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1.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구출팀의 지휘를 맡은 성준과 중앙에서 이능력으로 스트라이커의 포지션을 맡은 송인아.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나온 김신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예? 계획이요?”
“뭔데요?”
현재 처한 가장 큰 문제인 후방의 생존자지원.
김신은 생각한 계획을 말하기 전, 가볍게 숨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우선, 계획에 앞서 제가 가진 이능 중 하나를 말씀드려야겠네요.”
김신이 빠르게 수인을 맺어 계획의 핵심이 될 4서클 마법을 사용하자, 바로 앞에 있던 성준과 송인아는 보고도 못 믿겠다는 듯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투, 투명화?”
“헐...”
곧바로 4서클 투명화 마법을 해제한 김신은 놀란 두 사람을 향해 계획을 말했다.
“우선, 제가 이 이능을 쓰면···”
계획을 모두 들은 송인아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성준은 김신에게 말했다.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뒤로 물러나세요.”
“예. 걱정마세요.”
***
대치하고 있는 오크들의 절반이 돌아가려고 할 무렵.
김신의 계획을 들은 성준은 구출팀에게 간략하게 귀띔을 해준 뒤, 곧바로 계획을 실행할 준비를 했다.
“스트라이커! 총공격!”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요란하고 화려한 스킬을 사용하라는 성준의 말.
시간이 없었기에 구출팀의 전위는 모두 정확한 계획에 대해서는 들을 수 없었지만, 김신의 옆에 서 있던 스트라이커는 달랐다.
“블리자드!”
“포이즌 레인!”
하얗게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의 폭풍과 스치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 같은 초록빛의 빗방울.
엄청나게 화려한 이능의 공격에 돌아가려던 오크들까지 뒤를 돌아봤고, 그 순간 김신이 세운 계획의 시작인 송인아의 염동력이 김신을 묶었다.
“너무 무리하지마.”
“알았어.”
송인아의 말에 답을 해준 김신은 점차 투명해졌다.
김신의 답을 들은 송인아는 그의 말과 함께 그를 묶은 염동력을 움직여 오크의 뒤쪽을 향해 힘차게 날렸다.
슈우우욱!
바람을 가르며 언덕의 너머로 맹렬하게 날아가는 투명해진 김신.
타악!
가볍게 오크 무리의 뒤쪽으로 착지함과 동시에 풀린 투명화 마법.
약간의 충격에도 풀리는 마법의 특성 때문에 김신은 이 계획을 실현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부턴 최대한 빠르게 계획을 끝내야 한다!’
투명화가 풀린 김신은 구출팀의 기습에 시선이 묶인 오크들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진부령 미술관’이라고 적힌 건물을 향해 달렸다.
‘부디 좀만 더 버티십쇼.’
김신의 품에 들린 마석과 치유용 아티펙트.
보법을 사용해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달리는 김신은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감을 퍼트려 내부를 훑었다.
‘1층엔 없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몰려있구나.’
계속해서 울리는 금속의 마찰음과 오크들의 괴성.
건물 안으로 빠르게 진입한 김신은 오크들의 뒤에 서서 소리쳤다.
“모두 계단에서 비켜요!”
김신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허둥대는 오크들과 계단 위를 지키고 있는 남자의 마지막 일격.
스윽-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마법의 수인을 맺으며, 김신은 빠르게 마법의 구현단계를 밟아나갔다.
우웅-
마나가 모여, 바람으로 바뀌고.
후웅-
바람이 모여, 마법으로 변한다.
“에어 밤.”
김신이 날려 보낸 바람의 탄환.
후우웅!
엄청난 돌풍을 간직한 김신의 마법이 오크들의 사이로 도착한 순간.
파아앙!
거대한 풍압을 일으키며 폭발한 바람의 탄환은 계단의 오크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반대편의 유리창 밖으로 날려 보냈다.
와장창!
강렬한 바람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오크들의 사이로 뛰어 올라간 김신.
“···대체 여길 어떻게!”
김신은 박남석의 물음에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원 왔습니다!”
2.
빠르게 통성명을 한 김신은 박남석에게 가져온 마석과 치유용 아티펙트를 건네주며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아마 곧 오크들의 절반이 다시 이쪽으로 몰려올 거에요.”
“잠시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김신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박남석은 곧바로 주변에 있는 경상자들을 이끌고 부상자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취, 취익..
김신은 충격에서 회복되어 올라오려는 오크들을 향해 끝없는 생성되는 2서클 마법, 마나애로우 세례로 저지하며 계획이 무사히 성공했음에 안도했다.
‘다행이다.’
이능으로 오크들의 시선을 끌고, 마석과 치유 아티펙트가 든 짐을 멘 투명화된 김신을 송인아가 날려 보낸다는 계획.
최소한의 리스크로 시작한 계획의 끝은 무려 14명에 달하는 아군의 병력증가로 되돌아왔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하는 박남석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답한 김신은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정비가 끝났으면 곧바로 전투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마석과 치유 아티펙트로 바닥났던 마나를 채우고, 부상을 치료한 청룡길드의 3개 팀.
정신적으로는 피로가 쌓였지만, 이 정도의 피곤함은 방금 전까지 겪었던 육체의 고통에 비하면 웃음만 나오는 수준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겠군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한 박남석을 시작으로 청룡길드의 2,3,4팀은 모두 전의를 불태웠고, 그와 동시에 이상을 감지한 오크들이 다시 박물관으로 들어왔다.
***
‘확실히 중소길드여도 B급은 B급이구나.’
전위 7명, 디펜더 4명, 이능력자 3명.
계단을 틀어막고 2층에서 이능력을 난사하는 청룡길드의 모습은 확실히 노련함이 묻어있는 헌터의 모습이었다.
마석과 치유 아티펙트로 회복한 청룡길드의 힘에 빠르게 줄어가는 오크들.
김신은 받아온 여분의 무전기를 들어 성준에게 무전을 했다.
“여기는 김신. 계획이 성공했습니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나, 격양된 목소리의 성준이 무전을 받았다.
-진짭니까? 진짜 성공한 겁니까?
“예, 지금 박물관 내부에서 입구 틀어막고 무차별 공격 중입니다. 이제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조금만 기다리시면 저희도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계획이자, 메인 계획인 양동작전.
김신은 자신의 무전을 들은 구출팀이 곧바로 다른 움직임을 취하는 것을 창문 너머로 봤다.
스트라이커에게 마석을 몰아주고, 마석을 받은 스트라이커는 최고의 공격스킬을 난사하는 모습을.
콰아앙!
휘이이잉!
땅이 꺼지고, 녹아내리고, 얼어버리고.
너무나도 일방적인 구출팀 스트라이커의 공격.
결국, 거리를 두고 대치상태를 유지한다는 대장 오크의 전략을 파훼한 김신이라는 변수 때문에 오크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면승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인 공격이라면 나도 한몫 거들어야지.’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김신이 해야할 것은 많이 남아있었다.
[가속]
특성의 활성화와 함께 품속에서 다시 지팡이를 꺼낸 김신은 범용성이 아닌 파괴력에 집중된 마법의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3.
마나를 체내에 응집하여 변환하고, 맺은 수인으로 변환된 마나를 고정하여 형태를 만들어 의지로 기적을 일으킨다.
찰나에 이뤄지는 사고의 흐름을 통해 수많은 과정을 건너뛰어 순식간에 마법을 완성 시킨 김신.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현재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4서클 마법인 파이어 버스트가 지팡이를 통해 더욱 증폭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륵!
‘무너지지는 않겠지?’
수호길드의 모의 전투장에서 연습을 했었을 때, 가건물을 몇 개 날려 먹은 전적이 있는 마법이기에 조금 걱정이 됐다.
‘박물관의 입구 너머로 날리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김신은 파이어 버스트를 박물관의 입구를 통해 꾸역꾸역 들어오는 오크에게 날려 보냈다.
겉으로는 파이어 볼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화염의 구체인 파이어 버스트.
바위만 한 크기의 불덩어리는 공기를 달구며 날아가 박물관의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오크 몇 마리를 죽이는 것으로 흩어지며 퍼졌다.
“...?”
겉모습과 다르게 피해가 미미한 김신의 마법에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던 청룡길드의 스트라이커들이 고개를 갸웃했고, 그 모습을 본 김신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 순간.
폭발의 트리거가 당겨지며, 흩어졌던 불길 하나하나의 마나가 맹렬하게 반응함과 동시에 거대한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콰아아아앙!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퍼지는 주변을 모조리 녹일 것 같은 뜨거운 온도.
-크에에에엑!
불길이 멀리까지 퍼진 상태였기에 더욱 큰 피해를 입은 오크들은 몸을 뒤집으며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크에에에...
가장 멀리 떨어진 오크들은 화상에 그쳤지만, 불길이 집중된 중앙은 말 그대로 폭격을 맞은 것과 같은 수준.
팔과 다리가 날아가 전투 불능에 빠진 오크들은 고통이 어린 괴성을 내뱉으며 몸을 뒤틀었다.
“와...”
그야말로 엄청난 마법의 위력.
폭발과 화염의 열풍에 당황한 구출팀이 잠시 움찔하며 얼빠진 상태로 있을 정도로 마법이 불러온 효과는 엄청났다.
오크에게는 엄청난 피해와 절망을.
구출팀에게는 엄청난 사기증진의 효과를.
“···와아아아!”
오크의 전투 의지가 김신의 공격 때문에 꺾인 순간, 이미 싸움은 끝이 났다고 봐도 좋았을 정도로, 수세를 굳히려던 구출팀은 오히려 오크들을 향해 돌격했다.
달려가는 청룡길드의 전위 위로 날아가는 스트라이커의 이능공격.
콰앙! 퍼퍼퍼퍼퍽!
온갖 이능의 향연에 한 차례 더 피해를 입은 오크들은 그야말로 멀쩡한 놈이 없을 만큼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앞과 뒤를 동시에 친다는 양동작전이 성공한 구출팀은 헌터 41명대 오크 200마리의 수적 열세를 뒤집었다.
거의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받은 박물관의 오크들.
멀쩡한 오크가 없을 정도로 진형이 무너진 오크들을 압도하며 청룡길드의 고립된 2,3,4팀은 한바탕 분풀이를 시작했다.
서걱! 촤악!
빠르게 줄어가는 박물관의 오크들과 단단한 전위와 디펜더에게 가로막힌 채, 스트라이커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구출팀의 오크들.
-취익!? 취이익!
뛰어난 지성을 앞세운 구출팀의 전략에 괴수치고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대장 오크조차 어쩔 도리 없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오크들의 사이에서 높은 지능으로 족장의 자리를 차지한 추마쉬는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밀려 패퇴하는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명 인간들을 모두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피에 굶주린 본능이 외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세를 불리고, 마나를 쌓아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라!
“다 죽는다!”
“족장! 어쩌냐!”
괴상한 힘을 사용해 일방적으로 동족을 죽이는 인간들.
분명 달려나가는 동족들을 불러세운 자신을 보며 인간들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을 웃으며 봤거늘.
콰아앙!
박물관의 다 죽어가는 인간들조차 어째서인지 다시 쌩쌩해져서 동족을 죽이고 있잖는가!
추마쉬는 또다시 생각했다.
‘뒤에 있는 인간들을 죽여야 살 수 있다!’
고민이 끝난 추마쉬는 아직 살아있는 동족들에게 말했다.
“뒤에 인간, 죽인다!”
앞에 있는 동족들이 죽을 동안 뒤에 인간을 잡아 죽이고 도망친다.
그렇게 추마쉬가 지시를 내리고 돌아선 순간.
‘저 인간이 뒤에 있었나?’
분명 앞에서 공격하던 인간이다.
그런데 저 인간이 어째서 뒤로 돌아가 있는지 추마쉬는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저 인간 때문에...?’
추마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멍하니 바라보는 인간이 갑자기 자신을 보며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