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9화 (9/116)

《9화》

1.

괴성을 내지르며 여왕이 쓰러지자, 김신은 내공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역시, 너무 적어.’

위력은 천마신공을 수련할 때 느꼈던 것처럼 확실했지만, 아직은 내공만으로 전투를 하긴 힘들었다.

‘이제 천마신공은 못쓰겠네.’

방금 전의 전투로 내공이 바닥을 드러냈지만 싸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마법이 있었으니까.

김신이 내공을 거두자, 쥐 죽은 듯이 바닥에 붙어있던 개미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김신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시잇!

무리의 여왕이 죽은 것에 분노를 느끼는 건지, 개미들은 연신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김신을 맹렬하게 뒤쫓았다.

‘마법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오래 싸우면 오히려 불리하다.

슈우욱- 픽!

달리는 중에도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해 개미를 잡고 있지만,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일격에 소거시키는 방법.

도심지를 달리던 중, 김신의 눈에 마법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만한 좋은 재료가 들어왔다.

[오일 탱크 퇴촌주유소]

개미들이 싫어하는 화학물질에 불에 잘 붙는 특유의 성질까지.

주유소로 뛰어들어간 김신이 구석에 놓인 휘발유가 든 말통을 집어 들었다.

20리터의 용량이 제법 묵직했지만, 이동에 그리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시잇!

“그래 계속 따라와라.”

줄지어 따라 오는 개미들의 모습에 김신은 오른손에 든 말통을 뒤집어서 잡고, 휘발유를 쏟아내며 주유소를 중심으로 크게 돌았다.

개미들이 한쪽에 그어진 휘발유의 선을 타고, 일렬로 김신을 따라갔다.

‘이게 피리 부는 사나이인가?’

사람이 살지 않는 퇴촌이기에 사용 가능한 조금은 과격한 방법.

-시이잇!

중간중간 괴상한 소리를 내며 바짝 붙어 날카로운 턱으로 물어뜯거나, 개미산을 발사하는 개미들이 있었지만 모조리 실드에 가로막혀 김신에게 닿지 못했다.

실드가 깨지면 다시 복구한다.

계속해서 선을 벗어날 행동을 안 하는 개미들의 모습에 실없이 웃으며 달리니, 어느새 주유소를 중심으로 휘발유로 그린 거대한 원이 생겼다.

-시잇...!

강한 휘발유의 냄새에 놀랐는지, 아니면 김신을 쫓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난건지.

김신은 휘발유로 그어진 선 안에 갇혀 괴상한 소리를 내는 개미들을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이거면 마나집적진 그리고도 남겠네.”

게다가 E급 마석과 비교 불가능한 사이즈일 것으로 생각되는 여왕개미의 마석까지.

김신이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유소 안에 가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휘발유는 불에 잘 붙지. 폭발도 강력하고.”

불에 잘 붙고, 밀폐된 곳에 있는 휘발유는 증발한 유증기로인해 잘 폭발한다.

스윽.

김신은 허리춤에 달린 스태프를 오른손으로 꺼내 들고, 왼손으로 수십, 수백 번 연습했던 파이어 볼의 수인을 맺었다.

스태프의 기능은 마력을 증폭시키는 것.

마나가 몸을 타고, 변환하여 기적을 일으킨다.

화르륵!

김신은 스태프의 효과를 받아 허공에 생긴 호박만 한 사이즈의 파이어 볼을 주저 없이 주유소의 주유기를 향해 날렸다.

“나를 보호하는 방패여, 실드.”

폭발반경에서 살짝 벗어난 거리에서 영창으로 실드를 중첩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한 마리의 개미라도 놓칠 수 없으니까.

실드 마법의 사용과 동시에 맹렬한 기세를 내뿜으며 날아간 파이어 볼이 주유기에 명중했고.

콰아아아앙!

“어휴, 팡팡 터지는 게 짜릿하네. 이래서 불구경이 재미있다는 건가.”

주유기에 저장된 휘발유는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2.

곤충의 외골격을 이루고 있는 성분인 큐티클, 즉 경단백질은 불에 약하다.

“씨발.”

경(硬)단백질.

말 그대로 굳어서 단단해진 단백질이다.

불에 닿은 개미의 외피는 변형되고 뒤틀리며 끔찍한 냄새를 내뿜었다.

“우욱!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김신은 코끝을 찌르는 악취에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개미들의 몸속에 있는 마석들을 챙겼다.

“사진, 찍었고. 증거물, 챙겼고. 마석은...찾느라 힘들었지.”

넓은 공터가 되어버린 주유소의 이곳저곳에 제멋대로 흩어져있는 개미의 내장과 체액. 그리고 외피까지 불에 타며 내뿜은 끔찍했던 악취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김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계곡에서 꼼꼼하게 목욕을 하고, 챙겨온 가방에서 옷을 꺼내어 갈아입었다.

“다신 곤충형 괴수 잡을 땐 불로 지지진 말아야겠다. 아직도 몸에 냄새가 남아있는 거 같아.”

앞으로의 주의사항이 하나 늘었다.

***

다시 테트라곤으로 돌아간 김신은 의뢰의 증거물을 전달하기 위해 데스크로 들어갔다.

끼익-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진 데스크에는 상담직원이 앉아있는 창구와 기다리는 헌터가 앉아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이게 의뢰의 증거물이라고요?”

“네.”

창구를 통해 여왕개미의 머리와 부산물인 마석을 전달받은 직원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의문이 섞인 말투로 질문했다.

“의뢰인이 제출한 리포트에는 이정도 등급의 괴수가 없다고 들었었는데, 정말 직접 잡으신 거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김신의 확고한 말투와 표정에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생각한 직원은 어디론가 연락했다.

“예, 여기 8번 데스크인데요. 아무래도 의뢰의 등급 재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등급 재조정을 하네.’

간혹 있는 일인 의뢰 등급 재조정.

받은 의뢰 증거물의 등급이 의뢰인이 제출한 리포트보다 높거나,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경우 하게 되는 절차다.

물론, 이 절차를 밟으면 조금 귀찮아지기는 하지만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등급 갱신을 할 때, 결과가 반영되니까.’

바로, 한설이 말한 조언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다른 직원은 김신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어떻게 잡으신 건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근처의 주유소를 폭파시켰습니다.”

“아...!”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이기에 가능한 방법.

자칫하면 귀찮아질 일을 다른 방법을 통해 납득시킨다.

증거자료와 방법을 들은 직원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창구의 직원은 다시 김신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재조정과정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쓰셔서요.” “뭐,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죠?”

등급 재조정이 일어난 만큼, 의뢰의 보상도 커지는 법.

김신의 질문에 직원은 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C등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보상은 오늘이나, 내일 오전 중으로 적어주신 계좌에 입금 될 겁니다.”

생각 이상의 엄청난 수익이다.

E급과 다르게 C급은 1억이라는 의뢰대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김신은 목표로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결과에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테트라곤의 밖으로 나왔다.

3.

다음날.

알람을 듣고 눈을 뜬 김신은 간단하게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철컥-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가며 핸드폰을 살펴보니, 밤사이에 문자가 와있었다.

[입금 100,000,000원]

입금자의 이름을 확인해보니, ‘의뢰대금’이라 적혀있었다.

“빠르네.”

간만에 만져보는 큰돈에 조금 흥분했지만, 아티펙트나 마석을 사기에는 애매했던 탓에 금방 가라앉았다.

지금은 성장이 우선이다.

돈은 능력에 비례해서 벌수 있는 것이 헌터사회였기에 김신은 곽명한이라는 목표를 앞두고, 약간의 사치라는 미련을 떨쳐버렸다.

현재 수중에 있는 마석은 E급 61개와 C급 1개.

E급 마석의 시세가 대략 200만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의뢰대금보다 마석의 가격이 더 많았다.

‘나머지는 다 예비용으로 집어넣어두고.’

스무 개의 마석을 챙긴 김신은 가게근처에 있는 사람이 없는 야산에 올랐다.

빠른 속도로 정상 인근에 위치한 한적한 공간에 도착하자, 김신은 가방에서 가지고 온 마석을 꺼냈다.

‘일단 마석을 가루로 만들어야지.’

마나집적진은 말 그대로 자연의 마나와 마법진을 그린 마석의 마나를 끌어와 마법진 내에 마나의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마법진이다.

그에 반해서 검술길드에서 쓰는 마나수련실은 단순히 마석이 내뿜는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었고.

퍼석!

내공으로 단단하게 만든 손으로 가볍게 마석을 가루로 낸 김신은 가루로 만든 마석을 바닥에 뿌리며 조심스럽게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크기는 홀로 들어가 앉아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면 충분하다.

5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김신은 마법진을 가동시키는 마지막 부분까지 그릴 수 있었다.

우웅-

곧바로 밝게 빛나며 작동을 시작하는 마나집적진.

‘미쳤네. 이러니까 검술길드 들어가려고 환장을 하지.’

평소에는 느껴볼 수 없는 농축된 마나가 내공과 마법을 사용하며 단련된 감각 덕분에 더욱 선명하게 마법진 안에서 느껴졌다.

아주 약간의 마나낭비도 아깝다.

김신은 재빨리 마법진안에 들어가 천마신공의 구결대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운기조식의 방법은 크게 소주천과 대주천으로 나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머리와 몸에 내공을 돌리는 것을 소주천, 양팔과 다리까지 내공을 돌리는 것을 대주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소주천과 대주천이라는 행위 자체가 마나를 정순하게 만들어 단전에 쌓는 행위.

가부좌를 틀고 마나집적진 중앙에 반듯이 앉은 김신이 천마신공에 구결에 따라 소주천을 시작하자, 소주천의 시작지점인 단전에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많은 양의 마나가 단전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모여든다.

처음 다뤄보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단전내부에 터질 듯이 가득차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김신은 잇새사이로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큭...!”

단전이 가득 차는 것도 위험하지만, 여기서 쏟아지는 마나를 곧바로 마나로드 아니, 기맥을 따라 흘려보내는 것도 위험하다.

자칫하면 내부의 기맥이 너덜너덜해져서 영구히 폐인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양을 줄이고, 천천히 돌린다.’

재능이 없으면 배울 수조차 없는 것이 천마신공이다.

뛰어난 기감과 마법을 사용할 때의 감각을 되새기며, 김신은 매우 정교한 마나컨트롤로 천천히 단전에 가득 찬 마나를 기맥을 따라 흘려보냈다.

길들이고, 다스린다.

마나란 한 마리의 야생동물과도 같은 것.

길들여지지 않은 마나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김신의 기맥 여기저기를 두드려 고통을 느끼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마나의 움직임덕분에 김신의 기맥 여기저기에 쌓여있던 탁한 기운 또한 배출되는 행운이 따라왔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내부를 관조하며 마나를 정순하게 만든 김신이 눈을 뜬 순간.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코끝에 느껴지는 구수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