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25화 (25/116)

《25화》

1.

태진성이 깨달음을 얻고 명상에 들어간 직후.

둘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본 태하윤은 태진성에게 깨달음을 준 김신의 모습을 보곤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자신의 경지보다 높은 사람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닌, 역으로 바뀌어버린 현 상황.

게다가 조언의 상대는 검술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할 만큼, 빼어난 실력을 가진 자신의 삼촌이 아닌가.

선을 넘지 않고 설명할 정도로 깊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옆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태하윤은 홀린 듯 김신의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뭘요?”

“조언이요.”

“흠,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럼 저도 봐줄 수 있어요?”

태하윤의 말에 김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며 답했다.

“흠, 그러면 저한테 뭘 주실 거죠?”

능청스럽게 말하는 김신의 모습에 태하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볼을 부풀렸다.

“으...이럴 거예요?”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그런데 왜 태진성님도 아니고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태하윤은 김신의 말에 부풀렸던 볼을 집어 넣으며 답했다.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에게도 배울 부분이 있다면서요.”

그건 살려고 쓴 말인데요...

속마음은 이랬지만, 김신은 태연하게 답했다.

“그때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저나 김신 씨보다 훨씬 높은 경지인 삼촌에게도 깨달음을 주신 분이 저한테 조언한 마디 못해줘요?”

태하윤의 말에 김신은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듯이 양손을 들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제가 뭔가를 드릴 부분이 없어요. 사실, 태진성님의 경우가 독특한 것이었죠.”

“그런가요...깨달음이란 정말 쉽지가 않네요. 조급해하면 할수록 멀어지니까요.”

어째서인지 모르게 오늘 김신이 했던 마술과도 같은 일을 옆에서 지켜본 태하윤은 이상하게도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인지, 김신은 마음이 편해지는 위로의 말을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땐 조금 쉬어가도 괜찮지 않겠어요? 하윤 씨는 그래도 좋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왔을 테니까요.”

검술을 연마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크게 와 닿는 김신의 위로.

그 말에 태하윤은 가슴이 찡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요.”

***

태진성이 명상에서 깨어난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펼친 검술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못하는 김신을 향해 태진성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내가 조언을 해줄 차례인가?”

김신은 한층 부드러워진 그의 말에 조용히 답했다.

“경청하겠습니다.”

“흠...아무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네.”

태진성에 말에 놀라 김신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어깨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느낌.

“...?”

재차 고개를 돌려 바라본 어깨에는 태하윤이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저기, 하윤 씨?”

김신의 말에 태진성은 자고 있는 태하윤을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 조카 때문에 안 되겠어.”

태진성의 앞선 말의 의미가 졸고 있는 태하윤을 보며 한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김신은 기대고 있는 태하윤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렇군요.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하하, 그렇다고 해도 조언은 아니지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네.”

“어떤 말씀을...”

태진성은 김신의 어깨에 기댄 태하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김신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래, 가장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

“예?”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자네가 내게 조언을 해주겠다고 한 순간부터 나는 자네를 믿지 않았었네. 그저, 괘씸해서 쫓아낼 생각뿐이었지.”

“그런데 어째서...”

“흐흐, 자네가 귀담아 듣게 만들었지 않는가. 그 또한 고심에 고심을 거쳐 나온 말 아니었나?”

“...!”

속내를 꿰뚫고 있는 태진성에 말에 순간, 김신은 표정을 가다듬지 못했다.

“역시 자네는 표정관리가 서툴러.”

“...그렇습니까?”

김신의 말에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던 태진성은 뭔가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다시금 질문했다.

“그런데 말일세. 어떻게 내 문제를 꿰뚫어 봤는가? 아니, 어떻게 내 검술을 꿰뚫어 본 것이지?”

올 것이 왔다.

김신은 최대한 비상식적이지 않은 선에서 설명을 하기위해 생각을 가다듬고 태진성의 말에 답을 하려했지만, 김신의 말보다 그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질문보다 감사가 먼저 나와야하는 것을...그냥 못들은 걸로 해주게.”

“...”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나는 태진성.

김신은 해명과정이 길어질 것을 염두 해서 오만가지 방법을 동원하려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에 안심했다.

태진성은 그런 김신의 얼굴을 보며 가벼운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날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 봄세.”

“태진성님, 그런데 잠은 어디서...”

“우선 따라오게.”

천천히 걸어가는 태진성의 모습에 김신은 어깨에 기대어 곤히 자고 있는 태하윤을 가볍게 흔들었다.

“저기...하윤 씨?”

“흐음...”

흔들어도 가볍게 소리를 낼 뿐 도통 깰 생각을 하지 않는 태하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김신은 그런 태하윤을 안아들고 태진성의 뒤를 따라갔다.

2.

날이 늦었기에 태극검술길드에서 하루를 묵은 김신.

다행히 휴무는 길었기에 김신은 편한 마음으로 태진성이 있는 연무장으로 발을 옮겼다.

-하압!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수련을 하는 길드원들의 모습.

김신은 그 모습을 보며 연무장 가장 중앙에 서있는 태진성에게 걸어갔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가? 잠자리가 맞았다니 다행이구만. 우선, 자네도 하윤이 옆에 서서 가볍게 몸부터 풀어보게나.”

“예.”

가벼운 걸음걸이로 태하윤의 옆자리에 도착한 김신.

“좋은 아침이에요. 하윤 씨. 어제 너무 곤히 주무셔서 방까지 데려다 드렸는데, 아침에 목이랑 허리 괜찮으셨어요?”

“네, 네! 괜찮았어요!”

“...?”

김신은 태하윤의 괴상한 반응에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침 수련을 시작했다.

구보와 스트레칭까지 끝마친 김신은 태하윤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기다리는 태진성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풀렸는가?”

“예.”

“그럼 시작하지.”

“예!”

태진성은 김신을 마주하고 선 상태로 그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었다.

“가장 먼저. 자네는 이미 심(心), 기(氣), 체(體) 중 한 가지는 이미 이루었다네. 그러니 지금부터 자네가 할 것은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닌,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네.”

“네?”

듣는 것이 아닌, 행동을 취하라니?

의미를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김신을 향해 태진성은 그의 옆에 있는 대련용 철검을 가리켰다.

“검을 들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천천히 세로 베기를 해보게.”

조언을 해주니 안할 수는 없는 법.

김신은 그가 시킨 것처럼 검을 잡고 상단세를 취한 후, 천천히 호흡을 유지하며 베기를 시작했다.

스으윽-

마치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속도로 움직이는 검.

대련이나 전투가 아니었기에 김신은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동작을 이어갔고, 검이 배꼽을 지나갈 때 쯤 팔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검의 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김신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태진성은 그의 동작을 지적했다.

“검 끝이 흔들리네.”

이미 육체는 한계를 맞이했기에 계속해서 떨림은 심해졌다.

“...”

태진성은 그런 그를 말없이 노려봤고, 김신은 그런 그의 모습에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한계(限界)란 무엇인가를 더 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뜻.

결국 도저히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육의 떨림이 심해졌고, 그 순간 김신은 육체에서 나오는 변화에 눈을 부릅뜨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공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내공이 나오는 거야?’

마치 육체의 한계를 없애겠다는 듯 자연스럽게 육체를 강화시키는 내공.

김신은 그런 내공의 움직임에 다급하게 내공을 갈무리하고, 계속해서 동작을 이어나갔다.

스윽-

또다시 베기를 이어가던 김신의 육체가 곧바로 다시 한계를 맞이한 순간, 내공이 또다시 육체를 강화하기 위해 흘러나왔다.

‘...!’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약간이지만 늘어난 내공의 양에 놀란 김신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혼잣말 했다.

“부족한 건, 체력이었나.”

허무한 표정으로 검을 쥔 손을 바라보는 김신의 모습에 태진성은 처음으로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몇 마디의 조언으로 깨달음을 얻다니, 역시 탐나는 인재구만.”

3.

김신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처한 문제를 깨닫자, 태진성은 그에 대한 본격적인 조언을 시작했다.

“본디, 기(氣)를 담는 것은 체(體). 자네가 성장이 막혔다고 생각한 것도 옆에서 육체의 한계를 늘리는 수련을 하는 사람이 없기에 그런 것이었겠지. 그래서 검술을 연마하는 우리는 가장 먼저 한계까지 육체를 몰아붙인 후에야 심법을 수련한다네.”

“그렇다면...”

김신은 태진성의 말에 가장 먼저 육체적인 단련을 생각했고, 그것을 알아본 태진성은 그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려줬다.

“맞네, 자네는 좀 더 단련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아...”

가장 부족한 것이 체력이었다니.

부족했던 것이 기본기였다는 생각을 하니, 알게 모르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마른세수를 하는 김신을 향해 말을 덧붙이는 태진성.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말은 자네만 괜찮다면 해주고 싶은 게 있네.”

김신은 고개를 들어 태진성을 바라봤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원래 검술 수련은 검술을 수련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자네가 이곳에서 며칠간 지내며 확실하게 수련을 받고 가는 게 어떤가 싶어.”

비슷한 수준의 경지에 있는 태하윤과의 대련도 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또 다시 태진성에게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김신은 곧바로 답했다.

“예, 하겠습니다.”

수련에 앞서 김신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것을 우려해 송인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톡톡-

[사정이 생겨서 며칠 자리를 비워야겠다.]

***

태진성의 말을 따라 수련을 시작한 김신.

아침엔 기초체력과 따로 마련된 소연무장에서 검술연마.

점심엔 가벼운 대련과 복기.

저녁엔 마나 수련실에서 심법수련.

한계까지 근육을 사용하고 내공을 사용해 회복하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일주일간의 빡빡한 스케줄에 마지막 날.

김신은 몸 상태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지이잉!

더욱 단단해진 육체와 함께 완연한 모습으로 날이 선 검기.

초절정의 끝자락에 선만큼 검기는 무엇이든 벨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머지않아 1갑자에 달하는 내공이 쌓이겠어.’

그렇게 기(氣)와 체(體)를 다스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배운 김신은 달라진 모습으로 검술길드를 나섰다.

엄청난 인연과 기연에 가까운 발전.

고양된 기분을 만끽하며 길드로 출근 하던 중, 김신은 주머니에서 만져지는 물건의 감촉에 꺼내들었다.

“···아, 이걸 감정 안했었구나.”

도봉구의 현장 정리를 도와주는 바람에 깜빡하고 잊고 있었던 박경우의 회중시계.

‘시간도 넉넉한데, 감정이나 해볼까?’

불현듯 흥미가 동해 옆에 놓인 벤치에 앉은 김신이 감정을 하려던 순간, 가로등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사이렌소리와 함께 대피방송이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잉-!

[A급 게이트 경보 발령! 현재 방송이 들리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가까운 대피소나 건물 내부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방송이···]

시끄럽게 울리는 대피방송의 사이로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의 소용돌이.

“...!”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든 김신의 머리 위론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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