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
대련이 끝나고, 김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밖으로 떠밀리듯 나간 강한우는 전투장 밖에서 선 상태 그대로 방패가 부서졌던 순간을 곱씹었다.
“막지...못했어.”
느린 속도와 공격적 능력의 부재.
두 가지의 단점을 커버할 정도로 방어적 재능에 자부심이 있던 강한우는 C급 헌터인 김신의 마지막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난 안되는 걸까?”
C급의 공격을 막지 못한 방어에 올인 한 B급 헌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호칭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강한우 씨, 여기서 뭐합니까?”
전투장의 입구에서 나온 한설의 말에 퍼뜩 놀라 정신을 차린 강한우가 고개를 돌리자, 한설의 옆에 쓰러진 김신의 모습이 보였다.
“김신 씨는 왜...?”
“그게, 마나 탈진 때문인지 기절했어요.”
“마나 탈진이요? 그게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닐 텐데...”
마나를 말 그대로 한계를 넘어서까지 짜내야만 오는 게 마나탈진이다.
강한우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겼던 천명화와의 대련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하자, 한설은 천명화와의 대련 이전에 있었던 한유성과의 대련을 빠트렸다는 것을 깨닫고, 빠진 부분을 말해주었다.
“아, 천명화씨 이전에 길드장님이랑 대련을 했어요. 팀장 자리를 얻기 위해서.”
“네? 길드장님이랑 김신 씨가 대련을요? 말이 안 될 것 같은데...”
“당연히 같은 수준의 힘을 쓴다고 했었죠. 그런데 그 약속을 어겨서 김신씨가 반칙패로 이겼어요.”
“아...”
천명화 이전에 있었던 한유성과의 대련.
S급 헌터마저도 B급의 힘을 끌어다 썼을 정도로 김신의 능력은 B급에 가깝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하지만, B급의 힘을 쓴다고 해도 자신은 A급 헌터의 일격조차 막았던 헌터.
C급 헌터인 김신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탓에 강한우는 다시금 손을 보며 표정을 굳혔고, 그런 그의 표정을 본 한설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감을 잃었음을 알아챘다.
“흠, 강한우 씨.”
“예, 한설팀장님.”
“사실, 아까 나오다가 들었습니다. 자책하시는 거요.”
한설의 말에 강한우는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한설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엔 그냥 돌아가려 했는데, 이대로 두면 스스로 무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알려드리죠.”
“뭘 말이죠?”
“패배의 요인이요. 아니,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랄까요?”
“질 수밖에 없던 이유? 대체 뭔가요.”
마지막 한줄기 희망을 본 것처럼 눈을 빛내는 강한우의 모습에 한설은 말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을 말해주었다.
“사실 지금의 김신 씨는 당신의 방어를 뚫을 수 없어요. 단지, 방패의 한 부분만 집요하게 노렸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을 뿐이죠.”
“방패의 한 부분...”
강한우는 한설의 말을 들은 순간, 김신과 대련하던 때에 느껴진 그의 이상한 행동이 떠올랐다.
‘분명, 이상한 소리가 들린 이후로 찌르기를 좀 더 많이 사용하긴 했지.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설마?’
강한우는 생각을 이어가던 순간, 맞춰지는 퍼즐에 자신의 패배요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내방패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예, 김신 씨는 방패의 내구도가 거의 다했다는 걸 알아채고, 약한 부분만 노렸을 뿐이죠.”
“무기를 관리하고, 한계를 아는 것도 능력이라는 건가...”
사실을 알게 된 강한우는 처음에 보였던 무력한 모습에서 벗어났지만, 무기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대련이 아닌, 실전이었다면 난 죽었겠지.’
약점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계획을 수정해서 승리를 거둔 게 김신이다.
강한우는 결과에 승복하기로 마음먹은 후, 한층 밝아진 얼굴로 한설을 바라봤다.
“팀장님. 그런데, 김신 씨를 의무실로 데려가는 중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앗!”
강한우의 말에 놀란 한설이 다시금 김신을 의무실로 데려가려하자, 그 모습을 본 강한우가 다가와 김신을 대신 들쳐 업으며 말했다.
“저도 손목이 살짝 시큰한 게, 아무래도 의무실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신 씨는 왜...”
“앞으로 제가 있을 팀의 팀장님인데 팀원이 모셔야죠.”
앞장서서 김신을 데리고 의무실로 향하는 강한우의 모습에 한설은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
2.
김신은 의무실에 깨어난 후,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는 강한우와 천명화의 모습에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방패가 부서질 때, 손목을 다친 것 같아서 확인 차 왔습니다.”
“누가 절 의무실로 보내버려서 그렇겠죠?”
김신은 둘 모두 의무실에 온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김신이 멀쩡한 것을 확인한 강한우는 그에게 대련의사를 물었다.
“그나저나, 팀장님은 대련을 계속 하실 겁니까?”
“팀, 팀장님이요?”
“네, 팀장님.”
뭔가 급격하게 바뀐 강한우의 호칭에 김신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 아뇨.”
김신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우와 인상을 찌푸리는 천명화.
그는 그런 둘에게 대련을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해주기로 했다.
“대련을 하지 않는 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뭡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우와 다르게 이유를 묻는 천명화의 모습에 김신은 답했다.
“최고의 디펜더와 최고의 전위를 얻었으니까요.”
“지금 사람 놀려요?”
“아뇨, 말 그대롭니다. 강한우씨와는 다르게 천명화씨의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실력은 확실하니까요.”
“···어?”
갑작스러운 김신의 인정에 천명화는 쏘아붙이는 말을 하려다, 입을 벌린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김신은 칭찬에 익숙해 하지 못하는 천명화에게 계속해서 칭찬이 섞인 답을 해줬다.
“천명화씨는 제가 숨기던 이능력을 쓸 정도로 특성이 강력했어요. 아마 그 이능력이 없었으면 접근하지도 못한 채로 끝났을 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처럼, 담담한 얼굴로 칭찬을 하는 김신의 모습에 천명화는 괜히 헛기침 하며 빨갛게 물든 얼굴을 보이지 않게 돌렸다.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네.’
김신의 말에 고개를 돌렸던 천명화는 빨겠던 얼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한결 누그러진 모습으로 답했다.
“흠흠. 그럼 그렇지. 우리 팀장님이 뭘 좀 아시네.”
그리고 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설과 송인아는 김신의 조련에 말없이 감탄했다.
***
김신의 말에 의해 사실상 대련이 끝나고 난 후.
의무실에 모여 있다가 각자 할 일을 하러 흩어진 사람들 중, 김신은 태도가 갑작스럽게 변한 강한우를 불렀다.
“강한우 씨.”
“예, 팀장님.”
김신은 처음과 같이 굉장히 깍듯한 태도로 답하는 강한우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제가 의무실에 있을 동안 혹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뇨.”
“그런데 왜 그렇게...말투가...”
“아, 그게. 사실 다 들었습니다.”
“뭘요?”
“제가 대련에서 질 수밖에 없던 이유를요.”
강한우가 한설에게 들은 사실과 그 사실을 토대로 깨달은 패배의 요인을 모두 김신에게 말했다.
어찌 보면 요행으로 이길 수 있었던 승리.
김신은 강한우에게 되물었다.
“분하지 않습니까?”
강한우는 김신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뇨, 전혀 아닙니다. 무기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제 잘못도 크지만, 그걸 떠나서 그런 약점을 짧은 시간에 간파하고 이용한 김신 팀장님의 승리입니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완벽하게 패배했고요.”
자신의 패배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김신은 결과에 승복하는 강한우의 모습에 좋은 팀원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3.
다음날.
김신은 팀원 구성이 끝나자, 가장 먼저 전력을 보강하기로 했다.
‘가장 처음으로는 아무래도 무기가 부서진 강한우가 좋겠지.’
팀의 든든한 성벽이 되어줘야 할 디펜더이기에 김신은 조금 더 신경 써서 무기를 구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할 일이 없었기에 각자의 무기를 손질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5팀의 팀원들 중, 김신은 보급용 방패를 들고 있는 강한우를 불렀다.
“강한우 씨.”
“예.”
“보급용 방패, 별로 안 좋지 않습니까?”
강한우는 김신의 말에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아티펙트도 어디까지나 헌터의 전력 중 하나입니다. 알고 계시죠?”
“예, 사실 그래서 조만간 타워 엔티크에 들릴까 하긴 했는데. 아직 에픽이상의 아티펙트를 살 돈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백문이 불여일견.
김신은 강한우의 말에 입 아프게 말로 설명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했다.
“일단, 믿고 따라오세요.”
***
김신이 강한우와 함께 김상덕 할아버지의 가게로 가던 중, 갑작스레 합류한 송인아와 천명화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왜 따라오는 거야?”
“바늘 가는데 실. 아니, 팀장님 가는데 팀원이 따라가야죠.”
“흠흠.”
맑게 웃으며 답하는 송인아와 조용히 묻혀서 따라오는 천명화.
김신은 그런 둘의 모습에 자신의 팀이 생겼다는 것이 실감났다.
“따라와. 대신, 조용히 해야 해.”
김신은 5팀의 팀원을 이끌고 [골동품 매매소]라고 적힌 간판이 달린 익숙한 가게의 문을 열었다.
딸랑-
입구부터 좌우로 놓여있는 진열장.
종류별로 모아놓은 골동품이 쌓여있는 가게에 들어가자, 가장먼저 강한우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씀하신 방패를 구할 장소가 여깁니까?”
“예.”
“골동품은 감정도 못해서 골동품이잖아요. 미감정 아티펙트랑 다르게 이건 꽝 아닙니까?”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강한우의 말에 김신은 웃으며 답했다.
“제가 수호길드 오기 전에 감정사였습니다만.”
“네?!”
“헐. 진짭니까?”
김신은 자신의 과거에 똑같이 놀라는 강한우와 천명화를 뒤로하고, 이곳을 빤히 쳐다보는 김상덕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골동품 사러왔습니다.”
“웬일로 네가 사람들을 많이 끌고 왔구나?”
“앞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된 동료에요.”
“그래?”
그렇게 말한 김상덕은 안경을 슬쩍 내려 강한우와 천명화 그리고 송인아의 얼굴을 꼼꼼하게 훑어본 다음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다들 인상이 좋구나.”
“그렇죠? 좋은 팀원입니다.”
김상덕의 말에 대답한 김신은 모든 팀원을 차례로 소개시켜줬다.
“···그럼 일단 좀 둘러볼게요. 할아버지.”
“그래.”
김신은 김상덕과의 대화가 끝나자 팀원들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한 후, 망설임 없이 창고 안으로 향했다.
‘그때 뭐라도 찾으려고 훑어본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타워 엔티크가 아닌, 굳이 김상덕의 골동품 매매소로 온 이유.
그것은 예전에 블라이어의 스태프를 얻는 과정에서 본 방패를 무기로 쓰던 기사의 기억이 담긴 아티펙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찾았다.”
성인 남성의 키만 한 거대한 타워실드.
방패의 심 부분에 둥근 징이 박혀있는 것을 빼면 전체적으론 수수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공방일체의 방패술을 마스터한 기사.”
김신은 눈을 감고 손을 뻗어 방패의 겉을 쓰다듬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