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1.
끼기기긱-
마치, 하늘이 찢기는 듯한 기괴한 소리.
대피방송과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강남의 번화가에는 예상 밖의 상황에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변에 있는 가까운 대피소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열린다고?’
근래에는 일어난 적 없었던 게이트의 출현에 놀람도 잠시.
김신은 손에 들고 있던 회중시계를 품속에 집어넣고, 핸드폰을 꺼내 송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야?! 팀원들 게이트 때문에 출동준비하고 있어! 다들 기다리니까 빨리 와!
다행히 아직 출동 전인 5팀의 상황.
김신은 곧바로 현재 있는 위치를 알려준 뒤, 전화를 끊었다.
“르네상스 사거리 공사현장! 게이트 열린 장소 여기니까, 이쪽으로 와!”
-뭐? 벌써 가있다고?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는 것은 평균 5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그동안 해야 할 것은 시민의 대피와 전투 장소의 확보다.
김신은 최대한 큰 목소리로 혼비백산해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한 곳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수호길드의 헌터입니다! 모두 이쪽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그러나 사이렌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는 김신의 목소리.
‘이대로 가다가는 시간 내에 전부 대피시키지도 못할 것 같은데.’
인명피해가 나오면, 헌터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불신도 커지는 법.
더군다나 지금 있는 이 장소는 수호길드의 관할지역인 강남이다.
잠시 망설이던 김신은 수인을 맺어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3서클 마법, 사운드 웨이브를 사용했다.
“수호길드의 헌터입니다!! 모두 이쪽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근처에 있던 시민들의 이목은 끌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일단, 이쪽 방향으로 대피하세요!”
김신이 이목을 끌어낸 사람들부터 대피를 시키며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가던 중, 갑작스럽게 앞에서 들리는 큰 소리.
쿠웅!
게이트가 완전히 열려버린 건지, 그의 앞으로 A급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몸에 달린 황소의 머리.
5미터에 달하는 체구.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모습에 김신은 눈을 부릅떴다.
‘무윤의 기억에서 봤던 괴수잖아?’
그와 동시에.
-크워어어어!
괴수가 김신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2.
바로 달려들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괴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리를 두고 서있었다.
김신은 그런 괴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곁눈질을 하며 시민들의 대피상황을 훑어봤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더라도 곧바로 인명피해가 나오진 않겠어. 문제는 전투 범위인데...’
괴수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거리가 조금은 멀었기에 김신은 대피중인 시민들에게서 눈을 뗐다.
‘괴수의 등급은 A급. 키클롭스와 똑같다.’
키클롭스 때에 비해서 확실히 발전하긴 했지만, 아직 화경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약간의 불안이 마음속에서 일어났지만, 이내 고개를 털어 사그라뜨렸다.
‘어떻게든 해내야해. 지금 여기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물러서면 아무런 힘도 없는 시민들이 괴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고민이 끝나자,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괴수의 공격이 시작됐다.
-크릉!
바닥에 한쪽 발을 쿵! 하고 내리찍은 괴수가 곧바로 뿔을 들이밀고 달려든다.
‘정면은 무리, 기동력을 살려 대략적인 특징을 판별한다.’
덩치가 키클롭스에 비해서 약하다지만, 전혀 다른 종인만큼 상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가속]과 마법의 버프를 사용해 한 층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묵색의 내공이 몸을 타고 돌자, 투지가 솟아올랐다.
쿵쿵!
달려드는 괴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돌진공격을 부드럽게 몸을 돌려 피하며 선명한 검기가 어린 검으로 허벅지를 벤다.
촤악!
“...?!”
생각보다 쉽게 베이는 괴수의 가죽.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단기간에 이런 성장은 말이 안 된다.
-크워어어어!
김신은 고통에 반응하는 괴수의 모습을 노려보며 짧게 고민했다.
‘확실히 키클롭스보다 가죽이 약해.’
판단이 끝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수비보단 공격으로.’
쿵! 쿵!
또 다시 달려드는 괴수.
상상이상의 단단함과 괴력 때문에 힘들 뿐이지, 사실 전투의 방식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단순했다.
후웅!
‘발차기.’
체급의 차이, 그중 키 차이가 나는 상대에겐 리치가 긴 다리를 이용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상대를 잘 못 골랐어!’
다가오는 괴수의 왼 발이 가슴께까지 다가왔을 무렵, 오른발을 축으로 크게 돌며 회전력을 이용해 검을 든 오른손으로 괴수의 종아리를 벴다.
스윽- 서걱!
근육이 뭉쳐있는 부위임에도 불구하고 꽤 깊게 베고 지나가는 검.
‘착각이 아니었어.’
두 번의 공격이 노린 만큼의 피해를 줬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김신은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괴수를 향해 달려갔다.
괴수의 전투는 패도적인 근접 무투가 스타일의 방법.
‘힘으로 찍어 누르면 모두 흩어버린다.’
괴수의 가죽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약한 만큼, 검기가 어린 검으로 부드럽게 흘려내는 것도 충분한 공격이 되었다.
후웅!
묵직함이 담긴 괴수의 주먹을 양손으로 쥔 검의 날을 이용해 비껴 친다.
타점을 흩뜨리며 동시에 검기가 형형한 칼날로 공격을 하는 공수합격의 방법.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나가면 이화접목의 수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전만큼 좋은 연습은 없다.
촤악! 촤악!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리치는 괴수의 공격 앞에서 김신은 위태롭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꽤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냈다.
수세의 김신과는 다르게 공세인 괴수의 주먹이 찢기며 피를 흩뿌린다.
-크워어어어엉!
생각과는 다르게 쉽게 맞지 않는 공격 때문에 분노를 터트리는 괴수.
한참동안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던 괴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쳐, 김신으로부터 멀어졌다.
쿵! 쿵!
‘···왜 공격을 안 해?’
이대로 흐름을 이어가다가 지쳤을 쯤,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크르르릉.
거리를 벌린 괴수는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져있는 차로 가서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콰직!
근처에 있는 차의 문을 집어 떼어버리는 괴수.
놈은 곧바로 유리창을 깨고, 그 부분을 손잡이로 잡고서 마치 거대한 둔기처럼 집어 들었다.
‘뭐? 괴수가 무기를 쓴다고?’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만 나온다.
당황스러운 괴수의 행동을 본 순간, 김신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기 대 무기라...근데 너무 조잡하네.”
***
수호길드 2팀의 팀장이자, 팀 포지션 중 화력담당인 스트라이커를 맡고 있는 A급 이능력자 성준.
2팀의 팀장으로 부임한지 꽤 된 수호길드의 베테랑인 그는 하필이면 다른 3개의 팀이 임무에 나간 오늘 사건이 터진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비상! 모두 출동준비!”
강남 전역의 가로등과 건물의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대피방송과 사이렌.
성준은 출동을 준비하는 2팀을 향해 우려와 당부의 사항을 말했다.
“오늘 우리 2팀과 함께 A급 게이트를 막는 팀은 5팀이다.”
“네?”
“그 신설된 5팀이요?”
“거기 팀장이 C급 아니었어요?”
성준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려를 하는 2팀원들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말 한마디뿐이었다.
“그러니, 모두 조심해라. 믿을 건 우리뿐이야.”
그렇게 출발한 2팀은 미리 연락받은 5팀의 뒤를 따라 현장으로 향했고, 성준은 멀리서부터 괴수와 싸우는 김신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C급이 어떻게...?’
A급 괴수인 것이 분명한데, 너무나도 잘 싸우고 있는 김신.
그런 그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성준은 괴수를 본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미노타우르스...!”
탑에서 출몰하는 A급 괴수.
성준이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괴수가 가진 특징 때문이었다.
‘저 괴수는 싸울수록 강해지는데...탑을 제대로 오른 적이 없어서 아직 모르는 건가?’
마치, 광전사같은 스타일의 전투방법.
피해를 누적시키는 것이 아닌, 약점을 노려야 이길 수 있는 적이다.
성준은 지금 있는 팀원들로는 상대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고, 5팀과 2팀을 모두 불러 세웠다.
“5팀! 모두 멈춰요! 2팀도 정지!”
성준의 목소리에 돌아보는 5팀의 팀원들.
“뭔가요?”
모두가 같은 의미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성준은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시민들 대피부터 끝내야 합니다. 적은 다수와 싸울수록 강해지는 괴수에요.”
3.
카가가가각! 키깅!
양손에 든 차 문을 연속적으로 내리 찍는 괴수.
쐐애액!
김신은 괴수의 공격 중, 횡으로 휘두르는 공격을 빼고는 모두 흘리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어갔다.
막고, 피하고, 틈이 보이면 허벅지든 복부든 모두 베어버린다.
쐐액! 서걱! 촤악!
김신과 다르게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괴수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차의 문은 점점 크기가 작아졌고,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졌다.
-크워어어어!
차를 던지면 몸을 굴려 피하고, 차의 문을 떼어내서 싸워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오히려 문짝을 들어 공격하느라 둔해진 순간을 이용해 괴수의 이곳저곳이 베여만 갔다.
-크허엉!
김신의 전략적인 전투방법에 결국 이성을 잃은 괴수는 다시 주먹을 들어 김신을 내리 찍었다.
괴수가 맨손전투를 시작한지, 2분.
계속해서 진행되는 괴수와의 전투에서 김신은 시간이 갈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 점점 움직임이 빨라지는 거 같지?’
피해가 누적될수록 느려져야 하는 것이 생명체가 지닌 가장 기본적인 법칙 아닌가.
그러나 눈앞의 괴수는 그 법칙을 정면에서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공격을 하지 말아야하나?’
문뜩, 그런 생각이 들어 잠시 대치상황을 만들기 위해 뒤로 물러서려했으나.
-크워어어엉!
-꺄악! 도망쳐!
괴수는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대피 또한 아직 전부 끝난 것이 아니었기에 거리를 벌려 대치상황으로 끌고 간다는 선택을 하기도 어려웠다.
바로 그때 들려오는 낮선 목소리.
“김신 씨! 2팀장, 성준입니다!”
“...?”
낮선 목소리에 고개를 틀어 바라보니, 수호길드의 2팀장의 얼굴이 보였다.
“앞에!”
“...!”
쿵쿵!
잠깐 한눈을 팔기 무섭게 또다시 달려드는 괴수.
확실히 빨라진 움직임에 김신은 몸을 돌려 공격만을 피하며, 곁눈질로 성준을 쳐다봤다.
‘뭐야? 봤으면 지원을 할 것이지, 왜 지켜보기만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멀리서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고, 전투를 지원하지 않는 성준.
김신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성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김신 씨! 미노타우르스는 피해를 입을수록 강해져요! 약점을 노려야합니다!”
“...!”
성준의 말을 듣는 순간, 그가 왜 지원하지 않는 지에 대한 이유와 괴수가 점점 강해진다는 느낌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성준의 중요한 정보를 들은 김신은 곧바로 되물었다.
“약점이 어딘데요!”
“목 뒤 정중앙에 있는 숨구멍이요!”
성준의 말을 듣고.
이어지는 미노타우르스의 돌진공격을 피하며 살펴보니, 확실히 목 뒤에 휴지심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확인했어요! 제가 시선을 끌 테니까 성준씨가 공격해줘요!”
김신의 말에 전투를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성준은 어이가 없어지는 답을 김신에게 날렸다.
“저는 못합니다!”
“...?!”
잘 못 들었나 싶어 봤더니, 정말로 멍하니 서있었다.
‘아니, 그러면 왜 온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