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1.
김신의 공격이 정백한의 공격과 맞닿았던 순간.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울려 퍼지며, 김신의 공격은 잠깐이지만 폭발의 여파를 저지했다.
그리고 그 잠깐이라는 시간은 헌터의 인지능력으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방패를 들고, 방어스킬을 사용하고.
각자가 가진 최고의 방어스킬을 중첩해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해준 시간.
“아이스 월.”
콰드드드득!
한설을 포함한 다른 길드원들도 한설의 얼음 방벽 뒤에서 자신의 방패를 들거나, 얼음 방벽을 강화시키는 스킬을 사용해 충격에 대비했다.
솟아오른 방벽에 덧씌워진 송인아의 염력장막.
그 뒤를 받치고 있는 강한우의 방패.
모든 길드원은 김신이 만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이를 악문 송인아의 얼굴과 잔뜩 굳은 강한우의 얼굴이 보인다.
‘김신 씨...’
그 속에서 한설은 눈이 멀 것 같은 빛 속에 삼켜지는 김신의 모습을 보며 5팀원들과 똑같이 이를 악물었다.
매번 가장 앞에 서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그는 마지막까지도 모두를 위해 희생했다.
‘가고 싶지만 가면 안 돼.’
여기서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따라 김신에게 달려가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가 벌어준 시간을 날리고 개죽음을 당하는 것뿐이지.
“...”
살아남는다.
그리고 복수한다.
한설의 다짐이 끝난 순간.
콰아아앙!
정백한이 사용한 스킬의 충격파는 길드원들이 합심한 스킬들과 부딪쳤다.
콰드드드득!
가장 먼저 깨지는 송인아의 염력장막과 빠르게 파괴되는 한설의 얼음장벽.
콰지지직!
그것들은 얼마 못 버티고 깨졌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다른 헌터들의 이능력이 계속해서 그 앞을 가로막았다.
한 겹, 또 한 겹.
층층이 이루어진 거대한 이능력의 방패.
김신이 벌어 준 그 찰나의 시간이 가져다준 변화는 헌터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콰앙!
처음의 충격에 비해서는 충분히 감당할 만한 충격량.
충격을 많이 상쇄시키지 못한 헌터들조차 치명상은 피해갈 수 있었을 만큼, 김신이 가져다준 시간은 값졌다.
───!
인천항 내부의 모든 것을 파괴했던 파괴의 여파가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자 시야를 가리던 먼지가 가라앉으며 모든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없다.
그도 저 거대한 파괴의 폭풍에서 무사할 수 없었던······!
중앙에 서 있는 정백한의 위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김신이 서 있던 장소의 바닥이 들썩거렸다.
“김신...씨?”
움푹 파인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한 남자의 뒷모습.
화상을 입었는지, 등 부분이 새까맣게 타 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멍하니 바라보는 한설은 남자가 검을 쥐고 정백한에게 달려드는 것을 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김신이 죽지 않았다는걸.
***
폭발을 내공을 사용한 기술로 잠시 저지시킨 직후.
콰아아아아!
김신의 내공과 정백한의 공격이 울렁거리며 힘겨루기를 하는 그 순간.
김신은 그 찰나의 시간에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살려면 뭘 해야 하지?’
쉴드?
사용 즉시 깨질 게 뻔하다.
공격마법?
내공을 가득 담은 초식으로도 약간의 저지가 전부였는데, 어림도 없다.
시간만 벌고 이대로 허무하게 가는 걸까?
그런 생각과 함께 김신이 삶의 주마등까지 지나가는 것을 보던 중.
김신은 정백한이 내뿜은 마나의 파동이 그의 발아래로는 뻗치지 못한다는 것을 본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있다. 살 방법이.’
바닥을 타고 오는 거대한 충격.
땅 위를 훑으며 오는 정백한의 공격은 그가 디딘 땅에는 큰 상처를 내지 않았다.
‘땅 밑에 숨으면 충격을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김신의 손이 움직였다.
가장 기초적이자, 가장 기본적인 1서클 마법. 최소한의 가능성을 잡아보기 위해서라면 땅을 파야 한다.
‘디그.’
순식간에 바닥이 움푹 파이며, 김신의 몸을 끌어당긴다.
움푹 파인 바닥에 김신이 엎드리자마자, 그가 만들어낸 시간이 다시 흘렀고.
콰아아앙!
폭발의 직접적인 충격은 그가 있는 구덩이 위를 지나갔지만, 열기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크윽!”
등 뒤를 벌겋게 달구는 열기.
뜨겁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아찔한 고통을 참아낸 김신.
화상을 입긴 했지만, 공격의 직격을 어찌어찌 피할 수 있었던 김신은 정백한의 공격이 만들어낸 파괴의 소음을 들으며 뒤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사해야 할 텐데...’
───!
귀가 먹을 것 같은 소음이 끝나고, 김신은 자신의 구덩이 안에서 바깥을 살펴봤다.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보며 미소짓고 있는 정백한.
김신은 멍하니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정백한의 모습을 본 순간 든 생각은 한 가지뿐이었다.
‘기회다.’
적의 방심을 틈타 치명상을 입히는 것.
스릉!
김신은 검을 쥐고 정백한에게 달려들었다.
2.
한설과 마찬가지로 한유성은 등 뒤에 화상을 입긴 했지만 멀쩡한 김신을 보고 놀랐다.
‘···설마, 기습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것을 넘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백한을 기습하는 김신.
서걱!
“크윽!”
정백한이 김신의 기습을 감지하지 못한 탓에 왼팔에 큰 치명상을 입었다.
‘성공하다니!’
피가 흐르는 왼팔을 붙잡고 서 있는 정백한의 모습에 빠르게 발을 옮겨 김신의 옆으로 다가간 한유성.
“한순간이지만, 정말 죽은 줄 알았네.”
한유성 또한 김신의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폭발의 여파는 정말 거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이군.”
짧게 걱정을 표한 한유성은 고개를 들어 왼팔을 붙잡고 서 있는 정백한을 바라봤다.
노려 보고 있다.
언 듯 보면 핏발이 서 있는 눈은 독기를 품은 것 같았지만, 어딘가 비어있다.
‘믿기 힘든가 보군.’
저 눈빛은 놀람.
아니, 경악에 가깝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한유성의 예상처럼 정백한은 김신의 생존, 아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생존에 의문을 품었다.
“한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말해두지.”
“...”
한유성의 답을 듣고, 침묵에 빠진 정백한.
그는 이내 고개를 들고 검을 쥐어 잡으며 낮게 웅얼거렸다.
“기적? 또다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백한의 말에 한유성이 아닌, 옆에 있는 김신이 답했다.
“당신은 이제 그 힘 못쓸걸.”
예리하게 꿰뚫는 듯한 눈빛의 김신.
그는 일그러진 표정의 정백한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검으로만 상대할 거거든.”
***
김신을 마주 보는 정백한의 눈빛.
김신은 그 속에서 당황이라는 감정을 읽었다.
‘맞았네.’
처음 차이나타운에서 느꼈던 마나의 흐름과 방금 겪었던 공격.
김신은 처음 파이어 버스트를 썼을 때부터 옅은 붉은빛을 내뿜던 정백한의 모습이 이상했었다.
마치, 충격을 흡수하는 듯한 느낌.
그 느낌은 4팀장을 베려던 정백한의 공격을 막고 검기를 날린 순간, 확신에 가깝게 변했었다.
“검으로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아마도. 당신의 검술은 형편없거든.”
김신의 비아냥에 정백한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어이가 없군.”
말함과 동시에 달려드는 정백한.
쐐액!
내리꽂히는 그의 검에서는 예리함이 없었다.
‘단순히 힘만 강해.’
검술의 묘리는 다양하다.
김신은 단순히 힘만 강한 그의 검을 향해 자신의 검을 가져다 대었다.
정백한의 세로 베기를 마주하는 김신의 검.
김신이 가로로 눕힌 검의 손잡이를 부드럽게 밀어 올리자, 정백한의 검은 김신의 검날을 타고 부드럽게 옆으로 밀려 나갔다.
스릉!
정백한은 김신의 검이 자신의 검을 흘려낸 것이 요행이라 생각하는 듯이 재차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쐐액!
“당신의 검술, 형편없다니까.”
힘으로 베어오는 검은 결대로 흘려내면 그만일 뿐.
힘이 강해 묵직하긴 하지만, 막기 힘든 것은 아니다.
스르릉!
좌에서 우로 베어오는 정백한의 검을 김신은 또 한 번 부드럽게 흘려냈다.
3.
이상한 조직의 도움을 받아, 한층 더 강해진 신체능력과 일견 무적으로 보이는 특성의 조화.
정백한은 그런 자신의 공격을 가만히 선 채로 흔들림 없이 받아내는 김신의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특성이 아니어도 이깟 애송이 따위는!’
S급 헌터들 조차 자신의 검을 받아내며 이를 악무는 것을 봤거늘.
쐐액! 쐐액!
연이어 날리는 검격은 감정의 고조에 따라 점점 더 흔들렸다.
스릉! 스르릉!
세 번의 공방이 흘러간 후,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한유성이 끼어들어 주먹을 날리며 하는 말에 정백한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만하게.”
후웅!
날아오는 한유성의 주먹을 급하게 검을 틀어 막아낸 정백한.
카가가각!
김신의 기습으로 왼팔을 다친 것 때문에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해 밀려 나갈 정도로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정백한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김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인다.’
정백한은 지략이 아닌 순수한 무력으로 인천항을 지배했다.
순수한 약육강식의 세계.
그곳에서 살아남아 올라간 그에게 두려움이란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니 공격한다, 더욱 강하게.
쐐액!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을 휘둘렀지만, 걸리는 것은 없다.
키깅!
이어지는 공방에서도 정백한은 김신에게 그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
특성을 간파한 눈앞의 애송이는 마나가 담긴 공격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둘러 막고, 막을 뿐.
‘특성을 이렇게 빨리 간파당하다니...’
그렇게 인천항의 빌런들의 보스, 정백한은 점점 궁지에 몰려갔다.
***
헌터는 자신의 부상을 확실히 깨닫고 있어야 한다.
냉철하게 자기 자신의 상태를 판단해야 공격을 할지 수비를 할지 혹은 도주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정백한의 공격은 자신의 몸 상태 따위는 돌보지 않는 공격밖에 없는 움직임이었다.
부상은 부상을 더욱 심하게 만들고, 나아가 몸을 망친다.
쐐액!
정백한의 검 끝이 수십 번의 공격을 맞은 여파와 아까 있었던 기습 때문인지 크게 흔들렸다.
‘지금.’
김신은 처음으로 정백한의 검을 빗겨 쳐서 튕겨내고, 검을 쥐고 있는 그의 오른팔을 베었다.
채앵! 서걱!
“크윽!”
정백한이 검을 놓치자마자, 이어지는 한유성의 공격.
후웅!
특성의 힘을 실어 무지막지한 질량을 가진 한유성의 주먹을 정백한은 양팔을 들어 간신히 막았다.
빠각!
“끄으윽!”
뼈가 부러지는 소리.
회심의 공격마저 실패하고, 두 팔마저 부러진 정백한에게 승산은 없었다.
“자네는 졌네.”
“쿨럭!”
한유성의 말을 끝으로 정백한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인천항의 소탕 작전은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동이 트자, 밝아지는 해안선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인천항의 피해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피해가 크네요.”
“그러게 말이야.”
김신과 한유성의 대화처럼, 빌런과 헌터 모두를 가리지 않는 정백한의 무분별한 공격에 당한 헌터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두 팔이 부러진 상태로 맥없이 쓰러져있는 정백한.
김신은 그를 내려다보며 의문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놈이 인천항을 지배했던 거지?’
사람 자체가 싸움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이, 무력에만 집중되어있다.
‘보스는 일반적으로 냉철하고, 상황판단을 잘 해야 하지 않나?’
이상하다.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한 가지 추론을 냈다.
‘머리 쓰는 놈이 따로 있나?’
흔히 말하는 책사(策士).
김신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정리가 끝난 구역의 빌런들을 한곳으로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