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1.
김신의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기사의 기억 중 가장 첫 장면은 거대한 평야를 뒤덮을 만큼 많은 적군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있는 기사의 시선이었다.
“내가 적진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
방패를 든 병사출신의 기사.
모두의 놀림거리가 되던 카엘이라는 이름의 기사는 항상, 위험한 전투에서 가장 앞장섰다.
그런 그의 별명은 무패의 기사.
-우리는 그가 있는 한 지지 않는다!
위아래로 달린 손잡이를 번갈아 잡아 휘두르면 기사의 방패는 검이 되었고, 양손으로 잡으면 누구도 뚫지 못하는 성벽이 되었다.
“모두 내 뒤를 따라라!”
그렇게, 피와 살이 튀는 전투에서 생존하기 위해 휘둘렀던 병사의 방패는 동작이 담긴 기술로 변하고, 나아가 누구든 베어내며 모두를 지키는 방패술이 되었다.
***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처럼 카엘이라는 기사는 강한우와 닮은 점이 많았다.
커다란 덩치, 엄청난 힘.
두 가지의 항목이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방패의 무게가 무거웠다.
“후, 들고 가는 것도 일이네.”
힘들게 창고에서 방패를 꺼낸 김신은 다시 팀원이 있는 가게 내부로 돌아가 강한우에게 방패를 보여줬다.
“한우 씨. 이거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평범하군요.”
앞서 말했듯 외형적으로 평범한 모습에 약간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는 강한우에게 김신은 웃으며 말했다.
“그 방패의 손잡이를 잡고, 휘둘러보세요.”
김신의 말이 끝나자, 강한우는 방패를 집어 들고 허공에 휘둘렀다.
파칭! 쐐애액!
휘두름과 동시에 모서리에서 날이 튀어나오며 검을 휘두르는 듯한 파공성이 울리는 방패의 모습에 강한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헐...”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강한우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한 가지 기능을 더 알려줬다.
“아직 놀라긴 일러요. 이번엔 위쪽 손잡이를 잡고, 마나를 불어넣어보세요.”
“이, 이렇게 말인가요?”
자연스럽게 방패를 잡고, 수비하는 형태를 취한 강한우가 방패에 마나를 불어넣는 순간,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키키키킹!
방패의 앞부분을 빼곡하게 채우며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원뿔.
마치, 수많은 창날이 붙어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에 강한우는 눈까지 부릅떴다.
“어떻습니까? 좋죠?”
“좋긴, 엄청 좋은데, 아티펙트의 가격이...아-!”
붙어있는 가격을 보자, 이제는 해탈을 해버린 강한우.
김신이 강한우에게 저 방패를 추천해준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것을 가게 안에서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우선 길드로 복귀하기로 했다.
“더 알려드릴 게 있지만, 그건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계산을 하시죠.”
“대체 이런 물건을 어떻게 알아내신 건지...”
“영업 비밀입니다.”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끝마친 강한우.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송인아와 천명화가 김신에게 달려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각자 한마디씩 했다.
“팀장님! 저도요!”
“저, 저도 좋은 검 한 자루만...”
김신은 둘의 간절한 모습에 정말로 좋은 골동품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둘의 전투방식과 맞는 물건은 없었기에 사실을 말했다.
“미안. 지금은 둘이 쓸 만한 아티펙트가 없어. 나중에 좋은 걸 발견하면 알려줄게.”
“히잉...”
“...”
김신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송인아와 천명화를 돌려보내고, 김상덕에게 다시 다가갔다.
“할아버지, 물건 잘 쓸게요.”
“그래, 나도 애물단지였던 저 녀석이 좋은 가격에 주인을 만나 나가서 좋구나.”
“그럼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끝으로 김신은 팀원들과 함께 다시 길드로 돌아갔다.
2.
김신은 길드에 도착하자마자 강한우와 함께 전투장으로 내려갔다.
“아까는 좁은 공간이었던 탓에 알려드리지 못했던 것을 알려드리려고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카엘의 기억이 담긴 방패는 방패 그 자체로도 훌륭한 아티펙트지만, 진정한 효용은 따로 있다.
“방패술입니다.”
“방패술이요...?”
강한우에게 아티펙트를 추천할 때부터 김신이 고민했던 한 가지.
‘어떻게 방패술을 가르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으로 김신은 스스로 코치가 되기로 했다.
“예, 제가 직접 알려드릴 겁니다.”
모든 무술은 무술을 연마한 장인에게 사사 받는다.
그 이유는 바로, 정확한 동작을 행하지 않으면 생성되지 않는 스킬 때문이었다.
강한우에게 우연치 않게 얻은 무술서로 스킬을 습득했다고 거짓말을 한 김신은 반신반의하는 강한우를 상대로 일대 일 코칭을 시작했다.
“조금 더 앞발을 높이 들었다가 내리 찍으면서 방패를 내리치세요.”
“이렇게요?”
“흠, 잠시 방패 좀 줘보세요.”
강한우에게 넘겨받은 방패의 묵직함에 김신은 힘을 증가시키는 버프를 사용한 후, 천천히 동작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몸에 힘을 실어서 방패로 상대를 가격하는 겁니다.”
김신에게서 다시 방패를 넘겨받은 강한우는 여전히 서툴지만, 확실히 나아진 모습으로 그가 보여준 동작을 따라했다.
“이, 이렇게 말입니까?”
“꽤 나아졌네요. 일단 그 느낌으로 동작을 연습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방패만으로 B급에 오른 게 우연은 아니었는지, 잘 쫓아오는 강한우의 모습을 보며 김신은 계속해서 방패술을 알려주었다.
“수비적인 폼을 쓸 때는 크게 두 가지의 기술이 있어요. 쉴드차징처럼 밀어버리는 기술과 달려드는 상대의 타이밍에 맞춰 마나를 불어넣으며 위로 올려치는 기술.”
아티펙트의 수비할 때에 폼과 휘두를 때에 변하는 폼.
방패이기에 엄청난 기교가 필요한 기술은 없었지만, 두 가지의 폼에 따라 배워야할 기술이 달랐다.
“첫 번째 기술은, 지금처럼 쉴드차징스킬을 사용하되, 충돌 직전에 마나를 담아서 피해를 극대화 시키면 될 것 같고, 두 번째 기술은 달려드는 상대를 방패에 나있는 송곳으로 찔러서 메친다는 느낌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앞서했던 것처럼 김신이 직접 수비를 취할 때의 동작을 보여주었다.
“이건 공격과 다르게 할 만할 것 같습니다.”
수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손대지 않을 만큼 잘 따라온 강한우.
그가 김신에게 방패술을 전부 배워 스킬로 습득하기까지 꼬박 반나절의 시간이 걸렸다.
“스, 스킬이 습득 됐습니다! 진짜였군요!”
“전적으로 저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 믿지 못하셨군요.”
“팀장님...죄송합니다.”
김신은 중요한 할 말이 있었기에 장난을 그만 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강한우에게 말했다.
“앞으론 팀에 디펜더는 강한우씨가 유일한 만큼, 많이 힘들 겁니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당부사항은 제게 스킬을 배웠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보통의 경우로 말하자면 무술 장인이 대접받는 세상이었기에 김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강한우는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방패를 쓰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는 강한우 씨가 방패술의 장인인겁니다.”
“그게 무슨-”
강한우는 그런 김신의 모습에 반박을 하려했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탓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강한우가 방패를 들고 전투장 한쪽 구석에서 방패술을 연마하고 있는 사이.
김신은 이제 슬슬 활동을 시작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끼고, 성장을 위해 수련에 매진했다.
후웅! 휙휙!
권각술을 시작으로.
쐐액! 쐐애액!
검술까지.
천마신공에 적힌 모든 초식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동작을 세세히 파고들었지만 별다른 발전은 없었다.
“후우...감을 못 잡겠네. 그때는 느낌이 왔었는데.”
한유성과의 대련 중, 마지막 일격을 나누기 전 초식을 준비하며 느껴졌던 벽을 본 것 같은 간질간질한 감각.
김신은 그때의 느낌을 느껴볼까 싶어, 가부좌를 틀고 한유성과의 대련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아, 답답해.”
하지만,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는 법.
다시 일어나서 땀을 흘리며 검술을 수련하던 김신에게 강한우가 다가와 말했다.
“팀장님 수련하시는 걸 보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검술은 복잡하군요. 저는 시도조차 못할 것 같습니다.”
“복잡해 보입니까?”
“예, 방패술에 비해서 되게 어렵지 않습니까? 방패술은 딱 힘을 실어서 때리고, 밀치면 되는 무술이잖아요.”
허(虛)를 싣는 실전과는 다르게 연습을 할 때는 내공을 실지 않는다.
이 말은 즉, 연습하는 순간만큼은 그저 단순한 베기와 찌르기의 연속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복잡해 보인다고?’
강한우의 말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모순.
단순한 동작을 행하는데도 복잡하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때로는 그 분야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말이 엄청난 영감을 줄때가 있다.
김신은 강한우의 말에 답 없이 검을 집어 들고, 초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나갔다.
베기는 무엇이든 벨 수 있게, 찌르기는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게.
그렇게 알게 모르게 성장을 방해하고 있던 동작에 묻어있던 군더더기를 벗기는 순간.
지잉!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인 선명한 검기가 검에 맺혔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진정한 천마신공의 첫 번째 초식.
“하아-”
김신이 검을 뒤로 빼며 내공을 끌어올리자, 묵색의 기가 온몸을 타고 돌며 육체를 강화시킨다.
그와 함께 검에 선명히 맺히는 묵색의 검기.
지이이이잉!
만년한철로 만든 검이 울릴 정도로 검에 내공이 가득 담기자, 김신은 망설임 없이 전투장의 가건물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개벽(開闢)’
카가가가각!
검으로 부터 발출된 검기가 바닥을 헤집으며 가건물과 부딪치는 순간.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검기에 직격당한 가건물이 내려앉았다.
“아니...무슨...C급 헌터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강한우의 모습에 김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땀을 닦아냈다.
3.
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동을 해야 한다.
김신은 강한우에게 방패에 대한 보답을 받고 난 후, 편한 마음으로 첫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팀의 합을 맞출 겸, 첫 실전으로 미개척지역 답사를 나가볼까합니다.”
미개척지역 답사.
말로는 거창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임무는 아니다.
괴수에게 점령당한 경기도와 강원도.
그 안에 포함된 모든 지역의 괴수를 조사하고, 토벌하는 것이 미개척지역 답사이기 때문이다.
김신의 말을 끝나자, 새로운 스킬과 아티펙트를 얻은 강한우가 가장 먼저 답했다.
“언제 활동을 시작하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근질근질한지,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강한우의 모습에 송인아가 질문했다.
“오늘 가나요?”
“아니, 내일 아침 일찍 양주로 출발할거야. 그리고 가는 길에 B급 의뢰도 받고.”
기왕이면 다홍치마.
활동을 하면 따로 연합에서 나오는 금액이 있긴 했지만, 의뢰의 보상만큼 많은 돈을 주는 것은 아니다.
김신의 생각과 다르게 송인아는 높은 등급에 대한 우려를 말했다.
“B등급이요? 조금 높지 않아요?”
“맞아, 높지. 그런데-”
송인아의 우려처럼 강한우 외에는 B급이 없는 5팀은 확실히 B급 의뢰는 무리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김신의 경지는 초절정.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만큼, B급의 괴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내가 더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