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1.
살갗을 따끔따끔하게 찌르는 맹수와도 같은 존재감.
빠르게 건물의 옥상을 넘어서 다가온 정체불명의 사람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빌런들의 앞에 선 순간.
‘쉽진 않겠군.’
한유성은 그가 적이라는 것과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슬쩍 한유성과 김신을 쳐다본 눈앞의 빌런이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빌런을 향해 말했다.
“진태야. 신의는?”
“형찬 형님, 죄송합니다.”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빌런은 가볍게 혀를 차곤 고개를 돌려 한유성에게 말했다.
“거기 그 치유사 나부랭이 좀 놓고 가줬으면 좋겠는데.”
“헌터에게 같은 팀원을 팔란 말인가? 자네는 그러면 거기 있는 조직원들을 놓고 가게. 그러면 내가 한 번 생각해보지.”
빌런의 조롱에 한유성이 화를 내지 않고 능글맞게 받아치자,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빌런이었다.
“역시 듣던 것처럼, 지랄 맞게 능글맞은 영감이구만.”
“내가 입담이 참 좋다네. 어때, 계속해보겠나?”
“씨발...”
당연하지만 명백한 거부 의사가 오간 후 벌어질 것은 전투.
한유성의 앞에 선 빌런이 마나를 끌어 올리자, 한유성 또한 자세를 잡으며 김신에게 말했다.
“어차피 이 전투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으니, 자네는 빠르게 소진한 마나를 회복하게. 그리고 신의를 지켜주게.”
상대의 수준이 한유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지는 만큼, 그 공격 하나하나의 여파를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전투.
“예, 부디 조심하십쇼.”
“걱정말게.”
옆에서 거들고 싶지만, 내공이 바닥난 만큼 마석을 이용해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한유성의 전투 이후에 벌어질 빌런들과의 전투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김신이 신의를 데리고 길드원들과 함께 천천히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
격렬한 마나의 흐름에 대기가 떨린다.
별다른 무기 없이 주먹을 쥐고 서 있는 한유성과 단검을 쥐고 마주 선 빌런.
조용히 마주하고 선 두 사람 중 빌런의 선공으로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됐다.
***
쾅! 쾅!
일격, 일격이 건물을 무너뜨리고 파괴한다.
‘이게 S급...’
인간을 초월한 S급 헌터들의 전투.
김신은 한유성과 빌런의 전투를 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벽을 넘어선 게 전부가 아니구나.’
S급에도 등수가 있듯 서로 간의 격차가 존재하는 법.
상위 100명 안에 들어야 가능하다는 S급 헌터의 무용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킬만했다.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른 빌런의 단검 공격을 가볍게 회피하는 한유성.
특유의 위빙과 스웨이를 적절하게 이용하며 인파이터 특유의 빠른 압박으로 몰아붙였다.
투쾅! 투쾅!
막상막하인 만큼, 중간중간 얕은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둘의 상황은 백중세.
하지만 김신은 두 사람의 싸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빌런이 아직 특성을 사용하지 않았어...’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한유성과 다르게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빌런은 생각보다 공격을 많이 하지 않고 회피에 집중했다.
‘능력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각성자들의 싸움에서 상대의 능력을 알고 싸우는 것과 모르고 싸우는 것은 극과 극인 만큼, 적은 확실히 한유성의 특성을 꿰뚫고 있었다.
단검을 역수로 잡고, 아래에서 위로 베는 빌런의 공격을 한유성이 다시 스웨이로 가볍게 흘리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피하지 못했다.
“...!”
촤악!
피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왼쪽 어깨를 깊게 베여버린 한유성.
“길드장님!”
“아빠!”
그 모습에 한설을 비롯한 모든 길드원들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움직였지만, 한유성은 몇 걸음 물러서며 오른손을 들어 다가오지 말 것을 전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빌런이 한유성에게 비꼬는 말을 하려 했지만.
“어때, 따끔─”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특성인가.”
“...!”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짜르며 핵심을 꿰뚫는 한유성의 말에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빌런.
“맞나보군.”
“알고있어도 이미 베여버려서 이젠 피하지도 못할 텐데?”
한유성은 빌런의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자세를 잡았다.
“허세는!”
확연히 차이 나는 속도.
달려드는 빌런과 다르게 확실히 둔해진 모습의 한유성이었지만, 그는 빌런의 돌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자그마치, 10년. 그 10년간 내가 괴수만 사냥 했는 줄 아는가.”
“...!”
“아는 게 전부가 아닐세.”
끄드드득─
바닥이 움푹 파이며, 마나가 한유성의 몸으로 빨려든다.
짧은 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신.
‘이런 미친...’
몸을 틀어 팔을 직각에 가깝도록 당기며 적을 강하게 치는 훅.
김신은 그 단순한 기술을 본 순간, 그가 어떤 스킬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저게 진짜 힘을 담은 유성권(流星拳).’
후웅!
짧고 강하게 내질러진 주먹이 빨갛게 달궈지며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빌런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빠아아악─! 쿠웅!
한유성의 타격과 동시에 옆에 있는 건물에 날아가듯 처박힌 빌런.
“꺽──!”
“형, 형찬 형님!”
듣는 사람까지 답답해지는 꽉 막힌 신음 소리와 함께 빌런이 주저앉았고, 한유성 또한 한계를 초월한 움직임을 보여준 탓인지 어깨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한설이 곧바로 달려가 한유성을 부축하자.
“뭐해! 저년 잡아!”
진태라는 이름의 빌런의 말에 빌런들의 조직원이 다가오려 했다.
바로 그때.
휘이이이잉!
마나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 엄청난 한기를 담은 폭풍을 만든 한설.
그녀는 다가오려는 빌런들을 스킬로 압박했고, 결국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한 빌런들은 몸을 움찔거리며 다가가지 못했다.
그사이 한설이 무사히 한유성을 부축해서 수호길드원들이 포진한 장소로 물러서자 김신은 다가가 그를 바닥에 앉히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럭저럭 버틸 만하네.”
한유성의 말에 한설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버틸만 하기는!”
왼쪽 어깨의 어깨뼈가 보일 정도로 심한 자상.
한유성의 얼굴을 보니,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회복용 아티펙트를 급한대로 사용하지만, 마나가 담긴 특성에 당한 상처라 그런지 쉽게 아물지 않는다.
‘힐을 써야겠어.’
빠르게 수인을 맺은 김신.
우웅-
오른손에 맺힌 초록빛의 힐을 한유성에 환부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 누군가 김신의 손목을 잡았다.
“...신의님?”
“내가 하겠네.”
언제 눈을 떴는지, 김신의 손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신의였다.
“고맙구만.”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일단 잠시 쉬시죠.”
현주영의 밝게 빛나는 손이 한유성의 상처에 올려졌다.
2.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인천항의 소탕 작전.
근처에서 들리던 고함과 괴성은 어느덧 멀리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지하철 내부는 거의 다 소탕했나 보네.’
애초에 빌런들이 인천항의 진입로에 잔뜩 있었던 만큼, 핵심지역을 빠르게 점령하는 것이 당연하다.
끝나가는 내부 소탕과 다르게 수호길드와 빌런들의 사이에는 미묘한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80명에 달하는 인원의 발을 묶은 김신의 존재와 부상 당했지만 신의의 도움으로 회복되어가는 S급 헌터 한유성.
심지어 적의 간부로 보이는 빌런의 패퇴는 일견 충격적이었는지, 몇몇 빌런은 도망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불안함을 느끼는 적에게 가장 달콤한 말은 다치지 않고 이 상황을 끝내는 것.
패배란 단어가 뇌리에 박힌 만큼, 적들에게 피할 수 없는 전투보단 항복이라는 단어가 들려오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네가 조직원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항복해. 그러면 최소한 죽는 사람은 발생하지 않을 거다.”
김신의 말을 듣자, 처음과는 다르게 확 죽은 분위기와 눈치를 보는 조직원들의 모습에 진태라 불린 빌런은 내심 갈등을 내보이는 것 같았다.
최상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김신의 말에 흔들리는 빌런들의 모습에 희망이 꺾이려는 찰나.
-여기는 태풍길드! 소탕이 끝난 길드는 긴급히 지원 바람!
팀장급 이상만 사용 가능한 오픈된 길드 채널을 통해 들리는 다급한 지원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외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차이나타운 건물 위까지 솟구치는 거대한 불길.
‘···이게 사람이 사용한 스킬이라고?’
직선상의 거리로만 따져도 최소 300미터.
그 먼 거리를 넘어서 전달되는 엄청난 마나의 파동.
눈앞의 빌런은 그 불길을 본 순간, 180도 달라진 목소리로 조직원들에게 말했다.
“큰형님! 큰형님이다!”
빌런의 말과 동시에 꺼졌던 불길이 타오르듯 함성을 지르는 빌런들.
가장 앞에 있는 진태라는 이름의 빌런은 김신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씨발, 큰형님이 온 순간. 니들은 다 뒤지는 거야! 애들아! 조져라!”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싸워야 한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이겨야 할 뿐.
달려오는 빌런들을 향해 이미 포지션을 잡고 있던 수호길드.
각 팀의 팀장들은 각자의 팀원들에게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3.
수비하는 쪽을 공격하는 자가 뚫기란 쉽지 않다.
한유성과 빌런의 전투 때부터 최악의 결과를 산정하고 배치된 수호길드의 팀.
펑펑! 화르르륵! 촤자자작!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적을 향해 가장 후열의 스트라이커가 지체하지 않고 스킬을 사용하자, 큰형님의 등장으로 달아올랐던 빌런들의 기세가 다시 한번 주춤하고 꺾였다.
‘싸움은 기세지만, 기세도 때에 맞춰서 다른 흐름을 보이기 마련이지.’
적의 수장이 등장했지만 어쨌든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고, 여전히 여기에 있는 빌런들은 헌터들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으아아아!”
기어코 이능의 세례를 뚫고 올라온 빌런에게 주어지는 건 전위의 자비 없는 검날과 디펜더의 방패세례.
빌런들의 특성은 대부분 근접전투계열 능력이 많기에 가능한 전술이었지만, 이 전투법은 확실히 적의 달아오른 사기에 물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왔다.
급한대로 빌런들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했지만, 그들과 헌터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씨발! 방패 뒤에 숨지 마라! 이 비겁한 새끼들아!”
방패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디펜더라는 존재의 부재.
방어에 치중된 특성을 가지고 있어도 그들의 사이에선 방패는 우습게 보이는 풍조가 있었기에 빌런들의 피해는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다.
“다 비켜! 내가 직접 뚫는다.”
적의 간부로 보이는 빌런 또한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는지, 급한 몸짓으로 사그라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진태라는 이름을 가진 빌런은 짧은 거리에서 빠른 공격을 하는데 특화된 만큼, 전열에 서 있는 어떤 전위와 디펜더의 힘으로도 버티기 힘들다.
그것을 깨달은 김신은 곧바로 빌런이 오는 방향을 지키고 있는 강한우에게 말했다.
“한우 씨! 저 빌런은 제가 상대합니다.”
“네?”
마석을 계속해서 사용하여 내공을 채우고 있던 김신의 모습을 봤던 강한우는 전방을 수비하다가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고, 김신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답했다.
“괜찮아요, 꽤 많이 회복됐으니까.”
내공을 쓰지 못하는 아까와 다르게 지금은 좀 많이 다를 거다.
전매특허인 버프마법과 특성, 내공의 삼박자를 모두 사용한 김신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달려나가 적의 앞으로 다가갔다.
“...!”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의 김신을 마주한 순간, 두 눈을 부릅뜨며 말을 잇지 못하는 빌런.
“넌, 여기 못 뚫는다.”
다급하게 내지르는 징박힌 건틀렛을 아까와는 다르게, 여유 있게 피한 김신은 묵빛으로 물든 주먹으로 한유성이 내지른 훅을 생각하며 비슷하게 휘둘렀다.
‘발경(發勁).’
후웅!
비슷한 소리가 들리지만, 확실히 결이 다르다.
‘아직 멀었어.’
김신으로부터 한참 먼 곳을 지나가는 빌런의 주먹과 내지른 빌런의 복부에 정확하게 꽂히는 김신의 주먹.
내공이 몸을 타고 들어가 내부를 진탕 시킨다.
빠악!
아까와는 다르게 피를 한 움큼 토하며 쓰러지는 빌런을 뒤로한 채, 김신은 이어폰을 통해 말했다.
“빨리 정리하고, 진입로 지원을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