 힘은 신교 내의 검사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만, 그 수가 끝이 없다.

-10월 27일. 알 수 없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사경(生死境)에 올라 만물의 기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의 내 능력으로도 그 존재를 희미하게 느낄 뿐.

신에 필적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던 무윤마저도 그 존재의 기척을 희미하게 느낄 만큼 어마어마한 존재.

‘대체 뭐였을까.’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마지막 일기를 확인하려 했으나, 일기는 더 적혀있지 않았다.

“흠.”

호기심에 아티펙트의 기억을 확인해 봤지만, 보이는 것은 그가 일기를 쓰는 장면뿐이었다.

‘궁금한데.’

알 수 없는 존재.

무복에 깃들어 있는 기억에도 없는 일기 속 정보는 김신을 생각의 늪으로 빠뜨렸다.

‘탑을 오르다 보면 알게 되겠지.’

김신은 두 뺨을 가볍게 쳐 잡념을 털어내고, 팀원들이 기다리는 던전의 출구로 향했다.

2.

탑의 2층 입구에서 다시 수호길드의 팀 대기실로 돌아온 김신과 팀원들.

김신은 전리품인 검과 일기의 분배에 앞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명화에게 검을 빼볼 것을 부탁했다.

“명화야, 이거 한 번 빼볼래?”

천마를 상징하는 신물(神物)인 만큼 일기와 같은 방식으로 열리나 싶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안 뽑히는데요?”

“역시, 그런 건가.”

그러한 이유로 김신은 팀원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부탁을 말했다.

“여기서 쓸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인 것 같으니까, 1층에서 나온 아티펙트인 검과 일기는 내가 가져도 될까 싶어. 대신 다음 층에서 나오는 아티펙트는 내 몫을 제하고 분배할게.”

천마의 신물인 천마신검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고, 일기 또한 정보가 적혀있다.

그렇기에 둘 다 놓칠 수 없었다.

김신의 말을 들은 팀원들은 망설임 없이 그의 말에 찬성했다.

“전 괜찮습니다. 어차피 줘도 뽑지도 못하고, 전 방패만 쓰니까요.”

“고마워요.”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우.

“나도 검은 필요 없어. 근데, 책에 적힌 내용이 조금 궁금하긴 하다.”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러면 나도 뭐, 괜찮아 나중에 받지.”

안 열리는 책에 관심이 있지만, 마찬가지로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송인아.

반면 천명화는 고민이 많은 듯 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명화야, 너는 어때? 괜찮겠어?”

“어차피 저도 쓰지 못하니까, 팀장님이 가지세요.”

천명화는 다른 팀원들과 다르게 김신과 포지션이 겹쳤기에 잠시 검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김신이 가지는 것에 찬성했다.

“진짜?”

“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명화의 얼굴을 보니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검사로서 탐나는 검이 나왔는데 쓰질 못하니까 아쉽겠지.’

같은 검사로서 딱 봐도 성능이 좋아 보이는 검에 욕심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명화도 챙겨주긴 해야 하는데···’

검의 등급과 일기의 등급은 둘 다 똑같은 유니크.

잠시 고민하던 그때.

‘아, 맞다. 그거 안 받았었지.’

김신의 머릿속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명화야.”

“넵.”

“너 나갈 준비 좀 하고 있어.”

***

천명화를 밖으로 보낸 직후.

탑 등반을 했기에 개인정비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던 송인아와 강한우를 불러모았다.

“인아야, 한우씨.”

“응.”

“네.”

둘을 불러 모은 것은 예전 키클롭스 사건 때 연합에서 받기로 했던 전설급 아티펙트에 관한 문제였다.

“이번 보상에 관련해서 명화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김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두 사람.

“뭐?”

“뭘 말입니까?”

강한우는 그 일이 있기 전에 이미 카엘의 방패를 얻었고, 송인아는 직후 길드 자체의 보상으로 헤르탈의 팔찌를 얻었었다.

깜빡 잊고 있던 그때의 일을 기억해낸 김신은 강한우의 물음에 답했다.

“일전 키클롭스 사건에 연합에서 보상을 받기로 한 거 생각나요?”

“아! 그거!”

손뼉을 치며 놀라는 송인아와 입을 벙긋하며 놀란 얼굴을 하는 강한우.

김신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 보상을 천명화에게 줄까 하는데요.”

“그거 아직도 안 받았었구나!”

“응, 안 그래도 일전에 검 구해주려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못 구해줬었거든.”

김신의 말에 이미 딱 맞는 아티펙트를 받은 두 사람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찬성.”

“저도 찬성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천명화도 까먹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3.

천명화는 떠밀리듯 밖으로 나온 후, 나갈 준비를 하며 생각했다.

‘어딜 가려는 거지?’

보통의 경우 팀원 전체가 다 같이 움직였기에 이런 경우가 흔치 않았었다.

‘아, 그 검 좋아 보였는데, 아쉽네.’

천명화가 영문도 모른 채 준비를 끝내고 김신을 기다릴 무렵.

끼익-

김신이 팀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가자.”

곧바로 길드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은 김신.

천명화는 김신의 모습이 궁금했기에 물었다.

“어디 가는 겁니까?”

“그냥 따라와 인마.”

“...?”

얼떨결에 김신의 손에 끌려 택시에 탄 천명화.

택시가 향하는 방향이 점차 연합의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머릿속은 궁금증으로 차올랐다.

‘뭐지? 왜 연합에 가는 거지?’

보통 연합에 가는 것은 보상을 받으러 가는 경우가 많기에 천명화는 천천히 고민을 이어갔고, 이내 예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아니, 전에 그 [골동품 매매소]에서 좋은 아티펙트가 나오면 구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잖아요.

쿵쾅!

머리에서 번개가 번쩍하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천명화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고 김신에게 말했다.

“팀장님. 여기 온 이유가 혹, 혹시. 그때 그 전설급 아티펙트...”

설레발이라도 좋다. 상상만으로도 기쁘니까.

그리고 그런 천명화의 이상을 감지한 김신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큭큭. 목소리를 왜 떨어?”

“아니, 지금 목소리를 안 떨게 생겼습니까?”

기쁨과 기대, 만약 아니면 어쩌지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휘몰아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굳게 믿고 있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송인아와 강한우가 받았던 것처럼 김신이 좋은 아티펙트를 구해줄 거라고.

그리고 김신은 그런 천명화의 기대에 부응하는 답을 했다.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거.”

“···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이 기분.

“명화야? 괜찮니?”

천명화는 너무 좋아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

“명화야?”

“...”

“야. 정신 차려!”

김신이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천명화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을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에 전설급 아티펙트라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천명화의 모습에 김신은 천명화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놓은 거야? 아티펙트 안 구해준다?”

“...아, 아뇨!”

고개를 급히 터는 천명화.

김신은 그의 모습을 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 왔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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