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1.
무윤의 아티펙트를 처음 감정했을 때, 그의 기억 속에 담겨 있던 것은 어린 무윤이 어두운 연무장의 한구석에서 살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던 모습이었다.
‘여기가 바로 그 연무장.’
무윤의 기억을 따라 한 걸음씩 주변을 살펴보는 김신.
발걸음을 옮기는 곳곳마다 무복에서 본 무윤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추억에 감겨 주변을 둘러보던 김신의 귓가에 송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뭐해?”
“어? 여긴 왜 따라 나왔어. 쉬고 있지.”
“그냥, 오빠가 괜히 생각이 많아 보이길래. 고민 상담이나 해주려고.”
“명화랑 한우 씨는?”
“신기하다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어.”
탑의 달빛을 받은 천마신교의 본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한 느낌을 내뿜었다.
김신은 해가 뜨기 전까지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잠시 송인아와 전각을 걸어 다니며 대화했다.
“그냥 탑에 오르는 게 처음이라 생각이 많아졌나 봐.”
사실,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아 그렇지만 말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김신의 말을 들은 송인아는 그가 팀장으로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담 느낄 필요 없어. 옛날과는 다르게 지금은 충분히 공략방법이 있으니까.”
“아, 그렇지 공략방법.”
10년간 가장 많은 헌터를 죽게 만든 악명높은 탑의 1층 보스.
게이트 초기에 탑에 도전했던 헌터들은 보스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괴수들을 토벌해야겠다는 생각뿐.
그렇게 마을 주위를 돌아다니던 괴수들을 토벌하며 힘들게 도착했던 전각.
그러나 그들은 던전에 있던 보스의 벽을 넘지 못해 힘없이 스러지고 말았었다.
김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을 무렵, 송인아는 김신의 혼잣말에 답했다.
“능력을 약화하는 이능력에 취약하다는 그 공략방법 말이야. 알고 있지?”
“그래? 1층 보스가 이능력에 취약해?”
“응. 그래서 공략할 때, 탱커랑 이능력자만 들어가기도 해.
이능력에 취약하다.
김신은 송인아에게 들은 정보를 곱씹으며, 무윤의 기억이 잠들어 있는 밤거리를 조용히 거닐었다.
***
날이 밝자, 전각의 너머로부터 탑의 1층을 밝혀오는 여명.
시간에 맞춰 활동을 재개한 5팀은 곧바로 던전으로 향했다.
“이건 뭐, 대놓고···”
천마가 된, 무윤의 개인 연무장.
김신은 던전의 입구를 본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먼저 솟아올랐다.
‘만약 무윤이 보스라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를 잡고 나오는 아티펙트가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다.
“자 일단, 모두 장비 꺼내.”
“네!”
일사불란하게 전투준비를 끝마친 5팀의 가장 앞에선 김신이 먼저 던전에 발을 들였다.
꿀렁-
처음 발을 들일 때와는 전혀 다른 공간.
흐르는 공기가 농밀한 마나 때문에 끈적하게 느껴진다.
김신은 마나가 농밀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반대편 허리에 꽂혀있는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마법은 사용되는 마나의 양의 비례해 더욱 강력해진다.
블라이어의 기억을 통해 얻은 지식.
농밀한 마나를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몸을 매개로 하여 변환하고, 수인을 통해 원하는 기적을 사용한다.
농밀한 마나의 위력에 더욱 강해진 버프를 팀원들에게 걸어주자, 셋 다 비슷한 반응을 내비쳤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대단한데?”
긴 복도의 끝에 5팀을 마주한 것은 연무장 중앙에 앉아있는 넝마 차림의 보스.
김신이 연무장에 발을 한 걸음 내딛자, 보스가 몸을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스윽-
무술을 하는 사람이 입을 법한 무복에 오른팔이 없는지, 오른쪽 소매가 바람에 휘날린다.
여기저기가 찢긴 너덜너덜한 무복의 사이사이로 흉하게 뜯겨져나간 복부의 살점과 뼈만 남은 오른쪽 다리.
비틀거리는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일어선 1층의 보스는 마치, 영화 속 심한 공격을 당한 좀비와도 같은 생김새의 모습이었다.
-내가 모든 것을 끝내겠다.
듣기 거북한 바람 빠진 쇳소리.
김신은 보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무윤.”
그의 정체가 천마라는 것을.
2.
무윤은 불편해 보이는 몸 상태와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가장 앞에 있던 김신을 향해 돌진했다.
부웅!
김신을 향해 묵빛의 내공이 담긴 왼손으로 짧게 끊어치는 무윤의 일격.
파앙!
가벼운 주먹질이었지만, 공기를 터트리는 소리를 낼 정도로 강력했다.
‘뼈만 남은 주먹에 몸도 멀쩡하지 않은데 저런 파괴력과 속도라니!’
무윤의 몸이 멀쩡했더라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단 일격도 막지 못하고 절명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무윤은 본 실력이 아니고, 김신은 화경의 상태.
스윽-
버프와 특성, 내공을 운용하여 엄청나게 빨라진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맹렬하게 질러오는 무윤의 왼손을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휘감아 떨쳐냈다.
물러서는 무윤과 거대한 방패를 들어 김신의 앞을 채우는 강한우.
온몸에 불길을 일으키며, 강한우의 뒤를 받치는 천명화.
지팡이를 꺼내든 김신과 헤르탈의 팔찌에서 마나를 끌어내는 송인아는 가장 뒤에서 나란히 서서, 무윤을 향해 이능력 공격을 쏟아낼 준비를 끝마쳤다.
-내가 모든 것을 끝내겠다.
뒤로 물러서서 이쪽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섬뜩한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무윤의 모습에 김신은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송인아, 천명화. 모두 마나 아끼지 말고, 스킬 쏟아부어.”
“네!”
두 사람의 답변과 동시에 수인을 맺는 김신.
파앗!
급격한 마나의 흐름에 이상을 감지한 무윤이 달려들었지만, 경험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강한우의 방패는 무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부웅! 콰앙!
타이밍에 맞추어 마나를 끌어내자, 방패 앞을 가득 채우며 솟아오르는 가시.
키기깅!
강한우의 방패에 닿은 무윤의 육체에서 마치,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친 것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래서 이능력이 필요하다 했었구나.’
마치, 호신강기를 두른 것처럼 단단한 무윤의 뼈와 피부.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 강한우와 무윤의 한 합의 공방이 끝난 순간, 김신을 비롯한 팀원들의 스킬이 무윤을 향해 쏟아졌다.
“파이어 버스트.”
“인페르노.”
“무형의 창.”
거대한 화염의 구체와 맹렬하게 날아가는 화염의 창, 그 뒤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는 무형의 창까지.
콰아아앙! 퍼엉! 콰아앙!
연무장의 바닥을 움푹 팰 정도로 강력한 마법과 이능력의 향연.
쿠구구구─
파괴의 후폭풍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가 모든 것을 끝내겠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무윤의 모습이었다.
3.
처음과 다르게 격양된 어투로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강한우에게 달려드는 무윤.
탓!
그는 처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강한우에게 달려갔다.
콰앙!
대충 듣기로도 한층 더 강해진 위력에 강한우의 신음이 새어나왔다.
“크윽!”
김신은 그 이상한 모습에 곧바로 마법을 재차 준비하며 송인아에게 물었다.
“인아야. 보스가 대체 왜 저래?”
분명 이능력에 취약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위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자연스레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려 할 때.
옆에 서 있던 송인아가 말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난 듯이 김신을 향해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화난 거로 봐선 공격은 적중한 게 틀림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곧 알게 될 거라는 이야기야.”
송인아의 말과 동시에 또다시 한차례 맞부딪치는 강한우와 무윤.
콰앙!
처음과 다르게 무윤의 공격을 받은 강한우가 한 걸음 뒤로 밀렸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푸욱!
처음의 강한우의 공격이 튕긴 것과 다르게 이번 공격은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힌 것.
‘정말 호신강기였나?’
아직 김신의 수준에서 능숙하게 만들어 낼 수 없는 강기(罡氣).
이능력에 약하다는 것이 이능력으로 강기를 깨부순다는 이야기였을 줄이야.
‘인원이 적어서 천만다행이야.’
참가한 인원에 비례해서 강해지는 보스의 특성상 4명이라는 적은 인원이었기에 이토록 쉽게 강기를 부술 수 있었을 거다.
‘이러니, 이 방법을 알아내기까지 많은 헌터가 죽었던 거겠지.’
물리적 타격이 거의 통용되지 않는 금강불괴.
김신은 무윤의 단단한 방패가 깨진 걸 확인한 순간, 지팡이를 집어넣고 검을 꺼내 들었다.
“한우 씨 물러서요. 이제부턴 제가 상대할 테니까.”
***
김신의 스승과도 같은 무윤.
그는 김신에게 직접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김신은 무윤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믿어주고 따랐던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싸운 남자.’
비록 정파 사람들의 기억에 그는 사악한 천마였겠지만, 김신만큼은 그를 다른 어떤 인물보다 더 좋아했다.
‘그러니, 직접 상대하고 싶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윤의 모습은 천마의 피 묻은 무복에서 본 기억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았다.
괴수들에게 온몸이 찢기던 그의 모습.
고통받는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처절했기에.
구하지 못해 울부짖었고.
지키지 못해 울부짖었다.
-내가 모든 것을 끝내겠다.
무윤이 어째서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걸 해주면 돼.’
생의 마지막 기억만을 안고 탑에 갇혀 헌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무윤에게 지금 줄 수 있는 것은 잠깐의 안식일 뿐일 테지만.
스릉-
김신은 그것이라도 그에게 주고 싶었다.
우웅-
내공의 흐름과 동시에 검 끝에서 불꽃처럼 피어나는 묵빛의 검기.
그 모습을 노려보던 무윤의 눈빛은 어째서인지 조금 흔들린 것만 같았다.
타앗!
검을 들어, 벤다.
마주 오는 무윤의 주먹을 가볍게 막아낸 김신.
키잉!
생각보다 묵직한 그의 공격이었지만, 막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뒤로 튕겨 나간 무윤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는다.
유(柔).
부드럽게 흘려낸다.
무윤의 기억으로 배운 검술로 그의 공격을 흘려낸다.
주먹의 연격(聯擊).
매섭게 몰아치는 무윤의 공격 하나하나 무위로 돌린다.
쾌(快).
빠르게 몰아친다.
물러선 그의 몸을 향해 빠르게 내지르는 김신의 검.
스윽! 서걱!
김신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무윤이 뼈가 앙상한 왼팔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파고든 김신의 검격은 그의 수비를 파훼하고 왼손을 날려버렸다.
마지막으로 패(覇).
모든 것을 부순다.
내공을 가득 담은 검을 뒤로 끌어당긴 김신.
우우웅-
터질 듯한 내공에 검음을 내뿜으며 진동하는 검을 힘껏 당긴 김신은 달려오는 무윤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하늘을 꿰뚫어 열어젖힌다.
천마신공 제一식, 개벽(開闢)
콰아아아앙!
묵빛의 검기가 달려오는 그의 몸을 감싼 순간.
───!
무윤의 얼굴에서 미약한 미소가 맺히며,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순간 든 생각은 토벌 자체가 그에게 짧은 해방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쿠우웅-
공격의 여파가 남아 연무장이 웅웅 떨린다.
스으윽-
먼지가 흩날리는 연무장에서 무윤이 있던 자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김신.
‘부디 성불하기를.’
시간이 지나, 먼지가 가라앉은 연무장의 사이로 보인 것은 두 개의 아티펙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