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47화 (47/116)

《47화》

1.

김신은 쫓아오는 빌런을 피해 어느 건물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4서클 마법, 미러 이미지(Mirror image)로 시선을 돌려볼까?’

뒤따라오는 빌런을 상대로 쓸 수 있는 가장 혼란을 주는 방법.

김신은 그 방법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광경을 보며 건물 지붕을 뛰어넘었다.

스윽-

뛰어넘는 지붕마다 미러 이미지를 깔아둔다.

빌런도 머지않아 김신이 지붕을 넘어 다닌다는 것을 깨닫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을 거다.

‘고생 좀 해보라고.’

더미에는 아주 간단한 행동밖에 심어둘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거 뭐야!”

“야! 빨리 찾아!”

예상대로 뒤늦게 옥상의 존재를 알아챈 빌런들이 김신을 뒤쫓았지만, 그들은 김신이 만들어 놓은 더미에 시간이 끌려 그를 놓치고 말았다.

신의의 행방과 비밀통로의 확인.

두 가지의 임무를 확실하게 끝낸 김신은 여유롭게 인천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

수호길드로 무사히 복귀한 김신은 곧바로 한유성이 있는 길드장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게.

미리 연락했었기에 김신은 별다른 절차 없이 길드장실로 들어갔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일세.”

“무사히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한유성의 환대를 받으며 자리에 앉은 김신은 비서가 가져온 차를 건네받았다.

“잠시 차라도 한잔하며 편하게 말하게.”

배려해주는 한유성의 모습에 김신은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오면서 정리했던 정보를 차례차례 그에게 말해주었다.

“우선, 신의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렇구만. 신의는 빌런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 쉽게 죽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네.”

“예, 예상했던 대로 빌런은 신의를 그들의 부상자 치료에 이용하려고 하더군요.”

김신의 말에 한유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밀통로를 알아냈습니다.”

“정말인가?”

한유성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포장하지 말게. 자네는 지난 10년간 베일에 감싸진 비밀을 알아낸 것이니 말이야.”

그렇게 말한 한유성은 잔을 내려놓고 김신을 보며 조용히 귀담아들을 준비를 했고, 김신은 그런 한유성의 모습에 인천항에서 있었던 일을 천천히 풀어서 설명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하철로 연결된 비밀통로의 설명과 신의가 갇혀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차이나타운.

중간중간 위기마저 있던 김신의 정찰임무를 조용히 듣던 한유성은 김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조용히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정말 수고가 많았어. 항상 자네에게 기대게 되는구만.”

조금 멋쩍어지는 극찬에 조용히 있던 김신에게 한유성은 그가 말한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한 계획의 큰 틀을 말했다.

“자네의 정보로 생각하자면 이번 소탕 작전의 핵심은 아무래도 지하철역이겠지?”

“예.”

김신의 답에 조용히 턱을 만지던 한유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계획에 참여하는 모든 길드에 이 정보를 전달해야겠어.”

김신은 한유성의 말에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어 그에게 말했다.

“길드장님 그건 조금 미뤄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런가?”

협력하는 길드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한유성이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처럼 그는 김신의 말에 고개를 꺾으며 의문을 표했고, 김신은 그의 의문에 답했다.

“그 정보가 퍼지면 새어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김신은 한유성과의 독대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걸리는 게 많아.’

-그러니까. 우리 큰형님은 이상한 새끼들한테 코가 꿰이셔서는 우리한테 이런 가오 상하는 일을 시키신다냐.

물류창고의 빌런이 했던 대화.

김신은 서울로 복귀하며 계속해서 캠에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며 곰곰이 생각했었다.

‘큰형님의 존재가 조직의 보스라면, 왜 코가 꿰였다는 표현을 썼을까?’

코가 꿰였다는 말은 누군가에게 지배를 당한다. 혹은 조종을 당한다는 의미.

그런 의미에서 빌런의 대화는 인천항을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를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체 누가? 어디에서?’

인천을 제외하고는 빌런들이 발붙이고 살만한 장소는 없다.

모든 도시에 전부 헌터들이 상주해 있었으니까.

‘빌런을 조종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보를 함부로 공유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어.’

정보는 전투에서 중요하지만, 반대로 그 정보를 바탕으로 짠 작전이 적에게 유출되면 헌터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

그러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은 정보의 최소화.

핵심적인 정보는 적의 비밀통로가 이어지는 장소가 지하철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 해당 정보를 풀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내가 빌런의 인원수까지 알아낸 것은 아니니까.’

어차피 적의 숫자를 알지 못하기에 헌터들은 더욱 만반의 준비를 취할 것이고,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김신은 이미 한유성을 만나기 전에 그러한 결론을 내놓았고, 그렇기에 그의 의견에 반대를 한 것이었다.

***

김신의 설명을 들은 한유성은 그의 생각에 깊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그마한 정보를 가지고 그런 결과를 유추해내다니.’

예리하다.

단어의 뜻처럼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를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이어진 김신의 타당한 반론은 한유성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작전의 핵심은 지하철의 존재일 뿐이지, 그 메인으로부터 연결되는 통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작전의 시작 직전에 각 길드에 전파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신의의 구출과 죽은 헌터들의 복수가 어쩌면 이번 작전의 핵심.

사실, 괴수를 조종한다는 빌런의 존재는 밝혀진 게 없었기에 거의 논외로 취급되었고, 그것은 김신이 따로 알아내려던 문제였다.

한유성의 답에 김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저희 길드는 그 작전에서 차이나타운의 소탕을 맡았으면 합니다.”

작전의 핵심은 지하철.

그런데 갑자기 차이나타운의 소탕을 맡자니?

고개가 절로 꺾여지는 김신의 질문에 한유성이 의문을 표하자, 김신은 그에게 설명했다.

“제 생각에는 지하철이 공격을 받으면 차이나타운을 통해서 도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유독 그 근처에 뚫린 비밀통로가 거대해서입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니 소탕지역에 관해서는 길드장님의 결정을 따르겠습니다.”

“흐음...”

길드장의 위치에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작전의 경중을 구분하는 것.

이번 소탕은 크게 보면 각 길드의 이권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한유성은 조용히 고심한 후, 김신에게 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3.

각 길드는 김신이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짰고, 그 계획의 실행은 다음 날 밤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전달은 신의의 생사와 대략적인 위치인 1부두의 물류창고로 전달되었다.

아마, 지하철의 존재는 작전 직전에 전파될 것이다.

“수고했네. 정말로 수고했어.”

다시 한번 공로를 인정받은 김신은 한유성에게 정찰의 보상을 약속받은 후, 인천항 소탕 작전이 실행되는 다음 날까지 휴식을 부여받았다.

남는 시간인 하루 동안 팀원들과 함께 모의 전투장에서 수련을 이어나가던 김신.

“인아는 이제 그 아티펙트 잘 다루네?”

“헤헤. 시간 남을 때마다 짬짬이 내려와서 연습했더니 이제 꽤 쓸 만한 거 같아.”

“명화는 할만해?”

“예!”

팀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연습을 봐주고 자신의 연습도 이어나가던 중, 먼저 수련을 끝마치고 올라갔던 강한우가 다시 내려와서 김신에게 다가왔다.

“팀장님, 신화길드에서 어떤 분이 팀장님을 보려고 찾아왔다는데요?”

“신화길드?”

강한우의 말을 들은 김신은 목에 걸린 수건으로 가볍게 땀을 닦고, 모의 전투장에서 나와 1층의 홀로 올라갔다.

‘누가 찾아온 거지?’

신화길드라 함은 자신과 별다른 접점이 없는 길드.

애초에 강서구에 있는 길드였기에 김신이 그 근처를 간 적도 별로 없었다.

띵동-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신.

홀로 다가간 김신은 홀을 훑어보자마자 누가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왜?’

김신을 찾아온 손님은 다름 아닌 인천항에서 그의 도움을 받은 신화길드의 바운티헌터, 유석만이었다.

***

신화길드의 B급 바운티헌터 유석만.

김신의 도움을 받은 그는 인천항에서 무사히 벗어난 직후, 김신을 수소문했다.

‘찾기 힘드네?’

바운티헌터인 만큼 사람을 찾는데는 도가 튼 유석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김신을 찾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린 탓에 만 하루가 꼬박 지난 다음에야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으로 보상을 해야 할까.’

위험을 안고서까지 자신의 탈출을 도운 김신이었기에 은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석만은 확실하게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마석이나 돈은 충분히 많겠지.’

김신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바로 그의 헌터 랭크는 B급.

2단 승급과 함께 불사길드의 이미지 추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탓에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 아마도 돈이나 마석은 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유석만은 어렵게 찾아온 수호길드의 홀에 앉아 커피를 조용히 마시며 그를 기다렸고, 곧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콧매와 예리한 눈.

약간 짙은 눈썹과 옅은 미소를 지은 입술.

흥미롭다는 표정을 자신을 바라보는 김신의 모습에 유석만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을 구해준 당사자임을 알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할까요?”

유석만의 말에 말없이 짙은 미소를 지으는 김신의 모습에 그는 다시 한번 김신을 마주 보며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신화길드의 B급 바운티헌터, 유석만이라고 합니다.”

“김신입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인천항에 고립되셨던 헌터 아닙니까?”

“하하, 그렇군요.”

나름대로 능력 있는 바운티 헌터인데...

머쓱해진 기분에 가볍게 머리를 긁적인 유석만은 김신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찾아온 이유는 그때 받았던 빚을 갚고 싶어서요.”

유석만의 모습에 김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저는 그런 것을 사양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행이군요. 이렇게 대뜸 찾아오시면 어떻게 자신을 찾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김신은 유석만의 말에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답했다.

“바운티헌터가 사람을 못 찾으면 쓰겠습니까?”

“하하, 맞죠. 사람 찾아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운티헌터니까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

자신 있는 김신의 모습에 가볍게 그를 다시 본 유석만은 찾아온 본론을 말했다.

“목숨 빚을 갚으려는데, 아무래도 소소한 물건은 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걸 가지고 왔습니다.”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든 유석만.

“그것으로 빚을 갚으시려는 겁니까?”

“예.”

김신은 유석만의 물건을 본 순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둥근 원형의 구체.

그것은 은빛의 반짝이는 야구공정도의 크기를 가진 아티펙트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