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55화 (55/116)

《55화》

1.

이형찬의 정보를 바탕으로 찾아낸 시술 장소의 위치는 관악산.

그는 서울시 관악구 뒤편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의 지하에 그 시술 장소가 있다고 했다.

‘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죽여 없애버린 걸 생각해보면 사실상 이형찬이 시술을 받은 장소에 가도 그렇다 할 정보를 얻기 힘들 수 있어.’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우선은 들러봐야겠지.

김신은 곧바로 집에 들러 장비를 챙겨 똘망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간만에 바깥공기를 맡는 녀석이 기분 좋다는 의미의 울음소리를 냈다.

-삐익~!

“오늘도 잘 부탁한다.”

강동구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만큼,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한 관악산.

김신은 왼팔에 캠을 착용하며, 변화의 구슬이 지닌 어마어마한 범용성을 깨달았다.

‘몸에 착용 된 모든 물체를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의지에 반응해 원할 때마다 덮고 있는 비늘 같은 조각이 벗겨지며 착용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아티펙트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김신은 날이 밝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스르륵-

마나를 끌어 올려 변화의 구슬을 사용하자, 허공으로 사라지는 김신의 모습.

몸을 숨긴 김신은 하늘에 똘망이를 풀어놓고, 관악산 너머의 아파트단지를 향해 달려갔다.

***

산에 둘러싸인 아파트단지의 모습.

김신은 단지 내부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서서 천천히 주변을 훑어봤다.

‘서울과 안산의 경계지점이라 이목을 피해갈 수 있었구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괴수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 장소.

정체 모를 조직은 헌터들의 정기적인 길드레이드가 어느 정도까지 괴수들을 물리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사람이 보이진 않고.’

똘망이를 보내 보이지 않는 뒤편까지 살펴봤지만, 일단 외부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근데, 뭔가 미묘하게 걸쩍지근해.’

수색에 앞서 잠시 고민을 하는 김신.

적이 보이지는 않지만, 없다고 장담할 순 없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적들도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의 존재가 이형찬의 입을 통해 알려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니까.

적은 정보를 알고 있는 조직원을 죽여서 존재가 발각되는 것을 철저히 숨길 정도로 치밀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뒤를 쫓을 가능성이 있는 헌터.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

‘최소한 함정 하나쯤은 파놓을 것 같은데.’

결론은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고민이 끝난 김신은 곧바로 기감을 넓게 퍼트렸다.

감각이 확대되며 시야가 넓어진 듯한 느낌이 느껴진다.

“후-.”

김신은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채, 천천히 아파트단지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2.

적막에 싸인 아파트단지의 내부.

긴 시간 동안 관리를 받지 못한 탓에 식물들이 단지 내부를 뒤덮고 있는 이 풍경은 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스윽-

아주 희미한 소리.

김신은 귀담아듣지 않으면 듣기조차 힘든 미약한 발소리만을 남기며 아파트단지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ㄷ자 형식의 배치.

총 다섯 동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중앙에 있는 넓은 부지의 주차장을 향해 입구를 놓고 있었다.

‘흠...’

지상 주차장만 있고, 지하 주차장의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각동마다 하나의 지하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

입구에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한 동만이 다른 동과는 다른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식물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구나.’

ㄷ자의 가장 중간에 있는 3동의 입구에 있는 식물들만 고개가 꺾여있고, 껍질이 벗겨져 있다.

사람이 다녀갔다는 흔적.

조용히 자리를 옮겨 바로 옆 동의 옥상을 통해 3동의 옥상으로 넘어온 김신은 옥상에서부터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개의 호수가 마주 보고 있는 구조의 10층짜리의 아파트.

각 층을 빠르게 훑으며 3층까지 내려간 김신은 2층의 한 호수에서 희미한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꽤 강하네.’

거실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있다.

입구가 단단한 철문이었기에 섣불리 문을 따고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

적의 비밀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력한 각성자.

‘누가 봐도 뒤통수를 쳐서 정보를 캐내려는 생각이겠지.’

적들도 정보가 필요하기에 함정에 사람을 배치해 둔 것일 터.

잠시 서서 고민을 한 김신은 2층의 계단 창문을 통해서 처마 위로 나간 다음, 처마를 밟고 발코니의 안전손잡이에 매달려 깨진 거실 창문을 통해 내부를 살펴봤다.

‘오호...’

기감엔 느껴지지만, 육안으로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투명화 특성으로 추정되는 적을 앞에 둔 김신은 다시 처마로 돌아가 대놓고 수인을 맺어 마법을 사용했다.

‘디텍트.’

눈동자가 푸른빛을 내뿜으며 사물 너머의 생명체에 존재를 감지한다.

우웅-

적조차 쉽게 감지할만한 마나의 흐름.

“...!”

예상대로 흠칫 놀란 적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시선을 돌려 적의 방향을 바라보니, 어느새 문 옆에 붙어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적의 모습이 적외선화면처럼 눈에 보였다.

‘나는 볼 수 있고, 적은 볼 수 없다.’

너무나도 유리한 상황.

김신은 상대를 역으로 유인하기로 했다.

***

“...”

개미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릴 법한 고요함.

투명화 특성을 가진 빌런은 입구 뒤에 서서 조용히 바깥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진짜 왔네.’

그의 임무는 상대를 죽이지 않고 기절시켜 생포하는 것.

침묵을 유지하며 때를 기다리던 그는 1층 계단에서 들리는 소리에 아주 천천히 문을 열었다.

스윽-

오랜 시간 방치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히 열리는 문.

빌런은 그 열린 문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갈 거라 했었지.’

예상대로 지하에서 울리는 발소리.

하지만, 빌런은 그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발소리치고는 굉장히 날카로운데?’

비슷한 일을 많이 했던 만큼, 미묘한 소리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빌런은 계속해서 들리는 발소리에 어쩔 수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스윽-

지하와 1층을 연결하는 층계참에 서서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바라본 빌런.

‘...새끼 그리핀?!’

정체불명의 발소리를 내던 것이 괴수란 것을 확인한 순간, 뭔가 이상하단 것을 깨달은 빌런이었지만.

“늦었어.”

빡!

어떤 남자의 목소리와 동시에 뒷목을 가격당한 빌런은 힘없이 쓰러졌다.

3.

쓰러진 빌런을 포박한 김신은 누워있는 빌런의 위에서 폴짝폴짝 뛰는 똘망이를 바라보며 칭찬해줬다.

“잘했어, 똘망아.”

-삐익!

생각보다 쉽게 끝난 빌런의 생포.

김신은 빌런을 한쪽 구석에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포박해놓은 채로 똘망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갔다.

“생각했던 것처럼 볼 게 거의 없네.”

지하실을 개조했는지, 급수장치와 따로 구분해놓은 공간은 넓게 확장되어 있었고, 그 공간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테이블과 몇몇 장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물건을 중간에 매달아 놓은 상태로 뭔가를 할법하게 생긴 장치.

크기가 거대한 만큼, 해체하는 대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인지, 그들은 이 장치만큼은 가져가지 못했다.

‘이게 그 장치인가.’

이형찬의 말로는 거대한 장치에 연결된 어떤 아티펙트를 사용해 특성을 강화시켰다고 했다.

‘특성을 강화시키는 아티펙트라...’

그 장치를 지나쳐 계속해서 둘러봤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역시 기대할 것은 생포한 빌런의 정보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삐익?

땅바닥을 훑으며 돌아다니던 똘망이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물어왔다.

“···대박.”

그것은 다름 아닌 머리카락.

DNA 조회를 하면 상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잘했어, 똘망아.”

-삐익~!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챙긴 김신은 다시 1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으로 향했다.

“으...”

신음을 내뱉는 빌런.

김신은 빌런의 모습을 계단에 앉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을 던졌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눈을 끔벅이며 주변을 살펴보던 빌런은 포박당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현실을 빠르게 파악하고 입을 열어 말했다.

“일단, 한 가지 말해주자면 나도 의뢰를 받은 거다. 그게···”

곧장 의뢰자의 정보를 말하는 빌런.

김신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듣다가 물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냐? 의뢰자의 정보를?”

“상관없다. 일단 살고 봐야지. 네가 날 살려둔 이유도 뭔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

“잘 아네.”

말하지 않아도 술술 부는 빌런의 모습.

김신은 우선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봤다.

***

김신은 빌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를 조회한 결과, 그의 신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름: 백중현 [A급 추정]

-나이: 29세

-특성: 투명화

-개요: 1년 전 발생한 불사길드의 전설급 아티펙트 도난사건의 유력 용의자. 행방을 찾지 못함.

-현상금: 10억.

이름은 백중현, 상습적인 절도를 일삼는 좀도둑 스타일의 빌런.

가진 특성을 보니, 이해가 됐다.

백중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성향을 대충 파악할 즈음.

“···이렇게 된 것이다.”

백중현의 이야기가 끝났다.

“네 말은 그들이 자신들의 뒤를 쫓는 헌터를 생포해 넘기라는 것이었다는 거지?”

“맞다.”

요약하면 생각보다 간단한 말.

김신은 우선 백중현의 말이 끝나자, 분골착근을 사용해 한 번 더 검증했다.

“끄아아아악! 진짜라고!”

예상했던 대로 자살하는 아티펙트를 착용하지 않고 있던 그는 정말 단순하게 의뢰를 받은 것이 확인됐다.

“...”

맥이 탁하고 풀린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어수룩한 모습을 봤을 때부터 뭔가 영양가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체불명의 조직은 이런 일에도 빌런을 고용해놓을 정도로 치밀하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김신은 그나마 생포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백중현을 향해 물었다.

“대답의 여하에 따라 네 생사가 걸렸어. 그러니 말 잘해라.”

김신의 말에 눈물 콧물을 쏟아내 지저분해진 얼굴로 고개를 맹렬히 흔드는 백중현.

“네 의뢰가 생포면 그 이후에 보고도 하겠네?”

사살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겠지만, 생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백중현은 질문과 동시에 답했다.

“맞다.”

고개를 끄덕이는 백중현의 모습에 김신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했던 방법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낚이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의뢰를 완수했다는 말로 상대를 꾀어내는 방법.

“그럼 생포했다고 보고해.”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 호흡을 가다듬은 백중현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는 정체불명의 의뢰자.

그 의뢰자는 백중현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곧바로 용건 꺼냈다.

“목표를-”

-딱 한 번만 말해주지. 내일 자정까지 오이도로 와라.

뚝.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은 상대방의 모습에 백중현은 김신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전화 끊었는데?”

확인하러 간다. 혹은 놓고 가라.

두 가지도 아니고, 지정된 장소로 오라는 의뢰자의 말.

김신은 벙찐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중현을 향해 말했다.

“넌 날 잡았어도 죽었겠다.”

“응?”

3초간 멍한 표정을 짓던 백중현은 이내 김신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쌍욕을 내뱉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잡아서 끌고 와라.

이 말을 다르게 생각하면 증거가 될 수 있는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의도로 해석이 가능 하잖는가.

“뒤통수치려는 저 새끼들 엿 먹이고 싶지?”

“당연한 소리를.”

김신은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백중현의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러면, 이번엔 전화 걸어서 내가 말하라는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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