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1.
김신은 회중시계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3층 보스를 잡고 나온 아티펙트입니다. 감정을 받았는데 감정사가 도저히 감정을 못하겠다고 해서요.”
“근데 이걸 왜 저한테...”
“그게 우연찮게 들었습니다. 수호길드에 들어가시기 전에 그쪽 업계에서 꽤 유명한 감정사셨다는 걸요.”
한창 곽명한 사건이 크게 터졌을 때 들었는지 박경우는 김신이 감정사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시는 것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김신은 골동품에 큰 흥미가 있었기에 박경우가 준 회중시계를 받아 품속에 넣었다.
“그 아티펙트가 김신 팀장님에게 미약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연이 담긴 골동품이라면 아주 큰 도움이 될 수도.
김신은 박경우를 보며 밝게 웃었다.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대화를 끝으로 박경우 또한 김태종과 같이 떠나갔다.
그리고 옆에 있던 강한우는 떠나간 두 사람의 감사인사를 곱씹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팀장님, 저 감사인사는 처음입니다. 누가 제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쁘네요.”
근육질의 덩치가 산만한 남자의 눈물은 좀 보기 그렇다.
그래도 만족해하는 강한우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김신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따뜻하게 말해줬다.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구할 것이고, 그에 따라 감사인사를 받을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니 좀 더 힘내자고요. 한우 씨는 우리 팀의 방패니까.”
김신의 말에 강한우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네! 팀장님!”
***
길드로 복귀한 직후, 5팀은 대기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유성과 마주쳤다.
“길드장님이 여긴 무슨 일로...”
김신의 물음에 한유성이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답했다.
“오늘 5팀이 큰 공을 세웠다는 걸 연합장에게 들었네. 웬일로 연합장이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더구만.”
“그랬습니까?”
가볍게 몸을 돌려 대기실의 창가로 자리를 옮긴 한유성.
그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조만간 보상을 하겠다는 전화였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쪽의 보상보다 길드 내부의 보상을 먼저 받아야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말이지.”
“주시면 사양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빼는 척도 하지 않고, 냉큼 받아버리는 김신의 모습에 한유성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자네는 참 솔직해서 좋아.”
“뭐든 고생을 했으면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할 맛이 나죠.”
“맞네. 그게 우리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괴수들과 싸우는 이유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김신의 답에 한유성은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마땅히 줄게 없단 말이지...”
“...”
말과 함께 고개를 슬쩍 돌려 김신은 본 한유성은 별 반응이 없는 그의 모습에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었네.”
“알고 있었습니다.”
김신의 말에 한유성은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길드 내부의 보상으로 자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겠네.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하게.”
길드 내부의 보상으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
김신이 이 말을 듣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답했다.
“팀원들의 노후화 된 아티펙트를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아티펙트?”
“예.”
김신의 말에 곤란한 듯 턱을 긁던 한유성은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네. 팀원을 생각해서 한 말인데 길드장이 되어서 그걸 안 들어 줄 수는 없겠지.”
“감사합니다.”
김신과의 대화가 끝나자 문으로 걸어가는 한유성은 김신의 앞에 서서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그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자네, 슬슬 B급으로 승급해야 하지 않겠나?”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본신의 경지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해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김신의 이유를 모르는 한유성은 말없이 서있는 김신에게 한 마디의 말을 덧붙인 후 밖으로 나갔다.
“겸손이 지나치면 그것도 나름대로 보기에 그렇다네. 남자는 때로 돋보여야하는 법이야.”
2.
길드장님의 배려로 며칠간 출동과 순찰을 하며 지내던 5팀에 연합에서 온 사람이 찾아왔다.
“헌터 지원팀장 곽노한이라고합니다.”
헌터들의 의뢰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맡고 있는 팀의 담당자.
곽노한의 등장에 김신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수호길드 5팀장 김신입니다. 반갑습니다.”
“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방문은 혹시...”
여기에 연합의 사람이 왔다는 것은 김태종이 말한 보상 때문일 터.
김신은 과연 어떤 보상을 말할지 기대하며 곽노한의 답을 기다렸다.
“네, 며칠 전에 있었던 도봉구 A급 괴수 토벌에 관한 보상 때문에 왔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방문의 목적을 말하기 시작한 곽노한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연합장님이 원래 태극검술길드가 했어야할 임무와 도봉구의 민간인 대피를 도운 수호길드 5팀을 위해서 의뢰금과 더불어 연합에서 보관중인 전설급 아티펙트 중 한 가지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곽노한의 말이 끝나자, 담담한 김신과 다르게 옆에 서있던 송인아와 천명화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전설?!”
“네, 하지만 건물 외부로는 따로 반출이 불가능함으로 직접 방문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조만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아무리 임무를 도와줬다고 하더라도 전설급 아티펙트는 확실히 과한 보상이 분명하다.
그 진의를 고민 하는 김신의 모습에 곽노한은 그의 곁을 지나가며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조용히 알려줬다.
“김신 씨에겐 따로 알려드리는 건데, 사실 김태종님은 연합장님의 막냇동생이십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쪽에서 근무를 하시는데, 하필 그날 사건이 터진 것이었죠.”
“...!”
“어쨌든, 연합장님이 가족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곽노한은 그 말을 끝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
한유성이 말한 보상과 곽노한이 말한 전설급 아티펙트의 보상.
흔치 않은 일생일대의 기회에 천명화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팀장님. 제가 그때 말씀드렸던 것 기억나십니까?”
분명 김상덕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했던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김신은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을 했더라?”
“아니, 전에 그 [골동품 매매소]에서 좋은 아티펙트가 나오면 구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랬었나?”
턱을 긁으며 모른 척을 하는 김신의 곁으로 송인아가 슬그머니 다가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넌지시 말했다.
“저는요. 저도 안 잊었죠? 잊으면 제 손에 죽는 거 알죠?”
귀여운 얼굴로 협박을 하는 송인아의 모습에 김신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소를 내뱉었다.
“큭큭, 알았어. 그러니까 둘 다 그만해. 어차피 어떤 아티펙트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일단 보고 나서 얘기하자. 알겠지?”
그렇게 둘을 돌려보낸 김신은 문자가 왔다는 알림에 핸드폰을 꺼내봤다.
‘태하윤?’
조만간 초대를 하겠다는 말 이후로 별다른 연락이 없기에 잊고 있었나 했었는데.
김신은 메시지를 터치해서 안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길드 내부에 일이 좀 많이 밀려있어서요.
사과로 시작한 초대문자를 쭉 읽어 내려간 끝에 마지막에 적힌 날자와 시간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주 일요일 12시. 시간 가능하세요?
스케줄을 살펴보니 다행히 쉬는 날이다.
김신은 태하윤의 문자에 짧게 답장을 남겼다.
-가능합니다.
3.
어느새 시간이 흘러 태하윤과 약속을 한 일요일.
가볍게 차려입은 김신은 한옥풍의 대문과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태극검술길드의 정문에 도착했다.
“건물이 옛날 방식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사람 부르는 건 옛날 방식이 아니네.”
문 옆에 붙어있는 초인종.
김신은 ‘이리오너라.’라는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것에 피식 웃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삐익-
-누구십니까?
“태하윤 부길드장님의 초대를 받고 온 김신이라고합니다.”
-아, 예. 들어오시죠.
덜컹!
육중한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그 안으로 보이는 넓은 연무장.
그곳에는 태극검술길드의 길드원들이 모두 다 같은 동작으로 검술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 태극검법(太極劍法)인가?’
가장 기본적인 무당파의 검법에 김신은 무윤의 기억과 오버랩되는 부분을 떠올리며 구경하는 사이, 이곳에 김신을 초대한 당사자인 태하윤이 마중을 나왔다.
“다시 보니 반갑네요. 어떻습니까. 검술길드에 오신 소감이.”
“신기하면서도 뭔가 색다르네요.”
김신의 신기하다는 말은 무윤이 살던 세계의 무술을 여기서 봐서 놀랍다는 의미였지만, 그걸 알아들을 리가 없는 태하윤은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렇죠? 저희 검술 길드가 외부인을 공적인 일 외에 사적인 보답차원에서 들이는 경우가 전혀 없어서요. 이런 종류의 방문은 김신 씨가 처음입니다.”
“정말요?”
폐쇄적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정도일 줄이야.
놀란 김신의 반응에 가볍게 웃은 태하윤은 그의 말에 답해줬다.
“네. 사실 세간의 인식은 저희를 별난 사람으로 보니까요.”
“그렇긴 하겠네요. 이능력자들이 판치는 시대에 스킬을 배우지 않고 순수한 육체능력과 검술로 강해지려는 사람들이니까요.”
“네. 그래서 더 숨기려는 이유가 있죠. 검술이 생명이니까요.”
그렇게 김신은 태하윤의 안내를 받아 넓은 길드내부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마나 수련실.
마석을 특수한 방법으로 처리하여 계속해서 수련실 내부에 농도 높은 마나를 보충해주는 수련실은 마나집적진을 알고 있는 김신에게도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 마석을 저런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구나.’
마석은 괴수가 호흡하는 자연의 마나가 장시간에 걸쳐서 굳어져 만들어진 물질이다.
‘인공적으로 괴수의 내부를 재현한 건가?’
수련자가 마나를 사용한 수련을 하여 벽에 피해를 주면 마석이 그 마나를 흡수하고, 다시 내뱉는다.
김신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4서클에 대한 단초를 얻었다.
‘4서클의 핵심은 마나를 가두었다가 더 큰 흐름으로 변환시키는 건가?’
큰 마나를 변환하기 위해서는 큰 마나의 흐름이 필요한 법.
김신은 지금까지 주변의 마나를 즉각 끌어와 변환시켰던 것과는 다른 사용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다.
“...”
수련실을 보며 마법 수련을 하는 김신과 그런 김신을 바라보는 태하윤.
태하윤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민하는 김신의 모습에 전에 보였던 영입의사를 또다시 내비쳤다.
“어떤가요? 저희가 자랑하는 마나수련실이.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면 언제든지 사용가능합니다.”
“...”
“김신 씨?”
태하윤이 김신의 어깨를 가볍게 치자, 김신은 몸을 부르르 떨며 깜짝 놀란 얼굴로 답했다.
“네, 네!”
“마나 수련실이 그렇게 인상 깊었나요?”
김신은 태하윤의 질문에 집중이 깨진 아쉬움을 달래며 답했다.
“마나 수련실은 처음 보는 거라 그런지, 많은 걸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마법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없기에 돌려 답한 것이지만, 그것을 길드 가입에 대한 고민으로 알아들은 태하윤은 밝게 웃었다.
“언제라도 좋으니, 말만하세요. 저희 길드의 문은 김신 씨를 위해서라면 열려있으니까요.”
김신은 그런 태하윤의 말을 언제든 와서 마나 수련실을 사용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종종 와서 신세 좀 지겠습니다.”
김신의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답변에 고개를 갸웃하는 태하윤.
‘응? 뭐지?’
그리고 그런 태하윤을 보며 마주 고개를 갸웃하던 김신은 그녀가 하는 말이 자신을 영입하는 목적을 띄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의문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태하윤과 먼저 간파해낸 김신.
“...?”
“···풋.”
의미는 달랐지만, 대화가 이어졌기에 김신은 검술길드에서 뽕을 뽑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차례 해프닝이 지나가고, 김신과는 다르게 태하윤만 그의 속내를 모른 채 길드 내에 있는 마지막 안내 장소에 도착했다.
길드의 마지막 안내장소는 넓은 연못에 한 가운데 있는 정자.
김신은 그 장소에 있는 남자의 모습에 태하윤에게 질문했다.
“이미 먼저오신 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