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1.
태극검술길드 4팀 팀장 장태준.
그는 자신이 B급이지만, 곧 A급으로 승급을 노리고 있을 만큼 검술과 내공 양쪽에서 이미 완성에 가까운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이번 검술대회는 저번과는 다르게 우승을 노려볼 만해.’
항상 우승이나, 준우승을 쥐었던 태하윤에 비해 조금의 손색은 있을지 몰라도 장태준도 매회 출전할 때마다 유력 우승 후보에 꼽힐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그런데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타 길드원이랑 순수한 검술로 승부를 내야 한다니.’
길드원을 구해주고, 태하윤과 친분이 있는 것은 잘 안다.
손님으로 오면 충분히 예의를 차릴 마음도 있었고.
‘하지만, 검술은 아니지.’
어디까지나 검술대회는 검술을 전문적으로 오랜 시간 배우고, 이곳에 몸을 담은 사람들이 여는 신성한 축제의 장과도 같은 것.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기에 장태준은 검술로 인정하지 않은 상대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
“...?”
인사를 안 받자, 오히려 자신을 보면서 웃는 김신이라는 사내.
“준비!”
장태준은 태진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충 자세를 잡았다.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상대방도 검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오호...’
나름의 기본은 잡혀있는 상대의 준비 자세.
“시작.”
태진성의 목소리와 동시에 달려오는 김신의 모습이 장태준의 눈에 들어왔다.
‘일격에 벤다.’
유려한 선을 그리며 김신의 목을 향해 다가가는 장태준의 검.
장태준이 일말의 여지없이 정확히 먹혔다고 생각한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채앵! 스윽-
좌상단으로 자신의 검을 가볍게 쳐내고, 그 힘을 이용해 그대로 손목을 틀어, 자신의 목젖 앞에 검을 들이민 김신.
믿기 힘든 상황에 멍하니 있던 그를 향해 태진성은 이 상황이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김신...승(勝).”
***
단, 일격 만에 장태준의 목 바로 옆에 김신의 검이 붙자, 너무나도 빠른 승부에 놀란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너무 힘줬나.’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조용한 연무장을 뚫고 길드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4팀장님이 한 수에...”
“초절정에 오른 검사를...”
단 한 수에 승패가 결정 난 순간부터, 길드원이 김신에게 보내는 눈빛은 크게 달라졌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네.’
처음의 눈빛에 담긴 의미가 의문과 의심이었다면, 지금의 눈빛은 호승심과 투지가 담긴 눈빛.
‘차라리 무시당하는 것보다. 이게 나아.’
이방인을 보는 느낌보다야 제대로 된 상대를 보는 느낌이 대련의 질을 높일뿐더러 더욱 재미있을 거다.
이래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조금 더 과격하게 나간 것도 있었고.
바뀐 분위기에 즐거울 때 나오는 진한 미소를 지은 김신이 장태준에게 인사를 한 순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게냐.”
노기가 서린 태진성의 목소리가 장태준에게 향했다.
“...?”
고개를 들자, 목만 까딱하는 장태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억울한 사람이 짓는 특유의 표정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쉰다.
‘승패를 인정하지 못하는구나.’
김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태진성은 계속해서 예의를 갖추지 않는 장태준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길드원을 구해준 은인에게 예의를 갖추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대련에서 승리하지도 못했다. 이것만으로도 태극검술길드에 먹칠을 한 것이 분명하거늘. 끝까지 승부를 인정하지 않겠다?”
은혜도 모르고, 승패를 인정하지 않는 치졸한 놈이 될 것이냐?
라는 의미를 담은 태진성의 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세게 때리시네...’
말을 끊은 태진성이 가만히 노려보자, 장태준이란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승패를 인정하며 김신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좋은 승부였습니다.”
“저야말로.”
약간의 불편한 상황이 있었지만, 어쨌든 좋게 해결됐다.
그렇게 김신은 연무장에서 내려와 다시 자리에 앉아 다음 대련을 지켜봤다.
2.
대련할 차례가 온 태하윤.
그녀는 좀 전에 있었던 충격적인 대련 결과에 놀란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팀장을 일격에...’
비록 4팀장인 장태준이 김신을 얕봤다고 해도 엄연히 그는 상승의 검술인 태청검법(太淸劍法)을 익힌 수재.
게다가 최근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했었다.
‘정말, 기이할 정도의 성장이야.’
매번 볼수록 발전하는 김신의 무력과 검술에 태하윤은 처음과 다르게 미묘한 경계심과 호승심을 불태웠다.
‘대체 내가 왜 이러지?’
태진성에게 깨달음을 줬을 때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확실히 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달랐다.
지지 않고 싶다.
이기고 싶다.
마치, 호적수를 만난 것 같은 느낌.
‘아무리 길드원들과 대련을 해도 이런 느낌은 못 느꼈는데.’
어째서인지 태하윤은 김신과 전력으로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불타올랐다.
‘본선이 기대돼.’
예선전의 참가자는 48명.
그중 2번의 승리를 거둬야 본선에 진출하는 만큼, 남은 한 번의 대련을 김신과 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신이 불러온 태하윤의 심경변화.
그것은 그녀와 대련을 하는 이들에게 재앙이 되어 찾아왔다.
***
시간이 지나.
태하윤의 바램과는 별도로 김신은 그녀가 아닌, 처음이지만 익숙한 길드원과 맞붙었다.
“김신, 강태구. 앞으로.”
2m는 될법한 키에 꽉 찬 근육질의 몸매.
‘처음에 본 그 근육맨이네.’
근육으로 팰 것 같다는 상대.
김신은 색다른 상대의 모습에 잠시 우스운 상상을 했다.
‘유(柔)검을 패(覇)검처럼 쓸 거 같은 몸이네.’
몸이 탄탄하다고 전부 패검은 아니지만, 패검을 쓰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고강한 내공에 걸 맞는 탄탄한 몸을 하고 있기 마련이다.
상황이 어쨌든 우스운 상상을 했지만, 이번 검술대련의 상대는 육체적으로 강건했기에 확실히 묵직한 공격을 주로 해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준비.”
처음 대련했던 장태준과는 다르게 신중한 눈으로 훑어보는 강태구.
“시작.”
신중하게 거리를 좁혀오던 상대는 어느덧 한 보 거리까지 거리가 좁혀지자,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들며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딱 봐도 엄청난 힘이 담겨있는 상대의 검.
“흡!”
이런 공격은 받아쳐봤자, 손목만 아플 뿐이다.
탓!
가볍게 몸의 탄력을 이용해 뒤로 물러나며 상대의 공격을 피한 김신.
동시에 검을 쥔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쪽 목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쐐액! 카앙!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을 왼쪽으로 내려치며 막아낸 상대는 힘을 역이용해 곧바로 김신의 옆구리를 향해 베어왔다.
후웅!
오른발을 한걸음 빼며 회피.
김신은 가볍게 피해내며 상대의 실력에 대해 생각했다.
‘...장태준보다 나은데?’
몸이 크면 둔하다고 하는데, 역시 근육질이라 그런지 둔하지가 않다.
게다가 정면으로 부딪친 검이 짜르르한 것은 덤.
“후우.”
상대의 공격에 두 걸음 뒤로 물러난 김신은 숨을 내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공격방식을 바꿔야겠다.’
대련하는 사람들의 검술을 보며 그들의 모습을 눈에 새겨넣은 것을 바탕으로 눈을 감고, 심상 속에서 자신과 상대를 만들어내서 대련한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은 한 가지 사실.
‘유(柔)검은 쾌(快)검으로 상대할 때 가장 편해.’
강한 공격은 모조리 흘려내고 반격하여 강하지만, 짧고 빠르게 몰아치는 공격은 쉽사리 흘려내지 못하는 것이 유(柔)검.
내공을 쓰는 검술이든 아니든, 태극검술길드의 검사들은 모두 무당파의 검술을 배웠다.
‘파훼법을 아는데 굳이 똑같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김신은 무당파와 관련된 검술의 모든 검로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3.
찌르기.
선이 아닌 점의 공격이기에 상대가 조금이라도 몸을 튼다면 맞추기는 힘들지만, 공격이 빠르다.
슉! 슉슉!
갑작스레 바뀐 김신의 검술.
태극검법을 연마한 강태구는 시종일관 빠른 템포로 압박하는 상대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캉! 캉!
‘막기가 점점 힘들다.’
태극검법의 묘리는 검으로 그리는 태극(太極).
길드장이자, 스승인 태진성은 항상 ‘물 흐르듯’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태극검법은 공격의 힘을 흘리며 부드럽게 막아내는 것이 중점이었다.
‘어째서 쉽게 흐름을 끊을 수가 없지?’
최대한 쳐내며 위험한 공격은 피하고 있지만, 압박하던 방금과는 다르게 지금은 오히려 수세에 몰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검술길드에게 검술이란 비기와도 같은 것.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강태구는 김신의 공격을 피해 물러나면서 상대가 자신의 검법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몰래 훔쳐보기라도 한 건가?’
사실, 이미 무윤의 기억과 심상대련을 통해 확고한 파훼법을 김신이 찾아내서 밀린다는 것을 모르는 강태구는 연신 뒤로 물러서면서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었다.
‘강공? 아니면 나도 찌르기를? 어떻게 해야 저 공격을 맞받아치고 반격을 노릴 수 있지?’
김신이 보이는 패턴은 무조건적인 찌르기가 아닌, 베는 것처럼 검을 날리다 회수하여 찌르는 방식.
‘듣도 보도 못한 검술이 분명한데...’
힘을 뺀 공격은 상대에게 막힌다면 검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공격방법이다.
‘차라리 강하게 내려쳐서 무기를 놓치게 하면 돼.’
연신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호흡을 빼앗아가는 김신의 공격을 강태구는 정면에서 받아쳐 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마지막 한 합의 순간을 노렸다.
슉슉!
두 번의 찌르기와 한 번의...
후웅!
‘베기!’
오른쪽 무릎을 노리고 들어오는 김신의 공격.
강태구는 노렸던 그대로의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빼며, 온몸에 힘을 주고서 오른손에 쥔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쐐애액!
힘이 빠져 느릿한 김신의 검.
그에 반해 보고 반격하느라 조금은 늦게 나간 강태구의 검이지만, 충분히 김신의 검을 쳐 낼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무릎과 30cm 정도 떨어진 지점을 지나가는 김신의 검과 그 검에서 40cm 정도 떨어진 지점을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강태구의 검.
‘닿는다.’
검과 검의 거리 차이는 김신의 검과 자신의 무릎의 거리 차이보다 더 줄어들었고.
‘닿는다.’
이윽고 검과 검의 거리가 0에 수렴하여 부딪치기 직전.
쐐액! 후웅!
“...!”
빛살처럼 내려치는 강태구의 검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발목 쪽으로 검로를 틀어 간발의 차이로 검을 회수하는 김신.
‘...읽힌 건가? 아니, 그럴 일은 없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강태구가 그런 생각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짓자, 마주한 김신이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다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