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15화 (15/116)

《15화》

1.

한유성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S랭크 헌터다.

그가 가진 특성은 [질량 조절].

얼핏 보면 단순한 특성이지만, 그는 그 특성을 순식간에 질량을 증가시켜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어적인 사용법과 한 부위에 무게를 실어서 타격하는 공격적인 사용법으로 헌터랭킹 5위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힘을 제약한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겠지.’

무려 10년이다.

긴 시간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특성의 사용방법은 분명 변칙적이고, 예상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넓디넓은 전투장을 꽉 채울 정도의 존재감을 뿜고 있는 한유성이 생각이 많은 김신을 향해 말했다.

“시작하게. 첫 수는 양보해주지.”

한유성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숙인 김신은 곧바로 대련용 철검을 들어 자세를 잡으며 버프를 사용했다.

특성 가속의 사용, 헤이스트, 스트랭스. 그리고 한유성을 향한 디버프인 슬로우까지.

김신의 마법을 사용하는 동작인 허공을 수놓는 행동이 끝남과 동시에 몸이 묵직해지는 느낌을 받은 한유성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김신에게 말했다.

“오호, 자네.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구만?”

“제가 좀, 유별납니다.”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한유성에게 달려간 김신은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휘익!

찌르기로 시작한 공격.

극쾌(快)의 묘리를 담은 검술이 김신의 손을 따라 펼쳐졌다.

쐐애액!

찌르기가 빗나가면 곧바로 내지른 검을 찍어내려 베어버린다.

휙! 쐐액! 휙휙!

마치 톱니바퀴 같은 쉼 없는 김신의 공격에 한유성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힘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대충 C급의 끝자락인가.’

첫 수를 양보한 것은 어디까지나, 김신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것.

김신의 기량파악이 끝난 한유성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피하는 것을 그만두고, 김신의 공격을 받아쳤다.

“힘은 쓰기에 따라 공격도 되고, 수비도 되지. 그리고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면 공격과 수비를 같이 할 수 있고.”

질량 조절을 통해 몸을 가볍게 만들고, 마나를 돌려 강화시킨 육체를 통해 더욱 빨라진 속도로 김신의 공격을 따라 잡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한유성의 주먹은 가진 바의 질량이 적었기에 김신의 검과 부딪친다면 튕겨나가리라 생각됐지만, 그는 그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에 또 다른 변화를 주었다.

후웅!

부딪치기 직전, 질량을 늘린다.

“조심하게. 많이 묵직할 테니.”

속도와 질량이 합쳐진 한유성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주먹이 속도에 중점을 둔 김신의 검과 부딪치자, 굉음을 내뿜었다.

콰아앙!

충돌직후, 한유성은 튕겨나가리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꿋꿋이 서있는 김신의 모습을 보곤, 의외라 생각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검에 힘을 풀어 충격을 상쇄시켰다? 검은 꽤 다룰 줄 아는구만.’

김신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는 한유성과 다르게, 한유성이 내지른 반격의 일권을 받아낸 김신은 부서진 철검을 들고 충격에 휩싸였다.

‘특성을 순간적으로 바꿔 사용한다고?’

말로는 쉽지만, 결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으리란 것이 짐작됐다.

한유성이 보여준 특성의 사용 방법은 끓는 물을 바로 얼리는 수준의 변화였으니까.

분명 모든 각성자들의 특성이 같진 않으니, 모두가 저런 방식으로 특성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대련이라는 행위 자체가 김신에게는 큰 공부가 되고 있었다.

“자네-”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대련 중이다.

부서진 검을 들고 충격에 빠진 김신의 모습에 한유성은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계속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실전에서 무기가 파괴 됐다면 상대는 좋아할 것이다.

‘아마 한유성 헌터도 무기가 없어진 내가 아무것도 못하리라 생각해서 저렇게 말한 거겠지.’

챙그랑.

부서진 검을 버린 김신은 곧바로 주먹을 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오, 무투도 꽤 하나보군?”

“아직 쓸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조금 실망인 걸! 내 앞에서 어설픈 무술을 내보였다는 건 큰 실수일 걸세!”

김신의 검술에는 만족한 한유성이였지만, 무투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한 한유성은 함부로 맨손싸움을 걸어온 김신의 콧대를 눌러주겠다 생각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2.

상황이 바뀌어 처음과는 다르게 한유성이 주먹을 내지르는 것으로 공격의 시작을 알렸다.

후웅!

처음보다 더욱 빨라진 한유성의 움직임.

발에 무게를 집중하여 중심을 유지하고, 상체는 가볍게 하여 회피를 쉽게 만든다.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상체를 흔들며 김신에게 더욱 파고든 한유성은 권투의 위빙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김신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훅! 후우우욱!

인파이터 스타일의 공격방식.

특성상 근접전투를 주로 해야 했던 한유성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위력이 배가됐다.

그리고 그런 강점을 보이는 한유성의 모습에 김신은 필사적으로 백스탭을 밟고, 공격을 피하며 생각했다.

‘눈으로 쫓기보단 흐름을 타자, 어차피 맨손전투도 검술의 묘리를 담지 못할 건 없어.’

고민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내뻗은 김신은 빠른 속도의 한유성에 공격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흩트린다. 흘린다. 비운다.

유(柔)의 묘리를 살린 김신의 대응에 공격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가자, 오랜만에 흥이 오른 한유성은 처음 시작했던 것과는 다르게 한 단계 더 높은 힘을 끌어내며 전투를 이어갔다.

“이번엔 조금 다를 걸세!”

쿠웅!

한유성이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자, 주변의 땅이 갈라지며 흔들렸고, 그 탓에 발을 잘못 내딛은 김신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생긴 빈틈을 놓치지 않은 한유성.

흘리려들면 찢어발긴다.

한유성은 과연 김신이 어디까지 대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에 자신이 쌓아온 무투기 중 하나를 내보였다.

‘유성권(流星拳).’

모든 것을 부수고 꿰뚫을 만큼 패도적인 힘이 담겨있는 한유성의 주먹.

파공성을 울리며 다가오는 섬전 같은 공격에 김신은 본능적으로 평범한 기술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흘리는 것도 불가능. 피하는 것도 불가능. 맞으면 죽지는 않지만 꽤 너덜너덜한 모양새로 나가떨어지겠지. 하지만, 상대는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힘을 조절하고 있다. 그렇다면...’

찰나의 고민 속에서 나온 결론.

‘압도적인 힘으로 맞받아친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김신은 오른팔을 뒤로 당기며 내공을 끌어 모았다.

파츠츠츠!

묵색으로 물든 오른팔이 내공으로 인해 터질 듯이 가득 찬 순간.

‘개벽(開闢).’

하늘을 꿰뚫어 열어젖힌다.

모든 힘을 한 곳에 모아 쏘아내는 천마신공의 첫 번째 초식이 한유성의 기술과 맞부딪혔다.

3.

쿠우우우우-

힘과 힘의 맞대결이 거대한 폭음과 마나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끝난 후.

전투장을 뿌옇게 뒤덮고 있던 먼지가 내려앉으며 대련의 결과가 드러났다.

“하아, 하아...”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김신과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서있는 한유성.

아직 승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이상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한유성이 승부를 알려왔기 때문에.

“자네의 승리일세.”

김신은 담담하게 결과를 말하는 한유성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어째서입니까?”

“자네의 공격이 생각보다 더 강해서 힘을 더 끌어다 썼네. 지키지 못한 내 반칙패일세.”

한유성은 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잠시 멈칫했으나, 곧 등을 돌려 전투장의 밖을 향해 나가며 말했다.

“어쨌든 축하하네. 수호길드의 최초로 팀장직위부터 시작하는 길드원이 탄생했으니까 말이야.”

“감사합니다.”

“아니야, 모든 것은 자네가 얻은 걸세. 좀 더 당당해져도 괜찮아.”

팀이 생겼고, 팀장의 직위를 얻었다.

원하던 결과를 실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쟁취했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이젠 팀원을 구할 차례인가.’

김신은 전투장 밖으로 나가는 한유성을 끝까지 보고난 후, 온몸에 힘이 빠져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나저나, 뭔가 느낌이 왔었는데...’

마지막에 내지른 일권에서 느껴지던 간질간질한 느낌.

김신이 그 느낌을 되새기는 사이, 전투장 한편에서 마지막 일격의 여파를 막기 위해 얼음의 방벽을 세워놓은 한설이 전투가 끝났음을 깨닫고, 드러누워 있는 김신에게 다가왔다.

“아빠는 어디로 갔어요?”

김신은 누워있는 상태 그대로 한설을 바라보며 답했다.

“결과만 알려주시고 바로 나가시던데요?”

“으, 진짜. 내가 뭐라고 말할 거 알고 도망쳤네.”

“네?”

“제가 아빠한테 그렇게 살살하라고 말했는데도 재미있다고 막 힘써서 싸웠잖아요.”

“아.”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도망친 게 한설의 구박을 받기 싫어서였나?

김신이 한유성의 의외의 모습에 가볍게 웃었고, 그 모습을 보던 한설이 한 가지 말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런데 오늘 처음 봤어요.”

“뭘요?”

“평소에 아빠가 저랑 말하는 모든 남자들한테 죽일 듯이 괴롭혔는데, 김신씨는 의외로 순순히 넘어가 주시는 거요. 원래는 성격이 괴팍해서 남들을 잘 인정해주지 않거든요.”

“좋네요. 인정받는 거.”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이제 또 바쁘게 움직이셔야죠.”

“네?”

“사람 구해야 하잖아요.”

“아, 맞다! 그런데 어떻게 구하죠?”

“일단 공지부터 해요.”

한설에 말에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김신은 몰려오는 근육통에 잠시 신음을 내뱉고, 전투장의 밖으로 나갔다.

***

딸의 구박을 피해 대련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도망치듯 전투장의 밖으로 나간 한유성.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릿한 손을 만지며 김신과의 마지막 일격을 곱씹었다.

“아무리 힘을 줄였다지만 B급을 넘어서는 힘이 담겼었는데, 그걸 맞받아쳤다라...”

처음 보는 형태의 무술.

10년간 사람과 괴수를 가리지 않는 전투와 검술길드에 소속된 헌터들과도 붙어봤지만, 그토록 신기한 무술은 처음 봤었다.

“기묘한 무술이었지.”

내지르는 공격마다 힘을 흩어내는 김신의 신기한 무술 때문에 대련의 중반이 넘어서는 B급 수준의 힘까지도 담았었고.

“어떤 무술인지 물어볼걸 그랬나? 에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알아도 쓸모가 없다.

이미 자신 만의 무술체계를 잡은 한유성이었기에 이내 고개를 털어 그 생각을 지워냈다.

‘팀장의 직위는 얻긴 했지만, 과연 지킬 수 있을까?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한유성의 마음 한 구석에 김신이라는 사내가 자리를 잡은 순간이었다.

***

수호길드에서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C급 헌터, 천명화.

그는 항상 1팀과 2팀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지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팀원은 실력위주 아닌가? 대체 왜 약해빠진 팀원보다 더 강한 내가 못 들어가는 거지?”

약한 사람보다 강한 자신을 뽑아주지 않는 1, 2팀 때문에 천명화는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에휴, 더 강해져서 차라리 팀장이 되고 말지.”

그렇게 천명화가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을 수련장에 풀러가는 도중, 귓가에 들리는 방송에 자리에 멈춰 섰다.

키잉-

마이크를 키자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오늘부로 신설된 5팀의 팀장이 된 김신이라고 합니다.

“김신?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익숙한 이름과 다르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천명화는 계속해서 방송을 들었다.

-다름이 아니고, 5팀의 팀원이 부족한 관계로 팀원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팀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천명화는 김신이란 사람이 누군지 기억났다.

“아, 이단승급자였구나. 그런데 C급 주제에 팀장을 달아?”

보통 길드원은 팀원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올려 가는 게 정석인데?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상황.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천명화와 다르게 시작부터 팀장을 단 김신의 실력에 그가 의문을 느꼈다.

-그런데 아마, 5팀에 자진해서 지원하시는 분이 없겠죠?

“잘 아네, 증명이 된 게 없는 팀장 밑에 들어갈 사람은 없지.”

위험부담만 가득한 팀장의 팀에 들어간다?

아무리 팀에 들고 싶은 길드원이더라도 능력 없는 팀장 밑에서 죽을 위기를 겪고 싶지는 않을 거다.

천명화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귓가를 솔깃하게 만드는 김신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지원을 받기 위해서 조건을 하나 달아볼까합니다.

“조건? 지가 뭐라고 조건을 달아? 아니, 애초에 걸게 없을 텐데? 설마 뭐, 팀장 직위라도 걸려나?”

천명화가 우스갯소리로 말한 조건.

설마하며 코웃음을 치던 천명화는 이어지는 방송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건이 성립하는 랭크는 B급까지. 저와 대련을 해서 이기면 5팀의 팀장을 달고, 지면 팀원이 되는 겁니다.

“이런 미친놈. 그걸 진짜 건다고?”

김신의 도박에 가까운 발언 뒤에 이어지는 결정적인 한마디.

-하지만, 저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받을 생각은 없으니, 자신 있는 사람만 오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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