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1.
“이게 뭡니까?”
건네받은 아티펙트를 돌려보는 김신에게 유석만이 설명해줬다.
“소탕한 현상금이 달린 빌런의 거처에서 나온 아티펙트입니다.”
“근데 이걸 왜...”
“사실, 다른 걸 드리고 싶었는데 김신 씨에게는 그걸 드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이어지는 유석만의 부연설명은 이랬다.
아티펙트의 주인인 빌런이 감정을 받지 못해 비고에 숨겨둔 아티펙트.
그 빌런은 잡히는 순간까지 이 아티펙트를 찾았다고 했다.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유석만의 말은 목숨 빚을 갚는 지금의 상황과 별 연관이 없어 보였다.
그 때문에 김신이 유석만을 향해 살짝 얼굴을 찌푸리자, 그는 김신의 얼굴을 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김신 씨를 찾는 과정에서 약간의 뒷조사를 했었습니다.”
“뒷조사요?”
“아무래도 단서가 ‘인천항 정찰 임무에 자원한 헌터’라는 것 단 한 가지뿐이었기 때문이죠.”
“...”
찾는 과정이든 어쨌든 간에 누군가 자신의 뒷조사를 했다는 것은 기분이 안 좋은 법.
김신의 표정이 살짝 굳은 것을 본 유석만은 재빠르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정중히 사과하는 유석만의 모습에 김신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그래서 제 뒷조사로 뭘 알아냈습니까?”
긴장했는지 침을 삼키는 유석만의 모습에 김신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말할 것을 기다렸다.
“김신 씨가 2단 승급을 한 헌터이자, 감정사라는 것을요.”
“그럼 이걸 주는 이유가?”
“예, 제가 잡은 빌런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그 아티펙트. 과연 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어이가 없어서 답을 하지 못한 김신.
그의 모습에 유석만은 다시 한번 김신에게 깊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신은 손에 들린 아티펙트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목숨값으로 빌런을 잡아 얻은 아티펙트를 주다니...”
어이는 없었지만, 사실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티펙트를 감정 할 수 있는 지금은 오히려 이런 종류 아티펙트를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웃긴 건 웃긴 거다.
김신은 손에 들린 아티펙트를 가볍게 손에 쥔 채, 대기실로 돌아갔다.
***
둥글다, 은빛이다.
김신은 책상에 앉아 아티펙트를 요리조리 만져보며 생각했다.
‘질감이 생선의 비늘 같은 느낌인데?’
결의 방향대로 만지면 미끈하고, 거꾸로 쓰다듬으면 까끌까끌하다.
마치, 김신의 생각처럼 아주 작은 생선의 비늘을 뭉쳐놓은 것 같은 느낌.
김신은 손에 쥔 아티펙트를 바라보며 조용히 감정을 사용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시프, 혹은 어새신.
김신이 아티펙트를 통해 보고 있는 남자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다.
살기 위해 훔치고, 복수하기 위해 죽인다.
유렌이라는 작은 마을의 평범한 경비대의 대원이었던 남자.
에트왈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마을에 찾아온 마법사가 주는 아티펙트를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마을과 자신에게 마법으로 도움을 주었던 마법사였기에 에트왈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었다.
“내가 잠시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하는데 다녀올 동안만 맡아주게나.”
그리 크지 않은 물건이기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던 에트왈이지만, 이내 별다른 생각 없이 아티펙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3일 후.
마을에 찾아온 한 무리의 사람들.
“여기에 마법사로부터 특이한 물건을 받은 이가 있나?”
에트왈은 그때 그 아티펙트를 주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을 사람 모두를 죽였으니까.
“이 마을도 그 저주받을 마법사와 한패다!”
봉인된 아티펙트의 봉인을 풀었다는 죄로 도망치던 마법사.
유렌 마을은 에트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법사를 대신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두 죽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 광경을 본 에트왈은 아티펙트를 부서지게 움켜쥐며 다짐했다.
‘모두 다 죽이겠다.’
아티펙트를 주고 간 마법사도, 마을 사람 전부를 죽이고 간 한 무리의 사람들도.
에트왈은 이후 마을을 몰살시킨 이들이 누군지, 그리고 이 아티펙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제국의 마법사들.
그들이 찾던 물건, 바로 이 변화의 구슬.
에트왈은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아티펙트를 이용해 그들의 뒤를 쫓으며 하나하나 죽여갔다.
2.
[전설등급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
아티펙트의 기억을 본 김신은 아티펙트의 사용법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뭐 이리 사용법이 모호한 아티펙트가 다 있지?’
아티펙트의 기능은 사용자의 주변 환경에 맞추어 자유롭게 변화하는 아티펙트.
기억 속 에트왈은 이 아티펙트를 은신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촤르르륵-
심장 부근에 아티펙트가 닿자,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조각조각 흩어지며 몸을 타고 번져갔다.
아티펙트가 온몸을 전부 덮고 난 후, 은빛으로 빛나는 김신의 외형이 원래 김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신기하네.’
이질감도 없고, 느낌도 거의 없다.
김신은 곧바로 아티펙트를 사용해봤다.
의지를 담아 마나를 끌어 올린다.
지금 김신의 생각은 투명해지는 것.
지잉-
공간이 울렁거리며, 거울 속의 자신이 마치 허공으로 사라지듯 천천히 투명해졌다.
‘대박인데?’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마법과는 다르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김신은 이 아티펙트의 효과를 보고 생각했다.
‘작전을 새롭게 짤 수 있겠어.’
***
항상 그렇듯 또다시 해가 지고 달이 떴다.
하지만, 오늘의 달은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하루가 금방 가는구나.’
작전을 실행에 옮기는 날.
인천항 소탕에 참여한 모든 길드는 각자의 차량에 탑승하여 인천항 인근에서 집결했다.
“5팀장은 잠시 나랑 같이 가지.”
“예.”
예정해놨던 그대로 김신은 한유성과 함께 길드장들이 집결해있는 장소로 가서 비밀장소인 지하철의 존재를 말했다.
“적들의 비밀장소는 지하철입니다. 그리고 신의가 그 장소 어딘가에 납치되어 있고요.”
반응은 대부분 놀람이나 경악으로 대동소이했다.
그중 이번 작전에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태풍길드의 길드장은 굳은 얼굴로 한유성에게 말했다.
“그걸 왜 지금 말씀하십니까?”
“작전이 새어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어나가요? 여기 빌런들과 내통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아뇨. 작전이 작전인 만큼, 그저 주의를 기울이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작전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지하철. 저희는 그 안에 있는 빌런을 소탕하고, 신의를 구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신이 한유성에게 했던 설명처럼 한유성 또한 길드장들에게 비슷한 내용으로 그들이 이해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약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10년 동안 몰랐던 비밀통로의 존재를 뒤늦게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 길드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작전지역을 변경해야겠군요.”
“수호길드는 차이나타운의 수색을 맡겠습니다.”
“차이나타운이요?”
“정찰 과정에서 적이 도주할 우려가 있는 장소로 봤습니다.”
“지원은 필요 없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짧게 회의를 끝마친 각 길드장은 작전지역을 변경하여 인천항과 지하철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중 수호길드는 인천역 바로 옆에 붙어있는 차이나타운을 수색하기로 했다.
3.
야심한 밤.
김신이 정찰을 끝낸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달은 빛을 반사하지 못했다.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달라진 작전.
하지만, 전부 프로인 만큼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인천항으로 가는 길목에 깔린 빌런들.
‘역시 뭔가 이상해.’
처음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필시 좋은 결과는 못 얻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계획은 변경되었고, 각 길드는 다르게 배치받은 곳으로 가서 준비를 시작했다.
스윽-
기습을 준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적이 경계를 허무는 것.
스르륵-
유석만이 준 아티펙트를 활성화시키자, 김신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이 투명해졌다.
“신호, 알지?”
“예.”
미리 일러둔 대로 차이나타운의 뒤에 있는 공원에 팀원들을 대기 시킨 김신은 암살에 특화된 특성을 가진 길드원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미리 지정해둔 위치로 달려갔다.
발걸음조차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다가간다.
투명해진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발걸음 소리마저 희미하며, 기척조차 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귀신처럼 다가간 김신은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는 빌런들을 하나씩 암살하기 시작했다.
골목길을 돌아 들어오는 빌런이 갑자기 픽, 하고 힘없이 쓰러진다.
스륵스륵-
쓰러진 빌런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끌려가 골목길 한구석에 놓인다.
‘여기는 끝났고.’
허공에서 다시 생겨나는 사람의 모습.
김신은 구역정리가 끝나자, 은신을 풀고 손에서 신호탄을 빼든 상태로 시간을 확인했다.
‘충분하네.’
외곽만 해도 돌아다니는 빌런이 적지 않은 만큼, 각 길드에서 차출된 암살을 맡은 길드원들은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외곽을 정리했다.
외곽을 경계하는 빌런들의 암살과 동시에 잠입하는 대기 중인 헌터들.
총 18개의 길드.
약 400명의 헌터.
인천항의 빌런이 대략 600명 정도인 것을 생각해보면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헌터들에게는 이번 작전의 판도를 바꿀 아주 값진 정보가 있었다.
바로 비밀통로에 대한 정보.
생각보다 한산한 인천역과 신포역 주변을 빠르게 정리한 헌터들은 돌입할 순간을 기다렸고, 곧 돌입을 알리는 사인이 각 구역에서 시간에 맞추어 떠올랐다.
피슝!
김신이 있는 구역에서도 맹렬한 소리를 내며 떠오르는 신호탄 하나.
퍼엉!
하늘을 밝게 물들이는 반짝이는 별들이 퍼지는 순간.
“진입!”
작전이 시작됐다.
***
전투의 시작은 늘 그렇듯 기습을 하는 쪽이 유리하다.
바로 어제 있었던 사건 때문에 빌런들은 인천항을 예의주시했지만, 김신이 비밀통로를 알아낸 정보를 그들은 몰랐기에 기습은 몇 배의 효과를 냈다.
“으악!”
사방에서 들리는 살벌한 병장기의 부딪치는 소리와 이능과 이능이 맞부딪치는 폭음이 울려 퍼진다.
“저희도 지원 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옆에 있던 강한우의 말에 김신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적은 확실히 이쪽을 통해서 나올 겁니다.”
이번 임무의 핵심은 뭐라 해도 신의의 구출.
김신은 어두운 차이나타운의 골목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몇 개의 가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전투.
지능이 있는 적과의 전투는 누가 더 실수하지 않고 적의 실수를 노리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신의 수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나온다.”
좁은 골목길 속, 건물 사이로 빠져나오는 빌런과 힘없이 업혀진 채로 끌려 나오는 누군가.
‘분명 신의일 거다.’
빌런들이 그를 살려두려는 이유는 모른다.
김신이 알아내야 할 것은 그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배후를 밝혀야 해.’
빌런들을 조종하는 인물.
스릉-
김신은 검을 들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전투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