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1.
도착과 즉시, 버프를 사용한 김신.
‘메모라이즈, 샤프니스, 헤이스트, 스트랭스.’
엄청나게 증가한 동체시력은 달려드는 트롤이 느리게 보이게 만들었다.
-크허어엉!
덮치듯이 달려드는 트롤의 공격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벽을 넘으면서 더욱 강력해진 검기를 일으켜 목을 벤다.
서걱!
질긴 가죽과 뼈를 어렵지 않게 베고 지나가는 감각이 검을 타고 느껴지고.
탓!
착지함과 동시에 트롤이 무너져 내렸다.
“목표를 확보했으니, 모두 후퇴!”
일격에 트롤을 베어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에 놀란 빌런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낼 수 없지.’
도주하기 위해 차로 달려가는 빌런의 모습과 몰려드는 괴수의 모습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김신은 벽을 넘기 전까지 쓰지 않았던 천마신공의 두 번째 초식을 준비했다.
“하아-.”
양손으로 꽉 쥐어 잡은 검.
깊게 호흡을 들이쉬며 수백, 수천 번 연습한 검로를 따라 검을 휘두르며 검기를 흩뿌린다.
쿠구궁!
뚫린 하늘에서 천둥이 내린다.
천마신공의 두 번째 초식, 뇌우(雷雨).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검기가 쏟아진다.
콰가가가각!
달려드는 괴수들을 모두 뒤덮는 묵빛의 검기.
-크아아아아아!
그 범위 안에 휩싸인 괴수들은 모두 검기다발에 난자당했다.
이미 전투 불능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괴수는 뒤따라오는 길드원에게 맡긴다.
탓!
다시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 김신.
차를 타고 가려는 빌런에게 공격을 날리려는 순간, 옆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공격해오는 것이 기감에 잡혔다.
키잉!
급하게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낸 김신은 맞닿아있는 상대의 보이지 않는 무기를 튕겨내고, 기감에 잡히는 위치를 베었다.
서걱!
검 끝에 걸린 느낌과 함께 옅게 울리는 신음.
“큭...”
허공에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투명해진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웅!
그 순간, 떠나가는 빌런이 탄 차.
“제길.”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김신은 공격 자세를 취하는 낙오된 빌런을 향해 검면으로 머리를 내려쳐 기절시켰다.
***
어두운 분위기의 공간.
중앙에 켜진 조명 아래,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던 빌런이 눈을 떴다.
“으...”
눈을 떠 주위를 살피는 빌런.
김신은 의자에 묶인 것을 확인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빌런을 향해 말했다.
“정신이 들었나 보네.”
“뭐 하는 거지?”
“뭐긴 뭐야, 취조지.”
“알아내기 힘들 텐데.”
“그건 뭐 네가 하기 나름이고. 어쨌든,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대답만 잘해주면 곱게 감옥으로 보내줄게.”
“...”
입을 꾹 다문 채로 답하지 않는 빌런을 향해 김신은 하나씩 질문을 던졌다.
“왜 신의를 납치한 거지?”
“...”
“너희들의 본거지는?”
“...”
“괴수를 조종하는 아티펙트가 있나?”
“...”
답하지 않는다.
정보를 얻어야하는 김신의 입장에서 애가 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김신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알겠어.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일단 생각이 들면 말하라고.”
그렇게 말한 김신은 빌런에게 다가가 가볍게 오른쪽 팔에 혈을 내공을 담아 찔러, 뼈와 근육을 뒤틀리게 만드는 분골착근을 사용했다.
“...?”
별다른 고통이 없는 뻐근한 느낌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빌런은 점차 이상해지는 느낌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뼈와 근육이 뒤섞이는 것 같은 느낌.
몸이 망가진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이 악독한 무공은 단 15분 만에 빌런의 의지를 꺾고, 의사와는 상관없이 비명을 지르도록 만들었다.
“끄아아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신이 점했던 혈도를 풀자, 숨을 헐떡이며 김신을 바라보는 빌런.
“말할 마음이 생겼어?”
“이런다고 내가 말할 것 같아?”
“싫으면 계속해보지 뭐.”
그렇게 말한 김신이 빌런을 향해 걸어가자, 그 모습을 본 빌런은 실성한 듯 웃었다.
“흐흐, 어차피 이렇게 고문당할 바엔 그냥 죽는 게 낫겠지.”
의자 뒤에 있는 손을 꼼지락거리는 빌런.
김신은 그런 빌런의 모습을 제지하기는커녕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
점차 표정이 굳어가는 빌런의 얼굴.
김신은 빌런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손에 쥔 반지형 아티펙트를 빌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왜, 찾던 게 없어서 그래?”
“...”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빌런.
김신은 손에 쥔 아티펙트로 시선을 돌려 요리조리 둘러보며 비꼬듯이 말했다.
“착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죽는 아티펙트라. 어디서 얻었는지는 몰라도 참 지독한 물건이야? 근데 어쩌나? 이게 없어서 쉽게 죽지도 못하겠네?”
“...”
말이 없는 빌런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김신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마지막 기회다. 이번엔 팔과 다리 동시에 그 고통을 느껴야 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스러울 텐데, 어디 한 번 버텨볼래?”
“...”
빌런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시선이 불안정하게 떨렸다.
뚜벅.
김신이 가볍게 한 걸음 걸어가며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눈동자를 떨던 빌런이 이를 꽉 다물고 눈을 감으며 힘 없이 읊조렸다.
“···말하겠다.”
2.
김신은 빌런을 쓰러트린 직후, 한유성에게 말해 취조를 하겠다고 말했었다.
조명하나만 켜진 취조실로 옮긴 김신은 곧바로 빌런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런의 품속과 소지품을 전부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사용해 착용자의 목숨을 빼앗는 지독한 아티펙트를 찾아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심적 압박을 가해 정보를 얻어내는 것에 성공한 김신.
빌런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기억에 남아 조금 껄끄러웠지만, 사람을 죽인 놈에 대한 처사로는 하나도 심하지 않다는 생각에 곧 불편한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낸 값진 정보.
‘인천항에 있는 빌런들이 이 사건의 주범일 줄이야.’
범죄를 저지른 빌런들이 숨어 사는 인천항.
온갖 불법에 관련된 것은 거기서 일어날 만큼, 치안과 헌터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장소였다.
‘하필이면 연합도 포기한 그 장소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섯 번.
뿌리까지 뽑아버리겠다는 마음으로 헌터들이 대대적으로 움직여 빌런을 소탕하려 했지만, 괴수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빌런의 특징과 미로처럼 퍼진 비밀통로에 연합은 결국 소탕하기를 포기했다.
‘결국, 무법천지와도 같은 공간이 되어버렸지.’
장소 이후에 들었던, 신의의 납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필요 때문에 납치했다는 정보만 들었을 뿐.
‘B급 빌런이 말단이라니.’
말단이라고는 해도, B급 각성자다.
그것으로 생각해 봤을 때, 상대의 전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쨌든 정보를 알아냈으니, 그것을 토대로 빌런에 대한 대처를 생각해야 한다.
김신은 알아낸 정보를 한유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길드장실로 향했다.
***
길드장실에서 홀로 바깥을 보던 한유성은 빌런을 잡기 직전 내보인 김신의 무력을 다시금 곱씹고 있었다.
‘마지막에 보인 그 기술...’
처음 만남 때와는 전혀 다르게 성장한 김신의 무력.
A급 괴수를 상대로 일격에 치명상을 입히는 그의 모습은 S급 헌터로서도 충분히 전율이 일만큼 강력했다.
‘그나저나, 그 취조 한다고 한 것은 잘 되어가는지 모르겠군.’
한유성이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길드장실의 문 너머에서 노크와 함께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똑똑.
-5팀장님이 오셨습니다.
취조를 하고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르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려는 김신도 취조가 쉽지 않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한유성은 비서의 물음에 답했다.
“들어오라 하게.”
부드러운 길드장실의 문이 스르륵, 열리며 들어온 김신은 한유성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취조가 끝났습니다.”
“정말인가?”
“예.”
“...”
어떻게 정보를 알아냈는지를 물어보려 했으나, 진지한 김신의 표정에 잠시 말을 삼킨 한유성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 물었다.
“고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해줘서.”
“제가 하고자 해서 한 일입니다.”
고맙다.
어찌 그리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김신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마치, 정말 자신이 아니면 안 되기에 했다는 듯이.
김신의 표정에 한유성은 화제를 돌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빌런에게 알아낸 정보 중에는 중요한 정보가 있었나?”
“예.”
그렇게 말한 김신은 사건을 쉽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어쩌면 이 정보로 인해 모든 길드가 다시 뭉쳐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헌터들에게 신의(神醫)의 존재란 특별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그저 헌터들에게 치료가 필요한 순간 홀연히 나타나 도움을 주고 사라지는 그런 존재.
그렇기에 그의 납치 문제와 선릉역을 지키던 헌터들의 죽음. 그리고 괴수를 조종하는 빌런의 등장은 생각보다 컸다.
신의에게 도움을 받은 모든 길드를 포함한 대부분의 길드가 발 벗고 나설 정도로.
그리고 그 길드 중 하나인 수호길드도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실에 모인 수호길드.
가장 우선적으로 김신에게 정보를 전달받은 한유성은 빌런이 노리던 대상의 정보가 신의라는 것을 다른 길드에 알렸고, 그것을 토대로 각 길드는 회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세 가지의 문제들은 대부분의 길드가 인천항의 빌런을 소탕하기 위해 뭉치도록 만들었다.
불 꺼진 회의실 속.
중앙에 켜진 빔프로젝터로부터 나온 정보가 정리된 프레젠테이션이 스크린을 밝히고, 그 주변으로 앉은 수호길드의 길드장과 팀장들.
그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김신에게 정보를 들었던 한유성이었다.
“여기 있는 정보를 취합해본 결과. 적은 B급 각성자가 말단으로 활동하는 빌런의 집단. 하여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길드는 인천항을 소탕하는 것에 찬성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한유성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이유는 그 내부에 있는 복잡한 비밀통로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 헌터들은 그 비밀통로를 먼저 알아내야 하네.”
누군가 내부에 침투하여, 비밀통로를 알아내고, 신의의 생사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
전과 같은 피해를 받는다면 헌터의 피해가 크기에 어떻게 보면 정석적인 방법은 맞다.
한유성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지원자에 한해, 소탕이 끝난 이후 그들의 아티펙트 한 가지를 가장 먼저 선점할 기회를 줄 것이네.”
규모가 큰 만큼 리스크도 크고, 보상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서는 헌터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는 것의 방증.
‘적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니...’
어지간한 길드의 헌터들은 빌런에게 신상이 알려진 만큼, 이번 계획에 지원하는 헌터는 최대한 경력이 짧은 사람일수록 위험부담이 적다.
“위험하다는 것은 아네. 그러니, 강요는 하지 않겠네.”
“...”
결국, 정적에 휩싸인 회의실.
그 적막한 장소에 다시 한번 한유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원자가 없으면 회의는 이만...”
모두가 고민에 빠져있는 그때.
김신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