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1.
아무리 내공이 특성과는 다른 종류에 힘이 맞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아티펙트를 방치해놓다니.
‘검에 미친 게 확실해.’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넓은 창고 내부를 둘러보자, 앞서 말한 추측이 사실이라고 생각됐다.
왜냐면 방치 된 아티펙트 중에서도 검의 외형을 가진 아티펙트는 없었기 때문에.
“소름...검만 아티펙트 취급을 해준다 이건가?”
검술을 갈고 닦아 경지를 높이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
그게 검술길드가 강해진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한텐 이게 노다지야.”
감정이 돼 있지 않다는 것.
그건 다른 말로는 그만큼 높은 등급의 아티펙트를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김신은 넓은 창고를 돌아다니며 하나씩 아티펙트의 기억을 훑어봤다.
‘좋은 게 많네.’
특수한 효과가 붙어있는 무기형 아티펙트.
혹은 특이한 사용법을 가진 방어형 아티펙트.
등급도 꽤 높은 아티펙트가 많았지만, 무기는 필요가 없었고, 기억이 담긴 아티펙트 중에서도 쓸모 있어 보이는 아티펙트는 없었다.
‘보조용으로 사용이 가능하거나, 지금 쓰는 방어구보다 좋은 게 있어야하는데.’
아티펙트는 점점 줄어가지만 아직까지 눈여겨 볼만한 게 없다.
‘그나마 쓸만한 게...’
마나를 충전했다가 사용하는 방어구.
공격을 당하는 순간에 저장된 마나를 번개속성으로 바꾸어 일정 범위 이내의 적들을 마비시키는 아티펙트가 그나마 쓸만해 보인다.
하지만, 만족스럽진 않다.
계속해서 아티펙트를 뒤적거리는 김신.
많은 양의 아티펙트 무더기가 바닥을 보일 때 즈음.
“이게 왜 여기서 나와?”
골머리를 아프게 하던 문제를 해결시킬 아티펙트가 김신의 손에 들어왔다.
***
몬스터와 인간의 전쟁.
무한에 가깝게 몰려오는 몬스터와 그것을 막는 인간의 전쟁은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간에게 뼈아픈 손해를 불러왔다.
마법사, 기사.
마나를 깨우치고 사용 가능한 모든 재능을 가진 이들이 전장에서 스러져갈 무렵.
엘레인은 그 혼란스러운 세상에 태어났다.
“아부?”
태어날 때부터 어딘가 범상치 않은 아이.
작은 몬스터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아이의 부모는 걱정이 됐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유년기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전쟁의 끝자락.
패퇴하던 인간이 마지막 남은 요새에 기댄 채 몰려오는 몬스터를 힘겹게 막을 때.
성인이 된 엘레인은 남들의 이목을 피해 그동안 숨겨왔던 능력을 사용했다.
“이리와.”
하늘을 날아다니며 성벽의 인간을 낚아채는 그리핀과 하피들.
엘레인은 몬스터 무리를 정신력을 증폭시켜주는 마나석으로 만든 특수한 도구를 이용해 지배했다.
정신력을 증폭시켜, 몬스터와 교감하고 그들의 영혼에 직접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
테이밍이라 불리는 그것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오우거 부대! 앞으로!”
어렵던 전황을 바꿀 정도로 강대했던 엘레인의 능력.
-크롸라라라!
그는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을 상대로 능력을 썼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크아아악!”
강대한 엘레인의 정신력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드래곤의 힘.
테이밍의 실패는 시전자의 정신붕괴를 불러왔고, 결국 엘레인은 미쳐버렸다.
2.
[전설등급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김신은 이 아티펙트의 기억을 보자마자, 집에 있는 그리핀의 알이 생각났다.
정신력을 증폭시켜 괴수와 교감하고,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게 만드는 아티펙트.
높은 등급의 괴수에게 사용하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리핀은 아직 알 상태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난 직후엔 약하다.’
더군다나 그리핀은 독수리의 머리와 앞발, 날개가 달렸고, 사자의 몸과 뒷발을 가진 괴수.
‘새는 가장 처음 본 존재를 부모라고 인식한다지.’
아티펙트와 조류 특유의 특징을 이용하면 테이밍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중앙에 엄지손톱만 한 마나석이 박힌 팔찌 모양의 아티펙트.
마나를 불어넣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마나석이 빛내기 시작하면서 손목을 넣을 수 있게 갈라졌다.
“오...”
부드럽게 손목 위에 팔찌를 올리자, 다시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합쳐지는 팔찌.
전혀 이질감 없는 착용감의 아티펙트를 손에 넣은 김신은 창고의 밖으로 나왔다.
김신은 창고 밖으로 나오자 앞에 놓인 평상 위에 앉아있는 태진성에게 다가갔다.
“선택했습니다.”
***
아티펙트를 보상으로 얻은 후.
김신은 태극검술길드에서 곧바로 가게로 돌아왔다.
짤랑-
열쇠를 카운터에 던져놓으며 방으로 들어가자,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놓여있는 그리핀의 알.
‘아직 부화하진 않았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펴봤지만, 먼지가 내려앉은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알은 껍데기가 숨구멍이라고 했었나?”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먼지의 모습에 옆에 있던 물티슈로 알 위를 살며시 닦자,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티딕-
“...설마?”
티디딕-
물티슈를 잡은 손을 떼니, 알 위에 선명히 나있는 금이 보인다.
계속해서 갈라지는 그리핀의 알.
거미줄처럼 잔금이 사방으로 퍼지던 알 위로 독수리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삐익!
다른 새들과는 다르게 태어난 순간, 빠르게 눈을 뜬 그리핀의 새끼.
“...어?”
김신은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새끼 그리핀과 눈이 마주쳤다.
-삐익?
작고 앙증맞은 독수리의 머리, 그에 반해 튼튼한 독수리의 앞발과 고양이 정도의 크기를 가진 몸통. 그리고 그 몸을 뒤덮는 날개까지.
김신을 봄과 동시에 깨진 알 위로 튀어나와 품속에 매달린 그리핀을 보자, 김신은 알 수 있었다.
“정말 부모인 줄 아는 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자세히 살펴봤더니, 그리핀은 김신을 부모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품에 안겨 입을 벌려 밥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삐익!
약 4kg 정도 하는 그리핀.
녀석을 품에 안은 채 부엌으로 간 김신은 급하게 냉장고를 뒤져 냉동실에 넣어둔 소고기를 꺼냈다.
-삐익! 삐익!
해동을 시키는 과정에서 약간의 피비린내가 퍼지자, 배고픔이 더 커졌는지 큰소리로 운다.
“잠깐만, 조금만 기다려봐.”
김신은 멍하니 녀석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이게 맞는 선택인 걸까?’
아티펙트가 있어서 가져오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부화할 줄은 몰랐었다.
아직 까지는 작은 생명체에 부모로 인식한 것 때문인지 자신에게 공격성을 보이진 않지만, 크면 어떤 식으로 변할지 모르는 게 괴수다.
“흐음...”
고기를 조금씩 잘라서 입에 넣어주자, 기분 좋게 골골거리며 받아먹는 그리핀.
김신은 그 모습을 보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직은 작은 생명체.
게다가 방법은 있으니, 우선 시도해보고 결정하는 게 맞겠지.
김신은 소고기를 입에 넣어주며 그리핀에게 말했다.
“일단 먹고 보자.”
3.
김신은 그리핀이 한 근이 넘는 소고기를 다 먹고 난 후에야 녀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삐익···
졸린지 머리를 꾸벅이는 그리핀.
김신은 녀석을 조용히 품에 안고, 천천히 마나를 팔찌에 불어넣으며 말했다.
“테이밍.”
지잉-
마나가 소모됨과 동시에 팔찌가 밝게 빛나며 팔찌가 착용 돼 있는 오른손에 푸른빛이 서렸다.
엘레인의 기억 속에서 본 그대로 그리핀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삐익.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그리핀의 감정이 직감적으로 전해져온다.
좋다, 배부르다, 편하다, 따뜻하다.
단편적인 감정이지만, 김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녀석을 길들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신은 계속해서 팔찌를 통해 녀석의 정신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깊이, 더 깊이.
아직 새끼인 덕분에 정신의 방벽은 약했고, 김신은 빠르게 그리핀의 가장 깊숙한 심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가 이 녀석의 심상이구나.’
가장 처음 본 것이 세상이라 생각했는지, 가게의 내부와 똑같은 구역만큼의 세상.
아직 하늘이라는 존재는 모르는 녀석의 모습에 김신은 천천히 알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김신이라는 존재를.
강력한 김신의 정신력에 직감적으로 녀석의 심상에 자신의 존재가 각인된 것이 느껴졌다.
‘텔레파시가 이런 느낌일까?’
서로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 같은 느낌.
생각보다 빠르게 각인이 끝난 것을 확인한 김신은 곧바로 다음 단계인 명령으로 넘어갔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고, 인간을 보호하며, 괴수를 죽인다.
어찌 보면 녀석에게는 동족을 죽이라는 잔인한 일이지만, 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사람에게 공격성을 보일 수도 있다.
‘만약에라도 이 명령을 각인하지 않아서 사람을 공격한다면 나는 녀석을...’
잠깐이지만, 생각만으로도 반감이 든다.
‘그렇지 않게 하면 돼. 확실하게.’
생각보다 빠르게 끝난 테이밍.
김신은 곧바로 녀석의 심상속에서 나왔다.
***
3일 후.
“똘망아.”
-삐익!
개나, 고양이처럼 부르면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그리핀.
똘망이라고 이름 지어준 녀석은 항상 가게 내부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건드리고 다녔다.
“하루가 다르게 크네.”
3일 만에 2kg이 는 똘망이.
지금까지는 괴수를 길들인다는 행동 자체를 생각할 수 없었던 만큼, 김신은 녀석의 존재가 최대한 늦게 알려지길 원했다.
“만약 들키면 뭐라고 해야 하나...”
위험하지 않다고 말해도 믿어줄까?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경우가 등장한다는 것.
사람들에게 게이트와 괴수란 위험하다고 인식되었을 만큼, 그러한 인식을 쉽사리 바꾸기 힘들 것이다.
-삐익?
김신의 감정을 느낀 똘망이가 괜찮냐는 의미로 운다.
팔찌를 통해 연결된 정신은 녀석의 감정과 뜻하는 것을 본능의 영역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
김신은 분명 이것 또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가볍게 똘망이에게 말한 김신은 고개를 털어 고민을 떨쳐냈다.
그렇게 다시 신나게 놀던 녀석은 밥을 배불리 먹자, 김신이 앉아있는 책상 위에 사뿐히 올라와 몸을 말고 꾸벅꾸벅 졸았다.
-지잉.
김신이 조용히 녀석을 바라보던 때, 빠른 템포로 울리는 핸드폰.
“긴급문자?”
긴급문자의 알림이 한차례 지나가고, 또다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들어서 확인했다.
[한유성]
아직 휴가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핸드폰의 문자를 확인한 김신은 곧바로 옷을 챙겨입을 수밖에 없었다.
[동부간선도로, 중부고속도로에서 다수의 괴수가 접근하는 중, 모든 길드원은 긴급히 길드로 모일 것.]
정기적으로 길드레이드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곧바로 택시를 잡아탄 김신은 수호길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긴급문자를 확인한 순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급 괴수의 무리가 도봉구와 강동구 그리고 강남구를 향해 접근 중, 해당 지역의 거주 중인 시민은 긴급히 대피 바랍니다.]
“···이런 미친.”
설상가상으로 몰려드는 괴수의 등급은 A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