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
웨이브.
게이트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서울을 위협하던 문제.
거대길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연합과의 암묵적인 협의하에 지속적인 토벌을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서울과 경기도가 맞붙은 지역을 돌며 근처에 있는 괴수를 토벌하기로 했고, 그 결과 서울은 웨이브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졌다.
‘뭔가 좀 이상해.’
평균적인 괴수 웨이브의 괴수 등급은 F급~C급.
괴수들의 중심지인 강원도 지역에서 쫓겨난 약한 개체들이 한계에 다다른 포식욕에 눈이 멀어 내려오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해보면 평균적인 등급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어쨌든 사건이 터진 지금은 강남으로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다.
근처에 도착해 빠르게 길드 내부로 들어가자 입구에서부터 길드원들이 바쁘게 출동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도착했으려나.’
5팀의 대기실에 들어가자, 먼저 온 강한우와 송인아가 준비를 하고 있다.
“명화는?”
“지금 오고있답니다. 한 5분 정도 걸릴 것 같다네요.”
강한우의 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김신은 준비를 끝마친 팀원에게 말해 천명화의 장비를 챙길 것을 부탁했다.
“명화 장비 챙겨서 내려가 있어요.”
“예.”
김신도 빠르게 방어구와 마석을 챙겨서 내려가자, 천명화가 도착해서 팀원들에게 장비를 건네받고 있었다.
“왔구나.”
“예, 이게 뭐랍니까?”
“나도 몰라. 근데 뭔가 좀 이상하다.”
다른 길드원들과 비슷한 반응을 내비치는 천명화의 모습에 짧게 답해준 김신은 걸어오는 한유성의 모습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 모였으면 일단 차량에 탑승하게, 가면서 짧게 설명해 주지.”
한유성의 말에 준비된 버스에 탑승한 길드원들.
버스는 곧바로 중부고속도로를 향해 움직였고, 한유성은 중간에 서서 길드원들을 향해 말했다.
“문자를 받았던 것과 같이 A습 괴수가 다수 포진해있는 웨이브가 중부고속도로와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한유성의 상황설명.
긴급한 만큼 짧게 끝낸 한유성의 설명은 이랬다.
중부고속도로로 오는 괴수는 동서울 톨게이트까지, 동부간선도로로 접근하는 괴수는 장암 고가교까지.
강북 쪽에 있는 길드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긴 채 그쪽으로 향했고, 강남 쪽에 있는 길드들도 대부분이 중부고속도로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한유성은 마지막 한마디의 말로 매듭을 지었다.
“최악의 경우 괴수들을 막기 위해 시가전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하도록.”
***
게이트 발생 이후 10년간 수많은 괴수와 사람이 지나다니고, 싸웠던 고속도로.
그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전투의 여파로 고속도로의 이곳저곳은 흉하게 깨져있거나 위태롭게 금이 가 있었다.
강남과 강동 두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길드가 모두 모인 이곳.
형형색색의 아티펙트를 소지한 헌터들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그때, 고속도로의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괴수들.
전에 봤던 키클롭스와 샤벨타이거.
그리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A급 괴수인 오우거와 트롤들.
특수한 속성을 가진 괴수인 셀러맨더까지.
크기도 외형도 가지각색이지만 괴수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크허어어엉!
모두 사람을 ‘먹이’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
두 집단과의 거리는 1km.
먼저 반응한 것은 괴수였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사람들이었다.
“스트라이커는 모두 공격 준비!”
각각의 속성과 형태를 가진 공격을 하는 이능력자들.
그들은 각 길드의 길드장에 목소리를 따라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끝마쳤다.
또다시 두 집단과의 거리는 줄어들어 300m.
이제는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괴수들을 향해.
“공격!”
인간들의 선제공격이 시작됐다.
2.
쐐애액! 슈우우욱!
가지각색의 속성이 담긴 공격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게 보인다.
스트라이커 부대의 사이에 있는 김신 또한 가지고 온 지팡이를 이용해 강력한 공격을 날려 보냈다.
가장 강력한 화염 마법인 ‘파이어 버스트.’
화르륵!
손을 떠난 화염의 구체는 밀려오는 괴수들의 사이에 떨어져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사이사이에 있는 낮은 등급의 괴수들을 휩쓸었다.
김신의 마법이 이러한 결과를 불러왔듯 각 길드의 스트라이커들은 모두 전방에 서 있는 A급 괴수가 아닌, 뒤에 있는 낮은 등급의 괴수에게 피해를 집중시켰다.
쾅! 콰아앙!
화력이 집중된 후방에 비해 전방에 서 있는 A급 괴수는 대부분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크허어엉!
분노에 가득 찬 괴성을 내지르는 A급 괴수들과 점차 좁혀지는 거리.
하지만, 생각보다 헌터들의 동요는 크지 않았다.
“모두 후방의 괴수들에게 신경을 쓰도록. 전방은 우리가 맡겠네.”
같이 출동한 길드장들.
서울과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같이 토벌에 참여한 그들의 존재감은 S급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듯 웨이브에 맞선 헌터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우웅!
S급 헌터들이 동시에 마나를 끌어 올리자, 대기가 떨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에 따라 거친 마나의 흐름을 감지한 괴수들의 시선은 전방에 있는 각 길드의 길드장들에게 집중되었다.
-크허어엉!
달려오는 괴수들을 향해 맞서는 길드장들.
그중, 수호길드의 길드장인 한유성의 모습은 꽤나 압도적이었다.
파앙!
발을 구르자, 말 그대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쏘아지듯 앞으로 달려간 한유성.
“흐읍!”
짧게 호흡하며 내지르는 정권은 한없이 호쾌했지만, 타격이 적중하는 순간에 울리는 소리는 한없이 매서웠다.
퍼억! 팡!
말 그대로의 일격.
특성의 특수성이 합쳐진 공격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공격을 하며, 공격당한 괴수의 뱃가죽을 터트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뻐억! 빠각!
한유성을 위시한 길드장들이 앞장서 A급 괴수들을 묶어놓으면 후방에서 선 스트라이커들이 A급 괴수의 뒤에 몰려있는 낮은 등급의 괴수들을 요격했다.
“디펜더는 밀려오는 괴수를 밀쳐내고! 전위는 스트라이커를 지켜!”
몰려오는 괴수에 비해 수는 적지만, 정확한 연계와 호흡을 바탕으로 출동한 모든 길드는 각각의 위치에서 괴수를 확실히 막아냈다.
일방적인 싸움.
앞에 선 A급 괴수가 S급 헌터의 손에 하나, 둘 쓰러져 갈 즈음.
“괴수들이 고속도로 바깥으로 도망칩니다!”
한유성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3.
현재 전투가 벌어지는 위치는 하남 드림 휴게소.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천역 까지의 거리는 일직선으로 대략 5~6km다.
하남시 방향으로 도망치는 괴수들은 어차피 그 방향을 막고 있는 헌터들에게 정리가 될 것이지만, 서울 방면으로 달려간다면 지금 막지 못하면 안 된다.
“5팀! 모두 고속도로 옆으로 빠져나가는 괴수를 쫓는다!”
버스를 타고 오며 미리 계획했던 대로 가장 우측에 있는 수호길드의 3,4,5팀은 넘어가는 괴수들의 뒤를 쫓았다.
-크르르르!
가까이 다가가면 곧바로 달려드는 괴수들.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블러드 울프의 머리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며 베어낸다.
서걱! 투욱.
가장 먼저 위기를 감지한 동물형 괴수들이 도주를 시작했기에 5팀을 포함한 3개의 팀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가전을 해야 했다.
“인아는 한우 씨랑 같이 다니고! 명화 너는 둘 사이에서 달려드는 녀석들 싹 다 불태워버려!”
“팀장님은요?”
“나는 근처에 있는 녀석들 정리 좀 하고 올게.”
서울을 향해 달려가는 괴수들은 대부분이 C급.
말과 함께 김신은 팀원에게 버프를 주고 내공을 끌어올리며 가볍게 바닥을 박찼다.
탓!
대주천에 성공하며 용천혈이 뚫린 덕분에 어렵지 않게 4m 높이의 공장 지붕 위에 올라선 김신.
스윽-
빠르게 수인을 맺어, 주변에 있는 생명체를 탐지하는 4서클 마법, 디텍트를 사용했다.
우웅-
사용과 동시에 푸르게 물드는 김신의 눈.
사물의 뒤에 숨어있는 괴수의 모습이 마치 적외선탐지를 한 것처럼 선명하게 들어온다.
‘20m 뒤에 한 마리. 동쪽으로 30m 거리에 또 한 마리.’
인식이 끝남과 동시에 바쁘게 움직이는 손끝에서 마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탓!
달려가는 괴수를 쫓아 지붕과 지붕 사이를 넘어가며, 생성된 3서클 마법을 정확한 위치에 꽂아 넣었다.
푹푹!
바람의 칼날, 얼음의 창, 땅에서 솟구치는 흙의 송곳.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도 베고, 꿰뚫는다.
-크르르륵...
추살(追殺).
말 그대로 도망치는 녀석들을 뒤쫓아가며 모조리 토벌해갔다.
지붕과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괴수의 뒤를 쫓았던 김신은 어느샌가 마천동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고, 그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사이렌 소리에 굳은 표정으로 청력을 증폭시켰다.
위이이이잉!
‘뭐지?’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았기에 대피지시는 내려졌어도 경보가 울릴 일은 없다.
‘왜 경보가...설마?’
자리를 박차, 주변에 있는 전봇대 위로 올라간 김신.
고개를 돌려 마천동 방향을 바라보니, 하늘에 거무튀튀한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게이트가 대체 왜...’
지잉-
게이트가 열린 것을 봄과 동시에 울린 핸드폰.
김신은 발신인이 수호길드 본부로 적혀있는 문자를 본 순간, 다급하게 발걸음을 돌려 팀원이 있는 장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들과 빌런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음. 지원 바람.]
***
검은 복면을 입은 다수의 사람.
그들은 손에 들린 아티펙트를 이용해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을 조종했다.
콰앙! 쾅!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파괴되는 현장 속에서도 그들은 괴수들의 틈으로 유유히 지나다녔다.
“신의(神醫)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신의를 찾았던 사내가 손목에 매달린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웨이브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시간.
고속도로 밖으로 도망치는 잔챙이들까지 계산한 시간은 이제 30분이 흘러,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빨리 찾아!”
“예!”
사내는 자신의 말에 큰 소리로 답한 다른 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시계를 두드렸다.
“신의를 찾았습니다!”
때마침 들려오는 소식.
같이 습격을 나온 부하의 목소리에 사내는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고 있지?”
“현재 삼성역에서 선릉역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모르고, 괴수와 싸우는 헌터들을 보조하느라 바쁜 신의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두 준비해.”
“예!”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상황을 정리하고 도주할 시간은 충분하다. 라고,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부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조, 조장님.”
“왜.”
“수호길드를 포함한 4개의 길드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답니다.”
“뭐?”
“그, 고속도로 옆으로 빠져나간 괴수들의 토벌이 수호길드의 헌터들 때문에 너무 빨리 끝났다고...”
“이런 씨발!”
“어떻게 합니까?”
성공만 하면 진급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기존보다 더 큰 준비를 해가며 계획을 짰는데!
계획에 실패해도 어차피 죽는다.
그렇다면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수밖에.
사내는 부하의 말에 이를 악물며 답했다.
“계획대로 진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