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1.
책사는 보통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마련이다.
이 말은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적다는 이야기로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몰라 이새끼야!”
지하철, 진입로.
등에 입은 화상을 치료하고, 두 장소를 돌아다니며 생포된 다른 빌런들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것은 악에 받친 소리였다.
“넌 포박당한 빌런이란 걸 잊었나 봐?”
협조하지 않는 놈들은 복날 개 패듯이 패버리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인권.
“윽! 사람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
“존중을 안 해주는 데, 내가 왜 네놈들의 권리를 존중해주냐.”
그렇게 차근차근 정리하던 중.
김신은 차이나타운에 있는 빌런들 중에서 한유성에게 꽤 큰 상처를 입혔을 정도로 강했던 빌런이 생각났다.
‘그놈이 실질적인 관리자 일 수도.’
김신은 그렇게 차이나타운으로 돌아가 이형찬이라 불리는 빌런을 불이 켜진 가게로 끌고 들어왔다.
“...”
툭툭-
기절한 채로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형찬.
한유성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아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이형찬을 김신은 가볍게 뺨을 때리는 것으로 깨웠다.
“으...”
“정신이 들어?”
“너, 너는...”
김신의 행동에 정신을 차린 이형찬이 신음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떠 주변을 살펴본다.
김신은 눈알을 굴리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하나만 물어보자.”
“큰 형님은···”
“네가 왜 묶여있겠냐.”
이형찬은 김신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했다.
“큰형님의 특성은 더 강해져서 쉽게 어쩔 수가 없을 텐데.”
떨리는 눈동자.
김신의 말과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스스로의 믿음과 현실부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부딪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믿기 힘들면 직접 보여주지.”
피해를 수습해가는 현장의 한구석에 쓰러져있는 정백한을 직접 본 이형찬은 그제야 현실을 깨달았는지, 두 눈을 꼭 감고 체념했다.
“묻고 싶은 게 뭐냐.”
***
취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뤄졌다.
신의는 왜 납치했는지, 괴수를 조종한 것이 맞는지, 조종했다면 어떻게 한 것인지.
정보라는 것이 교차검증이 필요한 만큼, 김신은 보스인 정백한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고, 어떻게든 이형찬에게 얻은 정보를 검증할 수 있었다.
“결론은, 뒤에 있는 조직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건가.”
인천항의 이인자이자 책사인 이형찬과 보스인 백정한 두 사람의 취조 끝에 나온 결과로 얻은 정보는 생각보다 적었다.
김신은 이형찬을 밖으로 보낸 뒤에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천천히 곱씹었다.
-우리가 만난 남자는 그리 높지 않은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뭔가 중요한 선택이나 협상을 하기 전에는 항상 자리를 비웠거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상대를 파악했던 이형찬이었지만, 그도 확실하게 자신과 큰형님에게 한 단계 위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조직이 생각보다 깊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신의의 납치 과정에서 괴수를 조종한 것은 어떻게 한 거지?
김신의 질문에 이형찬은 진심으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우리는 괴수를 조종한 적이 없어. 그냥 그들이 주는 아티펙트를 착용하면 괴수들이 신경을 안 쓸 거라고 했을 뿐이지.
-뭐라고?
-우리는 말 그대로 신의를 납치해서 그가 가진 아티펙트만 주는 의뢰였다는 거지. 대가로 꽤 많은 마석과 쓸만한 아티펙트 여러 개를 얻은 거고.
김신이 신의의 납치 과정에서 생포한 빌런의 정보와 이형찬의 정보가 다르다.
이것은······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
이형찬과 정백한이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만 당했다는 것이다.
‘교활한 놈들이야.’
그들의 목적이었던 신의의 아티펙트.
회복의 녹옥만 얻어간 채로, 인천항의 빌런들에게 신의를 줘서 헌터와 싸울 수밖에 없는 구도로 만든다.
‘그래도 최소한 그들이 있는 본거지는 알았으니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아티펙트를 이용해 특수한 시술을 받은 장소는 바로 서울.
‘헌터들이 가장 많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을 줄이야.’
적들은 바로 턱밑에 숨어 있었다.
2.
인천항 소탕 작전 이후, 2일.
헌터들이 대대적으로 나섰던 인천항 소탕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온갖 매체에서 대서특필로 다뤘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서의 길드장들은 김신이 얻어온 정보를 통해 사건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최대한 정보를 부풀려 헌터들의 피해가 없다는 방향으로 보도했다.
이유는 적의 배후가 잡히지 않았기에 또 다른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김신은 다시 한유성의 호출을 받아 길드장실로 향했다.
똑똑-
“5팀장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들어오라 해주게.
“들어가시죠.”
꽤 자주 방문하는 것 같은 길드장실.
그 앞에 선 김신은 비서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왔나.”
이번 사건 이후로 김신을 보면 더더욱 짙은 미소를 짓는 한유성.
김신은 가볍게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가 손짓하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한유성의 독대는 흔하지 않은 경우였기에 김신이 소소한 자부심을 느끼는 사이.
탁-
한유성이 아끼는 찻잎으로 우린 차가 비서의 손을 통해 그의 앞에 내려졌다.
“일단 좀 들게.”
“예.”
한유성이 무언가 긴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쓰는 방법.
김신은 전에 먹었던 차보다 조금 더 맛있는 느낌에 살짝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향이 좋군요.”
“이번에 구매한 찻잎은 자네의 입맛에 맞나?”
“예, 뭔가 익숙한 맛이네요.”
김신이 좋아하는 기색을 비추니 더욱 밝아진 얼굴로 화답하는 한유성.
“다행이구만.”
조용히 차를 한 모금 음미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자, 한유성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입은 부상이 꽤 괜찮아졌다고 들어서 불렀네.”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빨리 쾌차했습니다.”
실제로 한유성은 직접 신의에게 도움을 청해 김신이 정백한과의 전투에서 다친 상처들을 돌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름이 아니고, 이번 보상과 관련해서 몇 가지의 할 이야기 있어서 말이야.”
조용히 경청하는 김신의 모습에 한유성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선 가장 처음으로 자네가 받을 것은 정찰에 대한 보상일세. 이건 알다시피 압수한 아티펙트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
“예. 알고 있습니다.”
“장소는 연합으로 가면 될 것이네.”
이미 약속되었던 보상인 만큼, 한유성은 짧게 짚고 넘어가는 식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건 연합에서 제시한 보상일세.”
“네?”
연합에서 제시한 보상이라...
어떤 종류의 것일지 도통 가늠이 안 된다.
의문에 눈을 껌뻑이니, 한유성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합에서 제시한 부분을 다른 길드장들의 동의했네. 그 부분은 가장 공이 컸던 자네의 헌터랭크를 A급으로 승급시키기로 하는 것이었지.”
“어...”
“길드장이 되어서. 항상, 이런 것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사실 A급 승급은 생각보다 큰 사건이다.
보통 A랭커는 언론이나, 다른 매체에 자주 소개될 정도니까.
그만큼 A급 헌터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꽤 커지는 랭크다.
‘설마 나도...?’
김신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자, 한유성이 귀신처럼 그에 관련된 말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네.”
“어떤 것입니까?”
“이번 작전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우리 수호길드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표로 인터뷰를 해야 할 사람이 생겼어.”
“그 인터뷰에 제가 나가달라는 겁니까?”
“맞네.”
헌터에게 시민들의 인지도란 돈과 명예와 직결된다.
당장 한설의 경우만 해도 그 뛰어난 외모 덕에 CF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마어마했으니까.
“...”
김신이 고민하자 한유성은 그를 보며 기대하는 눈빛을 내비쳤다.
‘솔직히 고민이 되긴 하네.’
헌터를 하는 이유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윤택한 삶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긴 해도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사건의 배후를 찾는다.
김신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한유성의 기대를 거절하기로 했다.
“그 문제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아시다시피, 제가 찾는 조직은 숨어 있습니다. 앞으로 하려는 일은 그 조직의 뒤를 캐는 것이고요.”
“그렇다는 건...”
“예, 그 조직을 찾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야겠죠.”
거기까지 말하자, 한유성은 알겠다는 듯이 나지막한 감탄을 내뱉었다.
“자네의 의견을 생각해 그 인터뷰는 다른 고생한 길드원에게 부탁하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숨어 있는 적을 찾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습도 들키면 안 된다.
김신의 뜻을 깨달은 한유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네는 항상 힘든 임무를 자처해. 내가 미안할 정도로 말이야.”
“아닙니다.”
가장 믿음이 가는 존재.
한유성의 마음속에 김신이라는 사람의 위치가 다시 한번 변하는 순간이었다.
3.
길드장실을 나온 김신은 기다렸던 보상을 받기 위해 곧장 연합으로 향했다.
‘기대되네.’
인천항 소탕 작전 이후, 각 길드의 중재자 역할에 나선 헌터 연합.
압수한 빌런들의 아티펙트를 모아놨다가 기여도가 높은 길드의 순서대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김신은 처음 약속했던 것처럼 수많은 아티펙트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를 기회를 얻었고.
택시를 타고 도착한 연합의 건물.
거대한 높이를 자랑하는 이 건물의 이름은 바벨, 그 끝을 모르는 높이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를 해주는 직원을 따라가니, 김신을 반겨주는 것은 지하에 있는 거대한 창고.
“와...”
그 창고 안에 있는 것은 인천항 소탕 때 압수한 아티펙트 뿐이지만, 그 양은 빌런들이 10년간 쌓아놨던 것이기에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걸 언제 다 둘러보냐.”
너무나도 많은 아티펙트의 양에 걱정을 하기 잠시.
“생각보다 볼 게 없네.”
자세히 살펴보니, 대부분의 경우가 레어 혹은 에픽등급이다.
게다가 감정이 된 것들과 아닌 것들이 구분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선 평범한 기억이 담겨 있는 낮은 등급의 아티펙트는 패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보니, 높은 등급의 아티펙트와 골동품은 생각보다 적었다.
‘하긴, 유니크부터만 해도 그 값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높은 등급의 아티펙트 앞에 서서 김신은 짧게 고민을 이어나갔다.
‘이번 임무로 느낀 건, 아무래도 이제 홀로 활동을 할 일이 많아진 만큼 새로운 무기 사용법을 익혀야 할 것 같단 거야.’
상대할 적은 강하다.
강한 적들은 대부분 기감이 민감하고.
그렇다면 기감에 잡히지 않는 무기를 통한 기습을 노려야 하는데······.
대략적인 아티펙트의 방향을 정한 김신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감정을 사용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아티펙트는 많고, 많았다.
검, 창, 도끼, 방패 등등...
많은 종류의 무기들을 지나쳐 김신이 도착한 것은 작은 물건들이 진열된 장소.
‘자, 이제 찾아볼까.’
김신은 천천히 아티펙트를 훑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