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1.
김신의 기지로 이루어낸 청룡길드의 팀 구출 작전.
전투가 끝난 후, 박남석은 김신에게 다가와 고개를 깊게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닙니다. 김신 씨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괴수의 뱃속에 들어가 있었겠죠. 사실 포기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 순간에 김신 씨가 나타나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김신의 번뜩이는 기지와 과감한 선택.
그 결과로 목숨의 구원을 받은 박남석은 은혜를 갚기 위해 김신을 조용히 불러 그의 손에 무언가를 전해줬다.
“이게 뭐죠?”
“이건 제 감사의 표시입니다.”
“...?”
김신은 박남석이 준 동그란 무언가를 살펴봤다.
타원형의 커다란 무언가.
그것은 타조 알의 크기보다 더 큰...
“알?”
김신의 당황한 목소리 그대로 박남석이 그에게 건네준 것은 무언가의 알이었다.
박남석은 김신에게 알을 건네며 어떤 생물의 알인지 설명해줬다.
“상당히 비싼 그리핀의 알입니다.”
“A급 괴수 그리핀의 알이요?”
“예,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이 알을 구하기 위한 과정을 김신에게 설명한 박남석.
김신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듣고,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팀원들이 허락해줍니까?”
목숨을 담보로까지 구하려고 했던 괴수의 알을 이렇게 선뜻 내어준다니.
김신의 목소리에 담긴 뜻을 알아챈 박남석은 기분 좋게 웃으며 답했다.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희 팀원들은 모두 김신 씨에게 빚을 진 셈이니, 이정도는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다면...감사히 받겠습니다.”
돈을 받고 팔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가공을 하든.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리핀의 알.
김신은 알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자, 그러면 가볼까요.”
***
성공적이다 못해 최고의 성과를 거둔 길드의뢰.
구출에 참여한 길드 중 수호길드와 매화검술길드는 약 300마리의 오크들에게서 나온 마석과 부산물, 그리고 청룡길드에게서 얻은 금전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 고생했네. 작전에 참여한 팀은 당분간 쉬게나. 보상에 관한 것은 나중에 따로 알려주도록 하지.”
길드로 돌아간 2.3.5팀은 한유성의 환대에 더불어 상당한 보상을 약속받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어, 저거 우리 아니에요?”
장비를 풀고 정비를 하던 중 천명화가 말하는 소리에 김신은 TV로 고개를 돌렸다.
[속보입니다. 오늘 낮 12시경, 모길드의 몬스터웨이브 고립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사건의 구출팀으로 참가한 4개의 길드, 그중 수호길드의 모 길드원의 기지로 구출 작전에서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무사히 구출해냈다는 소식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낯뜨거워질 정도로 대서특필된 청룡길드 구출사건.
“어휴...내가 다 부끄럽다.”
“왜, 오빠 아니었으면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을 텐데.”
맞는 말이지만 약간은 낯간지러운 송인아의 말에 김신은 작전의 시작을 만들어 준 그녀를 같이 띄워주며 부끄러움을 나눴다.
“아냐, 네 덕도 컸어. 너 아니었으면 그 작전은 생각도 못 했을 거 같거든.”
“그, 그런가?”
자신과 똑같이 부끄러운지 뒷목을 긁적이는 송인아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김신은 가볍게 기지개를 피며 TV를 멍하니 바라봤다.
[···다음 소식입니다. 현지시간 16시경, 뉴욕 브루클린에서 발생한 S급 게이트 발생 사건.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S급 괴수 베히모스의 출현으로 약 2000여 명의 사상자와 토벌을 위해 출동한 S급 헌터, 퍼니셔가 죽고, 파괴의 홍옥이 도난당하는 등...]
띠리링-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한 기분 좋은 날 부정적인 뉴스는 듣고 싶지 않았기에 김신은 TV를 껐고, 송인아는 그런 김신을 보며 물었다.
“오빠는 휴가 동안 뭐할 거야?”
“응? 나?”
“어. 나는 이번 휴가 때, 놀러 가려고.”
“어...”
어떤 의미로 송인아가 저 질문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신은 휴가 동안 할 일이 있었기에 대충 둘러 말했다.
“난 할 일이 있는데.”
“그래?”
“왜?”
“아, 아니야...”
아쉬워하는 표정이 가득한 송인아의 모습에 김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성공적인 청룡길드 구출에 더불어 휴식과 함께 휴가를 보장받은 10일이라는 시간.
김신이 휴가 동안 참가할 것은 며칠 전에 만난 태하윤에게 들었던 검술대회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대련이 필수라고 했었지...’
태하윤이 말했던 것을 떠올린 김신은 검술대회가 기다려졌다.
‘기대되네.’
2.
시간이 흘러, 검술대회가 열리는 당일.
며칠간 집에 틀어박혀 박남석이 주고 간 그리핀의 알에 대해 검색과 연구를 거듭하던 김신은 아직까지도 그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하, 이걸 그냥 팔아야 하나...”
희귀한 만큼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것이 맞겠지.
고민을 끝낸 김신은 슬슬 출발할 시간이 되었기에 웃옷을 걸치고 짐을 챙겨 집 밖으로 향했다.
3대 검술길드가 모두 모여서 개최하는 검술대회.
김신이 들은 바로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검술로만 붙는 검술대회라고 했다.
‘무윤의 기억에서 본 검술들이 나오는 건가.’
태극혜검(太極慧劍)과, 태극사검(太極四劍)을 비롯한 무윤이 살던 무림이라는 세계의 검술들을 볼 수 있다니.
“택시!”
무윤과 싸우던 다른 고수들을 생각하니, 김신은 생각만으로도 투지가 불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태극검술길드로 가주세요.”
***
고풍스러운 한옥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
하지만,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개폐 장치와 인터폰이 달린 태극검술길드의 대문 앞에선 김신은 피식 웃으며 인터폰을 눌렀다.
삐익- 덜컹!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터폰을 누르기 무섭게 열리는 대문.
“...어?”
김신이 그 안으로 의아한 표정을 짓고 들어가자, 넓은 연무장 앞에 태진성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신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태진성은 그의 놀란 표정을 보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놀랐나?”
“음, 처음에는 조금 놀랐는데, 지금 태진성님을 보니 하나도 안 놀랍습니다.”
“나를 보니 하나도 안 놀랍다? 왜 그렇지?”
묘하게 시험하는 듯한 태진성의 말이었지만, 김신은 별 감흥 없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답했다.
“문 앞에 섰을 때, 미묘한 기가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태진성님이 하신 그 말씀.”
김신이 거기까지 말하자,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태진성.
“하하, 요즘 내공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깨달아서 조금 장난을 쳐보고 싶었네만, 바로 들키고 말았구만. 그런데 그걸 느낀 게 사실인가?”
“예.”
김신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려던 태진성의 시도를 간파해낸 김신.
그 때문에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어버린 태진성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김신에게 말했다.
“갑자기 든 생각이네만. 자네가 너무 빨리 쫓아오니까, 나도 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하, 과찬이십니다.”
태진성은 공손하게 말하는 김신을 보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놀랐다.
‘몇 년도 수련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거늘...’
스승도 없고, 대련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트 초기부터 검술만 정진해온 자신이 달성한 경지인 화경에 올라설 준비를 끝마쳤다니.
‘어쩌면 이번 검술대회는...’
너무나도 큰 김신의 재능 앞에 검술대회가 어떻게 흘러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김신이라는 변수의 등장에 태진성은 묘하게 기대가 되었다.
3.
검술대회의 본 대회에 앞서, 김신은 문자로 받았던 진행방식을 태진성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들었다.
“먼저 각 길드 내부에서 12명의 본선 진출자를 추려낸 후에...”
대회의 구성은 총 2일.
본선에 진출할 12명의 참가자를 정하는 길드 내부의 대련이 하루.
자리를 옮겨, 본선이 열리는 대련장에서 또 하루.
‘여기서 떨어지면 본선 구경은 하지도 못하겠네.’
김신에게 설명을 끝마친 태진성은 예선전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연무장의 끝으로 돌아갔다.
“그럼, 자네도 준비 좀 하고 있게.”
“예, 알겠습니다.”
연무장 한 편에 짐을 내려놓은 김신은 가볍게 몸을 풀며, 검술 연습을 하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오...’
내공 없이 순수한 검술로만 이루어지는 대회이니만큼, 다양한 참가자들의 면면.
‘저 사람은 근육으로 패겠는데?’
마나와 내공 사용금지.
이것이 뜻하는 건 육체적인 한계도 스스로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체(體)에 관한 수련을 꾸준히 하길 잘했네.’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로 꾸준하게 운동을 해온 덕에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을 만들었다.
스트레칭과 가벼운 맨몸운동.
김신의 몸이 충분히 풀렸을 때, 대련의 예선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태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연무장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과 비지땀을 흘리며 진지하게 대련하는 사람들.
김신은 선수 대기 장소에서 예선전이 진행되는 것을 조용히 쳐다봤다.
챙! 챙챙!
‘이 승부는 내게 너무 유리해.’
태진성의 조언을 듣고, 체(體)를 수련하기 위해서 머물렀던 일주일이라는 시간과 무윤의 기억으로 봤던 무당파의 12대 장문인, 송무백의 검술.
무당파의 절기로 분류되는 태극혜검부터 기본검술인 태극검술까지 모든 검술을 봤었기에 대련을 지켜보는 지금도 상대의 검로가 훤히 보였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무리일까.’
작금의 목표였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김신은 곧 미련을 떨쳐버렸다.
‘어찌 됐건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자만은 금물.
김신이 허투루 대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연무장의 중심에 앉아서 대련을 지켜보던 태진성이 다음 대련 순서인 김신을 불렀다.
“김신, 장태준 앞으로.”
김신은 태진성의 호명에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의 입구에 있는 검을 집어 들고 앞으로 나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에 검을 납검한 상태로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김신.
“...”
“...?”
상대편의 인사가 없기에 고개를 들어 봤더니, 장태준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하, 지금 대놓고 무시하는 거야?’
태진성이 김신도 검술대회에 참가한다고 말했던 것과 키클롭스 사건에서 길드원을 구해줬던 것 때문에 노골적으로 적대를 하지 않았지만, 마주한 장태준이라는 사람의 눈빛과 태도를 보면 이번 검술대회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게 실감 났다.
‘아무리 길드원을 구했어도 그렇지, 네가 뭔데 이 대회에 끼어들었냐. 라는 건가.’
그것에 더해 장태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김신의 오기를 자극했다.
‘아, 이러면 이 악물고 하고 싶잖아.’
검을 집어 든 김신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준비.”
준비할 것을 말하며 김신과 장태준의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한 태진성.
그는 김신의 인사를 받지 않는 장태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진표가 이렇게 짜일 줄은 몰랐는데.’
의도치 않게 길드에서 태하윤에 더불어 가장 기대하는 인재 중 하나인 장태준과 태진성이 인정한 재능의 소유자인 김신이 맞붙은 대진.
한쪽은 검술을 전문적으로 연마했고, 다른 한쪽은 스승조차 없다.
‘오로지 체(體)와 검술만으로 이뤄지는 경기인 만큼, 김신이 불리한 면이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기대가 되는군.’
내공사용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검술의 완성도는 낮다.
그렇기에 태극검술길드는 내공을 사용하는 검술대련과 체(體)만을 사용하는 검술대련을 각각의 따로 진행한다.
그것에 더불어 장태준의 오만한 태도를 김신이 고쳐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나.’
연무장에 선 두 사람의 시선이 태진성에게 날아와 꽂힌다.
태진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하게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허...”
승패는 일격에 판가름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