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1.
지하철 내부의 사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밀통로인 만큼 관리는 철저하게 해 둔 것 같네.’
몸을 숨길만 한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반대로 그만큼 위치를 발각시킬 만한 장애물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김신은 소소한 미련은 내려 두었다.
지하철 군데군데 돌아다니는 빌런들의 모습과 어딘가를 지키고 있는 빌런들이 보인다.
디텍트 마법과 똘망이의 캠 화면으로 주변을 훑으며 들키지 않게 수색하길 15분쯤.
인천역 역사 근처에서 생각보다 빌런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가 눈에 띄었다.
철로 옆에 뚫려있는 평범한 비밀통로지만, 그 크기가 훨씬 크고 넓다.
‘일단 접근해보자.’
지하철 내부를 돌아다니는 수색 인원도 어두운 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랜턴을 들고 다니는 만큼, 김신이 가고자 하는 비밀통로로 접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도망쳤다고?
입구를 지키는 빌런이 보일 정도로 접근하자, 그 너머에 있는 빌런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어.’
기둥 뒤에 몸을 숨긴 김신은 청각을 증폭시켜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엿듣기 시작했다.
***
신의(神醫), 현주영.
죽지만 않으면 누구든 살려낸다는 뛰어난 회복특성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
기절에서 깨어난 그는 사방 곳곳에 적힌 중국어를 보고서 자신이 어디로 끌려왔는지 깨달았다.
‘차이나 타운인가...’
악명 높은 인천항의 빌런들.
현주영은 그런 그들에게 자신이 왜 납치당했는지 몰랐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있었다.
‘처음 있던 장소에서 기절시켜서 데려올 정도면 적어도 죽이지는 않겠군. 치료에 써먹으려고 하는 건가?’
아티펙트는 뺏겼지만, 현주영은 그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진 각성자다.
“...”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자, 현주영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빌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빌런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한가?”
“대충 알 거 같은데요.”
“눈치가 빠르네. 아니, 너무 당연한 건가?”
“대놓고 사방에 중국어가 쓰여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겠죠?”
태연한 현주영의 모습에 피식 웃은 눈앞의 빌런은 그에게 말했다.
“오늘 댁을 구하겠다고 여기 온 멍청이가 있었어.”
“네?”
“헌터들에게 칭송이 자자하신 댁을 구하겠다고 여기에 헌터가 왔다고.”
현주영은 빌런의 말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헌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구하러 와줬다는 것에 솔직히 놀란 것이다.
감동에 젖어있는 현주영을 향해 빌런은 다시 한번 말했다.
“좋아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그 쥐새끼 같은 헌터가 곧 잡힐 거 같거든.”
“...!”
자신은 쓸모가 있어서 건드리지 않는 것뿐이라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빌런은 현주영의 얼굴에 대고 느릿하게 말했다.
“그래. 그 쥐새끼가 잡히면 본보기로 내가 직접 당신이 보는 앞에서 그 쥐새끼를 직접 찢어 죽여주지. 크크큭, 댁을 죽일 수는 없으니 말이야.”
미친놈처럼 연신 웃음을 내뱉는 빌런의 말을 듣는 순간 현주영은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모든 빌런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온 범죄자들.
평범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굳어가는 현주영의 표정을 보며 비웃던 빌런에게 옆에 서 있던 부하가 다가가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말하자, 그것을 듣던 빌런이 부하에게 화를 냈다.
“뭐? 도망쳤다고?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놓쳐!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
빌런의 감정이 파도처럼 넘실거리자, 그와 함께 퍼져가는 마나의 파동.
분노를 필터 없이 표출하던 빌런이 갑자기 화내는 것을 그만두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바깥에 우리 애들이 몇 명이지?”
“2명입니다.”
재빨리 답하는 부하의 말에 더더욱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빌런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나 잠깐 앞에 나갔다 올 테니까. 잘 감시하고 있어.”
“예!”
2.
일련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던 김신은 불편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 직후, 자신이 감지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감이 좋을 줄이야.’
감지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마나의 파동으로 감지해 낸 건진 모르겠지만 저 정도 수준의 빌런이라면 김신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저쪽은 다수이고, 자신은 혼자였으니까.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는 빌런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사용하고 있던 마법과 운용하고 있던 내공을 모두 회수한 채, 기척을 최대한 줄이고 빌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온다.
‘어쩌지.’
걸리면 위험하다.
뚫고 나갈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가 된다.
고민하는 지금도 계속해서 라이트를 비추며 다가오는 빌런의 모습이 보인다.
빌런과 김신의 거리는 어느새 5m.
기둥 하나만을 남겨둔 채,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여기쯤이었던 거 같은데...”
점점 더 거리를 좁히는 빌런이 기둥 뒤를 보기 직전.
탓!
김신을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3m 높이에 설치된 지하철 동력원 위에 몸을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김신과 동시에 김신이 있던 자리를 보는 빌런.
“없네? 분명 세 명의 마나가 느껴졌는데.”
김신은 머리를 긁는 빌런의 모습을 침조차 삼키지 않고 조용히 바라봤다.
‘걸릴 뻔했다.’
***
한차례 고비가 지나가고.
김신은 다시 비밀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빌런의 모습을 똘망이의 시점인 캠을 통해 보고서야 땅으로 내려왔다.
‘정찰은 이만하면 충분하겠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가볍게 닦아내고, 들어왔던 비밀통로의 입구로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는 김신.
다시 1부두로 돌아가니, 돌아다니는 경계 인원이 보이기에 똘망이를 날려 보내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위치는 확실히 어딘지 알겠어.’
인천역 바로 뒤에 붙어있는 차이나타운.
김신은 엿들었던 대화를 통해 알아낸 정보를 기억하며 소탕 작전의 갈피를 대충 잡을 수 있었다.
메인은 지하철 철로.
그러니 작전의 중심 또한 철도를 점령하는 데에 힘을 실어야겠지.
일망타진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먹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 김신은 왔을 때와 똑같은 길로 걸음을 옮겼다.
캠으로 빌런들이 들고 있는 라이트의 위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컨테이너를 넘어 다닌다.
그렇게 1부두의 끝까지 도착할 즈음.
똘망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의념으로 전달됐다.
-삐익!
“...!”
출입구에 사람이 많다는 똘망이의 말.
급하게 캠의 화면을 보니, 유석만을 잡으러 갔던 빌런들이 결국 그를 잡지 못해서 돌아오고 있었다.
“하...”
산 넘어 산이다.
3.
김신은 1부두 끝에 있는 컨테이너에 몸을 숨긴 채 머리를 내밀어 출입구를 지켜봤다.
‘왜 갈 생각을 안 하니.’
마치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빌런들의 모습에 애가 타는 김신은 슬쩍 시계를 쳐다봤다.
[05:16]
지하철 내부를 살펴보느라 시간을 오래 끌었던 탓에 어느새 동이 틀 시간이 다 됐다.
‘수영이라도 해야 하나.’
육지에서는 발각되더라도 충분히 저항할 수 있지만, 바다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바다가 더 위험해.’
고개를 털어 수영이라는 선택지를 빼고 나니, 남는 것은 정면돌파뿐이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다른 부두의 출입구까지 갈 시간이 부족했기에.
“...”
최대한 1부두에서 멀어진 김신은 1부두와 2부두의 사이 지점에서 출입구를 보며 고민했다.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똑같은 수법에 두 번은 안 걸리겠지?’
사람인 이상, 처음과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오히려 입구를 더 단단하게 방비할 것이다.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이 흘러 어느덧 5시 41분.
여름의 끝자락이자, 가을의 초입인 현재 일출은 대략 6시 10분 전후.
30분가량의 시간 동안 출입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발각은 시간문제다.
똘망이의 캠과 주변을 번갈아 살펴보던 김신의 손길에 지금 닥친 위기를 극복할 만한 물건이 잡혔다.
출렁.
‘이거 어쩌면, 가능하겠는데?’
***
입구를 지키는 빌런들.
그들은 흑룡파의 말단조직원이자, 개개인이 최소 C급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을 가진 각성자다.
“야! 잘 살펴! 또 여기 들어온 헌터새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어차피 좀 있으면 해 뜬다! 빨리 기어 나오면 곱게 보내줄게!”
괜한 곳에 화풀이하는 식으로 허공을 향해 윽박지르는 빌런들.
입구에 선 그들의 눈에 갑자기 어디선가 굴러오는 드럼통들이 보였다.
“야! 쥐새끼 또 있다!”
“잘 살펴! 이번에도 놓치면 진짜 다 뒤지는 거야!”
절반으로 나뉜 그들이 드럼통이 굴러온 곳으로 가려는 순간.
철퍽!
“...휘발유?”
한 빌런의 말에 주위에 있던 그들은 자신의 발아래를 살펴봤다.
“설마...”
꼴꼴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퍼지는 휘발유의 향.
그들이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 순간.
화르르륵!
엄청난 마나의 흐름과 함께 허공에서 생성된 불덩어리가 입구 앞에 깔린 휘발유 드럼통을 향해 날아왔다.
“피해!”
바닥에 퍼지는 불덩어리가 힘없이 부서지며 퍼지자, 그것을 본 빌런들은 다급히 불길을 진화하려 했지만.
따악-!
앞에서 달려오는 남자의 핑거스냅 소리와 함께 드럼통과 땅에 퍼진 화염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콰아아앙!
사방으로 불길이 치솟으며 휘발유를 타고 퍼진다.
그 폭발을 일으킨 당사자인 김신은 물에 홀딱 젖은 채, 불길 사이를 해치며 달렸다.
‘으, 물을 끼얹었는데도 뜨겁네.’
화염과 폭발의 여파로 출입구 주변의 빌런은 정리했지만, 곧바로 뒤쫓는 빌런들이 많은 상황.
화끈한 불길로 인해 벌어질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물을 조종하는 특성을 가진 빌런들에 의해 빠르게 불길이 진압되고, 출입구 바깥에 서 있던 몇몇 빌런들까지 달려왔다.
앞에 있는 주택단지로 들어가며 김신은 자신의 뒤에 넓게 그리스 마법을 펼쳐두었고, 그 때문에 넘어진 빌런들의 욕설이 들려왔다.
“야! 저 개새끼 무조건 잡아!”
지리를 모르는 김신과 다르게 골목길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빌런들.
그 차이가 불러온 것은 사방으로 퍼진 빌런들의 포위가 좁혀지는 결과였다.
이대로라면 잡힌다.
아니, 잡히진 않더라도 필시 전투를 해야한다.
소모전에서는 적이 훨씬 유리한 상황.
숨자니, 탐지능력이 있는 빌런의 존재가 껄끄럽다.
‘지금이라도 다시 대로변으로 나가야 하나?’
몸은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움직이고, 머리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한다.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김신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쪽은!”
“없어!”
골목 하나를 차이로 거리를 좁힌 빌런들이 사방에서 고함을 내지른다.
이제 수색하지 않은 골목은 마지막 하나.
빌런들은 포상금이라는 돈에 눈이 멀어 앞다투어 다음 골목으로 달려갔다.
“야! 저새끼 내꺼다! 건들지 마라!”
“지랄 하지마라!”
어느 건물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사내의 모습.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멍하니 벽을 보고 있는 사내를 향해 빌런이 달려들어 검을 날렸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검.
멍하니 서 있는 사내의 목을 가르고 지나가는 순간, 사내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퍼엉!
“...씨발?”
피 분수가 튀고, 뼈를 가르는 감각을 기대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가만히 서 있는 빌런.
그 모든 상황을 지붕을 뛰어넘으며 왼팔에 달린 캠으로 보고 있던 김신은 통쾌한 웃음을 내뱉었다.
“백날 쫓아와 봐라. 잡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