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1.
호출을 받고 길드장실로 올라간 김신.
그가 길드장실에 도착하자, 한유성이 반색을 하며 환영했다.
“아, 어서 오게나.”
“부르셨습니까.”
손을 들어 가볍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는 한유성.
김신은 그의 손길을 따라 차가 놓여있는 자리에 앉았다.
“일단 차 한 잔 하게. 얼마 전에 받은 차네.”
“그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방금 내왔는지, 수증기를 타고 차의 향이 퍼진다.
은근하게 퍼지는 구수한 향의 차.
김신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놓자, 한유성이 물었다.
“어떤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잘 모르겠네요.”
차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솔직하게 답하자, 한유성은 가볍게 웃었다.
“맞네. 차를 쉽게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맛뿐 만이 아니라 건강에도 좋으니, 시간이 되면 종종 한 잔씩 하자고.”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를 부르셨는지...”
김신의 물음에 가볍게 찻잔을 내려놓은 한유성.
그는 김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답했다.
“흠, 역시. 끝까지 말을 안 하는구만?”
“네?”
“오늘 길드레이드에 다녀와서 보고를 받았네. 자네가 A급 게이트를 홀로 막아냈다며?”
한유성의 말에 김신이 몸을 움찔하자, 그 모습을 본 한유성은 작게 감탄했다.
‘역시, 보고도 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 건가.’
말없는 김신을 향해 한유성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우리가 위험한 괴수를 마주하고 토벌을 하는 이유가 뭔가?”
“보상이죠.”
“맞네. 근데 왜 그렇게 엄청난 일을 홀로 해놓고, 당당히 말을 하지 않나?”
“그건...”
말을 고르는 김신의 모습을 보며, 한유성은 가볍게 혀를 찼다.
‘역시, 사람이 너무 정직해. 적당히 때도 묻고 그래야 하는 것을...’
얼마 전 키클롭스 사건 때도 그랬던 것처럼 돋보여도 좋을 만한 사건에 조용한 그의 모습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정직하니만큼, 믿고 맡길 만 하지만...’
어쨌든 고생 한 것은 사실이니, 길드차원에서의 보상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한유성은 말없는 김신을 보며 물었다.
“됐네. 내 자네의 성격을 알 것 같구만. 하나 덧붙여 말해주자면 위험한 일을 하는 만큼, 보상에 좀 더 당당해지게.”
“예.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자네의 등급을 한 단계 올려놨네.”
“네?”
“항상 바빠 보여서, 내가 그냥 손을 좀 썼네.”
“검사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말이라도 나오면...”
김신의 말에 한유성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네. A급 괴수를 잡았는데 검사가 무슨 소용인가. 이미 실력으로 증명을 했으니, 상관없네.”
“···감사합니다.”
김신의 답을 들은 한유성은 할 말이 더 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김신을 향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의 활약이 보기는 좋은데 이제는 도통 뭘 줘야할지 모르겠어.”
“네?”
“전에 주려던 보상이 있잖은가. 그래서 이번엔 다른 것을 주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어서 말일세.”
“그럼, 방금 전에 해주셨던 승급은...”
“그건 보상의 축에도 못 끼는 일이지.”
“아...”
보상에 대해 생각보다 통이 큰 게 한유성의 스타일이다.
김신의 반응에 한유성은 가볍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혹시 뭐 갖고 싶은 것이라도 있나?”
“아무거나 말씀 드려도 됩니까?”
“일단 말해보게. 최대한 들어주겠네.”
김신은 한유성의 말에 조용히 고민했다.
‘어차피 아티펙트는 받기로 했었으니까, 뭔가 다른 걸 얻고 싶은데...’
요즘 들어 필요한 것을 천천히 생각하던 중, 김신은 일주일 전 갈피를 잡았던 4서클 마법에 대해 확실하게 깨우치기로 마음먹었다.
“모의 전투장을 쓸 수 있겠습니까?”
“모의 전투장?”
보상을 생각했던 한유성은 예상외의 답에 고개를 갸웃했고, 김신은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물론, 독점사용입니다.”
2.
끼익-
넓디넓은 부지의 지하에 만들어진 모의전투장.
김신은 가볍게 몸을 풀며 주위를 훑어봤다.
“뭐, 이정도면 마법 몇 방 쏜다고 무너지진 않겠지.”
애초에 마석으로 강화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부터 할 것은 말 그대로 폭격이기에 살짝 걱정이 됐다.
가볍게 자리에 앉아, 4서클의 단초를 얻었던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기 시작한 김신.
‘마나를 가뒀다가 쓰는 방법. 몸의 마나회로에 마나를 응집시켰다가 변환시킨다.’
무공의 깨달음과는 다르게 마법의 깨달음은 따로 정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찰나의 번쩍임.
오직 그것 하나로 단서를 얻고, 결과를 찾아낸다.
‘4서클 초입부터 막힌 이유가, 더 많은 양의 마나를 변환할 생각을 못해서였다니.’
예상되는 결과가 나왔으면 실행하여 검증한다.
곧바로 눈을 떠 블라이어의 기억 속에 봤던 4서클 수인을 따라하는 김신.
몸을 통해 마나를 끌어와.
응집시키고, 수인으로 변환하여, 의지로 고정시켜 이적을 일으킨다.
눈앞에서 만들어진 공기의 응집체.
“후우-”
김신은 보이지는 않지만, 생생하게 느껴지는 마법의 결과물을 눈앞의 나무를 향해서 던졌다.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4서클 마법, 에어 밤.
손바닥만 한 공기의 응집체가 나무에 부딪치는 순간.
파앙!
엄청난 돌풍과 함께, 나무가 뿌리 뽑힐 듯 땅거죽과 함께 들썩이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고작 마나를 뭉쳐서 날렸을 뿐인데, 저 정도의 파괴력일 줄이야.”
검증하여, 결과를 찾아냈다.
그렇다면 이후에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는 마법의 수인을 몸에 체득하는 것 뿐.
그렇게 하루 내내 모의 전투장에서는 엄청난 폭음과 진동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고, 김신이 나간 뒤에 들어간 관리인은 참혹한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
“이, 이게 머선 일이고.”
빙하의 크레바스처럼 깊게 갈라진 땅과, 운석을 맞은 것처럼 파헤쳐진 흙, 그리고 여기저기 서려있는 성에와 불에 그을려있는 건물까지.
그렇게 놀란 관리인이 고개를 돌린 순간, 문 옆에 서있는 김신의 모습에 놀라 기절하고 말았다.
“···분명, 나갔었는데.”
털썩.
관리인이 쓰러짐과 동시에 허깨비처럼 사라지는 김신의 허상.
더미를 생성시키는 4서클 마법, 미러이미지였다.
바로 그 시각.
대기실로 올라가던 김신은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고민했다.
“내가 미러이미지를 해제 했었나...?”
공격마법과 보조마법 그리고 환영마법까지.
김신은 그렇게 4서클 마법의 벽을 깼다.
***
4서클 마법에 대해 확실히 체득한 김신은 다시 팀원들이 있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김신이 대기실에 들어가자, 다가오는 천명화.
“오셨습니까? 하루 종일 어디 계셨던 겁니까?”
“아, 그거? 길드장님 부르셔서.”
“혹시, 그 미노타우르스 토벌 때문에...?”
“응, 맞아.”
더 말해줄 것이 없냐는 듯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바라보는 천명화의 모습에 김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냐?”
“네. 전에도 그랬지만 길드장님을 직접 대면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만큼, 아무래도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한 건 사실이죠.”
천명화의 말이 맞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우와 조용히 쳐다보는 송인아.
김신은 그들을 마주보며, 가볍게 썰을 풀었다.
“···그렇게 됐어.”
김신의 이야기를 들은 천명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소소한 거 아닙니까?”
김신은 그 모습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 꽤 심하게 썼거든.”
말을 재대로 이해하지 못한 천명화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화제를 돌렸다.
“그건 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뭡니까?”
“뭔가요?”
즉각 답하는 천명화와 강한우,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다가오는 송인아.
김신은 그 모습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뤄놨던 보상을 받으러 가야지.”
“드디어 가는 겁니까?”
눈을 반짝이며 답하는 천명화의 모습에 김신이 답했다.
“그래, 좋은 거로 맞추러가자.”
3.
한유성에게 말했던 대로 보상을 받기 위해 길드의 창고로 내려온 5팀.
김신을 제외한 세 사람은 눈을 빛내며 이곳저곳으로 나뉘어 효과와 성능 그리고 사용법이 표시되어있는 감정된 아티펙트를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신은 조용히 팀원들을 따라다니다가 구석에 놓인 골동품들을 봤다.
‘역시 여기도 골동품이 있기는 하구나.’
탑 등반을 하는 수호길드였기에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팀원들이 아티펙트 창고를 누비며 행복해하고 있는 것을 힐끗 쳐다본 김신은 조용히 골동품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기억들이 대부분 소소하네.’
등급이 낮은 경우, 그 물건의 소유자가 가진 능력도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일상적인 기억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일생을 둘러보던 중, 김신의 손을 잡아 끈 하나의 아티펙트.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팔찌모양의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은 어느 마법사의 일생이었다.
***
자연의 속성 중 바람을 다루는 학파인 [그린]
그 곳의 3서클 마법사인 헤르탈은 선천적인 마나회로의 비틀림으로 4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동문보다 훨씬 마법적인 재능이 뛰어난 헤르탈이었지만, 육체적인 한계로 벽에 부딪힌 것에 한탄하던 그는 어느 날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마나석에 마나를 충전해 사용 할 수는 없을까?’
그 생각을 시작으로 헤르탈은 마나석을 가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마나 집적진을 작은 마나석에 그려 넣어, 계속해서 마나를 충전시켜서 사용한다는 생각.
헤르탈의 창의적인 발상은 수많은 시련을 마주쳤지만.
“···해냈다.”
그는 결국 성공시킬 수 있었다.
***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을 봄과 동시에 김신은 팔찌 아티펙트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았다.
‘송인아 거네.’
스트라이커이지만, 출력의 부족으로 좀처럼 활약을 못 보이는 송인아.
김신은 그녀에게 스태프의 하위호관 격인 팔찌를 주면 부족했던 출력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민이 끝나자, 김신은 곧바로 아티펙트를 구경하던 송인아를 불렀다.
“인아야.”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송인아.
“불렀어?”
“잠깐 이리로 와봐.”
보던 아티펙트를 내려놓고 온 송인아가 다가오자, 김신은 손에 든 팔찌 아티펙트를 내밀었다.
“이거, 착용해봐.”
“뭐야?”
“아티펙트.”
이능력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아티펙트는 방어구 외엔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흔쾌히 착용한 송인아는 착용 직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거 뭔데 마나를 빨아들이는 거야?!”
“좀만 참아.”
팔찌가 송인아의 마나로 가득 찬 것을 확인하자, 김신은 그녀에게 아티펙트의 효과를 설명해 주었다.
“거기에 충전된 마나의 양만큼, 필요한 순간에 출력을 증폭시킬 수 있어.”
“진짜?!”
“응.”
상당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송인아.
그렇게 천명화와 강한우까지 방어구형 아티펙트를 골라 어느 정도 전력이 상승한 것을 확인한 김신은 목표로 했던 것을 실행하기 위해 팀원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높은 등급의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김신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성준에게 탑의 괴수의 특징을 들으면서 생각했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정체된 상태로 끌고 갈 순 없어.’
최근에 있었던 전투와 토벌을 거치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던 천명화와 송인아.
언젠가는 아티펙트를 얻기 위해서라도 탑을 올라야하고, 최근에 탑의 괴수가 떨어지는 게이트가 열렸던 만큼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김신의 의도를 알았는지,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세 사람.
“네!”
김신은 그들의 얼굴을 훑어보며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그래서 이제부터 특훈을 하려고.”
“네? 특훈이요?”
놀란 목소리로 답하는 천명화와 송인아.
“요즘 들어서 열리기 시작한 게이트에서 탑의 괴수가 나온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래서 그 탑에서 나오는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무력을 쌓아야해. 그래야 이후에 열릴 게이트를 막을 때나, 언젠간 해야 할 탑 등반 때에도 위험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는 말은...”
천명화의 말에 김신은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래, 이번 훈련은 두 사람이 B랭크가 되기 위한 특훈이야.”
김신의 말에 세 사람은 웃으며 답했다.
“안 그래도 저희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됐네요.”
“어? 훈련을 하려고 했었다고?”
자체적인 훈련을 하려고 했다는 말에 놀란 김신에게 강한우가 대답했다.
“네, 팀장님 혼자 미노타우르스 잡는 거 때문에 안 그래도, 인아가 걱정이 됐는지 저한테 다가와서 훈련을 도와달라고 했었거든요.”
“인아가?”
“네.”
전에 대기실에서 모여서 우르르 나간 게 그것 때문이었나.
확실하게 훈련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한 김신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특훈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