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1.
아르제니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헤매는 숲.
그 숲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세계수에서 살아가는 이종족인 엘프족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엘하임이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재앙이 다가왔다.”
천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온 그의 눈에 보이는 비참한 미래.
아르제니아의 모든 생명체가 절멸하는 그미래를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다.
“아아, 막을 수가 없어 더욱 비참하도다.”
아르제니아 대륙을 마왕의 손에서 구한 용사조차도 막지 못할 비극.
신의 장난과도 같은 그 탑의 존재가 도래한 순간, 그는 다른 세계의 구원자를 위한 편지를 새겼다.
-알지 못하는 이를 위하여, 예언자 엘하임이 이 석판을 남긴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석판.
그중 가장 첫 번째인 이 석판의 내용은.
탑의 끝을 보지 못하면 큰 재앙이 닥치리니.
예언의 시작이었다.
***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감정 했지만, 감정 한 티를 낼 수 없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
‘탑에 관한 정보가 적혀있는 예언서라니.’
탑의 끝을 보지 못하면 큰 재앙이 닥친다.
이 말은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면 탑을 등반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필 구원회의 문제가 겹쳐있는 때에 이런 아티펙트를 얻다니.’
기억을 읽는 감정이 아니라면 정확한 정보를 이렇게 빨리 확인할 수는 없었을 거다.
감정을 통해 아티펙트에서 정보를 얻는다.
정확한 감정을 하지 못하면 아티펙트 자체에 적힌 정보를 알아보지 못하니, 예언이라는 귀중한 정보를 날려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석판을 모아야 했다.
‘탑에 올라 정보를 모아야겠어.’
탑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아낸 직후.
석판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김신에게 한유성이 걱정을 담아 말했다.
“자네, 괜찮나?”
“아, 아. 예.”
석판에서 눈을 떼고 한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린 김신.
“감정이 어렵네요.”
“역시, 그런가보구만. 너무 애쓰지 말게. 안되면 다른 이에게 감정을 맡기면 되니까 말이야.”
석판을 건네받은 한유성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김신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조만간 길드 단위로 탑 등반이 예정되어 있네.”
“아. 탑에서 이뤄지는 길드레이드 말입니까?”
“그래.”
탑에서 열리는 길드레이드.
경기도와 강원도지역의 괴수를 토벌하는 것이 아닌, 아티펙트를 얻기 위한 토벌.
보통 탑에서 나오는 괴수들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들보다 강력한 편이고, 그 장소또한 가지각색이기에 파티를 맺어 탑을 오른다.
김신 또한 유망주 시절 탑에 입장하긴 했었으나, 등반은 하지 못했었다.
곽명한의 견제 때문에.
아티펙트를 얻어 강해지며, 탑의 비밀에 대해 알아본다.
마침, 신원확인 결과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남는 시간 동안 정보를 얻을 겸 먼저 탑에 입장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저도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김신의 말에 반색하며 되묻는 한유성.
“그래? 지금 자네는 몇 층까지 올랐지?”
“아직 1층입니다.”
“그럼 길드레이드가 열리는 8층까지는 올라와야 하겠구만.”
“네.”
“구원회의 문제도 있으니, 너무 빠르게 오를 필요는 없네. 그러니, 차근차근 준비해서 올라오게.”
나름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 탑 등반이다.
김신은 한유성의 말처럼 급하게 오를 생각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신원확인이 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김신은 그길로 길드장실에서 나와 팀 대기실로 돌아갔다.
하루 만에 팀 대기실로 돌아오니, 팀원들이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줬다.
“팀장님, 보고 싶었습니다.”
“고작 하루인데?”
달려드는 천명화와 옆에 찰싹 붙은 송인아.
그리고 멀찍이 서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강한우까지.
김신은 팀원들을 훑어보며, 간만에 팀 단위로 움직일 일이 생긴 것을 알렸다.
“우리 5팀도 탑 등반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2.
탑.
추정 층수 26층의 불가사의(不可思議).
태평양 한복판에 생긴 그 끝을 알 수 없는 탑은 퍼스트 게이트와 동시에 생겼다.
탑 내부의 넓이는 작게는 하나의 도시부터, 크게는 나라의 크기까지.
내부에 사람은 없다.
누군가 살았었던 것 같은 흔적은 남았으나, 괴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런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탑에 힘을 써서 올랐다.
값비싼 아티펙트를 얻는다는 목적으로.
층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출몰하는 괴수 또한 다르다.
‘하지만, 내게 탑은 조금 다른 의미로 올라야 할 장소야.’
아티펙트 자체의 가치도 놓칠 수는 없지만, 그에 담긴 기억을 읽어 비밀을 파헤치는 것.
김신이 탑에 대한 대략의 정보를 떠올리던 때, 옆에서 김신과 천명화의 대화를 듣던 강한우가 다가오며 중요한 질문을 했다.
“그러면 준비는 어떻게 합니까?”
강한우와 천명화는 팀에 소속되지 못해서 자신과 똑같이 탑에 오르는 것이 처음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질문.
‘그러게,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탑 등반에 필요한 몇 가지의 정보와 층마다 다른 특색이 있었기에 준비 또한 다 다르게 해야 한다.
하지만, 5팀이 오를 것은 가장 첫 번째 층인 1층.
김신 또한 알고 있는 정보가 적었기에 강한우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우선, 많은 사람이 거쳐 갔던 1층이니까, 앞서 등반했던 사람들의 정보를 토대로 준비를 해야겠죠.”
“그렇다는 건...”
앞서간 이의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를 한다.
물론, 한설이나 한유성에게 직접 묻는 방법도 있지만, 5팀은 이미 팀원 중에 탑을 한차례 등반을 했던 사람이 있다.
“있는 정보를 써먹지 않으면 바보 아니겠어?”
그 말과 함께 송인아를 쳐다보자, 송인아가 김신을 마주 보며 눈을 깜박였다.
“나, 나?!”
“그래 너.”
탑의 6층까지의 공략을 아는 송인아.
그녀의 정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탑을 입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탑을 생각하며 ‘전송’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된다.
반대로 탑에서 다시 돌아오는 방법 또한 똑같다.
단, 전송이 불가능한 지역이 딱 한군데 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보스가 출몰하는 던전이다.
“준비 끝.”
앞서 탑을 등반했던 송인아의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를 끝마친 5팀.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이 없구나?”
“대형길드가 8층까지 진입해서 7층까지는 괴수가 거의 괴멸 수준으로 토벌된 상태라서 그래.”
보스와 다르게 괴수는 토벌되는 순간, 탑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던전’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있는 보스는 누군가 잡더라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렇기에 탑에서 나오는 아티펙트가 지속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1층의 넓이는 그리 넓지 않다.
행정구역상 하나의 동(洞)정도.
넉넉하게 이틀 치의 식량과 물.
간단한 치유용 아티펙트와 마석을 챙긴 5팀은 팀 대기실에 모여 짧게 말했다.
“전송.”
순식간에 흐릿하게 사라지는 팀원의 모습.
김신은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이질적인 느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3.
고풍스러운 책상, 조용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지부장의 보고를 받는 남자.
“아티펙트의 소유자를 찾았습니다.”
구원회의 회장은 모처럼 듣기 좋은 보고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좋군.”
예상했던 것처럼 수호길드의 한 길드원에 손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찾고 있는 아티펙트.
회장은 세 가지의 아티펙트를 소유한 상태로 탑의 9층에 올라 그곳에 있는 마지막 아티펙트까지 손에 넣을 생각에 짓고 있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탑 등반의 비밀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다.
남들보다 빠르게 알아낸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앙이 닥칠 세상을 구하는 것.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던 회장은 이어지는 보고에 웃고 있던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획을 실현하기에 앞서 잠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지?”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는 목표가 탑에 입장했기 때문입니다.”
탑은 그 층별로 넓이가 전부 다르다.
그러니, 그들이 있는 장소가 아직 어디인지 모르는 이상 찾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물론, 해당 층의 보스를 쓰러트려야 다음 층으로 갈 수 있기에 결국은 보스가 있는 던전으로 올 것이 분명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별로 좋진 않지만, 어쩔 수 없군.”
탐탁지는 않지만, 탑을 오르는 각성자는 엄연히 소수이기에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회의 존재가 밝혀질 위험이 있다.
가볍게 혀를 찬 회장의 고민이 끝날 즈음.
보고하던 지부장이 그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만드는 말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정보담당 조직원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어디서 연락이 끊겼지?”
“통화목록을 확인한 결과, 발신자 번호제한으로 온 전화를 마지막으로 끊겼습니다.”
회의 정보담당은 그가 가진 특성으로 조직원의 정보누출을 막고 금제를 거는 작업을 주로 하기에 아는 정보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좋은 일 뒤에 들린 부정적인 소식이었지만, 회장은 감정을 죽인 채 지부장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찾아내도록.”
“예.”
정보담당은 스스로에게도 금제를 걸었으니, 별다른 정보가 새어나가진 않을 거다.
회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
탑의 1층 배경은 높은 산 위에 지어진 거대한 장원(莊園).
그중에서도 탑의 1층 시작지점은 산의 초입에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송인아를 뺀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팀이 없었기에 탑을 등반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세 사람은 인적 없는 마을의 한 초가집에서 6층에 있을 송인아가 오기를 기다렸고, 어느새 기다린 지 2시간이 흘렀다.
“팀장님. 저기 인아가 옵니다.”
멀리서 보이는 송인아의 모습에 들뜬 목소리로 김신에게 말하는 천명화.
김신은 그말에 고개를 돌렸고, 바라본 곳에는 장비를 차려입은 송인아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와!”
탑의 층을 오갈 수 있는 것은 단 한 곳.
바로 보스가 있는 던전의 입구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교적 넓이가 작은 1층이었기에 송인아는 빠르게 팀에 합류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녀가 도착하자 김신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출발해볼까?”
탑의 공간 내부에도 엄연히 밤낮이 존재한다.
송인아가 오는 것을 기다린 2시간과 이동을 위해 소모한 1시간.
어느덧 해가 조금씩 기울어 갈 쯤, 5팀은 넓은 전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탑의 1층.
노을의 정취가 섞인 장원의 전각을 멀리서 보던 김신은 문뜩 이 광경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탑을 등반한 적도 없고, 1층의 시작지점에서 다시 돌아왔었다.
‘너무 익숙해...’
어느새 어둠에 가려진 전각.
김신은 노을 속에 비친 전각이 아닌, 달빛에 비친 전각의 풍경을 본 순간 이 장소가 왜 익숙한지 깨달았다.
“무윤의 거처...”
천마신교의 본단.
탑의 1층 배경은 바로 그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