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1.
프레인 제국의 어둠 속에 자리 잡은 암살길드.
그곳의 1급 암살자 테일론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그 어떤 의뢰와도 다른 아주 특별한 의뢰를 소개받았다.
-황제의 측근을 암살해주시오.
황제를 끌어내리려는 귀족파의 의뢰.
그리고 그런 귀족파를 없애버리려는 황제의 측근, 블라이어의 의뢰.
-지정하는 귀족파의 귀족을 암살해주시오.
가격은 동일.
하지만, 위험도로만 보자면 황실에 잠입한다는 것은 7서클 대마법사 블라이어가 쳐놓은 결계마법을 뚫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 임으로 테일론은 블라이어가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방탕한 귀족이 싫어서이긴 하지.’
그가 암살자가 된 이유도 먹을 것을 살 돈마저 없었기에 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다가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뭐, 이젠 그것도 무의미해.’
얼마 전에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곧 몬스터의 침공이 대대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 테일론은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미련은 없었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고, 즐겼으니까.
“황제의 측근에 명령이더냐?”
“그렇겠지?”
특기인 변장과 잠입.
그의 팔목에는 항상 언제든지 사출과 회수가 가능한 암기가 매달려 있었다.
퓩!
그가 다녀갔다는 시그니쳐 마크인 다이아몬드 모양의 상흔.
그 상흔이 있는 시체를 본 이들은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값진 죽음이라고.
***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김신이 아티펙트의 기억을 보자마자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블라이어의 존재였다.
‘이 아티펙트에 왜 블라이어가 등장할까...’
일견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팔찌.
시계 정도의 굵기를 가진 가죽 팔찌의 외관에는 그나마 독특한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강철로 된 장식이 다섯 개 달려있다는 점이었다.
“흠...”
지금까지 기억을 봤던 아티펙트는 서로 전혀 다른 세계를 살던 사람들의 기억이었지만, 이 아티펙트의 사용자는 아니었다.
지팡이의 사용자였던 블라이어.
팔찌의 주인인 테일론은 그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었던 걸까?’
프레인 제국의 황성마법단장인 블라이어와 암살길드의 1급 암살자 테일론.
같은 세계를 살아간 인물들의 기억이 겹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억으로 봐서는 프레인 제국이 있는 세계는 멸망한 게 분명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티펙트의 담긴 인물들의 기억으로 본 바로는 전부 몬스터, 즉 괴수에 의해 멸망 당하는 결말에 다다른 것 같다.
‘탑의 존재가 대체 뭘까.’
아티펙트의 감정을 이어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묘한 기분.
마치 알면 안 되는 비밀에 다가가는 기분이다.
2.
“...”
김신은 갑작스레 많아진 생각을 털어낼 겸 숨을 깊게 내쉬며 테일론의 기억이 담긴 아티펙트를 착용했다.
스윽-
“...!”
왼쪽 손에 아티펙트의 착용함과 동시에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에 눈을 부릅뜬 김신.
촤르르륵!
김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변화의 구슬이 테일론의 기억이 담긴 팔찌를 감싸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를 조정하듯 한참을 움직이던 변화의 구슬에 움직임이 멎자, 김신은 조심스레 아티펙트를 사용해봤다.
목표하는 방향으로 손을 위치시키고, 손목을 뒤로 꺾는다.
슉!
아주 작은 발사음과 함께 빠르게 날아가는 손가락만 한 암기.
총 다섯 자루의 암기는 하나가 사출되면 자동으로 다음 암기가 장전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미쳤네.’
연습용 과녁판을 뚫고, 벽에 깊게 박힐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가진 투사체를 회수하는 방법 또한 간단했다.
손목을 뒤가 아닌 아래로 꺾는다.
츠츠츳!
손목의 윗 방향으로 미약한 마나의 흐름이 암기와 연결되어, 사출된 암기가 돌아왔다.
‘이상이 없는 것은 확실한데...’
변화의 구슬이 테일론의 아티펙트를 덮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사용 불가능하도록 바뀐 것은 아니기에 김신은 고민하기를 그만뒀다.
조용히 날아가, 상대의 목숨을 뺏는다.
김신은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이 아티펙트를 착용하고, 연합의 밖으로 나왔다.
***
아주 값진 보상을 얻고 다시 돌아온 김신은 앞으로의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팀 활동보다는 솔로 활동을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은데...’
독자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만큼, 김신은 이것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유성에게 건의안을 올렸다.
-자네의 뜻대로 하게. 다만 결정된 사항은 보고를 해주도록 하고.
답은 즉각적인 수락.
애초에 처음 독대를 했을 때부터 조직의 뒤를 캐겠다는 말을 했었던 터라, 한유성의 동의는 따놓은 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김신은 대략적인 구상이 끝나자,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앞으로 5팀은 따로 활동하게 될 겁니다.”
“예?”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는 팀원들.
김신은 아직 팀원들에게 배후에 있는 조직에 관한 일을 말해줄 수 없었기에 필연적으로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서 앞으로 5팀은 다른 팀과는 별개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요?”
팀이 해제될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는지,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팀원들의 모습에 김신은 웃으며 답했다.
“아, 팀은 유지됩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인 일로 움직일 경우, 5팀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동할 겁니다.”
“어떤 방식입니까?”
강한우의 질문에 김신은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제가 없는 경우에는 지원을 위주로 할 것이고, 제가 있는 경우에는 평소와 같이 임무를 나갈 겁니다.”
“그러면 지원을 나가는 경우 지원 나간 팀의 팀장에 명령을 듣는 겁니까?”
강한우의 질문은 중요하다.
다른 팀장의 명령을 듣는 것과 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의 차이니까.
김신은 그 질문에 대해 확실하게 짚어주었다.
“앞으로 제가 없을 때, 팀장의 역할을 맡아주셔야 해요.”
“제가 어떻게...”
김신은 자신의 말에 소극적으로 대답하는 강한우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할 수 있습니다.”
김신의 말에 아직도 흔들리는 눈빛을 다잡지 못하는 강한우.
김신은 그런 강한우의 모습에 조금 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한우 씨라면 팀원들에게 제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팀장의 인정이란 생각보다 큰 것이었는지, 김신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강한우는 주먹을 움켜쥐며 답했다.
“예! 그때마다 최대한 빈자리가 안 느껴지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3.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 김신은 가장 먼저, 신의의 납치 당일 생포됐던 빌런을 만나기 위해 어비스로 향했다.
‘역시, 어마어마하네.’
어비스, 심연.
어둡고, 빠져나오기 힘든 느낌의 그 단어처럼, 강력범죄를 저지른 빌런들을 수감하는 어비스는 밤섬에 있는 시설 깊은 지하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나를 압제하는 아티펙트를 착용한 그들은 강한 특성을 가진 각성자 교도관과 철저한 감시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입구에서조차 철저한 신분검사.
하나하나가 입에 담기조차 힘든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고, 힘에 취한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면회신청조차 쉽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헌터라이센스를 제출하고 약 10분.
긴 시간이 흐른 후, 김신은 교도관의 부름에 데스크로 향했다.
“9031번 수감자를 면회하러 오신 게 맞습니까?”
“네.”
김신의 말에 컴퓨터의 화면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교도관.
그는 곧 김신을 향해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9031번 수감자는 이틀 전에 사망했습니다.”
“네?”
“그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확인 불가. 별다른 이상 없이 급사(急死)한 경우로군요.”
“...”
사인(死因) 불명.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헌터들이 인천항 소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다음 날 어비스에서 눈을 감았다.
김신은 정보를 알려준 교도관에게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 밖으로 나와 생각했다.
‘말이 안 될 정도로 공교로워.’
뉴스로 사건 보도를 시작한 당일. 그 빌런이 사망했다.
이것은 이 사건의 내막을 아는 이가 봤을 때, 급사가 아닌 타살(他殺)이 어울리는 사건이었다.
‘마치 누가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가 죽인 것처럼...’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유출의 위험이 있는 인물은 모두 죽여서 입을 막는다.
‘진짜 미친놈들이네.’
치밀할 정도로 적의 세력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작부터 꼬인 정보확인.
김신은 동선을 틀어, 조금 과감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형찬과 정백한이 특수한 시술을 받았던 장소.
‘그 장소로 가야겠어.’
꼬리를 잡기 위해서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
탁-탁-탁-
규칙적으로 책상을 치는 손가락.
무언가 불편한지 인상을 굳힌 채, 턱을 괴고 있는 남자.
“인천항의 빌런들의 본거지가 드러남에 따라 헌터들에게 예상보다 더 낮은 피해를···”
원탁에 앉아 지부장의 말을 듣고 있는 회장은 그의 보고가 진행됨에 따라 불편하다는 기색이 점점 짙어졌다.
“결과적으로 인천항의 빌런들은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이윽고 지부장의 보고가 끝나자, 책상을 치던 손가락을 멈춘 회장.
탁-
그는 앉은 의자에 깊게 몸을 묻으며 지부장을 향해 말했다.
“회복의 녹옥을 손에 넣은 것은 좋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군.”
특성을 강화시키는 아티펙트를 통해 가진 바의 힘을 증폭시킨 빌런들의 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인천항의 빌런들을 이용해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를 실행한 회장이었지만, 그는 뭔가 자꾸 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날카로운 기도에 땀을 뻘뻘 흘리는 지부장.
회장은 그런 그를 조용히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보의 추가유출 가능성은?”
“없습니다.”
지부장의 단호한 대답에 회장은 불편했던 심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다른 질문을 했다.
“다음 아티펙트의 행방은 알아냈나?”
“예. 다행히 파괴의 홍옥과 회복의 녹옥의 반응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지부장을 향해 말없이 보고하라 손짓한 회장은 조용히 그의 보고를 기다렸다.
“알아본 바로 원래는 신화길드의 유석만이라는 헌터가 해당 아티펙트를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했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시하던 인원들의 보고에는 그가 지니고 있던 아티펙트가 얼마 전에 수호길드 측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수호길드. 수호길드라······”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자신들의 대계를 방해하는 수호길드.
회장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인 수호길드가 자꾸만 거슬렸다.
‘강압적인 수를 쓰자니, 회(會)의 피해와 정보의 유출이 걸리는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아티펙트다.
고민을 끝낸 회장은 지부장에게 명령했다.
“아티펙트의 행방을 추적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