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1.
한유성과 김신이 차례로 빌런의 간부를 쓰러트린 후부터, 차이나타운의 전투는 일사천리로 정리되었다.
경험의 차이.
빌런과 괴수를 상대로 난전을 거듭해 온 헌터들을 빌런들은 쉬이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차이나타운에서의 전투가 끝나자, 신의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돌아온 한유성이 김신에게 다가왔다.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나.”
“대충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김신의 말에 한유성은 가볍게 왼쪽 어깨를 돌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뻐근하지만, 괜찮네.”
“다행이군요.”
“이런 부상 정도는 그리 큰 부상도 아니지.”
김신은 멀쩡한 한유성의 모습에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진입로 지원을 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아까 느껴졌던 마나의 파동이 신경 쓰여서요.”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 했었네.”
얼굴을 보니 한유성 또한 신경이 쓰인다는 듯 표정이 굳어있다.
‘마지막 지원요청 이후로 별다른 말이 없어.’
다급한 상황이었던 만큼 여유가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뭔가 큰일이 생겨서 말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리 끝났습니다!”
때마침 현장을 정리하던 길드원의 말이 들려왔다.
그걸 들은 한유성이 팀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가보도록 하지.”
***
한유성의 지시로 1팀장과 세 개 팀의 팀원들이 현장의 빌런들의 관리와 감시를 위해 남고, 나머지 길드원들은 지원요청이 왔던 인천항의 진입로에 들어섰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거죠...”
입구에서부터 쓰러져 있는 헌터들.
현장의 참혹한 모습에 한설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혹하다.
폭발의 여파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듯, 쓰러진 사람들은 헌터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적, 아 없이 모두를 공격하는 스킬이라...”
탄식이 섞인 한유성의 목소리.
그의 감정은 명백히 분노에 가까웠다.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을 건너자, 진입로 중간에 태풍길드의 길드장의 머리를 붙잡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
엄청난 덩치의 거한.
피가 흥건한 오른손에 들린 검.
왼손에 잡혀있는 태풍길드의 길드장.
그리고 주변에 쓰러져있는 다른 길드의 길드장.
저 사람에게 4개의 길드장들이 패배한 상황.
그 모습에 다른 길드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김신과 한유성만큼은 두려움보다는 다른 감정에 사로잡혔다.
묶어놔야 한다.
수호길드처럼 다른 길드의 지원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저 빌런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각 팀의 팀장들 빼고는 모두 뒤로 물러서도록.”
한유성의 빠른 판단.
김신의 눈으로 본 바로, 지금 상대는 이곳저곳에 상처를 꽤 입어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체력이 소모된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한유성에 지시에 따라 뒤로 물러서는 길드원들과 뭉치는 팀장들.
한유성은 쓰러진 길드장들의 무력을 알고 있기에 조금은 경직된 목소리로 팀장들에게 말했다.
“상대의 등급은 S급. 아니, 그 이상.”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능력의 소유자.
“흠, 또 다른 헌터들의 등장인가.”
수호길드의 등장을 알아챈 빌런의 보스가 고개를 돌렸다.
2.
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하는 빌런의 보스.
손에 매달려 있는 태풍길드의 길드장을 옆으로 치워버린 적은 가볍게 목을 돌리며 한유성에게 말했다.
“호오, 이게 누구야. 유명인 아닌가?”
빌런의 말에 한유성은 고저 없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답했다.
“자네 또한 유명하네. 우리 헌터들 사이에서 악명 높기로는.”
인천항 흑룡파의 보스, 정백한.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인천항에서 유일무이한 빌런 조직의 보스로 살아온 S급 수배자.
능청스러운 얼굴로 한유성을 바라보던 정백한은 생각보다 적은 인원의 숫자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원을 요청했다는 걸 들었는데, 고작 이것밖에 안 온 건가?”
“...”
한유성이 별다른 대답 없이 노려보자, 정백한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이어 말했다.
“이 정도 숫자면 재미도 못 느끼겠어.”
“자네는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건가.”
한유성의 말에 정백한은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들었다.
“아니, 힘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는 것일 뿐. 나도 살생을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괴변이다.
힘을 자랑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거다.
한유성이 김신이 느낀 것과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처음으로 얼굴을 구기며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말이 안 된다니. 헌터들도 괴수를 잡을 때, 힘자랑을 하지않나?”
민간인들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활동하는 헌터들의 의지를 정면에서 조롱하는 정백한의 모습에 한유성은 더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낮게 읊조렸다.
“빌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정신이 썩어들어갈 것만 같군.”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백한은 자신의 말이 웃겼는지 광소를 터트렸다.
“아무렴 어떤가. 새롭게 얻은 힘을 쓰게 해주는 이가 등장했으니, 즐겁게 싸워주면 그만인 것을.”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정신상태와는 다르게 가진 바의 무력 하나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두 사용해서, 변수를 만들어야 해.’
수호길드가 전투를 준비할 틈도 없이 달려들려는 정백한.
자세를 잡는 한유성보다 먼저 정백한을 반겨준 것이 있었으니.
콰아아앙!
전투의 시작은 김신이 날려 보낸 파이어 버스트의 폭발이었다.
***
김신이 기습적으로 날려 보낸 공격 직후.
파앙!
맹렬한 화염의 폭발 속에서 튀어나온 정백한은 한유성이 아닌 김신에게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가소로운 이능력이군.”
이미 앞선 전투로 상처를 꽤 많이 입은 정백한.
그도 생각이란 것이 있는 만큼, 상대하기 가장 껄끄러운 이능력자를 먼저 제거하는 것이 편했다.
쐐액!
정백한이 검을 내리찍는 순간까지 가만히 있던 김신.
찰나의 시간 후, 두 개로 나뉠 몸에 미리 애도를 표하려는 순간.
“누가 주력이 이능이래?”
키기깅!
아주 빠른 속도로 검을 꺼내든 김신은 정백한의 공격을 흘려냈다.
“...?!”
놀란 표정을 짓는 정백한과 다르게 김신은 그의 검을 받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묵직하지만, 검으로 상대하는 거라면 할만해.’
상대의 특성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모든 버프를 사용한 지금의 상황에서 검술 자체만 두고 봤을 때는 충분히 상대할만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김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탓!
어느새 달려온 한유성이 김신과 공격을 주고받느라 생긴 정백한의 틈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후웅!
또다시 붉게 물드는 한유성의 주먹.
공기를 뜨겁게 달구며 떨어지는 한줄기의 유성을 정백한은 다급하게 검을 비틀어 막아냈다.
콰앙!
10m의 거리를 밀려 나간 정백한.
이능과 근접전투를 동시에 하는 김신을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본 정백한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4팀장을 향해 달려갔다.
기합을 내지르며 다가오는 정백한을 막아선 4팀장.
후웅! 채앵!
정백한은 육체 강화 특성을 가진 4팀장의 검을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단 두 수만에 날려버렸다.
“재미없어.”
검이 날아가 무방비 상태의 4팀장을 베려는 정백한.
쐐액!
날아드는 그의 검이 4팀장의 왼쪽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카앙!
늦지 않게 달려온 김신이 정백한의 검을 막아냈다.
“뒤로 물러서요!”
카가가가각!
엄청난 힘으로 맞붙은 김신의 검을 찍어누르려는 정백한과 인상을 찌푸리며 버텨내는 김신.
‘힘만 더럽게 쌔네!’
김신은 자신의 말을 듣고 4팀장이 뒤로 물러서자, 곧바로 검에서 힘을 빼며 부드럽게 흘려냈다.
키기깅!
무수히 많은 불꽃을 튀기며, 김신의 검을 타고 흘러내려 가는 정백한의 검.
검을 물리며 뒤로 빠지는 정백한을 향해 김신은 검기를 날렸다.
쐐액! 쾅!
묵직한 검기에 두 발자국 물러선 정백한.
다시금 그가 김신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지원이다!”
지하철 내부의 소탕을 끝낸 다른 길드의 지원이 도착했다.
3.
수호길드를 포함한 총 5개의 길드.
이어진 전투로 인해 꽤 많이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적은 하나고 이쪽은 다수다.
“흠...”
그 모습을 보고 되려 미소를 짓는 정백한.
김신은 그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보다 빠르게 지원을 온 길드의 길드장들이 그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모두 공격!”
스트라이커들의 폭격.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며 날아간 이능은 정백한이 반응할 새도 없이 그가 있던 장소를 무차별적으로 난타했다.
콰앙! 펑! 쾅!
바닥이 파이고, 공기가 진동한다.
약 20초 동안 이어진 이능의 폭격세례가 끝나자,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어떤 각성자라도 버티기 힘들 만큼 강력한 공격.
모두가 정백한의 패배를 떠올릴 쯤, 뿌옇게 올라온 먼지 사이로 붉게 빛나는 그의 몸이 보였다.
‘뭐지?’
서 있다.
몸에 멀쩡한 부분이 없을 만큼,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었지만 정백한은 분명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김신이 불길한 그의 모습에 달려들려는 순간.
“흐흐흐, 역시 이 느낌은 언제 느껴도 새롭군.”
상처를 입은 정백한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함께,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마나의 흐름은...!’
차이나타운에서 느꼈던 그 거대한 폭발 직전에 느껴졌던 마나의 흐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 아찔한 마나의 흐름이 시작되자, 김신은 모여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피하세요!”
정백한이 땅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자, 붉게 달아오른 그의 몸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이 시작됐다.
콰아아앙───!
넓게 퍼지는 강렬한 폭발.
가까이에 있어, 피할 수 없다.
폭발은 모든 방향을 노리고 있었기에.
‘하다못해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벌어줘야 해.’
막지는 못하더라도 충격에 대비할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짧은 고민이 끝난 김신은 곧바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후우...”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자, 오히려 냉철해진 정신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호흡을 깊게 들이쉰 김신은 곧바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단전으로부터 시작된 묵빛의 내공이 빠르게 혈도를 돌아 검에 담긴다.
지잉─!
터질듯한 내공을 담아 낮게 울리는 검.
‘폭발이 최대한 늦게 닿도록...’
넓게 퍼져오는 폭발을 향해 김신이 내공이 담긴 검을 마주 휘둘렀다.
뚫린 하늘에서 천둥이 내린다.
천마신공의 두 번째 초식, 뇌우(雷雨).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검기가 쏟아졌다.
쿠구구구구!
정백한의 공격과 부채꼴로 퍼지는 김신의 검기가 맞부딪치자.
콰아아아앙!
눈이 멀 것 같은 밝은 빛이 터져 나왔고, 그 빛에 김신의 모습이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