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56화 (56/116)

《56화》

1.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적을 끄집어내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이 의문에서 시작한 고민의 답은 ‘아주 약간의 진실과 협박’이었다.

“잘 들어. 그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의뢰 대상이 자기를 데려가면 죽임을 당할 거라 말하면서 더 큰돈이 될 정보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니, 장소는 내가 정하겠다.

이렇게 말하라고 설명하자, 이야기를 들은 백중현은 고개를 꺾으며 되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화가 다시 올 거야. 그리고 그렇게 다시 전화가 오면 만나는 장소를 내가 말해주는 곳으로 바꿔.”

김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백중현은 그에게 물었다.

“근데 이 일을 끝나면 너는 날 어떻게 할 거냐?”

“살려는 줄게.”

“그것만이면 나도 네 말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오, 조건을 거는 거야?”

“조건이 아니라 살 궁리를 하는 거야.”

“태세전환이 빠르구나?”

역시, 눈치와 상황판단이 빠르다.

그리고, 상황이 역전되었음에도 자신이 가진 패를 잘 활용해서 자신의 실속을 챙긴다.

김신은 약간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일단 말해봐. 뭘 원하지?”

“일이 잘 끝나면, 풀어줘.”

“내가 왜?”

“만약, 풀어주겠다고 말하면 철저하게 협력해주지.”

“오, 그래?”

김신의 웃음을 보고 백중현이 몸을 움찔거렸다.

‘웃긴 놈이네.’

잠시 백중현을 노려보던 김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일이 잘 끝나면 널 어떻게 처분할지 생각해볼게.”

“정말인가?”

“그래.”

이 기회에 코를 꿰서 다른 방식으로 써먹고 싶을 정도로 백중현은 눈치가 빠른 스타일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 살겠다고 의뢰자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그랬다는 것이었지만.

‘써먹을 수 있으면 써먹고, 아니면 보내버리고.’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거래가 성사됐다고 생각한 백중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신이 한 원래의 질문에 대해서 되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오라고 말하면 되냐?”

김신은 백중현의 말에 잠시 지도를 확인하며 고민했다.

‘어디로 정해야 할까?’

확실하게 입막음을 해야 하는 만큼, 이번에는 직접 올 확률이 매우 높다.

적의 입장에서 백중현이 알려준 대로 말한다면 오만가지 생각이 들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마 전화를 한 사람은 말단일 가능성이 높다.

‘실패에 엄격한 조직.’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와야 할 것이다.

종합적인 판단의 근거로 따져봤을 땐 조용히 빠져나와야 할 일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서울에서 가까운 위치가 좋다고 생각된다.

‘제압할 수 있으면 제압하고, 아니면 확인만 하고 뺀다.’

목표를 정한 김신은 입을 열었다.

“판교로 오라고 해.”

김신은 그 장소로 판교를 선택했다.

***

고용한 빌런인 백중현에게 뒤통수를 맞은 회(會)의 직원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콰직!

두꺼운 원목 테이블을 가볍게 부수고 지나가는 그의 주먹.

A급 각성자인 그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개 같은 빌런 새끼!”

쓸만한 능력의 빌런이라 꽤 비싼 값으로 고용했지만, 사로잡은 헌터의 말에 혹한 탓에 계획을 그르쳤다.

“대체 어떤 놈이지...”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뒤를 캐는 의문의 헌터.

그는 아슬아슬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내가 어비스에 갇힌 조직원을 심문하지 않았더라면, 들켰을 거야.’

미리 알아서 제거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추가적인 정보누출은 막았으니까.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그 헌터의 인상착의를 못 들었다는 건데...’

심문한 조직원의 말로는 어두운 방 안에서 고문을 당했기에 정확하게 누군지 파악이 안 된다고 했었다.

‘어쨌든 추가누출은 막았어.’

정보의 누출을 꺼리는 조직의 특성상, 그가 받은 정보관리라는 임무는 철저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가 가진 특성인 [세뇌]를 통해 쉽게 비밀을 지키는 것에 성공했지만...

‘더이상 파고들게 둬서는 안 돼.’

그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그 헌터를 제거해야만 했다.

그가 소속된 팀의 팀원은 모두 A급 각성자. 그는 옆에 있던 팀원에게 말했다.

“회의 뒤를 캐는 헌터가 나타났다.”

“누군데?”

“알아보기 위해서 빌런을 고용했는데, 그 빌런이 그 헌터에게 우리가 할 행동을 이미 들어버렸어.”

그의 이야기를 들은 팀원은 꽤 감탄한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눈치가 빠르군. 확실히 제거하는 게 맞겠어.”

“문제는 목표가 판교로 접선 장소를 바꿨다는 거지.”

“실패하면 위험할 텐데?”

실패한다면 회의 존재가 노출될 위험이 크다.

“어차피 정보가 새어나가도 나는 죽는다. 그럴 바에 위험한 게 나아.”

살기 위해서라면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두 명의 팀원을 대동하고, 판교로 향했다.

2.

곧바로 백중현과 함께 판교로 향한 김신은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오이도에 자리를 잡은 빌런들이 오는 방향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

김신은 높은 건물 위에서 똘망이에게 달린 캠을 통해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괴수는 어떻게 길들인 거지?”

“잘.”

“그러고 보니, 내 특성은 어떻게 꿰뚫어 본 거냐?”

“잘.”

“그래 너 잘났다.”

“알고 있어.”

“...”

도망칠 길이 없다는 걸 잘 아는지, 옆에서 조잘거리기만 하는 백중현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기다리기를 30분.

“도착한 것 같네.”

고속도로를 통해 달려오는 차 한 대가 보인다.

김신은 백중현을 적당한 구석에 다시 묶은 다음 변화의 구슬을 활성화시켰다.

“좀 있다 보자.”

스르륵.

빠르게 투명해지며 허공으로 모습을 감춘 김신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뒤에서 백중현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특성이 겹칠 수도 있나?”

***

똘망이의 캠으로 살펴본 결과, 적은 3명이었다.

‘그럼 그렇지, 혼자 올 리가 없지.’

한 명은 끌고 온 차에서 대기하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한 명의 뒤를 은밀하게 따라오며 미리 약속된 장소로 천천히 다가왔다.

‘기감으로 봐선 대충 백중현의 수준인가.’

A급, 3명.

한 명이 차를 지키고 있으니, 사실상 두 명이나 다름없다.

‘할만하겠네.’

왼팔에 착용한 팔찌를 슬며시 어루만진 김신은 우선 조용히 수인을 맺어 마법을 사용했다.

‘사일런스.’

테일론의 팔찌에 마법을 걸어 소음을 없앤 후.

앞에서 걸어오는 놈이 아닌, 그 뒤에서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따라오는 다른 놈을 향해 손을 들어 조준했다.

스윽-

투사체의 소음을 없앤다.

숨소리조차 흘리지 않는다.

암살이란 그런 거니까.

“...”

김신은 적정 사거리에 도달하자, 망설임 없이 적을 향해 투사체를 발사했다.

───!

아주 미약한 공기의 떨림.

김신은 테일론의 팔찌를 발사한 순간, 놀랐다.

‘투사체가 보이지 않아?’

변화의 구슬이 투사체에도 적용이 되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픽! 털썩.

형체도 소리도 없이 날아간 투사체가 적의 이마 정중앙에 구멍을 뚫고, 피격음과 동시에 적이 맥없이 쓰러진다.

“...!”

아무런 기척도 없이 즉사한 동료의 모습을 본 순간, 앞에 있던 놈은 몸을 움찔거리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한눈을 판 순간 끝낸다.

김신은 눈앞에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은밀하지만 빠르게.

땅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적의 배에 가볍게 일으킨 내공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발경(發勁).’

“...커헉!”

맥없이 쓰러지는 나머지 하나.

간단하게 두 놈을 정리한 김신은 테일론의 아티펙트의 성능에 대해 감탄했다.

‘A급 헌터의 기감으로도 감지가 불가능하다니.’

김신은 투사체를 회수하며, 그들이 가져온 물건을 살펴봤다.

‘진짜 돈을 가져왔네.’

돈을 주고 기습을 하려던 건지, 아니면 대놓고 기습을 하려던 건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돈가방을 들고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빌런들은 정말로 돈가방을 들고 왔다.

‘우선 이건 여기다가 내려놓고.’

다른 건물의 한 귀퉁이에서 차 옆에 있는 빌런을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똘망이.

김신은 그놈을 생포하기 위해서 소리 없이 차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적은 기습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건지, 차에 기대서서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

빠르고 간결하게.

탓!

자리를 박차고 나간 김신이 손날을 들어, 뒷목을 가격했다.

“...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적.

‘성공했다.’

김신은 그대로 놈을 포박한 채, 백중현이 있는 장소로 끌고 갔다.

3.

다시 돌아온 건물에는 백중현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성공했나보군.”

“세 명밖에 안 왔더라고.”

“보통은 ‘세 명이나 왔다’, 라고 하지 않나?”

“아티펙트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할만했어.”

고개를 돌려 조용히 적들을 바라보던 백중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놈들은 어째 빌런같이 보이지는 않네.”

신박한 헛소리에 고개를 돌려 백중현을 바라보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

김신은 백중현이 구시렁거리는 것을 한 귀로 흘리며 빌런명부를 조회해봤다.

-정보 없음.

철저히 존재를 감추는 놈들답게 별다른 정보가 뜨지 않는다.

예상했기에 실망스럽지 않았다.

김신은 쓰러진 놈을 일으켜 세우며, 조용 말했다.

“자, 그럼 깨워볼까.”

우선 몸을 뒤져, 자결용 아티펙트를 빼앗은 김신은 놈의 얼굴을 툭툭, 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백중현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 혹시 그거 쓸 거냐?”

“뭐?”

“치가 떨리는 고문 말이야.”

“아, 그거?”

김신이 답하려는 순간,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는 적.

김신은 백중현이 아닌, 눈앞에 있는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써야지.”

***

깨진 유리창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아 꽤 어두운 실내의 분위기.

김신은 그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할 검은 옷을 입고 조용히 놈을 내려다봤다.

눈앞에 있는 적은 생각보다 더 치밀하고,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러니, 손속에 자비를 두면 안 된다.

김신이 짧게 마음을 다잡는 사이.

눈을 뜬 놈은 가장 먼저 김신에게 말했다.

“돈, 돈을 받았으면서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거냐!”

전화한 장본인이 아니었는지, 김신을 백중현으로 착각한 상대.

김신은 고개를 흔들며 그에게 현 상황을 설명해줬다.

“저 빌런도 나한테 이용당한 거야.”

“그, 그러면...”

눈동자를 떠는 적에게 김신은 확실한 답을 줬다.

“네놈들을 쫓고 있던 헌터가 나라고.”

“...!”

상황판단이 끝난 적은 곧바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김신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며, 점점 어두워지는 안색의 녀석에게 말했다.

“없어. 네가 찾는 그거. 내가 이미 빼놨거든.”

“그, 그게 무슨···”

김신이 반지를 들어 올리자,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그의 모습에 적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이제, 너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기 전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는 이야기야.”

“...고문이냐?”

“네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

“...”

말없이 쳐다보는 적을 향해 김신이 물었다.

“대체 니들 뭐 하는 놈들이야?”

“···말할 거 같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적.

모습을 보면 이것이 비꼬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를 만큼 이상하다.

김신은 그런 적에게 무덤덤하게 말했다.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들 건데.”

김신은 말을 하자마자, 양팔이 고정된 상태이기에 움직일 수 없는 적의 뒤로 돌아가 가볍게 내공을 담아 양팔과 양다리의 혈도를 짚었다.

꾸드득-

혈도를 짚음과 동시에 시작되는 근골의 움직임.

“...!”

시작은 언제나 그러하듯 대상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정도였지만, 그 느낌은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끄아아악!”

“말했잖아, 말하도록 만들 거라고.”

짚은 혈도를 다시 푼 김신은 숨을 헐떡이는 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니들 뭐 하는 놈들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