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57화 (57/116)

《57화》

1.

김신은 어떻게든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분골착근의 위력을 보고,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깨달았다.

참, 지독한 무공이라고.

장장 30분간의 길고 긴 취조.

그 끝에 얻은 정보는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뭐? 세상을 구원해?”

김신의 말에 녹초가 된 저놈의 증언으로는 세상을 구원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라 했다.

그 이름은 바로, 구원회(救援會).

특수한 아티펙트를 모아, 인류를 구원할 사도를 만든다는 계획을 바탕으로 세워진 조직이라고 했다.

“그 특수한 아티펙트는 뭔데.”

“나도 아는 게 없다...”

취조한 놈의 임무는 조직의 존재를 은폐하는 역할.

들은 바로 저 조직은 점조직 같은 형식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윗선에서 아래로.

중간관리자를 두고, 각기 다른 임무를 가진 조직원을 배치해 관리한다.

“니들에게 구원이 뭐야?”

질문에 대한 답은 흡사 사이비 종교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그분에게 구원받는다.”

“그분?”

대상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니,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모른 채 그저 신앙적인 수준의 믿음으로 생각하는 존재.

김신은 그 정보를 건너뛰고, 얻은 정보를 취합하다가 어이가 없어서 말을 내뱉었다.

“사람을 죽이면서 구원?”

위험에 빠진 대상을 구한다는 뜻의 구원이지만, 그 구원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위험에 빠트린 걸 봐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엔 전혀 공감이 안 됐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백중현마저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개소리네.”

맞다, 개소리다.

실없는 소리는 더 듣고 싶지 않았기에 김신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앉아있는 놈에게 물었다.

“됐고, 본거지가 어디냐.”

“본거지...”

김신의 말에 갑자기 똑같은 어조로 같은 단어를 되뇌는 놈.

“본거지, 본거지, 본거지...”

그 모습에 김신이 묘한 위화감을 느낄 무렵, 옆에 있던 백중현이 한 박자 빠르게 말했다.

“어, 저거 이상한데? 눈깔이...”

적의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보이기 시작하며, 입에서 개거품을 문다.

“본거지, 본거지, 본거지...말하면 안 돼, 말하면 안 돼, 말하면 안 돼...”

반복적인 중얼거림.

무언가를 격렬하게 부정하는 모습을 본 순간, 떠오른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금제까지 걸어놨어?!”

상대의 심층심리에 간섭하여 특정한 단어나 핵심정보를 말하는 걸 막아놓는 행동인 금제.

트리거가 되는 단어로 인해 발동되는 순간, 상대는 백치가 돼버린다.

특수한 아티펙트, 혹은 관련된 능력의 이능력자가 할 수 있는 그 악마 같은 방법.

그것이 김신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안돼! 안돼! 안돼! 말하면 안─”

소름 끼칠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

멀쩡했던 놈은 똑같은 단어만 되뇌더니 어느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 혼절했다.

“...”

그 모습에 김신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놈들.”

***

입가에 침을 줄줄 흘리는 상태로 기절해버린 놈을 마무리하고 돌아선 김신은 들은 정보 몇 가지를 토대로 새로운 정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첫째. 저들이 노리는 아티펙트 중 하나가 신의가 가진 회복의 녹옥이었다는 게 확실해졌고. 그것과 비슷한 아티펙트가 모이면 특수한 힘을 낸다는 것.

둘째. 적은 아마 모두 본거지의 위치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점.

셋째. 점조직의 형태로 나뉘어 있다는 점.

정보를 나열하고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조직이다.

‘저러니 깊게 파고들어 있어도 찾지 못하는 건가.’

대략적인 취조가 끝나고 돌아갈 채비를 하자, 묶여있던 백중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 맞다.”

“아? 맞다?”

어이없어하는 백중현의 표정.

김신은 그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써? 말아?’

투명화 특성에 은밀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면 눈앞에 개거품을 물고 쓰러진 이놈의 뒤통수를 친 것처럼 자신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널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 진짜! 생각해보겠다며!”

“생각만 해보겠다 했지. 풀어준다고 하진 않았어.”

“...”

백중현의 얼굴을 보니, 해탈한 사람의 그것이다.

“흠...”

곰곰이 생각하는 김신.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2.

포박한 상태 그대로의 백중현을 차에 태운 김신은 곧장 어비스로 향했다.

“야! 풀어주는 거 아니었어?! 진짜 이럴 거야?!”

큰소리로 외치는 백중현의 말을 들은 척하지 않은 채, 도착한 어비스의 앞.

김신은 차를 멈춘 채, 뒷좌석에 있는 백중현을 보며 말했다.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사실 널 풀어주는 게 가장 위험한 거 같아.”

주로 절도에 관한 범죄이긴 하지만 어쨌든 백중현은 김신을 납치하려 했었고, 살기 위해서 의뢰를 했던 의뢰인의 뒤통수를 친 남자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백중현은 자신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야! 그래도 협력했잖아!”

“그거야 네가 살려고 한 짓이었고.”

무덤덤한 답변과 함께 김신이 자리에서 내리자, 뒷좌석에 있는 백중현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한 번만 봐주라. 좀!”

“아니, 그러게 솔잎이나 뜯어먹고 살지.”

쿵!

교도관을 데려오기 위해 차 문을 닫자, 안에서 소리를 질러 웅웅거리는 소리와 발로 차 문을 차며 들리는 쿵쿵소리가 들린다.

‘에휴, 바보.’

아마 백중현도 처음에 자신의 반응을 보며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을 거다.

잠시 백중현을 향해 주던 눈길을 거두고, 곧바로 어비스의 입구로 들어선 김신.

앞에 서 있는 교도관이 다가와 물었다.

“어떤 용무 때문에 오신 겁니까?”

“아, 그게 현상금이 달린 빌런을 잡아서요.”

“그렇습니까?”

몇 가지의 신원확인 절차를 거친 김신은 빌런의 인도를 위해 교도관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기 차 뒷좌석에 묶여있습니다.”

차에 가서 문을 여니, 허공에 묶여있는 두 줄의 포박이 보였다.

“야, 투명화 풀어.”

“...”

스르륵-

포기했는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백중현.

교도관은 그런 백중현의 신원을 확인하더니, 김신을 향해 깊게 인사를 해왔다.

“A급 빌런이라니,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아닙니다.”

현상금에 관한 지급방법을 전해 듣고, 백중현을 떠나보내는 김신은 멍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백중현을 향해 다가가 말했다.

“가끔 생각나면 찾아와서 사식 정도는 넣어줄게.”

***

백중현을 어비스로 보낸 김신은 알아낸 정보를 한유성에게 알려주고 머리카락의 주인을 알아낼 도움을 얻기 위해 길드로 향했다.

강남 대치동에 위치한 길드건물.

평소와 다름없이 건물에 들어가려던 김신은 돌연 소름 끼치는 감각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뭐지?’

소름 돋는 감각의 근원은 변화의 구슬.

피부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피부를 얇게 덮고 있는 비늘 같은 아티펙트의 조각이 닭살이 돋듯 어느 방향을 향해 솟아올라 있는 것이었다.

즉시 그 기묘한 느낌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김신.

‘기분 탓인가?’

평범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김신은 약간 이상한 시선을 받은 것 같았지만, 수호길드의 주변은 항상 붐볐기에 고개를 한 번 털고 팔을 문지르며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언제나 똑같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인천항 소탕 이후, 별다른 사건 사고가 없었기에 조용했던 나날들.

김신은 그 조용했던 분위기를 깰 구원회에 대한 정보를 한유성에게 말했다.

“인천항의 빌런들을 차도살인의 계책으로 이용했던 배후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네.”

김신의 정보에 따라서 당장 길드장회의를 열어야 할 수도 있다.

근심에 찬 표정으로 한유성은 김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해보게.”

“우선···”

구원회라는 이름과 그들의 목적, 그리고 조직의 형태, 마지막으로 그들이 정보의 누출을 막기 위해 행한 방법까지.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한유성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심각하군. 조직원에게 금제를 거는 조직이라...”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한유성.

김신은 구원회의 조직원에 극단적인 행동을 말해주며 말을 이었다.

“그에게 걸린 금제가 발동해서 가장 중요한 본거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니네,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정보를 얻어와 줘서 고맙네. 하마터면 적의 존재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당할 뻔했어.”

그 뒤로 몇 마디의 대화가 더 이어진 후.

김신은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잡았던 조직원들의 머리카락을 한유성에게 건네주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이 머리카락의 주인들에 신원을 찾아주시겠습니까?”

“이건 그들의 머리카락인가?”

“네.”

그들은 빌런이 아니기에 조회해도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김신이 제시한 가장 확실한 정보를 얻을 방법에 대한 한유성의 답은 긍정이었다.

“알겠네. 확인하고 알려주도록 하지.”

3.

몇 가지의 대화가 오간 후,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한유성은 김신에게 무엇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옆에 놓인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는데 깜빡할 뻔했구만.”

“예?”

알 수 없는 형태가 음각으로 새겨진 석판.

한유성은 처음 보는 형태의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힌 그 석판을 김신에게 건넸다.

“탑의 7층에서 얻은 아티펙트인데, 혹시 이런 아티펙트를 본 적 있는가?”

김신이 꽤 능력 있는 감정사였다는 점과 골동품을 즐겨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물어본 것.

김신은 한유성의 생각처럼 처음 보는 아티펙트에 흥미가 동해, 건네받은 아티펙트를 천천히 훑어봤다.

“처음 보는 형태의 아티펙트네요?”

“그렇지?”

무공서처럼 종이로 만들어진 서적도 아니고, 방패나 무기와 같은 종류의 아티펙트도 아니다.

‘진짜 말 그대로 석판이네.’

규칙적으로 적힌 형태가 한 줄씩 띄워진 상태로 음각되어 있다.

그 형태를 살펴보니, 문자로 추정되었다.

‘혹시 기억이 담겨 있으려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신은 한유성에게 물었다.

“감정은 해보셨습니까?”

“해봤지만, 되지는 않더군. 꽤 실력 있는 감정사였네만, 결국 감정하지 못했어.”

“그렇군요...”

감정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골동품이라는 이야기다.

‘이건 내 전문 분야인데.’

김신은 한유성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제가 한 번 감정 해봐도 되겠습니까?”

김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유성.

“안 그래도 부탁을 하려고 했었네, 혹시나 해서 말이야.”

한유성은 사실 김신에게 저 석판을 감정할 생각으로 건네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 적이 있냐는 의미에서 물어본 것일 뿐.

‘아무리 그래도 골동품을 감정하기는 어렵겠지.’

한유성이 석판을 잡고 지긋이 바라보는 김신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석판을 쥐고 있는 김신은 눈앞에 뜨는 문구를 바라봤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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