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1.
파스스-
반사적으로 나온 김신의 내공.
“...?”
그가 빠르게 갈무리하긴 했지만, 경기를 보던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저 내공은 뭐야?”
“반칙 아니야?”
대련을 관람하던 길드원들은 김신이 반칙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눈빛으로 봤지만, 대련을 감독하던 각 검술길드의 길드장들은 그가 깨달음을 얻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어떻게 진행할까요.”
그것을 꿰뚫어 본 태진성의 물음에 매화검술길드의 길드장은 사일검술길드의 길드장을 보며 말했다.
“전례가 없는 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회가 만들어 진지 7년이 넘어가는데, 이례적인 일이긴 하죠.”
처음 있는 상황에 다들 혼란스러운 반응을 내비치는 두 길드장.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태진성이 넌지시 그들에게 말했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반사적으로 나온 것이고, 사용하지 않고, 곧바로 갈무리했으니 이대로 진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태진성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두 길드장은 일리가 있는 그의 말에 찬성을 표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깨달음을 정리할 수 있게 빠르게 결과를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두 길드장의 말에 태진성이 답했다.
“그럼 계속해서 속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과 소란스러워지려는 좌중.
태진성은 그들 모두를 향해 말했다.
“경기 중 깨달음을 얻은 관계로 일어난 일이오니, 모두 소란을 가라앉혀주시길 바랍니다.”
검사에게 깨달음의 순간이란 쉬이 찾아오지 않는 법.
대련을 관람하던 모두가 검사였기에 태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경기를 속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태진성.
그 모습에 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김신은 한층 더 가벼워진 기분으로 태하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탓!
천마신공의 검술은 네 가지의 길이 있다.
패(覇)검과 유(柔)검.
환(幻)검과 쾌(快)검.
그리고 그 네 가지의 길을 자신의 것을 만드는 과정을 깨달은 지금.
김신의 검로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태하윤의 지척까지 도달해 검을 찌르는 김신.
쐐액!
그것을 본 태하윤이 즉각 반응해서 흘려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김신의 검에 닿은 태하윤의 검은 그의 공격을 제대로 흘려내지 못했다.
스르릉!
유(柔)검의 흐름처럼도 보이고 환(幻)검의 흐름처럼도 보이는 기묘한 각도로 꺾이는 김신의 검.
태하윤이 다급히 몸을 왼쪽으로 틀어 피하려고 했지만, 그의 검은 계속해서 태하윤에게 다가갔다.
“...!”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김신을 보는 태하윤.
김신은 그런 그녀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주며 검을 그녀의 옆구리에 가져다 대었다.
“김신. 승!”
***
경기가 끝나자, 곧바로 김신에게 다가온 태진성은 김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수상 소감은 말할 필요 없으니, 우선은 깨달음을 정리하게.”
“감사합니다.”
태진성의 배려를 받아 빠르게 태극검술길드가 사용하던 연습 장소로 자리를 옮긴 김신.
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정리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하자, 태진성의 말을 듣고 온 태극검술길드원들이 조용히 그의 명상이 방해받지 않도록 도왔다.
철컥.
어느새 연습 장소를 중심으로 쳐진 간이 천막.
그 앞에 경기를 정리하고 온 태진성과 태하윤을 비롯한 태극검술길드원들이 자리를 지켜줄 동안 김신은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단전이 담을 수 있던 내공의 한계가 깨졌다.’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은 단전의 변화.
받아들이지 못했던 마나가 김신의 몸에 한 번에 들어왔다.
우웅!
육체에서 뻗어 나간 내공이 주변에 있는 마나를 무자비하게 끌고 와 김신의 몸속에 욱여넣는다.
파스스-
많은 양의 마나가 정순한 내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예전에 느꼈던 것처럼 탁기와 함께 노폐물들이 모공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하지만,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마나.
‘마나의 탁기를 걸러내고 내공으로 만드는 속도 보다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 말은 즉.
소주천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방법...’
급속도로 넓게 커지며 자리를 잡아가는 단전에 내공을 모으며, 지속적으로 세를 불려가는 마나를 빠르게 정순하게 만드는 방법.
‘역시, 그것뿐인가.’
백회혈.
즉 생사현관을 타통하여 대주천을 이루는 방법.
육체의 근골이 뒤바뀐다는 환골탈태를 이루는 그 방법을 김신은 시도하기로 했다.
내공이 몸을 세로로 한 바퀴 도는 것을 소주천이다.
코, 명치, 단전, 회음, 척추, 다시 단전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이 한 바퀴.
거기에서 더 나아가 척추를 타고 목 뒤에 있는 독맥을 타고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까지 내공이 흐르도록 만들면 온몸을 타고 도는 내공의 길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이 대주천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막혀있는 독맥을 뚫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내공이 필요했다.
이것이 무윤의 기억으로 본 정보.
두 갑자에 가까운 양의 내공이 없다면 시도조차 하지 말라던 그 대주천을 김신은 폭발할 것 같은 양의 마나로 대체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웅-
바닥의 먼지가 떠오를 정도의 마나의 흐름.
많은 양의 마나를 조율하던 정교한 마나컨트롤의 스위치를 해제하자, 노도와 같은 흐름의 마나가 김신의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쿠웅!
그 순간, 명상 중인 김신의 몸이 한차례 들썩였다.
‘크윽...!’
한차례 다져진 기맥.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마나를 통제하지 않았던 탓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고, 그 때문에 김신은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우우웅!
명치를 지나 단전으로, 단전을 지나 회음으로, 회음을 지나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엄청난 양의 마나.
기맥을 더 넓히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정도로 큰 고통을 수반한 많은 양의 마나는 척추의 끝에 있는 생사현관과 부딪치는 순간,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단단한 관문을 가볍게 허물고 지나갔다.
푸쉭-
임맥과 독맥을 타고 마나가 순환하기 시작하자, 백회혈을 통해 마나의 탁기가 빠르게 빠져나가며 김신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으드드득-
머리카락이 빠지고, 허물을 벗는 것처럼 피부가 한 차례 흘러내리며 탄력적인 피부와 새로운 머리카락이 돋아났고, 온몸의 근골이 조금씩 자리를 바꾸며 내공을 사용하기 좋은 최적의 육체를 만들어갔다.
마치, 해리엇의 목각인형을 썼을 때와 비슷한 느낌.
고통보다는 시원한 느낌이라고 말할 그런 느낌이 몸을 한차례 훑고 간 순간.
스으윽-
주변을 어지럽히던 마나의 흐름을 가라앉히며, 그 중심에 앉아있던 김신이 눈을 떴다.
2.
김신이 명상에 들어간 직후.
조용하지만 빠르게 정리되는 주변을 바라보며 태하윤은 김신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질투, 부러움, 선망, 등.
태하윤을 괴롭히는 수많은 감정 중 가장 큰 감정은 다름 아닌, 아쉬움.
갈피를 잡았지만, 그것을 체화시키기 직전에 먼저 깨달음을 얻은 김신.
하여 벽을 넘기 직전에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던 탓에 집중이 깨진 태하윤은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느껴져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아쉽지만, 어쨌든 또 다른 고수가 나왔다는 것은 축하받을 일.
태하윤은 태극검술길드원과 번갈아가며 김신이 조용히 명상할 수 있도록 주변을 봐줬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지난 지금.
“끝났구나.”
태하윤은 천막에 흐르던 불안정한 마나의 기류가 가라앉은 것을 느꼈다.
***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코끝을 찌르는 악취.
코를 쥔 김신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천막인가...?’
누군가가 쳐놓은 천막과 한구석에 놓여있는 새 옷.
김신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마치 담처럼 쌓인 오물 덩어리의 너머로 넘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도복이네.”
흰색의 도복 한 벌.
옷을 입은 김신은 천막의 밖으로 걸어나갔다.
밖은 여전히 밝은 대낮.
가볍게 눈을 깜빡여 빛 적응을 하고 나온 김신은 천막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태하윤을 마주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아요?”
“네, 배려해주신 덕분에 깨달음을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에요. 당연한걸요.”
김신의 정중한 감사 인사에 손사래를 치는 태하윤.
김신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대회는 어떻게 됐나요?”
“잘 마무리됐어요. 아무래도 검사에게는 깨달음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요. 다들 이해하고 돌아가더라고요.”
웃으며 말하는 태하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허탈해 보인다.
김신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이상해 주의 깊게 봤고, 기감을 통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초절정의 끝자락이었구나.’
벽을 넘기 전의 자신과도 같은 경지.
태하윤의 아쉬움이 무엇에서 비롯됐는지를 깨달은 김신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언제 시간 되면 저랑 대련 좀 해주세요.”
“네?”
“저희 길드에는 검사가 없어서 저랑 대련해주실 분이 없거든요.”
예상대로 태하윤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기대하는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로 김신에게 답했다.
“아. 그런가요?”
그 모습에 김신은 가볍게 속으로 웃으며 답했다.
“예, 꼭이요.”
3.
김신이 깨달음을 정리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태진성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설마했는데, 정말로 화경에 도달했구만.”
놀란 표정으로 말하는 태진성의 모습에 김신은 멋쩍게 웃었다.
“저도 좀 얼떨떨합니다.”
“원래 깨달음이란 그런 거네.”
태진성은 그런 그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를 전했다.
“그나저나, 깨달음을 얻은 것을 잘 정리했는가?”
“예, 배려해주신 덕분에 생각 이상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이런 말 하기엔 그렇지만, 자네는 정말 볼수록 내게 놀라움을 줘. 그래서인지 앞으로가 기대되는구만.”
“하하. 그런가요?”
가볍게 웃는 김신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태진성은 그에게 대회의 보상에 관해 말했다.
“알다시피, 검술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는 상금과 함께 해당 길드의 상승 검술을 익히게 해주는 것이 관례일세만, 자네는 이미 익히고 있는 심법과 검술이 있기에 문제가 있네.”
상승의 검술을 전수해주는 보상을 주는 검술대회.
하지만, 이미 김신은 익힌 무공이 따로 있기에 보상에 관한 문제가 생겼다.
“아...”
태진성의 말을 듣자마자 터져 나오는 김신의 아쉬움 섞인 탄식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바로는 자네에게는 세 개의 검술길드가 공동으로 보관하는 아티펙트창고에서 원하는 아티펙트 한 가지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게 어떨까 하네. 괜찮겠는가?”
“예?”
배워도 사용하지 못할 검술과는 다르게 아티펙트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김신은 태진성의 말에 생각할 것도 없이 답했다.
“예! 물론이죠.”
“클클, 다행이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말과 함께 돌아서는 태진성을 향해 김신은 곧바로 말했다.
“지금 가지러 가도 됩니까?”
***
무공서를 제외한 아티펙트.
검술길드는 다른 길드들과 다르게 그들만의 유대가 대단했다.
대부분의 길드레이드를 자체적으로 해냈으니까.
그래서인지 태진성과 함께 도착한 아티펙트 창고의 위용을 보고 김신은 감탄이 나오는 걸 감추지 못했다.
“와...”
말이 창고지, 이 정도면 거의 검술길드의 본관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로 창고 안에는 거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놀랍나?”
“네, 창고라고 말씀하시길래 다른 느낌으로 생각했는데...”
김신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창고로 향하는 태진성.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김신에게 이 장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해줬다.
“게이트 발생 초기에 괴수들을 막으며 친해진 몇몇 헌터들이 있었지. 그리고 아티펙트를 얻는 방법이 탑이란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고 나서 우리는 탑으로 향했다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목숨을 건 대가로 무공서를 얻을 수 있었지.”
평범한 육체강화계열 헌터들이 모여 만든 기적.
그 후로 검술길드의 길드장들은 무공서를 제외한 모든 아티펙트는 공동으로 보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던 사람의 속내를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문에 약간은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창고에 도착했고, 태진성은 김신을 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승을 축하하네. 좋은 아티펙트를 얻길 바라지.”
“네?”
뭔가 이상한 어조의 태진성의 말.
찜찜한 기분을 가진 채로 아티펙트 창고에 들어간 김신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한지 알 수 있었다.
“감정이 하나도 안됐잖아?”
말 그대로의 창고.
단어가 뜻하는 바대로 창고는 무공서를 제외한 모든 아티펙트를 처박아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