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1.
산사태로 가로막힌 우측의 오크부대의 모습을 봄과 동시에 김신의 목소리를 들은 구출팀.
‘정면승부라면 이길 수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전투준비!”
“후열의 디펜더와 전위는 모두 앞으로!”
매화검술길드의 팀장과 수호길드의 팀장 성준의 목소리를 따라 패닉에서 빠져나온 구출팀이 자리를 잡았고.
“스트라이커! 공격!”
한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정면의 오크부대와의 전투가 시작됐다.
길이 좁고, 경사가 진 산의 특성.
그 말은 한 번에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인원의 제한이 있고, 위에서 아래를 공격하기에 편하다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프로즌 오브.”
“무형의 창.”
한설의 말을 시작으로 이능을 사용하기 시작한 수호길드의 스트라이커들.
후웅! 쐐애액!
냉기와 화염, 그리고 무형의 염동력까지.
강한 파괴력을 지닌 스트라이커의 공격은 전방의 오크무리를 한차례 휩쓸었다.
푹푹! 퍼엉!
오크들의 기준에서 오른쪽에는 높은 절벽이, 왼쪽에는 낭떠러지가 있었기에 수호길드의 스트라이커의 공격은 오크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눈에 보일 만큼 큰 피해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수가 남은 오크들.
-취이익!
스트라이커의 공격을 넘어 괴성을 내지르며 올라온 오크들은 결국, 구출팀의 가장 전열에 서 있는 전위와 디펜더를 공격해왔다.
그 순간, 또다시 시작된 김신의 마법.
“메모라이즈. 헤이스트, 스트랭스, 샤프니스.”
블라이어의 지팡이를 통해 증폭된 마력은 전열에 서있는 모든 구출팀에게 버프를 걸어줬다.
“...!”
순식간에 늘어난 힘과 반사신경.
질긴 오크의 가죽을 힘들게 베던 검까지 한층 더 날카로워지자, 전열에 서 있는 구출팀의 전위와 디펜더들은 눈을 부릅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강! 쐐액! 촤악!
그중 가장 앞에 서 있는 강한우는 방패의 전 주인이었던 카엘의 이명인 무패의 기사처럼 달려드는 오크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베어냈으며.
“인페르노!”
강한 불길을 몸에 두른 천명화는 화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유리하게 전투를 풀어나갔다.
‘확실히 성장했네.’
각자의 위치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이어나가는 팀원의 모습을 보며 김신도 다시 수인을 맺었다.
***
장장 1시간 동안 이어진 긴 전투.
우회하는 적을 김신이 막은 덕에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벌였다지만,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모두 치유 관련 아티펙트가 있으신 분들은 주변에 있는 부상자를 도와주십시오.”
상처를 치유하는 종류의 아티펙트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를 치료하는 모습에 김신도 경상자가 있는 매화검술길드의 길드원에게 다가가 3서클 마법인 힐(Heal)을 사용해줬다.
우웅-
김신이 쥐고 있는 지팡이의 끝에 서린 초록빛 마나가 닿자, 빠르게 아물어가는 잔 상처들.
“좋은 아티펙트군요.”
아티펙트의 담긴 힐을 보고 말하는 길드원의 물음에 김신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하. 그런가요?”
“네. 지금 제게는 헌터님의 치유가 신의(神醫)가 가진 회복의 녹옥보다 낫네요. 하하.”
회복의 녹옥.
치유 관련 아티펙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효과를 지닌 아티펙트이자, 대한민국의 대표 치유능력자, 신의(神醫) 현주영이 가지고 있는 아티펙트.
김신은 상대의 말에 능청스럽게 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손에 쥔 지팡이의 모습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않는 부상자를 치료해준 김신은 어느덧 정리되어가는 현장을 벗어나 잠시 주변을 살펴봤다.
‘흠, 조용하네.’
오크와 전투를 벌이기 전까지 간간이 들렸던 이상한 괴성이 들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묘한 위화감이 몸을 감쌌지만, 이내 고개를 털고 다시 구출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2.
“자, 다시 이동합니다.”
부상자의 치료가 끝나고, 전열을 가다듬은 구출팀은 다시 위쪽으로 수색을 이어나갔다.
작전에 적힌 목표지점까지는 앞으로 2km.
그 안에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만약 발견했다면 무전으로 다른 구출팀에게 알려주면 된다.
“아래로 내려간 팀도 무전이 없네요.”
“그러게 말이네요.”
무전기를 소유한 매화검술길드의 팀장과 성준의 대화.
김신은 뒤에서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고민했다.
‘오크와의 전투 때문에 이곳에서 묶여있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아래쪽으로 간 팀은 지금쯤 확인이 끝났을 텐데...’
물론, 전투가 벌어졌다는 경우가 생겼다면 이쪽과 비슷하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생각을 가지고 수색을 이어가기를 10분.
치직-
무전기에 아래쪽으로 갔던 구출팀의 무전기가 울렸다.
-치직...여기는 청룡길드. 목표지점까지 수색을 끝마쳤으나, 고립된 인원을 못 찾았습니다. 그쪽은 목표지점에 도착했습니까?
무전기를 들고 있는 성준이 청룡길드의 길드장 이철용의 무전에 답했다.
“이제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처음 흩어진 장소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예.”
이제 목표지점까지의 남은 거리는 1km.
이곳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다는 것은 사실상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래도 아직 1km가 남았으니...’
용대리와 이어지는 다른 마을인 흘리.
몰려오는 괴수에게 쫓겨 길을 따라 도주했다면 아직 생존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로 수색목표지점인 흘리에 도착한 구출팀은 건물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오크무리를 발견했다.
***
“...끝이 아니었어?”
앞에 선 전위의 말처럼,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오크무리.
흘리의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오크무리는 처음 맞닥뜨렸던 무리와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월등히 앞서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큰 건물의 가장 뒤편에 서 있는 오크는 다른 오크들과는 다르게 제대로 손질된 도끼와 투박하지만, 옷까지 걸치고 있을 정도로.
‘오크가 옷을?’
마치, 한 부족의 지배자 같은 느낌의 오크.
대장 오크를 중심으로 다른 오크들이 취하고 있는 행동은 마치 공성전과도 같은 느낌의 행동들이었다.
‘혹시?’
무기를 든 채,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려는 오크의 모습과 건물의 구조를 보면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상대하기에 걸맞아 보인다.
‘청룡길드의 고립된 팀인가?’
게다가 내공을 끌어올려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자, 간간이 들려오는 냉병기의 마찰음.
챙! 채앵!
‘생존자다!’
김신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추론한 것처럼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구출팀은 목표를 발견했다는 희망과 다시 벌어질 전투에 대비해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취이익?
구출팀의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대장 오크.
고개를 돌린 대장 오크가 괴성을 내지르자, 주변에 있는 다른 오크들이 전부 이쪽을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친 구출팀과 오크 무리.
“모두!”
-취익! 취이익!
성준의 목소리와 대장 오크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전투준비!”
-취이이익!
수비하는 구출팀과 공격하는 오크의 전투가 시작됐다.
3.
다른 오크에 비해서 머리가 하나는 더 큰 거대한 대장 오크의 괴성을 시작으로 구출팀을 향해 달려오는 이백 마리에 달하는 오크들.
“모두 뒤로 물러서서 외길을 등지고 자리를 잡아!”
수적으로 밀린다면 최선의 전략은 아까 취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방어다.
성준의 지시에 따라 오크에게 포위되기 전, 빠르게 경사로를 등지고 선 구출팀.
오크들이 처음과 같이 돌격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구출팀의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장 오크의 괴성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취익!
달려오던 오크들이 일제히 대장 오크의 목소리에 따라 정지해 버렸기 때문에.
“...불리한 싸움은 하지 않겠다는 건가.”
옆에 있는 성준이 하는 말처럼 더욱 높은 지능을 자랑하듯 거리를 두고 그 이상 다가오지 않는 오크들.
대치상황이 이어지자, 절반은 대치상황을 유지한 상태로 나머지 절반은 다시 건물로 돌아가려 했다.
‘건물이 뚫려서 생존자가 모두 죽는다면 이 작전의 의미가 없다.’
앞에는 뚫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의 오크들이.
그 너머에는 공격당하는 생존자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이도 저도 못할 만큼 막혀버린 상황에 구출팀의 지휘관인 성준과 매화검술길드의 팀장이 동시에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하다 못 해 고립된 생존자들한테 치유아티펙트랑 마석만이라도 전달해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건물 내부에 있는 생존자들도 엄연히 3개의 팀에 전부 B랭크 이상.
성준의 말처럼 부상만 회복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방법이 있다.
‘양동작전을...’
생존자들이 있는 건물을 성벽 삼아 천천히 줄이고, 이곳에서도 이능력자의 스킬을 이용해 오크들의 숫자를 천천히 줄여가는 것.
‘앞에 있는 오크들만 어떻게든 뛰어넘을 수 있다면...’
마법의 범용성을 이용한 변수.
김신은 현 상황을 타파할 최선의 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팀원의 특성과 내가 가진 힘...’
지능이 있는 오크의 허를 찌르는 방법을.
‘···있다!’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김신은 곧바로 성준과 송인아에게 말했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
흘리의 진부령 미술관.
단단한 석재로 지어진 미술관 내부에 있는 생존자인 청룡길드의 2, 3, 4팀.
챙! 챙챙! 서걱!
-취이익!
“버텨! 어떻게든!”
300마리가 넘어가는 오크 무리에게 쫓겨 황급히 도망쳐온 이들은 좁은 계단을 틀어막은 채로 반나절이 넘어가는 전투를 벌였다.
“소닉붐!”
파앙!
강력한 충격파에 밀려 떨어지는 오크들.
“하아하아...”
무전기는 이미 한참 전에 파괴되었고, 한계에 도달한 체력에 점차 짙어지는 패색.
돌아가며 릴레이 전투를 벌인 탓에 부상자만 점차 늘어났고, 마나 마저 바닥났다.
“으득...”
그중 2팀의 팀장이자 유일한 A급 헌터인 박남석은 올라오는 오크를 삐걱거리는 팔다리 억지로 움직여 날려 보내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
괴수의 서식지에 대한 정보를 돈 받고 알려주는 디텍터.
거액의 정보료를 주고, A급 괴수 그리핀의 알이 있는 장소를 알아낸 박남석은 청룡길드의 3, 4팀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여 레이드를 뛰었고, 결과적으로 그리핀의 알을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맞닥뜨린 오크 무리.
결국,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도달한 게 이 장소였고, 최악의 결과만 낳았다.
‘이딴 거 필요 없으니까,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반나절이 넘어가는 전투와 늘어가는 상처에 희망의 끈을 놓기 직전.
“아무나...제발...”
그의 기도를 들었는지 어디선가 들려오기 시작한 사람들의 목소리.
“...!”
그와 함께 대치하고 있는 20여 마리의 오크 외에는 전부 우르르 건물을 빠져나갔다.
‘지, 지원인가?’
잠시 눈을 돌려 건물 밖 창문으로 본 광경은 약 30명의 헌터들과 대치 중인 200마리가 넘는 오크들.
처음 언덕을 넘어갔던 100여 마리의 오크는 헌터들에게 토벌당했는지 돌아오지 않았지만, 여전히 헌터들과 대치 중인 오크의 숫자 차이는 극명했다.
‘...안돼. 역부족이야.’
박남석의 생각처럼 헌터들은 수적 열세에 밀려 방어가 유리한 언덕까지 물러났고, 오크들은 지능이 높은 대장 오크의 명령으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그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제길.’
심지어 설상가상으로 대치가 길어지자, 다시 돌아오려는 절반에 달하는 오크들.
더 버틸 힘도, 마나도 없는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즈음.
“...!”
건물 내부에서 살갗을 찌르는 오싹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어떻게?’
박남석이 마나의 흐름을 느낌과 동시에 계단 아래에서 들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
“모두 계단에서 비켜요!”
남자의 목소리에 박남석은 반사적으로 없는 마나를 쥐어 짜내서 마지막 한 방의 공격을 오크에게 날리고 복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취, 취익?!
당황하는 오크의 모습과 동시에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에어 밤.”
파아앙! 와장창!
엄청난 풍압에 밀려 계단 앞의 창문을 통해 날아가는 오크와 계단 사이사이에서 나뒹굴고 있는 오크들.
계단에 있는 20마리의 오크를 일격에 뚫고 올라온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박남석에게 말했다.
“지원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