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
헌터들이 보유한 힘을 나누는 등급처럼 무공에도 그와 비슷한 느낌의 경지가 있다.
평범한 사람의 수준인 삼류부터 신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초월경까지.
그중에서도 김신이 도달한 경지는 절정. 즉, 내공을 검 외부에 두를 수 있는 정도의 경지다.
“아쉽다...”
한 번의 마나집적진 사용으로 반 갑자의 많은 양의 내공을 축척할 수 있었지만, 깨달음이 없었기에 아직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 근데 요즘 뭐만하면 옷이 더러워지네.”
그래도 천마신공의 첫 번째 초식을 사용할 만큼의 내공이 모였기에 유사시에 대비할 만한 힘은 갖추었다고 생각한 김신은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며 더러워진 옷을 입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오후에 모든 것을 끝낸 김신은 저녁이 되기 전, 송인아와의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약속된 시간이 되어 도착한 약속장소.
조금은 이른 시간 탓이었는지, 비교적 한산한 가게에 자리를 잡은 김신은 송인아가 들어오자 가볍게 손을 들어 손짓했다.
“왔어?”
전에 했던 전화 때문인지, 풀이 죽어있는 송인아는 김신의 모습을 보곤 옅게 웃으며 답했다.
“응...”
“왜 죄지은 사람처럼 그래?”
“아니, 그냥 미안해서. 오빠가 그렇게 싫어할 줄 알았으면 다른 방법을 써볼 걸...”
미안해하는 송인아의 모습을 보니, 의지가 확고해졌다.
“네가 미안할 거 없어. 그런 행동을 한 곽명한이 나쁜 거지. 그리고 오늘 보자고 한 이유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네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만난거야.”
한설에게 말했던 조건 중 하나였던, 송인아도 같이 영입한다는 조건.
송인아는 헌터의 일을 하며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그 조건을 강요할 순 없었다.
“어떤 의견...?”
“그게, 인아야 혹시 오빠랑 같이 수호길드로 넘어가자고 하면 올 거야? 자리는 확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헌터사회에서 최상위권 길드와 그렇지 못한 길드는 금전적인 보상 문제나, 헌터 개개인의 위험도가 다르다.
쌓아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철저한 분석을 통해 공략을 하는 최상위 길드와 개개인의 능력을 믿고 공략을 진행하는 중소형길드.
그랬기에 어렵사리 들어갔던 불사길드에서 쉽사리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송인아는 김신이 하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답했다.
“...정말?”
“응.”
가족들의 부양문제와 그간의 고민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해결책.
게다가 수호길드는 길드랭킹 2위에 헌터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길드다.
최근에 뭔가 팀 내의 분위기가 불편하게 바뀐 것을 몸소 느끼던 송인아는 가족들의 생활을 유지한 채, 좋아하는 김신과 같이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면 수호길드로 갈래.”
밝아진 분위기로 말하는 송인아의 모습에 한 시름 돌린 김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행이네. 혹시라도 네가 거절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거든.”
“매번 오빠한테 신세만 지네.”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난 내가 다친 것보다. 네가 끝까지 남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니까, 신세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알겠어.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라고. 나야말로 목숨을 빚졌으니까.”
대화를 끝으로 김신은 송인아와 저녁을 먹고는 가게에서 나왔다.
“집으로 갈 거지?”
“응.”
“오늘은 힘들 텐데 택시 타고 가. 바래다줄게.”
김신이 송인아를 바래다주기 위해서 함께 으슥한 골목길을 걸어가던 도중, 조용한 골목길의 앞과 뒤에서 동시에 두 명의 남자가 걸어 나오는 것을 기감으로 감지했다.
묘한 걸음걸이와 자꾸만 바지 뒤춤을 매만지는 수상한 행동.
거기에 더해서 미약한 살기까지 느껴진다.
‘곽명한이 보낸 건가.’
너무나도 이상한 것이 분명한 그들의 행동에 김신은 슬쩍 팔꿈치로 송인아의 팔을 툭, 하고 쳤다.
뚜벅뚜벅.
가까워 오는 남자 둘과 거리가 좁혀지고, 어느새 스쳐 지나갈 만큼 가까워졌을 쯤.
스르릉!
바지 뒤춤에서 긴 회칼을 꺼내든 남자 둘의 기습에 김신과 송인아는 동시에 반응했다.
2.
송인아도 엄연한 C랭크 헌터다.
뛰어난 직감과 오랜만에 교환한 김신의 사인으로 바로 앞에 있는 남자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송인아는 곧 벌어질 수도 있는 전투를 준비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됐다.
‘오빠는 아직 E랭크인데...’
만약 뭔가 불손한 의도를 지닌 빌런이라면 김신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던 송인아는 예상했던 것처럼 기습을 해오는 눈앞에 남자의 공격을 막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뒤에도 있었어?”
송인아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던 다른 빌런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는 김신의 모습에 송인아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역시, 오빠는 걱정하는 게 아니야. 내 걱정이나 하자.’
***
알고당하는 기습은 오히려 반격을 당할 수 있다.
오른손에 쥔 회칼을 최대한 빠른 경로로 찔러 들어오는 빌런.
김신은 그런 빌런의 행동을 내공의 운용과 특성을 통해 느려진 세상 속에서 정확하게 감지해냈다.
쉬익쉬익!
김신은 목과 심장의 위치로 찔러오는 빌런 공격을 묵색의 기가 어린 손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막아낸 후, 손바닥으로 가볍게 밀쳐서 거리를 벌리며 뒤에서 싸우고 있는 송인아를 훑어봤다.
‘대충, C급인 건가?’
꽤 대등하게 전투를 이어가는 송인아.
하지만, 무기를 든 남자와의 싸움이었기에 조금은 밀리는 듯 한 모습이 보였다.
스윽-
김신은 그런 송인아의 모습에 빠르고 간결해진 수인을 맺어 주로 쓰는 버프와 적에게 디버프를 사용했다.
‘메모라이즈. 스트랭스, 헤이스트, 슬로우.’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버프 사용과 동시에 느껴지는 엄청난 신체능력의 증가에 따른 송인아의 놀람과 디버프의 효과에 따른 빌런의 경악.
상황이 뒤바뀐 모습에 김신은 송인아에 대한 걱정을 한 시름 놓으며 다시 상대하던 빌런에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 남자는 E급 수준에 불과하다 했었는데...!”
역시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왔다는 것이 분명한 빌런의 말.
쉬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의 중얼거림이었으나, 내공의 운용에 따른 예민해진 감각에 정확하게 들려왔다.
“누가 그러디?”
“...!”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에 놀란 빌런이 황급히 입을 닫았지만, 이미 늦었다.
“넌, 오늘 사주한 새끼 말하기 전까지는 쉽게 기절할 수도 없을 거다.”
“겨우 E급 주제에!”
회칼을 꽉 쥐고, 악을 지르며 달려드는 빌런.
김신은 그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 진짜 이제는 그 말 듣는 것도 질린다.”
쉬익!
버프로 인해 더욱 빨라진 동체시력 덕분에 빌런의 공격이 훨씬 더 느리게 보인다.
다시 한 번, 목을 노리고 베어오는 공격.
하지만, 김신은 방심하지 않았다.
‘적은 빌런. 특성을 조심해야 해.’
과거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냉철함과 상황을 판단하는 직감이 눈앞에 빌런이 힘을 숨기고 있다고 경고한다.
공격의 반경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선 김신은 묵색의 기가 어린 손을 뻗어 회칼을 쥐고 있는 빌런의 손목을 정확하게 올려쳤다.
후웅-
‘···역시, 속임수였나!’
뭉툭한 타격음이 아닌,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역시, 애송이구나. 조금 흥분한 것처럼 행동해주니까 우습게 보이지?”
빌런의 목소리가 한 걸음 뒤에서 들려온다.
그 순간, 눈앞에 가짜가 사라지며 진짜 빌런의 공격이 손바닥을 올려친 자세의 김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공격은 빨라진 동체시력 덕분에 보이지만, 몸을 비틀어 대처 할 수 없다.
쉬이이익!
결국, 김신은 날아온 빌런의 공격에 목을 내어줘야만 했다.
파칭!
하지만, 실드에 가로막혀 튕겨나가는 빌런의 공격.
“나도 비장에 한 수 정도는 있다고.”
빌런을 향해 비웃으며 말한 김신은 실드에 가로막혀 튕겨나가는 빌런의 회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기를 없앤다.’
추정되는 상대 특성은 환영.
기습에 특화되어 있는 특성이지만, 얼마나 어떻게 더 응용이 가능한지 모른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선택은 공격할 무기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
회칼을 움켜쥔 김신은 곧바로 내공을 끌어올려, 무윤이 즐겨 사용했던 기술을 똑같이 따라했다.
‘파검(破劍)’
내공으로 한계 이상의 진동을 주어, 상대의 무기를 파괴해버리는 기술.
지이이이잉! 채앵!
김신의 손에 붙잡힌 빌런의 회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 조각으로 부러져버렸다.
“흠...”
그 모습에 김신은 손을 쥐었다, 폈다하며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바라봤다.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가, 산산조각이 나진 않네.’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목표는 이뤘다.
“씨발.”
무기가 부러진 빌런은 욕설을 내뱉으며 거칠게 부러진 회칼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김신은 그런 빌런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돌려 송인아를 살펴봤다.
우세하긴 하지만,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하는 모습의 송인아.
‘빨리 끝내고 가서 도와줘야겠네.’
그렇게 생각한 김신은 다시 상대하고 있는 빌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끝내자.”
“뭐? 끝내자고? 이런 씨발...!”
김신의 말이 도발로 들렸는지, 화를 내는 빌런이었지만 그래도 무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섣불리 달려들진 않았다.
“안 오면 내가 가고.”
팟!
엄청난 속도로 빌런에게 쏘아지듯 달려간 김신.
“...!”
그런 그의 모습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놀란 표정을 짓는 빌런을 향해 김신은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다.
“좀 있다 보자.”
3.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로 강하게 얼굴을 맞은 빌런이 그대로 기절하며 주저앉는 것을 확인한 김신은 곧바로 송인아를 향해 달려갔다.
“오빠...?”
너무나도 빨리 온 김신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는 송인아와 다급하게 공격을 거두고 거리를 벌리는 빌런.
김신은 거리를 벌린 빌런을 흘끔, 보고는 송인아의 옆으로 가며 말했다.
“뭘 놀라고 그래.”
“오빠 E급 맞아?”
“응, 갱신 안했으니까. E급이겠지?”
“무슨 E급이 그래?”
“그러게? 왜 그럴까?”
“이익! 진짜! 자꾸 말 돌릴래?”
“미안해. 일단 끝나고 알려줄게.”
같이 온 일행이 졌다는 사실에 빌런은 도주를 하기 위해 김신과 송인아에게서 천천히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계속해서 감지하고 있던 김신은 빌런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도망치려고?”
“...!”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빌런.
그런 빌런의 모습에 김신은 짧게 생각했다.
‘마법은...애매하네.’
수인을 맺는 순간, 아마 빌런은 도망치고 없겠지.
고민이 끝난 김신은 한발자국 뛰어간 빌런을 향해 내공을 담은 오른발을 들어 강하게 내리찍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기술의 사용과 동시에 땅을 향해 강하게 무릎을 꿇는 빌런.
“끄윽!”
엄청난 압력에 의해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는 빌런에게 걸어간 김신은 그 앞에 쪼그려 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누가 니들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