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1.
빌런들의 조직인 흑룡파의 행동대장이자, A급 빌런인 이진태.
차이나타운과 연결된 비밀통로에서 신의를 감시하던 그는 갑자기 하늘에서 울리는 터지는 소리와 동시에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헌터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체 헌터새끼들이 어떻게 지하철의 존재를 아는 거야!”
습격은 예상했었다.
바로 어제 인천항에 침입했던 두 명의 헌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물류창고에서 비밀통로를 통해 신의를 빼냈던 것이었고, 인천항으로 오는 골목에 조직원들을 배치했었던 건데.
거기까지 생각한 이진태는 문득 어제 느꼈던 그 기묘한 기척이 생각났다.
‘설마, 그때 느꼈던 그 기척이?’
조직원들의 부상을 치료하기 전까지 건들지 말라던 큰형님의 명령.
그 명령 때문에 신의를 감시하던 중에 느껴졌던 그 기묘한 기척이 만약 헌터였다면...
“시발, 비밀통로까지 들어온 간 큰 헌터 새끼가 있었을 줄이야.”
이미 비밀통로가 알려진 이상 패배는 자명한 일.
이진태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일렀다.
“용수야 신의님 편하게 데리고 따라와라.”
“예!”
신의가 지금 가장 큰 인질이자, 목숨줄이다.
‘큰형님이랑 형찬 형님이 올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놓치면 죽는다.’
괴상한 아티펙트의 도움을 받아 신의를 납치하는 것에 성공하고, 그가 가진 아티펙트를 대가로 큰형님과 형찬 형님이 특수한 힘을 얻는 것을 약속받았다.
그것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진태 형님, 준비됐습니다.”
“가자. 놓치면 여기 있는 애들 다 죽는 거니까, 절대 놓치지 마라.”
“예! 맡겨만 주십쇼!”
빌런들에게 패배는 익숙하다.
***
차이나타운의 불 켜진 중국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빌런들.
수호길드의 모든 팀은 그들의 중간에 죽은 듯이 업혀있는 사람을 본 순간,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신의!’
이번 임무의 목표인 그의 등장에 무선으로 연결된 이어폰을 통해 한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흩어져서 뒤를 쫓도록.
빌런들도 신의를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에 더욱 그의 곁에 딱 붙어있었고, 그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해.’
신의의 목숨은 중요하기에 더더욱 여기를 못 벗어나게 해야 한다.
김신은 무선이어폰으로 수호길드원 모두에게 말했다.
“5팀장입니다. 적들의 시선을 잠시만 돌려 주십쇼. 제가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뒤를 쫓으라니까!
“지금 여기서 저들을 빠져나가게 두면 어디로 도망칠지 모르잖습니까. 시선만 끌어주시면 제가 저들에게서 신의를 떼어내 보겠습니다.”
김신의 확고한 발언에 한유성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도 답답한 것은 사실.
게다가 언제나 반전의 결과를 보여주는 김신의 발언 아닌가.
결국, 김신을 믿어보기로 한 한유성은 김신에게 되물었다.
-신호는 어떻게 줄 것인가.
많은 빌런들이 사방을 빠짐없이 살피는 만큼, 빈틈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티펙트와 가진 바의 힘을 사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다.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김신은 허공으로 사라지듯 투명해지며 말을 내뱉었다.
“적들이 무릎을 꿇을 겁니다.”
2.
틈을 만들기 힘드나, 만들어야 한다.
스르륵-
마치, 귀신처럼 모습이 사라진 김신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천천히 빌런들에게 다가갔다.
‘소리와 마나의 흐름이 격렬하게 울려 퍼지는 만큼, 쉽게 발각되지는 않을 거야.’
지금도 바로 옆인 지하철에서 이능의 폭발과 고함 비명이 울려 퍼지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김신은 그 마나의 흐름이 자신의 기척을 감춰주리라고 믿었다.
탓! 탓!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어 조용히 다가간다.
“...”
골목길의 끝자락부터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빌런들.
스윽-
신의를 업고 있는 빌런 바로 뒤에 있는 빌런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 김신이 있는 방향을 잠시 노려봤지만, 이내 시선을 떼었다.
‘기감이 좋네. 그때의 그 빌런인가?’
지원이 올 때까지 묶어놓을 수 있는 시간은 대략 20초 정도.
그 시간 동안 오롯이 신체의 능력과 특성으로만 저 빌런을 상대해야 한다.
저벅저벅.
전부가 각성한 빌런들이기에 언덕을 오르는 속도는 빨랐다.
‘인원은 대충 80명.’
몇 명의 발을 묶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많은 빌런들을 묶어놓을 수 있길.
“...적이다!”
한유성은 김신의 부탁대로 일부로 기척을 흘려 빌런들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건물의 옥상에서 지켜보던 김신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빌런들의 사이로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떨어졌다.
탓!
“기습이다!”
빌런들이 김신의 존재를 알아챘지만, 이미 한유성이 흘린 기척 때문에 시선이 돌아간 후.
김신이 예의주시한 빌런이 가장 먼저 공격을 해왔지만, 이미 늦었다.
-천마는 만인의 위에 있는 자. 내 앞에 서는 이들은 모두 무릎을 꿇으리.
김신은 묵빛의 내공을 가득 끌어올리며 진각을 내딛었다.
쿵!
벽을 넘고서 처음으로 사용한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크윽!”
엄청난 내공의 압력에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무릎을 꿇는 빌런들.
강한 힘을 지닌 각성자들을 찍어누르기 위해 사용한 천마군림보였지만, 그들의 힘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크윽...”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어찌어찌 몸을 일으키는 빌런이 한 명.
그 빌런은 김신의 기습직전 공격을 하려던 빌런이었다.
“...넌, 내 손에 뒤졌다.”
천천히 걸어오며 살벌한 말을 내뱉는 빌런을 뒤로 한 채, 김신은 신의를 업고 앞으로 나자빠진 빌런에게서 신의를 집어 뒤로 던지며 검에 손을 가져갔다.
3.
김신의 기이한 행보에 꽤 많이 놀랐던 한유성이었지만, 이번엔 그가 무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저 많은 적에게서 어떻게 신의를 떼어내겠다고...’
장담에 가까운 말과 다르게 적들의 인원은 계속해서 늘어나 80여 명.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게 아닐까.’
움직이는 순간, 적들은 분명 신의를 인질로 붙잡고 버틸 것이다.
빌런들의 대부분은 B급 이상.
더군다나 80명에 달하는 적들 속에서 어떻게 신의를 구한단 말인가.
투명해진 김신의 기척을 쫓고 있던 한유성은 그가 빌런들이 오는 골목에 있는 옥상에 올라가자, 이어폰을 통해 모든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모두, 전투준비.”
신의의 존재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5팀장의 존재도 크다.
-적들의 시선을 잠시만 돌려 주십쇼. 제가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김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 공격 직전에 기척을 흘려 빌런들의 시선을 끈 한유성.
“적이다!”
적들의 시선을 끈 그 순간까지도 한유성은 어째서인지 김신이 무언가를 해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때, 빌런들의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마나의 흐름.
‘...기어코!’
익숙한 마나의 흐름과 함께 무더기로 모여 있던 빌런들이 단체로 이상증세를 내보였다.
“크윽!”
-적들이 무릎을 꿇을 겁니다.
‘5팀장...자네는 날 항상 놀라게 만드는군!’
장담한 것처럼 80명에 달하는 인원이 이유 모를 현상에 의해 무릎을 꿇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신의도 5팀장도 잃는다.
“모두 공격!”
한유성은 주먹을 움켜쥐고 달려나갔다.
***
기세는 흐름이고, 흐름을 놓치면 기세도 꺾인다.
‘버텨야 해. 어떻게든.’
화경이라는 경지로도 얼마 버티지 못할 만큼, 어마 무시한 내공의 소모를 보이는 천마군림보.
김신의 내공이 80명에 달하는 빌런의 발을 묶어놓는데 사용된 만큼, 김신은 다가오는 빌런에게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의 여력이 없었다.
‘20초.’
고개를 슬쩍 돌려본 골목의 끝에서 수호길드의 헌터들이 달려온다.
그와 함께 시야에 검을 쥐고 다가오는 빌런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마나···그때의 쥐새끼가 너였구나.”
“그걸 이제 눈치챘어?”
빌런의 투박스러운 발걸음은 천마군림보의 영향을 확실히 받는 것 같다.
내공을 쓰지 못하지만, 모든 여력을 다 쓴 건 아니다.
김신은 호흡을 길게 내쉬며 특성을 사용했다.
[가속]
머릿속에서 핑-하는 느낌과 함께 당겨지는 팽팽한 긴장감.
고양된 신체는 피의 흐름마저 느껴지는 것처럼 만들고,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게 했다.
분노에 가득 찬 적의 움직임이 보인다.
‘맨손?’
주먹에 덧씌워진 징 박힌 건틀렛.
맨손 격투 스타일의 빌런이 검의 사거리보다 가까이에서 접근하자, 김신은 검으로 가져갔던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후웅!
맹렬한 파공음과 함께 강력한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얼굴을 향해 다가온다.
스윽-
김신은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으로 회피하며, 오른손으로 짧게 옆구리를 가격했다.
뻐억!
“큭!”
귓가에 스치며 지나가는 적의 공격.
그리고 김신의 타격과 동시에 들리는 억눌린 신음.
김신은 주먹에서 느껴지는 강한 반탄력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을 써야 하나.’
아티펙트의 방호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다.
‘그런데...굳이 공격하지 않아도 되잖아?’
시간은 그 짧은 사이에 흘러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개새끼가!”
여유롭게 피하며 받아치는 김신의 모습에 화가 난 빌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굳이 상대해 줄 필요는 없었다.
“미안, 너는 나 말고 저 뒤에 오는 무서운 분이랑 싸워라.”
김신은 몸을 틀어 왼손으로 공격하려는 상대를 양손으로 밀치며 뒤로 물러섰고, 그 때문에 적의 공격은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다가오려는 빌런과 뒤로 물러서는 김신.
내공이 거의 바닥을 보이자, 김신은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김신의 빈 자리를 채우며 들어오는 한유성.
쿵!
엄청난 무게로 땅을 뒤집으며 도착한 한유성은 빌런의 접근을 막으며, 김신에게 말했다.
“괜찮나?”
내공이 바닥난 김신이었지만 한유성의 말에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한유성의 도착과 동시에 20초가 흘렀고, 쓰러졌던 빌런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탓!
김신과 함께 수호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뺀 김신과 한유성.
두 사람의 옆에는 신의가 멀쩡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씨발.”
그 모습에 신의를 인질로 잡겠다는 계획을 실패한 빌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치 중인 80명의 빌런과 30명의 수호길드의 헌터.
숫자로는 압도적인 차이지만, 그들과 수호길드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적의 기세가 꺾였다.’
인질을 뺏겼고, 김신에 의해 짧은 시간이지만 압도적인 무력차이를 느꼈다.
그에 반해 수호길드의 길드원은 인질이었던 신의의 구출로 사기가 오른 상황.
‘역시 전투는 흐름이야.’
일촉즉발의 상황 속, 적의 대장으로 보이는 빌런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뒤로 물러서자니 전투가 헌터들에게 일방적인 모습으로 흘러가는 인천항의 모습이 걸리고, 싸우자니 눈앞의 김신과 너무나도 유명한 S급 헌터 한유성의 존재가 걸린다.
“빌어먹을 헌터새끼들.”
“입이 험하구만.”
웃는 낯으로 빌런의 말을 받아친 한유성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다.
한유성의 옆에 서 있던 김신은 검을 빼 들며 말했다.
“항복해.”
“까는 소리하고 있네.”
적의 표정에는 초조함은 있지만, 어째서인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느낌도 함께 느껴졌다.
그 이중적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낄 무렵.
“...!”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