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8화 (8/116)

《8화》

1.

한설에게 전화를 건 것은 순전히 이전에 남긴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은 길드에서 나온 상태에요?

그때당시에는 이상했던 그 말이 생각났었기에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이었고, 결국 예상이 맞았던 거다.

아직은 홀로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는 동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그나마 수호길드는 돈보단 사람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길드원의 평판이 가장 좋은 수호길드였기에 믿어보기로 한 거였다.

송인아까지 함께 영입해달라는 김신의 말을 들은 한설은 꽤 빠르게 대답했다.

-상부에 이야기는 해보겠는데, 자칫하면 민감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언을 해드리자면, 등급 갱신을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 수호길드는 유망주도 목마른 상태지만, 그보다 더 고랭크 헌터가 목마른 상태니까요.

걱정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한설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볼게요.”

-예, 저도 최대한 힘써보겠습니다.

한설의 말을 끝으로 김신은 전화를 끊고, 잠시 멈춰서 생각했다.

옛 팀원인 김신에게 곽명한은 심한 굴욕을 당했다.

‘어떻게 나올까...’

교활한 행동을 하는 상대와 그걸 대비해야하는 김신.

고민은 결국 한 가지 결과로 끝났다.

‘내가 강해져야 해.’

도움을 받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믿을 건 스스로의 힘밖에 없다.

고민을 끝마친 김신은 원래 목표했던 마석을 얻기 위해 테트라곤으로 향했다.

***

밋밋한 회색빛 외벽으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모양을 가진 거대한 건물.

테트라곤이라 이름 붙여진 이 건물은 하루에도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갈만큼, 헌터들에게는 밥줄과도 같은 장소다.

현상금 사냥, 진입불가지역 정찰, 거대괴수 토벌 등 수 많은 의뢰와 헌터가 모이기에 강원도, 경기도 지역이 괴수에게 점령당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안전한 여의도에 위치해 있었다.

3년 만에 다시 온 테트라곤.

다리를 다친 후로는 더이상 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장소에 목표를 가지고 다시 오게 된 것이 이유일까.

의지가 솟아오른 김신은 곧바로 토벌의뢰를 받으러갔다.

-인천항에서 포착된 C급 지명수배자 수색 및 사살.

-춘천시 북한강 인근에서 발견된 A급 괴수 토벌.

-속초시 전진기지 레이드 지원 [B급 이상]

-의정부시 B급 게이트 토벌.

-[긴급] 청계산 인근···

-[긴급]···

서울에 있는 상위길드와 3대 검술길드에서 주기적으로 서울시에 인접한 괴수들을 토벌하지만, 경기도와 강원도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개체의 괴수들에게 점령된 탓에 대부분의 의뢰는 토벌과 관련되어 있었다.

“흐음...”

현재 김신의 헌터 랭크는 E급.

‘그러고 보니 이번 토벌이 끝나면 등급갱신도 해야겠네.’

한설에게 받은 조언이 아니더라도, 능력 중심의 헌터사회에선 일정 이상의 랭커들은 의뢰나 대우가 저랭크 헌터보다 훨씬 좋다.

김신은 E랭크의 의뢰를 살펴보던 중, 가장 눈에 띄는 의뢰를 발견했다.

-[난이도 E랭크 추정] 퇴촌인근에서 목격된 E급 괴수 탐색 및 토벌.

멀지 않은 거리에 적당한 등급의 의뢰.

김신은 마석을 얻는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의뢰의 목표인 괴수가 있는 퇴촌으로 향했다.

2.

계곡물이 흘러가는 길가의 옆에 빽빽이 자라난 푸르른 나무.

청량한 공기를 만끽하며 도착한 퇴촌에서 김신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답게 군데군데 파괴된 도로와 건물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들려오는 기괴한 괴성이었다.

“E급 괴수가 내뱉는 샤우팅치고는 좀 과한 존재감과 박력인데.”

의뢰를 내건 의뢰인은 괴수의 공략법과 대처법을 알아내고, 괴수의 부산물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 연구하는 연구소.

의뢰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리포트에는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개미의 외형을 가진 괴수라는 설명과 정확한 생김새에 대한 사진, 그리고 추가적인 보상을 원한다면 증거물을 제출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적혀있었다.

“역시 토벌이 돈이 되네.”

증거물까지 제출할 경우에 책정된 보상은 천만 원.

탑에서 나오는 아티펙트의 감정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수입이었다.

김신은 적당히 주의를 기울이며 처음으로 발견되었다는 장소 주위를 돌아다녔다.

“개미와 거의 똑같다고 했었지.”

리포트에 적힌 정보 그대로의 생김새라면 아무래도 실제 개미와 습성이 비슷할 터.

짧다 하면 짧고, 길다 하면 긴 30분 동안의 수색 끝에 계곡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남성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는 장소를 찾았다.

무성한 풀의 사이로 나 있는 구멍을 중심으로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흙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리포트에서 본 것과 같은 거대한 개미가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마나집적진을 그리려면 넉넉하게 스무 마리 정도는 잡아야겠지?’

보상의 조건은 사진과 증거물 제출.

김신은 짧은 고민 끝에 수인을 맺어, 은밀한 공격이 가능한 2서클 마나애로우 마법을 사용했다.

지잉-

미약한 마력의 흐름과 함께 생성된 3개의 반투명한 화살.

김신은 가벼운 손짓으로 허공에 띄워놓은 화살을 구멍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개미를 향해 날렸다.

슈욱- 픽!

날카로운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간 화살이 개미의 주둥이를 관통하며 머리와 가슴 부분을 깔끔하게 나누었다.

“간단하네. 검을 꺼낼 필요도 없겠어.”

E급 괴수를 한방에 두 동강내는 마법.

사람과 다르게 괴수를 상대할 때도 마법이 잘 먹힐까 싶었지만, 마치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이 일격에 나가떨어졌다.

강력한 마법의 위력에 짧게 감탄한 김신은 목표로 했던 스무 마리의 개미를 잡기 위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5마리...10마리...20마리.

순식간에 쌓여가는 개미들이 어느새 스무 마리를 달성했다.

‘이젠 사진 찍고, 증거물을 챙기고, 돌아가자.’

김신은 잡는 것을 그만두고 의뢰의 조건인 사진과 증거물을 채집하기 위해 죽은 개미에게 다가가던 순간이었다.

-시잇!

갑작스레 울리는 개미의 울음소리.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니, 주변에 있던 개미 한 마리가 동료의 죽음을 알아챈 것 같았다.

“...!”

실수는 순간이고, 상황은 계속되는 법.

푸욱!

마나애로우 한 발을 더 쓰는 것으로 급히 괴성을 지르는 개미를 잡았지만, 한순간의 판단 착오가 불러온 것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사각사각사각!

흙바닥이 들썩거린다.

마치 지진이 난 것 같은 진동을 울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런 미친!”

끝도 없이 나오는 개미들과 2미터는 가뿐히 넘는 크기의 여왕개미였다.

***

쪽수에는 장사 없다.

속된 말로 저렇게 말하지만 진짜다.

더군다나 개미는 집단사냥에 능한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

게다가 한 마리 한 마리의 크기가 성인 남성의 팔뚝만 했다.

‘곤충이 이래서 싫다니까...!’

결국, 김신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맞상대가 아닌 도주밖에 없었다.

전력질주를 하기를 10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둥지를 튼 덕에 얼마 도망치지 않아 도심지로 들어 올 수 있었지만, 개미들은 아스팔트 바닥이란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계속해서 쫓아왔다.

‘4서클 마법이 없으니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가 힘드네.’

조금 아쉬웠다.

4서클 마법부터 다수를 상대할 때 쓰기 좋은 마법들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저 많은 개미를 한방에 보낼 수 있을까.’

다리는 움직이고, 머리는 생각한다.

열심히 고민을 하던 중 뒤에서 여왕개미의 기분 나쁜 괴성이 들렸다.

-시이이잇!

김신을 향해 꽁무니를 돌린 여왕개미가 발사한 강한 개미산이 김신에게 정확히 날아가 그의 몸을 덮었다.

치이이익!

무언가가 타들어가는 끔찍한 소리.

그 소리와는 다르게 김신의 몸은 멀쩡했다.

‘미리 사용해두길 다행이었어.’

개미산이 김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을 녹이면서 흘러내린다.

만약을 대비해서 김신이 사용해둔 실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개미산 때문에 잠시 시간을 지체한 김신은 실드의 위력을 몸소 체험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독한거야?’

재빨리 수인을 맺어 손상된 실드를 다시 복구한다.

지잉-

허공이 일렁이며 점차 투명해지는 실드를 확인하고서야 김신은 고민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수를 상대할 직접적인 방법이 없다면 간접적인 방법이라도 써야해. 뭐가 있지...아!’

곰곰이 생각한 끝에 김신은 새로이 얻은 힘인 천마신공에도 다수를 상대할 때 좋은 기술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슬슬 숨이 가빠올 때쯤.

터벅-

“후우...”

김신이 뛰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 멈춰 섰다.

사각사각-

그런 김신의 모습에 개미들은 그를 중심에 두고 둥글게 포위했다.

수인을 맺어, 미리 준비해놨던 마법을 사용한다.

“메모라이즈. 스트랭스, 헤이스트.”

수인을 맺음과 동시에 사용한 메모라이즈 마법, 스트랭스와 헤이스트.

각각 근력과 이동속도를 높여주는 버프를 사용하고,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공이 얼마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보스만 잡는다.’

몸을 타고 흐르는 묵색의 내공이 일렁인다.

그와 함께 기분 좋은 고양감과 알 수 없는 투지가 타올랐다.

-시이이잇!

개미들은 뭔가 불길함을 느낀 듯 김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엄청난 수의 개미가 몰려온다.

김신은 그 모습을 보며 문뜩, 정마대전당시의 무윤에 기억이 떠올랐다.

-천마는 만인의 위에 있는 자. 내 앞에 서는 이들은 모두 무릎을 꿇으리.

무윤이 했던 것과 똑같이 내딛은 김신의 발이 땅에 닿자, 쿵! 하는 울림과 함께 주위의 대기가 그의 내공에 반응해 강하게 내려앉았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천마는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하는 자.

기술을 사용하자, 김신을 중심으로 중력이 강해진 것처럼 주위에 있던 개미들이 모두 다리를 떨며 바닥에 처박혔다.

-시잇!

그 와중에도 다른 일반적인 개미와 다르게 꿋꿋이 버티고 서있는 여왕개미.

하지만, 그것이 한계라는 듯이 여왕개미는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내공이 부족하긴 하네. 빨리 끝내자.”

김신은 움직이지 못하는 개미들의 사이로 걸어가, 여왕개미의 배를 짧게 끊어 쳤다.

‘발경(發勁)’

퍽!

외부를 통(通)해, 연약한 내부를 공격한다.

김신의 주먹에서 방출된 기가 개미의 외피를 뚫고, 연약한 내장을 헤집었다.

-시이이잇!

김신의 주먹질에 여왕개미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괴성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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