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1.
하루가 지나, 김신은 길드뒤편에 위치한 개룡산으로 모인 5팀의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천명화, 송인아.”
김신이 부르자 앞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
김신은 두 사람의 모습을 훑어보며 간단한 질문을 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특성에 강점과 약점을 말할 수 있어?”
김신의 말에 눈빛을 빛내는 천명화와 조용히 고민하는 송인아.
두 사람 중 답변을 먼저 한 사람은 천명화였다.
“강점은 근거리에서 범위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과 원거리 대인 공격이 가능 한 것이고, 약점은...”
강점과 달리 약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천명화.
김신은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약점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챘다.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네.’
자신감이 하늘을 뚫는 천명화의 성격상 자신의 약점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거다.
그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것일 뿐.
‘전에도 봤지만, 약점을 알고, 극복하지 못하면 더 강한 상대를 만나서 아무런 힘도 못 쓸 거야.’
그렇다면 천명화에 대한 첫 번째 솔루션은 간단하다.
“검 들어.”
“네?”
“지금 너의 약점을 네가 모르잖아. 그럼 직접 부딪쳐서,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야지.”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한 가지.
강한 상대에게 전력을 다해 직접 알아내 보는 것이다.
***
챙챙!
천명화의 검에서 피어난 화염이 검을 맞대고 있는 김신을 익혀버릴 듯 활활 타오른다.
하지만, 김신은 천명화를 향해 그런 불길쯤은 하나도 뜨겁지 않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난 널 능력 있는 전위라 생각하고 뽑았다. 더 할 수 있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
김신의 말을 듣자, 더욱 줄기차게 화염을 뿌리는 천명화.
김신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자신보다 약한 괴수와의 다수 전엔 강하지만, 조금이라도 강하면 피해를 못 입혀.’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힘의 발산은 가능하나 집중을 못한다는 이야기다.
‘마나의 보유량이 낮은 만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어차피 마나는 마석의 마나를 흡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오르기 마련이다.
이미 그동안의 토벌과 임무로 충분한 마나를 쌓았을 테니, 가장 중요한 힘의 집중을 배우면 분명 한 단계 더 성장할 거다.
우웅-
판단을 끝낸 김신은 내공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수인을 맺어 몸에 실드를 걸고, 검에 피어난 검기로 화염을 막으며 천명화와의 거리를 한 발씩 좁혀가기 시작했다.
터벅.
활활 타오르는 천명화의 불길사이로 태연하게 걸어가는 김신의 모습에 천명화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 어떻게?’
마나를 쥐어짜내 사용한 스킬인 인페르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들어오는 김신의 모습.
천명화는 그 모습에서 전에 싸웠던 샤벨타이거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어째서, 김신을 따라잡기 위해서 홀로 수련했던 것이 떠올랐을까.
‘뚫고 들어 오려하면 한곳으로 힘을 모아 저지한다!’
천명화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컨트롤해 김신의 정면으로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천명화를 휘감은 불길이 창처럼 조형되어 김신에게 쇄도한다.
화르륵!
더 이상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한 곳으로 집중되는 천명화 공격.
김신은 천명화가 날리는 화염을 보며 미소 지었다.
2.
“허억, 허억”
김신은 폭발적인 마나의 운용 때문에 호흡을 가다듬는 천명화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잘하네. 마지막 공격은 생각했던 것처럼 확실히 위력적이었어.”
말을 하고 곧바로 송인아에게로 가는 김신의 모습에 천명화는 그의 말에 이상했던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했던 것처럼...?’
천명화가 마지막에 불길을 집중시킨 마나컨트롤은 분명 집중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그런데...‘생각했던 것처럼’ 이었다고?‘
김신의 말은 마치 판을 만들고 유도한 사람의 말 아닌가.
‘설마, 마지막에 그 미소는...’
김신이 마지막 공격을 막을 때 지었던 모습을 떠올리자, 천명화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일부러 공격을 막으면서 밀고 들어온 이유가, 약점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려고...?’
천명화가 김신의 의도를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송인아에게 다가간 김신은 아까 말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물었다.
“네 특성의 강점과 약점은?”
곰곰이 생각했었는지, 송인아는 확실한 어조로 질문에 답했다.
“강점은 상대의 눈에 보이지 않고, 여러 가지의 형태로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 약점은 속성이 없기에 그 자체로는 공격력이 없다는 것?”
“오...”
생각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약점을 이해하고 있는 송인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김신은 천명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녀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일단, 저기 있는 나무를 네가 가장 자신 있는 방법으로 쓰러뜨려봐.”
“음...”
생각보다 큰 나무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송인아는 손을 들어 스킬을 사용했다.
“스탬핑!”
스킬을 사용하자 염동력으로 이루어진 묵직한 힘의 덩어리가 강하게 나무를 내리쳤다.
쿠웅!
스킬이 적중한 나무가 크게 파이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지만 나무는 끝내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신은 계속해서 스킬을 사용할 것을 말했다.
“다시 해봐.”
김신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스킬을 사용하는 송인아.
“스탬핑!”
쿠웅! 우지끈!
파인 부분에 다시 한 번 공격이 적중하자, 그제야 쓰러지는 나무.
김신은 송인아를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그 스킬을 사용한 거지?”
송인아는 바로 말하지 못하고 약간의 고민 끝에 말했다.
“제일 강한 스킬이어서.”
“그래, 그게 너의 가장 강한 스킬이란 말이지...”
잠시 고민하던 김신은 부러진 나무 옆에 서서 송인아에게 재차 말했다.
“스킬은 어떻게 만들어지지?”
“정확하고 반복적인 행동으로.”
송인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신은 수인을 맺어 4서클 마법, 에어 밤을 사용했다.
“잘 봐.”
압축된 공기의 탄환을 나무를 향해 날렸고, 대기를 가르고 날아간 에어 밤이 나무에 강하게 부딪치며 바람을 흩뿌렸다.
파앙!
강렬한 공기의 확산에 나무가 흔들리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김신은 그 모습을 보며 송인아에게 감상을 물었다.
“어때?”
“오, 오빠 이능력도 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단 내 질문에 답해줘.”
이능력에 놀라던 송인아는 진지한 김신의 목소리에 놀라움을 감추고 느낌 그대로를 말했다.
“강하긴 강한데, 생각보다 피해는 없어.”
“그렇지?”
짧게 답을 한 김신은 다시 재차 수인을 맺어 3서클 마법, 윈드 커터를 사용했다.
우웅-
낮은 바람의 울림과 함께 허공에 생성된 열 개가 넘는 바람의 칼날.
김신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칼날을 부러지지 않은 나무의 밑동을 향해 하나씩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슈욱- 스칵!
바람의 칼날이 하나하나 나무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눈에 띄게 틈이 벌어진다.
슈욱- 우지끈!
마지막 하나까지 모두 날림과 동시에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나무.
김신은 나무를 보지 않은 채, 다시 송인아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지금 사용한 두 가지 공격 중 첫 번째 공격은 두 번째 공격보다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해.”
“진짜?”
“응, 하지만 본 것처럼 하나하나의 위력은 두 번째 공격이 적어도 ‘나무를 벤다’는 것엔 더 효율적이지.”
김신의 말이 끝나자 송인아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의 요지는 효율적인 사용 방법을 찾으라는 거지?”
“맞아, 근데 넌 지금 그 생각을 못하는 이유가 정확한 이미지를 못 떠올려서 그런 거 아니야?”
“...!”
김신의 말에 송인아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뭔데...?”
“따라와.”
천명화가 연습을 하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꽤 커다란 물웅덩이.
그곳에 송인아를 데리고 간 김신은 그녀에게 해결방법을 알려줬다.
“네 약점은 충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하면 강점으로 만들 수 있어.”
“어떻게?”
“저 앞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물을 띄워 원하는 모양으로 계속 바꾸는 거야.”
속성이 없다는 건 큰 약점은 아니다.
오히려 은밀하다는 것에서 강점이 될 수도 있고.
단지 송인아는 사용 방법이 단순했기에 그 힘을 더 발휘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이렇게?”
서툴게나마 염동력으로 물을 다루기 시작한 송인아.
김신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한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추가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내가 준 아티펙트로 생각한 이미지의 공격을 강하게 날려 보내는 연습도 같이 해봤으면 해.”
“응! 고마워!”
고개를 끄덕이며 수련에 집중하는 송인아.
김신은 천명화와 송인아가 약점을 극복해나가는 것을 보며 강한우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죠?”
“아닙니다.”
꽤나 몸이 근질근질했던지 말과는 다르게 방패를 들썩거리는 강한우에게 김신은 검을 빼들며 말했다.
“그동안 방패술 연습 많이 하셨습니까?”
“예!”
“우린 대련이나 하죠.”
3.
파괴된 모의 전투장이 수리가 되는 일주일동안 매일같이 구룡산에 올라 수련을 한 천명화와 송인아, 그리고 김신과 대련을 한 강한우.
토벌로 벌어놨던 마석까지 쓴 결과로 천명화와 송인아는 목표했던 B급의 경지에 거의 다 올라섰고, 강한우는 한층 더 카엘의 방패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자, 이만하면 수련은 된 것 같다.”
김신의 말에 천명화가 먼저 수련을 마무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제 특훈은 끝입니까?”
“응, 이제 특훈은 끝났어.”
그 말을 들은 송인아는 집중하느라 흘린 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김신에게 질문했다.
“그럼 이제 의뢰받아서 토벌하러 가나요?”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힘든 거 하러갈 거야.”
“···토벌보다 힘든 게 있어요?”
“있지.”
“뭔데요?”
천명화와 송인아의 똑같은 질문에 김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주일 동안 뭘 했지?”
“특훈이죠.”
“맞아, 그 특훈의 목표가 뭐였지?”
김신의 말에 천명화와 송인아는 토끼눈을 뜨며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승급?!”
“그래, 특훈을 했으면 무라도 썰어봐야지.”
***
등급갱신과 승급심사.
두 가지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우선, 김신이 했었던 등급갱신의 경우.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헌터들이 귀찮음을 이유로 미뤄둔 검사를 받지 않았을 때하며, 갱신 시에 의뢰에서 토벌한 괴수의 등급이 결과에 반영된다.
그리고 승급심사의 경우에는 갱신을 한지 1년이 지나지 않은 헌터들이 자신의 등급향상을 꾀하는 목적으로 받으며 철저한 통제아래 제시되는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시험은 괴수 토벌, 대련, 특성의 응용력과 파괴력측정 등이 있으며 대체로 난이도가 높다.
다음날.
정기 승급심사가 열리는 테트라곤의 부설 시험장에 온 천명화와 송인아는 굳은 얼굴로 김신을 향해 말했다.
“사람이 엄청 많네요.”
1년이라는 갱신기간 전에 어떻게든 등급을 올려보겠다는 사람들로 매번 붐비는 시험장.
서울 외곽에 있는 올림픽공원 크기의 넓은 시험장은 각각 세 가지의 시험테마에 알맞은 방식으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외곽에 위치한 괴수 토벌 시험장.
그리고 중앙에서 펼쳐지는 특성을 사용하여 대련하는 대련장.
마지막으로 특성의 응용력과 파괴력을 시험하는 시험장까지.
세 가지의 시험 모두 대부분의 헌터들이 떨어질 정도로 난이도가 극악했지만, 의외로 이름난 헌터들은 전부 승급심사로 높은 랭크를 달성했다.
“으...이번에도 떨어졌어.”
“야, 이게 쉽게 붙으면 그 악명 높은 승급시험이겠냐?”
종목 확인을 하러 가는 길에 떨어진 헌터들의 모습을 보며 결의를 다지는 천명화와 송인아.
“팀장님. 저는 꼭 통과하겠습니다.”
“나도 어떻게든 통과 할 거야.”
“그래 두 사람 다 통과해야지. 안 그러면 특훈한 보람이 없잖아.”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김신이 피식하며 웃는 사이.
-승급심사를 하러 오신 헌터님들은 각자 오셔서 시험 종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