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1.
모든 승급심사가 끝나고, 무사히 B급으로 승급한 송인아와 천명화.
모든 팀원이 B급을 달성한 만큼, 활동 범위의 제약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이란 것도 일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승급심사 직후라 할만한 C급과 B급 의뢰가 싹 사라졌기에 출동과 순찰로 시간을 보내던 도중, 하나의 공지가 올라왔다.
[긴급]-강원도 인제군, 청룡길드 구출의뢰.
인제군 용대리에서 고립된 청룡길드의 3 개 팀을 구출해달라는 의뢰.
발신인이 길드장인 한유성이었고, 공지의 마지막에는 짧은 코멘트가 남겨져 있었다.
-회의가 필요하니, 팀장들은 모두 회의실로.
‘길드의뢰라고?’
길드단위의 인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의뢰가 길드의뢰다.
팀 단위의 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내려오는 대규모 의뢰.
보통 정기적으로 하는 길드레이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공지를 보고 놀란 김신의 모습 때문인지, 주변으로 모여든 팀원들.
김신과 마찬가지로 공지를 읽은 팀원들이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긴급의뢰로 길드의뢰가 들어온 거면 상황이 좀 급박한 거 아닙니까?”
“맞아.”
“이거, 등급이...B급 이상?”
근 며칠 간 활동이 없었던 탓에 의뢰에 목말라있던 팀원들의 얼굴에 가고 싶다는 의욕과 동시에 긴장이 서려있었다.
“아무래도 지원할 팀들을 받을 거 같으니까, 우리 팀은 지원하는 방향으로 한다.”
김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챙겼다.
‘천명화의 말처럼 긴급의뢰면 촌각을 다투는 의뢰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게 생각한 김신은 마지막에 적혀있는 코멘트대로 회의를 하기 위해 회의실로 올라갔다.
***
회의실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 팀별로 앉아있는 팀장들.
김신도 회의실의 마지막자리에 가기위해 들어가던 중, 눈을 마주친 한설에게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했다.
스윽- 탁.
마지막으로 회의실에 들어온 길드장, 한유성이 회의실 책상에 앉으며 회의가 시작됐다.
“다들 알다시피, 큰 규모의 구출 의뢰네.”
한유성의 의뢰에 대한 정보를 간단하게 풀어서 설명했다.
“바로 오늘, 속초시 바로 옆인 인제군 용대리로 B급 의뢰를 받아 지원나간 청룡길드의 3개 팀이 한순간에 연락이 끊긴 사건이네, 마지막 무전의 내용은 ‘괴수가 너무 많다.’로 시작하는 지원요청. 그 요청을 받은 같은 길드의 다른 팀들이 전부 지원을 갔지만, 그 팀들마저 연락이 끊겼네.”
괴수들이 한 번에 밀려서 내려오는 웨이브로 고립된 것 같은 상황.
설명이 끝난 한유성은 간단하게 지원할 팀을 모집했다.
“지원할 팀은 둘에서 세 팀. 모두 지원으로 받겠네.”
한유성의 말이 끝나자, 모든 팀장들은 생각에 잠겼다.
‘길드단위의 의뢰인만큼, 다른 길드에도 지원요청이 갔겠지.’
보통의 길드 레이드처럼 모든 길드가 다 같이 의뢰에 참가하는 형식이기에 의뢰길드인 청룡길드는 물론, 다른 길드도 참가 할 것이다.
‘몇 팀이나 지원하려나...’
웨이브라면 난이도가 높은 만큼, 얼마나 지원할지 감이 안 잡혔다.
김신이 팀원들의 의사를 종합하여 참가를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둘러보자 대부분의 팀장들도 참가여부를 결정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의뢰에 지원한 가장 첫 팀은 김신의 5팀.
“5팀 지원합니다.”
그 모습을 본 한유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위험할 수도 있는 구출지원에 가장먼저 나서는군. 좋아.’
그 다음은 2팀장, 성준이 손을 들며 말했다.
“2팀도 지원합니다.”
결의에 차있는 성준의 모습에 한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타우르스 사건 때문에 그런 건가?’
잠시 침묵하던 팀장들 중,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손을 든 3팀장, 한설.
“3팀도 지원합니다.”
그 모습에 한유성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반대할 명분이 없기에 입술을 다무는 것으로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렇게 3팀을 끝으로 모든 지원이 끝나자, 한유성이 가벼운 농담을 꺼냈다.
“지원자가 충분하니, 내가 지원할 일은 없겠구만.”
한유성의 말이 나오자, 곧바로 정색하며 답하는 1팀장.
“길드의 중심이자, 최대 전력인 길드장님이 이런 일로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됩니다.”
1팀장의 정색에 길드장은 가볍게 답했다.
“농일세.”
이어지는 지원한 팀의 리더를 뽑기 위한 절차는 길드에서 몸을 가장 오래 담은 2팀장이 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정리가 됐다.
모든 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출동준비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각 팀장들.
김신은 대기실로 돌아가며 공지에서 봤던 진입 방법을 곱씹었다.
‘역시 진입은 헬기인가.’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방법은 경기도와 강원도가 괴수의 소굴이 된 만큼, 지상에서 어떤 괴수가 습격할지 모르기에 위험하다는 점과 구출지역인 용대리가 속초에서 가까웠기에 헬기로 결정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참가하는 모든 길드의 팀은 헬기를 타고 속초에 도착한 후, 미시령로를 따라 진입하는 것이 주된 구출루트.
대기실로 복귀한 김신이 곧바로 팀원들에게 출동준비를 할 것을 전했고, 구출을 위해 지원한 수호길드의 2,3,5팀은 몇 대의 헬기를 빌려 강원도 상공을 날아 속초로 향했다.
2.
두두두두-
B급 이상의 헌터들만 출입이 허락될 만큼, 괴수들이 판을 치는 장소.
앞서 토벌했던 B급의 샤벨타이거가 아래등급의 괴수일 만큼, 대부분의 괴수의 등급이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대전, 대구의 방어선으로 계속해서 내려오는 괴수들을 미리 차단하고, 깊은 산골 지역에서 서식하는 높은 등급의 개체수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진기지가 속초다.
천명화와 송인아가 B급으로 승급을 하지 못했더라면 5팀은 김신과 강한우만이 출입이 가능했지만, 다행히 승급을 했기에 이번 길드임무에 제한 없이 5팀이 전부 참여할 수 있었다.
안전이 최우선 사항이고, 그 다음이 임무다.
말로만 듣던 속초에 온 길드원들의 긴장한 모습에 김신은 헬기 안에서 팀원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다치지 않게 조심해!”
“네!”
다치면 헌터로서의 생활이 끝난다고 보는 만큼, 빠르고 안전한 토벌이 목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속초시 상공.
김신은 아래로 보이는 풍경에 이 곳이 왜 전진기지인지 알 수 있었다.
속초 시 주변으로 펼쳐진 철책과 감시초소, 그리고 계속해서 괴수와 전투중인 헌터들.
위험한 만큼, 보수가 높고, 순도 높은 마석과 희귀한 괴수의 부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번 의뢰에 지원하는 헌터가 생각보다 많았다.
‘중소길드라도 3개 팀이 고립된 거면 꽤 상황이 심각한가보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도착한 속초의 헬기장.
헬기 5대가 나란히 착륙할 정도로 넓은 헬기장에 각 길드에서 지원한 팀의 팀원들이 내려 한 곳으로 모였고, 그 앞으로 이번 의뢰를 한 길드인 청룡길드의 길드장이 다가왔다.
“오늘 모인이유는 미리 알려줬으니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좌중을 둘러본 청룡길드의 길드장은 말을 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별다른 말없이 다시 앞으로 돌아간 청룡길드의 길드장은 가장 앞에서 남은 두 개의 팀과 함께 출발을 알렸다.
“위치는 미시령로를 따라 10km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인제군 용대리의 마을. 우리는 그 곳에서 각 길드별로 나뉘어 수색을 할 겁니다. 그럼, 출발합니다.”
***
군데군데 파여 있는 도로와 흉하게 찌그러진 중앙분리대, 가드레일을 넘어 도로 위를 침범한 담쟁이 넝쿨까지.
미시령 톨게이트를 넘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미시령로를 따라 용대리의 마을을 향해 걸어가기를 1시간.
불이 꺼진 터널을 무사히 지나, 밖으로 나오자 2팀장 성준은 손을 들어 대형을 갖출 것을 지시했다.
“각 팀별로 사주경계.”
터널의 바깥부터는 어느 위치에서 괴수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경계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길드 별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흩어져 사방을 살피며 걸어가기를 잠시.
-크르르르르.
많은 인간의 기척을 느끼고 나타난 거대한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전투준비!”
어림잡아 200마리 이상의 개체 수.
3m가 넘는 길이에 2m에 달하는 체고에 붉은 색 가죽.
개체마다의 위험은 낮지만, 많은 수로 싸우는 블러드 울프라는 C급 괴수무리의 등장에 각 길드의 팀들이 뭉치며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김신은 다가오는 블러드 울프의 무리를 보며 곧바로 5팀을 향해 말했다.
“포지션은 전에 했던 대로 하되, 이번엔 천명화가 넓은 범위를 수비해. 블러드 울프의 약점은 배니까, 덮치려고 점프하면 송인아가 저격 해주고.”
“알겠습니다!”
“네!”
천명화와 송인아의 대답이 차례대로 나왔고, 5팀의 옆에 있는 2팀에게 달려드는 블러드 울프를 시작으로 모든 팀이 전투를 시작했다.
3.
스킬을 사용해 몸 주변과 검에 불길을 두른 천명화가 오른쪽을 맡아 시선을 끎과 동시에 송인아의 공격이 날아갔다.
“사이킥 블레이드.”
송인아가 특별훈련에서 습득한 새로운 스킬.
염동력의 칼날이 날아가 입을 벌린 블러드 울프의 목을 베고 지나가는 것을 보며 김신도 다가오는 블러드 울프를 향해 쇄도했다.
수인을 맺어, 팀원과 자신에게 버프를 건다.
근력증가, 속도증가, 칼날의 예리함까지.
급격하게 늘어난 신체능력을 이제는 꽤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은 김신은 땅을 디디는 블러드 울프의 아래에 1서클 마법 그리스를 사용했다.
-커헝?
빙판을 밟은 듯한 모습으로 휘청거리는 블러드 울프의 목을 가볍게 베고 지나간 김신.
서걱!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놈의 뒤로 세 방향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놈들을 향해 새롭게 습득한 4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에어 밤.’
휘잉-
마력이 김신의 몸을 거쳐 변환되어 손바닥 위에 소용돌이치며 뭉쳤고,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블러드 울프에게 날렸다.
후웅! 파앙!
강력한 풍압과 함께 뒤로 튕겨나간 세 마리의 괴수.
-커헝!
김신은 놈들이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수인을 맺은 왼손을 들어 내공의 탄환을 날렸다.
‘흑영탄(黑影彈).’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서야 사용할 수 있게 된 내공의 탄환이 공기를 뚫고 은밀하게 날아가 놈들의 턱에 꽂혔다.
날카로운 파육음과 동시에 절명한 괴수들.
압도적인 김신의 무력에 놀란 괴수들이 몸을 내빼는 것을 끝으로 김신은 고개를 돌려 팀원들의 전투를 바라봤다.
‘특훈한 보람이 있네.’
세 마리의 블러드 울프에게 둘러싸인 천명화가 위태로울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크왕!
달려드는 놈에게 불길을 집중해 뒤로 물러 세우면 송인아의 스킬이 공격하고, 주춤거리는 놈을 향해 달려가 화염이 뒤덮인 검으로 마무리.
화염에 휩싸인 천명화를 지나쳐 송인아에게 달려가는 블러드 울프는 앞에 서있는 강한우의 방패술에 통째로 반 토막이 났다.
김신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전투가 끝난 5팀은 이제야 끝나가는 다른 팀의 전투를 보며 마석을 채취하고, 장비를 재정비했다.
***
터널을 나온 후부터 용대리 마을까지 가는 약 3km구간의 미시령로에서 구출팀은 3번의 전투를 벌였다.
산악지형임에도 꽤 탁 트인 도로였던 탓에 아직까진 B급이 넘는 괴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반복된 전투는 체력을 깎아먹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전투가 끝날 무렵.
한설은 자신이 사용한 넓은 범위의 냉기 공격에 몸놀림이 굳은 괴수를 3팀의 팀원이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오른쪽을 막고 있는 5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볼 때마다 전투가 끝나있어.’
처음에는 달려드는 괴수의 수가 적어서 그런 건가 했었는데, 널려있는 괴수의 시체에서 마석을 캐는 모습을 보니 언 듯 봐도 3팀이 잡은 괴수의 숫자와 비슷했다.
‘A급 괴수를 홀로 잡았다더니...’
처음과 다르게 급성장한 김신의 모습에 한설이 그를 쳐다봤고, 멀리서 마석을 채취하는 김신을 노리고 수풀 속으로 은밀하게 접근하는 뱀 형태의 C급 괴수 한 마리가 한설의 시야에 포착됐다.
짙은 검은색의 삼각형머리.
괴수 자체의 위험도는 낮지만,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C급 괴수 블랙베놈.
‘위, 위험해!’
가드레일 끝자락에 있던 괴수를 채취하던 탓에 보이지 않는 각도.
한설이 위험에 처한 김신을 향해 조심하라는 말을 하며 달려가려는 순간.
스윽-
김신이 오지 말라는 것처럼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블랙베놈.
-쉬익...
믿기 힘든 상황에 한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맥 빠진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