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1.
정찰 임무의 지원 의사를 팀원들에게 알린 직후.
강한우에게 임시팀장 자리를 넘긴 김신은 같이 가려는 팀원들을 만류한 채, 홀로 짐을 쌌다.
“혼자는 위험합니다!”
“걱정마. 싸우는 게 아니라, 정찰만 하고 오는 거라고. 위험하면 바로 뺄 거야.”
“그래도...”
신의의 생사여부에 따라 길드가 취해야 할 행동이 달라지기에 어찌 보자면 최대한 빠른 정찰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찰에 있어서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모습을 숨기는 능력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 만큼 이번 정찰에서는 김신이 가장 위험부담이 적었다.
길드에서 몇 가지 장비를 받아 밖으로 나온 김신은 집으로 돌아와 정찰을 시작하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계획을 짰다.
“뭔가 부족한데...”
원래의 계획은 마법으로 몸을 숨기며 인천항의 내부를 정찰하는 것.
하지만, 수색할 범위가 넓은 만큼 쉽사리 한 장소를 찍고 갈 수도 없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김신이 드론에 관한 생각을 하는 순간, 이불 위에 몸을 말고 있던 똘망이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삐익?
눈을 껌뻑이며 김신을 바라보는 똘망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김신은 좋은 생각이 들었다.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덩치 또한 작으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김신은 녀석을 상대로 몇 가지의 난이도 있는 의사소통을 해보고 나선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겠어.’
인천항 내부에 있는 높디높은 가로등을 넘어 다니며 주변만 정찰해줄 것이기에 위험하지도 않다.
김신은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실시간 캠을 달았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어 하늘을 보니, 삭월에 구름마저 짙게 낀 날이다.
“야음을 틈타 침투하기엔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겠네.”
조용히 읊조린 김신은 똘망이와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
인천은 인천에서 서울로 돌아 나오기가 힘들 뿐이지, 들어가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다.
그 이유는 서울과 인천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가에는 헌터들이 깔려있었고, 들어가는 차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2 경인고속도로를 따라 서울에서 인천 방향으로 들어가려는 김신의 차가 다가가자, 보초를 서던 헌터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뭡니까?”
보통은 가지도 않는 방향에 사람이 오니, 이상한 표정은 당연한 건가.
김신은 복잡한 의미가 담긴 헌터의 말에 짧게 답했다.
“정찰임무 때문에 왔습니다.”
“아, 소속과 직책 좀 알 수 있겠습니까?”
간단한 절차를 마치자, 조용히 길을 열어주는 헌터들.
지나가는 김신을 향해 가볍게 인사한 그들은 그 이후로도 몇몇 헌터들이 똑같은 임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길을 열어주며 잡담을 나눴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아니, 나야말로 묻고 싶네, 뭔 일 있었냐?”
강남에서 있던 일을 모르는 그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잡담을 나눴다.
2.
세상에 무법지대란 의외로 많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장소에 똬리를 틀고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지.
“야, 오늘 나랑 똑같이 빡쳐 가지고 사람 죽이고 이쪽으로 들어온 그년 말이야...”
자신의 악행을 자랑하고, 음담패설을 일삼으며 조직원과 함께 주변을 순찰하던 흑룡파의 C급 빌런 차인석.
그는 인천항 제 4부두를 순찰하던 중 구석에서 고양이 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동물을 보고는 자신의 동료를 치며 말했다.
“야, 저거 보이냐?”
“응? 뭐?”
고개를 돌려 차인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동료 빌런은 꼼지락거리는 무언가의 모습을 보고는 차인석에게 답했다.
“고양이 같은데?”
“그렇지?”
심심풀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차인석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 하나를 주어와 손에 쥐고는 날리려고 했다.
바로 그때.
-삐익?
“삐익? 시발 뭔데 고양이가 삐익 거리냐? 저거 고양이 맞아?”
괴상한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에게 급하게 왼손에 든 라이트를 비춘 차인석의 모습에 옆에 있던 빌런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괴, 괴수?”
처음 본 순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등장한 괴수의 모습에 당황했던 차인석과 동료빌런이었지만, 곧 그 크기가 작은 모습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군침을 흘렸다.
“야, 저거 무조건 잡아야 한다. 새끼여도 어쨌든 마석이 있을 거 아니야.”
차인석의 말을 들은 동료 빌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된다.
돈만 있으면 마약이든 뭐든 편하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인천항이었기에 그들은 순찰 지역에서 멀어져 천천히 그리핀을 향해 걸어갔다.
-삐익...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길게 울음소리를 내던 새끼 그리핀이 날아가려는 행동을 취하자, 차인석은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료와 함께 달려들었다.
탓!
빠르게 덮쳤지만, 잡지 못한 그리핀.
“씨발!”
바다 방향으로 날아 가버린 그리핀의 모습에 욕설을 내뱉은 순간, 그들의 뒤로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다급히 칼을 집어 들려던 차인석과 동료빌런.
남자는 그 둘보다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미리 애도를 표해주지. 잘 가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반전되며, 그 둘에게 영원한 어둠이 찾아왔다.
***
첨벙! 첨벙!
두 번의 물소리가 부둣가에 아스라이 울려 퍼진다.
사람을 벤 감각이 손끝에 남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들은 범죄를 밥 먹듯이 하는 범죄자. 죽이지 않았으면 필시 죽이려 들었을 거다.
스윽-
피 묻은 검을 가볍게 닦으며 불편한 기분도 함께 털어낸 김신은 왼팔에 장착된 화면을 보며, 오른팔에 낀 팔찌에 마력을 불어넣어 연결돼있는 똘망이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또 있어?’
김신의 의사를 전달받은 똘망이는 인천항의 제 4부두를 둘러보고 나서는 김신과 마찬가지로 직관적인 의사소통을 보내왔다.
-삐익.
‘없다고? 알았어. 고마워.’
김신이 많은 컨테이너와 건물을 일일이 찾아볼 수 없기에 선택한 방법.
하나의 부두를 정하고, 똘망이가 정찰을 한다.
만약 정찰 과정에서 적이 보이면 해당 지역 근처까지 가서 김신이 대기, 똘망이가 유인을 하고, 기습한다.
마법적인 마나의 흐름은 빌런 또한 알아챌 수 있기에 최대한 마법의 사용을 자제하며 기습했고, 그 덕분에 김신은 무사히 인천항의 제 4부두와 5부두를 차례차례 빠르게 살펴볼 수 있었다.
‘4부두와 5부두는 없고.’
불이 켜져 있거나,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
계속해서 정찰하던 김신은 2부두를 거의 다 돌았을 즈음, 똘망이에게서 한 가지 의사를 전달받았다.
-삐익.
‘사람이 있다고? 어디에?’
-삐이익.
반대편에 있다는 녀석의 의사에 김신은 반사적으로 1부두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동의 거대한 물류창고.
김신이 보는 방향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기에 김신은 왼팔에 달린 화면을 들며 똘망이에게 다시 의사를 전달했다.
‘근처에 있는 가로등으로 가서 입구를 바라봐줘.’
-삐익.
복잡한 의사도 무난하게 소화해내는 녀석의 비상한 머리를 의념으로 가볍게 칭찬해준 김신은 곧바로 화면을 바라봤다.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물류창고의 입구.
두 명의 남자가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녀석의 목에 달린 작은 캠을 통해 보였다.
‘건물 위로 가줘.’
-삐익.
조용히 날아 가볍게 안착한 녀석은 영특하게도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만 쏙 빼놓은 채로 화면을 공유해주었다.
-아, 감시하는 것도 지친다. 그냥 죽이면 안 되냐?
-형님, 저거 살려놓는 게 저희한테 얼마나 도움 되는지 아시잖습니까?
-필요한 건 다 뺏었다며, 그러면 돈 받고 넘겨야지, 뭔 부탁을 받았다고.
-큰형님 말씀이 병신 된 애들 싹 모아서 치료나 시켜줄 거라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합니다. 인천에서 저희 말고는 더 큰 조직이 없으니 말입니다.
부하로 추정되는 남자의 말에 형님이라는 빌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우리 큰형님은 이상한 새끼들한테 코가 꿰이셔서는 우리한테 이런 가오 상하는 일을 시키신다냐.
-그래도 이번 일 끝나면 큰형님께서 직접 진탕 놀고 오라고 돈 넉넉히 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부하의 말 직후,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더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끝나고 나면 어디 가서 여자나 끼고 질펀하게 놀아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들어가는 남자들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는 똘망이의 시선.
문이 열리고 닫히기까지의 그 약간의 시간 동안 문 너머로 보인 것은 꽤 많은 숫자의 빌런들이었다.
‘역시 경계는 삼엄하네.’
시험 삼아 1부두 위를 날며 정찰을 하는 똘망이의 시선을 캠으로 보자, 다른 부두보다 4배는 많은 빌런이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더 이상의 접근은 힘들겠다.’
김신은 정찰을 그만하기로 하고, 똘망이를 불러들였다.
‘돌아와.’
가볍게 홰치며 김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똘망이.
수고한 녀석을 위해 들고 온 고기를 입에 넣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김신이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헌터다! 헌터가 침입했다!”
지나온 3부두 방향에서 들려오는 빌런의 목소리.
김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살펴봤지만, 그를 향해 한 소리는 아니었다.
‘나 말고도 이 임무에 자원한 사람이 몇 명이 있다는 정보를 듣긴 했었는데...’
빌런의 그 말 이후, 부두 전체가 부산스러워지며 빌런들이 쏟아져나왔다.
“하, 미치겠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상황이 복잡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부두를 바라보니, 무언가를 끌고 가는 빌런들이 보였다.
“똘망아, 다시 수고 좀 해줘.”
-삐익.
순순히 하늘로 날아올라 신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물류창고의 빌런들을 따라가는 똘망이.
김신은 멀어지는 녀석에게서 잠시 눈을 뗀 채, 소리가 들려온 3부두로 발걸음을 옮겼다.
3.
자신을 쫓는 수많은 빌런의 발걸음.
그것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신화길드의 B급 헌터 유석만.
전문적인 바운티헌터로서 은신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이곳은 빌런의 능력이 다른 곳에 있는 빌런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높았다.
‘도망칠 수 있을까?’
마지막 한 놈의 시체가 발각되며 유석만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었다.
“헉헉...”
수많은 컨테이너 사이를 오가며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있지만, 이것 또한 임시방편이다.
“야! 이 근처였어! 조심해서 수색해봐.”
점점 좁혀지는 포위망.
이젠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쯤.
-아, 아...들리십니까?
“...!”
귓가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말소리.
마치 귀신의 속삭임과도 같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유석만이 눈을 크게 부릅뜨자, 남자의 목소리는 또다시 들려왔다.
-놀라지 마십쇼. 저도 이곳에 정찰 나온 헌터입니다. 지금 그쪽이 보이는 방향에 있어서 포위망의 구멍이 뚫린 곳을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 지시를 따라주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차분했다.
‘빌런이라면 반대로 했겠지.’
어차피 이곳을 뚫고 갈 무력은 없다.
유석만은 소수와의 대인전에 강한 헌터지, 이런 다수와의 싸움에서는 약했으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유석만의 귓가에 다시 한번 예의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오른쪽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세요.
유석만은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움직였다.
스윽-
마음과는 다르게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
약간의 소음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완벽한 도약과 착지 이후, 유석만은 놀라고 말았다.
“아까까지 이 근처로 도망치는 걸 봤는데.”
빌런의 목소리가 아까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들렸기 때문에.
-잘하셨습니다.
유석만은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