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1.
덩치가 큰 상대를 공격하려면 쓰러져 있는 지금이 적기다.
터벅-
김신이 계속해서 공격하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먼지가 걷히며 다시 몸을 일으키는 괴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놀란 강한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김신의 귓가에 들렸다.
“···팀장님.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강한우의 말에 후퇴를 하기 위해 뒤를 돌아봤지만, 시민들의 대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먼저 돌아가세요.”
“안 됩니다! 팀장님도 같이 가셔야죠!”
“우리가 뒤로 빠지면 송인아랑 천명화를 비롯한 모두가 위험합니다. 지원이 올 때까지 누군가는 여기서 버텨야 해요.”
김신이 일어나는 괴수를 바라보며 다시 내공을 끌어올린 순간.
“태극검술길드의 부길드장 태하윤입니다. 지원 왔습니다!”
기다리던 지원이 도착했다.
***
태극검술길드의 A급 헌터이자, 부길드장인 태하윤.
그녀는 김신을 지나쳐 그토록 쫓아다녔던 괴수를 맞닥뜨린 순간, 키클롭스라 명명한 괴수의 몸 곳곳에 나있는 상처를 발견했다.
‘발목...그 남자가 내놓은 상처인가? B급이라면 이정도 상처를 입히지 못할 텐데, 어떻게 A급 괴수에게 이런 상처를 낸 거지?’
연약한 부위이자, 공격을 당해 부상을 입으면 기동성에 지장을 주는 치명적인 부위.
‘어떻게 상처를 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부분을...’
태하윤은 곧바로 상처가 나있는 키클롭스의 발목을 목표로 삼았다.
탓탓- 쾅!
태하윤의 특성은 [괴력난신(怪力亂神)]
어마어마한 힘을 이용한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파괴력.
땅을 박차고 포탄처럼 쏘아진 태하윤은 키클롭스의 발목을 지나치기 직전, 검을 뽑아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태극사검(太極四劍) 제 1식(式) 섬광검(閃光劍)’
촤악!
깔끔하게 키클롭스의 아킬레스건을 가르고 지나간 태하윤의 검.
-크허엉!
고통에 가득 찬 소리를 내지르는 키클롭스가 비틀거리자, 주위에 있던 1팀원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 하나 남은 키클롭스의 발목을 노리고, 차륜전을 펼치듯 연속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슥-슥-슥-
마나를 머금은 검에 의해 점차 벌어지는 괴수의 상처.
하지만 태하윤의 공격과는 다르게 위력적이지 않았기에 다른 한 쪽의 아킬레스건을 베어내지 못했고, 결국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고 말았다.
-크헝!
연속된 공격에 흉성이 폭발한 키클롭스가 넝마가 된 발로 땅을 강하게 내리친다.
쿠웅!
강한 충격에 들썩거리는 대지.
한 순간 중심을 잃어버릴 정도의 충격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태극검술길드의 1팀원 중 한 명이 넘어지고 말았다.
-크허어엉!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키클롭스가 덜렁거리는 발로 그 팀원을 향해 발길질을 내질렀고.
“경우야!”
충격의 여파로 달려가지 못한 태하윤은 그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후웅!
넘어진 팀원을 향해 덮치듯 가까이 다가가는 키클롭스의 공격.
그 공격이 태하윤의 팀원에게 닿기 직전, 어디선가 달려온 사내가 휘두른 검이 키클롭스의 덜렁거리는 발목을 정확히 갈라냈다.
서걱! 쿵!
팀원을 구해낸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수호길드의 5팀장, 김신.
너무나도 깔끔한 검술실력에 놀랄 틈도 없이, 태하윤은 그의 검에 어린 형형한 묵색의 마나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
태극검술길드의 기본 검술인 태극검술.
꽤 수준 높은 검술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 길드원들을 위한 검술이다.
그리고 그런 길드원들의 검술과 다르게, 길드장과 부길드장 그리고 팀장은 서로 다른 상승의 검술과 호흡법을 익혔다.
탑에서 나온 아티펙트 중, 무술에 관련된 서적 세 가지.
그중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길드장과 부길드장 그리고 팀장뿐이었다.
평소 대외비로 취급되는 힘이었던 만큼, 어지간한 위기가 아니고는 꺼내들지 않았는데 그러한 힘을 검술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볼 줄이야.
그러한 이유로 태하윤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B22
“···검기?”
검을 감싸고 있는 묵색의 검기.
태하윤이 김신의 검술에 놀라 멈칫하자, 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이에요!”
김신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태하윤은 곧바로 검을 고쳐 쥐고, 달려갔다.
왼쪽 발목이 김신의 공격에 의해 없어진 키클롭스.
태하윤은 그런 키클롭스의 하나 남은 오른쪽 발목을 베기 위해 내공이 담긴 검을 내질렀다.
‘태극사검(太極四劍) 제 2식(式) 연뢰검(聯雷劍)’
섬광이 지나간 자리엔 큰 소리가 울린다.
쾌(快)검의 진수인 섬광검(閃光劍)과 다르게 패도적인 초식인 연뢰검(聯雷劍).
태하윤의 검이 키클롭스의 왼쪽 아킬레스건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태극검술길드의 팀원을 구한 김신은 태하윤의 검술을 보는 순간, 무윤의 기억에서 본 무당파의 장로가 사용하던 무술이 떠올랐다.
‘태극사검(太極四劍)?’
유(柔)검의 대표라고 꼽히는 무당파의 검술 중에서도 쾌(快)검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무술인 태극사검(太極四劍).
‘어떻게 무윤이 살던 세계에 있는 무술을 어떻게 쓰는 거지?’
지구에 무공을 창시한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이 가설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생각해볼만한 가장 큰 가능성은 단 한 가지.
‘탑에서 무술서가 나오는 것처럼, 혹시 무공서도 나오는 건가?’
만약, 생각이 사실이라면 무공을 쓰는 이들만 사용하는 단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우르릉!
한바탕 우레와 같은 소리가 지나가고.
태하윤은 토벌된 키클롭스를 뒤로한 채, 김신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쪽, 정말 B급 헌터가 맞나요?”
“아뇨. C급입니다.”
“네?!”
“C급 헌터라고요.”
“C급 헌터가 A급 괴수를?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안 될게 뭐가 있습니까.”
“안 되죠. 엄연히 등급이란 게 있는데.”
“그걸 뛰어넘는 강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김신의 얼굴에 태하윤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재차 질문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등급보다 강해질 수 있는 거죠?”
“제가 그걸 알려드려야하나요?”
김신의 날카로운 반응에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은 태하윤은 곧바로 사과했다.
“흐음...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네요. 등급보다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어요.”
“뭐, 그럴 수 있죠.”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적당한 질문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검기는 어떻게 쓰시는 거죠?”
김신은 태하윤의 입에서 나온 검기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자신이 생각한 가설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걸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무술의 극의(極意)에 가장 가까이 갔었던 무윤의 기억을 보는 자신이 가장 유리하단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확인은 해보고 싶은데...’
검술길드는 원래부터 폐쇄적인 집단.
직접적인 초대가 없다면 들어갈 수 없다.
그렇게 김신이 태하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하려고 입을 연 순간.
“대답하기 힘드시면 말씀하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면 그것 말고 좀 더 가벼운 질문으로 하죠. 저희 태극검술길드에 초대하고 싶은데, 오시겠어요?”
초대를 받기위해 거래를 하려고 했었는데.
의외의 결과에 김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좋습니다.”
김신의 입이 열렸다 닫힌 것을 본 태하윤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한 거였죠?”
“아, 아닙니다.”
가벼운 말 몇 마디 이후 다시금 김신과 태하윤은 키클롭스의 부산물에 대한 조율을 시작했고, 조율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네? 지분의 절반을 주신다고요?”
“예, 절반이요.”
솔직히 키클롭스의 토벌 자체를 생각해보면 저지를 하기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사실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었다.
그러한 생각이 어린 김신의 표정을 읽었는지, 태하윤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고생하신 걸 생각하면 더 드리고 싶은데 저희 팀원들도 받아가야 할 콩고물 정도는 필요해서요.”
차고 넘치는 생각이상의 수확이었기에 김신은 미안해하는 태하윤에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충분히 큰 금액입니다. 저는 오히려 조율이 잘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하하, 사실. 그 조율에는 저희 길드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봐달라는 약간의 사심이 들어가 있어요.”
노골적인 영입의사.
태하윤이 웃으며 어깨를 살짝 쳤고, 김신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예...”
3.
사이렌이 울리고, 계속해서 대피방송이 흘러나오는 도봉구의 현장.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의 대피를 돕던 송인아는 김신과 강한우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순간, 둘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오빠 차에서 뛰어내릴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팀장님이라는 호칭을 빼놓고 예전처럼 말하는 송인아.
김신은 그런 송인아에게 웃으며 답했다.
“미안해, 하지만 말 한 거처럼 죽지는 않았잖아?”
“지금 그걸...! 에휴! 못 말린다. 진짜.”
그 말을 끝으로 송인아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몸을 돌리며 이어 말했다.
“일단, 돕던 거는 마저 돕고 올게.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딱 기다려. 알겠지?”
“그래, 알았어. 안 그래도 삭신이 쑤셔서 어디 못가겠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송인아의 모습에 옆에 있던 강한우는 조금 슬퍼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도 고생했는데...”
강한우의 그 짠한 모습에 김신은 조용히 그의 등을 두드려줬다.
“제가 알잖아요.”
“감사합니다...팀장님.”
그렇게 대피작업이 마무리가 되고, 긴급 상황이 풀리며 현장에 활기가 돌아올 쯤, 검문소 근무원인 김태종과 김신이 도와준 태극검술길드의 박경우라는 남자가 다가왔다.
“여기는 어쩐 일로...?”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김신.
그 모습을 본 김태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몸 던져서 저희를 지켜주신 두 분께 감사인사를 못한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늦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여기에 계셨군요.”
김신은 김태종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뭐, 당연한 일을 한 겁니다만...”
“아뇨.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일은 마수를 막지 못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희가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검문소의 경계근무를 하는 헌터들의 목적은 대로변으로 침입하는 괴수들을 막고,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김태종은 가장 어려운 일을 김신과 강한우에게 맡기고 대피를 지시하러 간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김태종은 김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김신씨와 강한우씨는 저 뿐만이 아닌, 저희 가족도 살린 것이기도 합니다.”
“네?”
“사실 제가 도봉구에 살고 있거든요.”
“아...!”
거듭해서 감사인사를 한 김태종은 끝으로 한마디를 한 다음 떠나갔다.
“아마 조만간 연합에서 이 사건에 대해 큰 보상이 갈 겁니다. 제가 입이 닳도록 수호길드에서 다했다고 말해놨거든요. 제가 검문소 근무를 하지만, 생각보다 연합에서 입김이 강해서요. 그럼, 일이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예. 수고하십쇼.”
그렇게 김태종이 떠나가자, 옆에서 그 모습을 감명 깊게 보고 있던 박경우가 입을 열었다.
“저야 말로 목숨을 구원받았는데, 뭘 더 말씀드릴까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건-”
‘그건 그냥 몸이 먼저 나갔다’라는 말을 하려고 김신은 입을 열었지만, 박경우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저도 뭔가를 드리고 싶은데, 제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이걸 받아주시겠습니까?”
박경우가 말과 함께 건네 준 것은 다름 아닌 조그마한 회중시계.
김신은 그 회중시계를 받아들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